[고혈압 Ⅱ] “죽음의 문턱서 살아돌아온 기분” 고통받는 환자들-이용식 인터뷰 부모님 모두 고혈압 불구 건강관리 소홀, 8년 전 갑자기 쓰러져 응급실행 | |||
지금 회상해보니 정말로 죽음의 문턱까지 다녀온 것 같다는 코미디언 이용식(53)씨의 말이다. 그는 이전부터 가끔씩 가슴 통증을 느꼈다고 한다. “송곳으로 가슴을 팍 찌르는 것이 아니라 천천히 찌르는 것 같았습니다. 온몸은 땀으로 젖고 숨은 들여마셔지긴 하는데 내보내지지가 않아요. 맥도 떨어지고요. 병원으로 실려간 당일날에도 가슴에 통증이 있었습니다. SBS ‘이주일 코미디쇼’ 녹화를 하러 가기 전 샤워 중이었는데 온몸이 무척 뜨거워졌죠.” 샤워실에서 쓰러진 이씨를 매니저가 어깨에 메고 인근 병원으로 데려갔다. 의사가 진맥을 해보고는 혀 밑에 알약을 두 개 넣어주었다. 그리고는 큰 병원으로 옮겨야 한다며 신촌 세브란스병원으로 보냈다. “우리 가족은 제가 정말 죽는 줄 알았다고 합니다. 초상을 한 번 경험한 셈이죠. 지금은 덤으로 사는 새로운 인생입니다.” 실려간 그가 신촌 세브란스병원 응급실에서 만난 사람은 심장내과 정남식 박사였다. 정 박사는 이씨를 만나자마자 “오늘 녹화인데 여기 오면 어떡하냐? 하지만 나한테 걸렸으니 안심하라”고 말했다. “정 박사님은 제가 그날 출연하기로 했던 ‘이주일 코미디쇼’의 정한식 PD의 친형이었어요. 그분을 만나고 정말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멈출 것 같았던 심장도 안정됐죠.” 이씨는 발병 이전부터 신촌 세브란스병원 홍보대사를 맡고 있었다. 그는 ‘병원에서 모든 환자에게 최선을 다하겠지만 설마 홍보대사를 죽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고 한다. 다행히 그는 심장혈관의 막힌 부분을 뚫어 고비를 넘겼다. 이때 고혈압을 발견한 것이다. “몸무게는 99㎏이었는데 다행히 당뇨는 없었어요. 하지만 그뒤로 2년간 무지 고생했죠. 머리가 띵하다든지 뒷골이 무거우면 무조건 신촌 세브란스병원 응급실로 갔어요. 그런데 신기한 건 응급실만 들어가면 나았어요. 아마 심인성이었던 것 같습니다. 심장(心臟)의 ‘심’자가 ‘마음 심(心)’이잖아요. 마음이 불안해지면 혈압이 높아지고 심장이 멈출 것 같았어요.” 이후 그는 지방공연을 가면 인근 대형병원 이름이 무엇이고 어디 있으며 몇 분 거리에 있는지를 적어놓고 다니게 됐다. “이제 전국에 있는 고혈압, 심장 병원은 모두 알아요. 그래도 항상 조심하죠. 한번은 제주도에서 서울로 오려는데 갑자기 혈압이 올라가고 심장이 두근거려 비행기를 못 탔어요. 호텔로 다시 돌아와 잤죠.” 이씨는 8년간 매일 아침 하루도 빠짐없이 혈압약을 먹고 있으며 1년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검진을 한다. 정 박사가 그에게 가장 먼저 강조하는 것은 몸무게 줄이기다. 이를 위해 운동과 규칙적인 식사를 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저는 직업상 규칙적인 식사를 할 수가 없어요. 오후 1시에 아침을 먹기도 하고 밤 11시에 저녁을 먹기도 하죠. 또 운동을 하려다가도 스케줄이 잡히면 달려가야 해요. 4개월 전 헬스클럽 회원권을 끊었는데 한 번도 간 적이 없네요.” 그는 가벼운 등산이라도 하기 위해 5년 전 평창동으로 이사를 갔다. 그런데 지금까지 북한산에 두 번 올라갔다고 한다. “이사 가자마자 산이 어떻게 생겼나 올라가보고 두 번째는 개를 잃어버려서 올라갔죠. 그리고는 아직 못갔어요. 하지만 열다섯 살인 딸아이 때문에 운동을 꼭 할 거예요. 