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 당신 속에서 자라고 있다
한국의 알코올 중독자는 350만 명, 도박 중독자는 300만 명, 마약 중독자는 약 100만 명으로 각종 중독자는 총 750만 명이나 된다(보건사회연구원 2000년). 그 외에 숨겨진 중독자까지 합하면 우리 사회에 많은 사람들이 각종 중독 현상으로 어려움을 당하고 있다. 사이버 게임, 주식, 섹스, 일, 쇼핑, 운동, 배우자, 종교 중독 등 많은 부분에서 중독 양상을 보인다. 이런 중독은 심리적 측면에서 볼 때 건강이나 재정 그리고 법적인 면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흥분 도달’ 혹 ‘금단 증상’ 탈피를 위해 지속적인 행위를 하는 강박적 욕구라고 볼 수 있다. 또한 2,000만 이상의 가족들이 중독자들로 인해 동반 의존(codependent)돼 ‘가족 병’을 앓고 있다.
집착의 노예 중독되었다는 말의 사전적 정의는 매우 일반적이다. 즉 습관적으로 열중하다가 몰두하는 것이다. 이 용어가 일반적으로 부정적인 행동에만 적용되긴 하지만, ‘좋은 활동’도 포함시킬 수 있다. 중독의 어원은 라틴어 ‘addicene’으로 ‘동의하는 것, 양도하는 것’이다. 고대 사회에서 감금되거나 노예가 된 사람을 묘사하는 데 사용되었다. 이런 의미는 현대의 중독자들을 ‘집착에 대한 노예’라고 해석