결혼식날 아빠가 예식장에는 데리고 들어가야죠. 그때까지만이라도 살기 위해 저는 운동을 할 거예요.” 사실 이씨에게 규칙적인 운동보다 더 힘든 것은 음식 줄이기라고 한다. 집에서 부인 김외선씨는 음식을 숨기기 바쁘고 이씨는 찾아내기 바쁘다는 것이다. “딸이 늘 아빠에게 살빼라고 하지만 저는 딸아이가 제 몸과 비슷해질까봐 걱정입니다. 유전이 될 수 있으니까 말이죠. 딸에게는 피곤하면 공부하지 말고 무조건 쉬라고 해요. 공부보다 건강이 중요하죠.” 일보다 건강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이씨는 주변 사람들에게 고혈압에 대한 상담역을 해주기도 한다. “약간이라도 고혈압 증상이 있는 사람은 전문의를 꼭 만나야 해요. 작년 초 고혈압과 뇌출혈로 쓰러진 동료 탤런트 한 사람도 1년9개월째 의식불명이잖아요. 쓰러지기 전 목욕탕에서 자주 만났는데 무척 피곤해 하더라고요.” 그는 돈도 좋고 명예도 좋지만 피곤할 때는 무조건 쉬라고 한다. 운동을 못할망정 휴식이라도 제대로 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저는 피곤하면 무조건 자요. 차에서라도 한두 시간씩 자죠. 제 몸은 제가 챙겨야 합니다. 그동안 제게 맞는 운동복이 없어서 운동을 못하겠다고 핑계를 댔는데 최근 미국에 갔을 때 큰 걸로 샀어요.” 하지만 고혈압 환자의 경우 역기나 윗몸일으키기처럼 갑자기 혈압을 올리는 운동은 해서는 안된다고 한다. 걷기 등을 통해 등에 땀이 서서히 날 정도로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운동도 좋지만 스트레스를 받지 말아야 합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혈압이 오릅니다. 또 짠 음식을 피해야 합니다. 요즘 직장인들이 저처럼 외식을 많이 하니까 짠 음식을 먹을 기회가 많지만 될수록 싱겁게 먹어야 합니다.” 담배 역시 끊는 게 좋은데 이씨도 아직 못 끊었다고 한다. 다만 하루 한 갑에서 반 갑으로 줄였다. 술은 가끔 회식자리에서만 조금 마신다. 완전히 금주를 하면 더욱 좋겠지만 1주일에 한 번 정도 마시는 것은 정신건강에 좋은 것 같아서라고 한다. “정신건강에는 봉사활동을 하는 것도 좋아요. 처음 하려고 하면 어색하죠. 연말에 구세군 냄비에 돈 넣을 때도 봉사를 많이 해본 사람은 여유있게 ‘수고하십시오’라고 하지만 처음 넣는 사람 중에는 얼굴 가리고 돈 넣고 도망가는 사람도 있잖아요. 봉사하는 건 부끄러운 게 아닌데 말이에요.” 이씨는 12년 전부터 서울대 어린이병원에서 무료공연 봉사를 해왔고 ‘아파트 마음의 벽 허물기’ 행사도 해오고 있다. 봉사를 통해 대통령, 국무총리 표창을 받기도 했던 그는 얼마 전부터 페트(PET·양전자방출 단층 촬영장치) 홍보대사를 맡았다. 페트는 CT(컴퓨터 단층촬영장치)와 MRI(자기공명영상촬영장치)보다 발전된 최신 의료기기다. “얼마전 집사람과 함께 페트 촬영을 했어요. 다행히 별 이상은 없었는데 배에 근육이 없다는 결과가 나왔어요. 전부 지방이래요. 복부지방, 내장지방 다 있다네요.” 1975년 데뷔한 이씨는 올해로 데뷔 30주년을 맞았다. 연말에는 결식아동 돕기를 겸해 데뷔 30년 디너쇼를 열 예정이다. 제주도에서 식당(뽀식이네 뼈감자탕집)을 운영하고 있는 이씨는 결식아동에 대한 관심도 많다고 한다. 그리고 선후배들을 위해 여생을 바치고 싶어한다. “남을 위해 봉사하고 웃기면 기분이 좋아져요. 몸도 편해지죠. 사람은 어차피 죽습니다. 어떻게 사느냐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가느냐도 중요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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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스벨트·스탈린도 고혈압엔 무릎 꿇어 고통받는 환자들-국내외 유명인들 김대중 전 대통령·박치기왕 김일 합병증으로 고통··· 국내 CEO 16%, 고혈압 시달려 | ||||
‘무언(無言)의 자객’고혈압은 해외 명사(名士)들의 목숨도 숱하게 앗아갔다. 영국 BBC방송은 2000년 7월 유명인의 건강 문제를 다루면서 “화려한 조명을 받는 이들은 치명적인 병을 앓더라도 종종 병세가 악화된 후나 사후에 드러난다”고 했다. 거목들의 고혈압 역시 마찬가지. 비명(非命)에 쓰러지고서야 세간에 알려진 경우가 많다. 2차 세계대전을 연합국의 승리로 이끈 미국의 32대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도 고혈압 앞에서는 무릎을 꿇었다. 1944년 2월 얄타회담에서 영국의 처칠 총리, 소련의 스탈린 당 서기장과 전후 질서를 논의한 그는 그로부터 몇 주 만에 뇌출혈로 숨졌다. 종전(終戰)을 눈앞에 둔 1945년 4월 12일이었다. 스탈린 역시 얄타회담 참석 당시에만 해도 멀쩡한 모습이었지만 8년 후 같은 증세로 세상을 하직했다. 세 거두(巨頭) 중 인생을 ‘롱런’한 인물은 아이러니컬하게도 골초로 소문났던 처칠 총리였다. 1945년 총선에서 패배해 총리직에서 물러났던 그는 1951년 다시 총리로 일하다가 1955년 81세의 고령으로 정계를 은퇴, 그러고도 10년이 더 지난 1965년에야 91세의 나이로 영면했다. 일본 정계(政界)도 알고 보면 고혈압의 지뢰밭이다. 2000년 5월 14일 뇌경색으로 타계한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일본 전 총리는 자세한 병세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고혈압을 앓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다케시다 노보루(竹下登) 전 총리와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 전 총리도 모두 고혈압과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정치인뿐만이 아니다. 지난 7월 1일 54세의 나이에 요절한 미국의 리듬 앤 블루스(R&B) 가수 루터 반드로스도 고혈압에 오래 시달렸다. 흑인 특유의 짙고 감미로운 목소리로 국내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았던 그는 2003년 4월 뉴욕 맨해튼 자택에서 뇌졸중으로 쓰러진 후 끝내 회복하지 못했다. 최근 혈압 문제로 언론에 오르내리는 인물로는 딕 체니 미국 부통령이 있다. 미 역사상 가장 강력한 부통령으로 평가받는 그지만 지금까지 심장발작이 알려진 것만 최소 4번. 37세인 1978년 처음 심장발작을 경험한 뒤 1984년과 1988년에도 재발해 혈관 수술을 받았다. 2000년 대선 후 플로리다주의 개표가 논란에 휩싸였을 때도 그는 심장을 감싸안고 신음했다. 결국 심장 부근 혈관 성형술을 받아야 했다. 또 2001년 6월에는 인공심장박동기 체내삽입 수술까지 받았다. 지난해 러닝메이트인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재선 여부가 걸린 대선 유세가 한창인 때도 그의 건강 문제가 다시 불거져 공화당 진영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취임 직후부터 활발한 해외순방으로 미국 외교 반경을 넓히고 있는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도 최근 고혈압과 인연을 맺었다. 1년여 전 희귀병인 폐고혈압 판정을 받고 투병 중인 젊은 소프라노 가수 채리티 선샤인을 위한 자선연주회에서 직접 피아노를 친 것. 일찍이 피아니스트를 꿈꿨던 라이스 장관은 지난 6월 11일 케네디센터 콘서트홀 무대에 올라 채리티양과 함께 모차르트, 베르디 등 6곡을 협연했다. 채리티양의 할아버지는 방북 활동으로 한국인에게도 낯익은 톰 랜토스(캘리포니아주·민주) 상원의원으로 라이스 장관은 랜토스 의원의 부인과 평소 알고 지내는 사이. 랜토스 의원이 손녀의 병세에 대해 설명할 때 눈물을 글썽였던 라이스 장관은 “우리는 이 병에 대한 일반인의 인식을 높일 수 있도록 뭔가를 해야 한다”라고 말해 장내를 숙연하게 했다. 국내 유명인들 고혈압은 국내 명사(名士)들 가족에게도 큰 슬픔을 주고 있다. 특히 고혈압은 뇌질환, 심장질환 등과 함께 합병증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폐렴 증세로 입원 치료를 받았던 김대중 전 대통령은 최근 고혈압과 폐에 물이 차는 폐부종 증세로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에 입원치료를 받았다. 또 ‘박치기왕’ 김일씨 역시 고혈압, 임파부종, 심부전 등을 앓고 있다. 역도산에게 박치기를 배운 김씨는 30여년간 3000여회에 걸쳐 국내외 경기를 치렀다. 탤런트 전운씨는 지난 3월 26일 고혈압으로 인한 뇌출혈과 대장암으로 사망했다. 그는 2003년 7월 고혈압으로 쓰러져 위기상황을 넘겼지만 2004년 말 대장암이 발생해 연기활동을 중단한 후 투병생활을 하다 세상을 떠났다. 서라벌예대를 졸업하고 부산 MBC라디오 성우로 방송계에 입문한 전씨는 후배들을 양성하는 연기아카데미를 열기도 했다. 또 탤런트 김흥기씨는 지난해 1월 30일 연극 ‘에쿠우스’ 공연 직후 고혈압으로 인한 뇌출혈로 쓰러졌다. 김씨는 그 해 7월 병원에서 경기 파주 자택으로 옮겨졌고 1년9개월째 투병 중이다. 친근한 아버지 역을 주로 맡아온 ‘국민배우’ 최불암씨도 고혈압 치료제를 복용하고 있다. 최씨는 “1999년에는 혈압이 140/100mmHg까지 올라갔다”면서 “꾸준히 혈압약을 먹어 지금은 130/90mmHg 이하로 떨어졌다”고 말했다. 그는 혈압측정기를 구입해 가정에서 틈틈이 혈압을 잰다고 한다. 최씨는 “운동으로는 걷기와 골프를 꾸준히 하고 있다”면서도 “술을 너무 좋아해서 끊을 수 없는 것이 딜레마”라고 말했다. 기업체 임원들이 가장 많이 앓고 있는 질환이 고혈압인 것으로 조사됐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최근 기업 임원급 대상 유료정보 사이트 ‘세리CEO’에서 447명을 대상으로 ‘현재 자신을 괴롭히고 있는 질환이 있다면 어떤 질환이냐’는 설문을 실시한 결과 16%가 고혈압을 꼽았다. 퇴행성 관절염 등 관절계통 질환, 간질환, 동맥경화 등 심혈관계 질환이 뒤를 이었다. 씨름선수로 유명한 이만기 인제대 사회체육학과 교수는 건강한 이미지로 추천돼 올초부터 고혈압 홍보대사로 활동 중이다. 이 교수는 “가족 중에 고혈압을 앓고 있는 분이 있어 평소에 고혈압에 관심이 많았다”면서 “전국적으로 개최되는 고혈압 예방 캠페인이라는 공익성 때문에 홍보대사를 맡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부산 자갈치시장에 ‘1일 고혈압 체크’를 다녀보니 자신이 고혈압인지도 모르고 사는 사람이 너무 많았다고 한다. 이 교수는 “고혈압 환자는 이른 아침에 운동을 하는 것이 좋지 않다. 조깅을 심하게 하는 것도 권하고 싶지 않다”면서 “저강도부터 시작해야 한다. 나이 드신 분들은 스트레칭, 체조, 게이트볼 등도 좋다”고 말했다. 서일호 주간조선 기자 |
“조금만 일찍 관리했더라면…” 뼈 아픈 후회 고통받는 환자들 건강 과신하다 방치... 자각증세 있을 땐 백내장·뇌졸증·당뇨 등 심각한 합병증 진행 | ||||||
김정현(42)씨는 최근 병원에서 백내장 수술을 받았다. 한동안 눈이 침침한가 싶더니 가까운 것도 멀리 있는 것도 잘 보이지 않아 시력이 떨어진 줄 알고 안과를 찾았다가 백내장이라는 판명을 받은 것. 그는 고혈압 합병증으로 당뇨병을 앓고 있었다. “처음에는 노안이 일찍 찾아온다고만 생각했어요. 그런데 병원에서 당뇨로 인한 백내장이라고 하더군요. 일찍 병원에 찾아가서 다행히 시력을 완전히 잃지는 않았지만 이렇게 하나둘 내 몸이 고장나는구나 싶어 자꾸만 무기력해집니다. 젊었을 때는 돌멩이도 씹어 먹을 수 있을 것처럼 튼튼했는데….” 김씨는 5년 전 회사에서 건강검진을 받다가 자신의 혈압이 높다는 것을 알았다. 혈압이 180/140mmHg으로 3기 고혈압에 해당하는 수치였다. 처음에는 무시하고 지나갔는데 잦은 술자리와 일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인지 두통이 심해지고 목 뒤가 뻣뻣하거나 정수리 부근에서 찌릿찌릿한 충격이 느껴지기도 했다. 혹시나 싶은 마음에 1년 쯤 뒤 다시 병원을 찾았을 때 혈압 최고 수치가 200mmHg이 넘게 나왔다. 게다가 이미 합병증으로 당뇨까지 겹쳐진 상황이었다. 김씨는 빨리 병원을 찾지 않은 것만 후회하고 있었다. 고혈압 환자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합병증이다. 고혈압 합병증은 주로 뇌졸중과 뇌출혈 같은 뇌혈관질환, 심근경색과 심장비대 같은 심장질환, 신부전증과 당뇨병성 신병증 같은 신장이상, 당뇨병 등으로 나타난다. 안압이 높아지면서 백내장이나 망막이상을 호소하는 사람도 많다. 최근에는 고혈압이 녹내장을 유발한다는 학계 연구보고도 있었다. 당뇨에 폐부종, 심근경색까지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심장센터에서 만난 김건희(48)씨는 이야기 도중 계속 심하게 땀을 흘렸다. “지금 이렇게 앉아서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저는 100미터 달리기를 하는 것처럼 힘들어요. 그래도 어제보다는 상태가 많이 호전됐습니다.” 김씨는 벌써 세 번째 병원에 실려왔다. 주치의는 “한 번만 더 실려 오면 그때는 정말 생명이 위험하다”며 으름장을 놓았다. “폐에 물이 차는 폐부종에 당뇨, 심장비대 증세가 있고, 신장기능까지 떨어진 상태예요. 어제 폐에서 물을 4리터나 빼냈죠. 고혈압으로 생길 수 있는 합병증이란 합병증은 다 앓고 있는 셈이에요. 백내장 수술도 한 번 했어요. 그런데 겉보기엔 멀쩡해요. 친구들이 병원 찾아와서는 자기네도 편하게 병원에 누워서 책이나 읽고 있으면 좋겠다면서 돌아가더군요.” 김씨는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눈에 띄는 자각증세가 없다고 건강을 과신한 것이 화근이라고 말했다. 그가 처음 고혈압인 줄 알게 된 것은 10년 전인 38세 때였다. 신촌에서 자영업을 하며 적지 않은 스트레스에 매일 밤까지 늦은 술자리와 과도한 흡연을 지속한 것이 원인이었다. 그러나 그때만 해도 젊은 나이인 데다 감기 한번 걸리지 않을 정도로 건강한 체질이라 조금 지나면 괜찮아질 줄 알고 넘어갔다. “고혈압 약도 어쩌다 생각나면 먹고 술 담배도 끊지 않았어요. 사실 최근까지도 하루에 담배 두 갑씩을 피웠죠. 선생님 아시면 저 정말 야단맞습니다. 몸이 안 좋아지려니 순식간이에요. 자각 증세가 심하게 나타났으면 제 스스로 관리를 했을 텐데 그러질 못했어요.” 한동안 운전 중에 갑자기 의식이 혼미해지기도 했다. 한번은 갓길도 없는 경인고속도로에서 운전하다가 의식을 잃었다. 안간힘을 쓰며 비상등을 켜고 서행해서 집까지 오는데 이러다가 죽을 수도 있겠구나 싶어 무서웠다고 회고했다. 요즘에는 혼자 샤워기를 들 힘조차 없을 정도로 몸이 힘들고 피곤하다. 밤에 누우면 호흡 곤란이 더욱 심해져 잠도 잘 수 없는 지경이었고 집에서 가게까지 몇 분 되지 않는 거리를 제대로 걷지 못해 가면서 수십 번도 더 멈춰섰다 가곤 했다. 폐와 심장이 정상보다 커져 있으니 소화도 잘 안 돼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고등학교 1학년, 2학년인 두 아들과 혼자 가게를 운영하는 아내 걱정에 마음이 편치 않다. 그는 마비가 오기 시작한다는 오른쪽 다리를 만지면서 “앞으로 돈 들어갈 일만 남았는데 병원비가 만만치 않은 데다 요즘 장사도 잘 안 돼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라면서 한숨을 쉬었다. 아들 잃은 노모는 뇌졸중으로 쓰러져
“사실 아버지가 고혈압이세요. 고혈압 약을 꾸준히 드시기 때문에 별 이상 없이 지내고 계시지만 막상 제가 고혈압에 심근경색이라니 앞이 캄캄해요. 술 담배 하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술자리에 나가야 하는데 직장을 그만둘 수도 없고 미칠 노릇입니다.” 장씨는 매일 짬 내어 헬스클럽에서 걷기 운동을 꾸준히 하는 것으로 위안을 삼는다. 혈압 약도 매일 잊지 않고 먹는다. 중견기업 임원인 강재우(54)씨는 고혈압 진단을 받고도 고혈압 약 복용을 게을리했다. 바쁜 회사 일 때문에 약 챙겨 먹을 시간도 여유도 없었다. 그러다 얼마 전 가슴에 심한 통증을 느껴 병원을 찾았더니 협심증과 심장비대, 고지혈증, 신장기능 저하라는 결과를 듣게 됐다. 주위 사람들 말을 들어보니 고혈압을 방치하면 심장에 높은 압력이 가해져 심장벽이 두꺼워지고 심장이 커지면서 심장비대로 이어진다고 했다. 강씨는 동네에서 중풍으로 몸이 마비된 사람들이 운동 삼아 아파트 산책로를 걷는 것을 보면 남의 일 같지가 않다. 윤영예(40)씨의 어머니 이형섭(62)씨는 최근 고혈압 합병증으로 인한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현재 오른쪽 근육이 마비 상태이고 말도 하지 못한다. 어머니를 돌보는 윤영예씨는 자식된 마음에 미안할 따름이다. “어머니께 아이들 맡기고 일을 하러 나가거든요. 고혈압이란 건 알고 있었지만 원래 건강하셔서 별 문제 없을 줄 알았어요. 그런데 매일 새벽 6시만 되면 일어나시던 어머니가 그날은 아침이 됐는데도 일어나질 않는 거예요. 출근 시간이 늦어서 그냥 나와 회사에서 집으로 전화를 걸었더니 어머니가 전화를 받아서 ‘어~’ 하는 신음 소리만 내시더라고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죠.” 경기도 이천에 사는 윤씨가 서울 직장에서 다시 집으로 돌아와 보니 갓난아이는 옆에서 울고 있고 어머니는 거실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구급차를 불러 병원으로 모셔갔지만 이미 손쓰기에는 늦은 상태였다.
윤씨는 어머니 뵐 면목이 없어 죄송할 따름이다. 어머니 이씨는 병원에서 두 달 동안 물리치료와 재활치료를 받고 퇴원했지만 혼자서 화장실도 못가고 식사도 못하신다. 그렇게 정정하던 어른이 갑자기 제 몸조차 가누지 못하게 되자 어머니는 의기소침해졌다. 누가 밥을 먹여주는 것도 마다하고 왼손으로 혼자 밥을 먹겠다며 고집을 부려 입으로 들어가는 밥풀보다 바닥에 흘리는 게 더 많다. 일을 보고 난 뒤 처리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자식들에게 알리기 싫어 화장실에 혼자 들어갔다가 변기에서 넘어진 적도 있다. 윤씨는 현재 일을 그만두고 어머니를 모시고 있다. 뇌졸중, 흔히 중풍이라 말하는 질병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흔한 고혈압 합병증이다. 뇌혈관이 터지거나 막혀 생기는 병으로 고혈압 환자는 정상인에 비해 뇌졸중에 걸릴 위험이 수배나 높다. 50대 주부인 방모씨는 얼마 전 오른쪽 발을 잘라냈다. 당뇨병으로 인해 혈관에 피가 잘 돌지 않아 발이 썩은 것이다. 당뇨를 앓는 사람들은 살이 썩는 것을 가장 무서워한다. 조그만 상처도 쉽게 아물지 않고 곪아 들어가기 때문에 절단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당뇨로 다리까지 잘라내고 “저희 친척들 중에 의사가 많아요. 저는 약사였고요. 그러니 더 기가 막히죠. 혈압이 높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바빠서 제대로 검사받을 생각을 못하고 있었어요. 자각 증세도 거의 없었고요. 지금은 약국 문을 닫고 집에만 있어요. 약물 치료를 꾸준히 받으면서 더 이상 상태가 나빠지지 않도록 하는 수밖에 없는데 솔직히 이 상태로 더 살아서 뭐 하나 싶은 심정이에요.” 방씨는 사람들도 잘 만나지 않고 혼자 집에만 누워 있게 된다며 자신의 처지가 싫다고 털어놓았다. 고혈압 합병증을 앓는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자각 증세를 느끼기 시작하면 이미 병이 진행된 상태이니 미리미리 예방에 신경 쓸 도리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들의 뒤늦은 후회다. 또 고혈압 합병증 중에는 미처 손 써볼 겨를조차 없이 목숨을 잃게 되는 경우도 있다. 삼성서울병원 관계자는 응급실에 실려 오는 고혈압 환자들 중에 대동맥박리현상을 보이는 이들도 간혹 있다고 말한다. 대동맥의 내벽이 찢어지는 증상인데 병원으로 와 수술을 받아 극적으로 목숨을 건지기도 하지만 대개는 병원에 와보지도 못하고 대동맥파열로 이어져 생명을 잃는다고 한다. 이선정 자유기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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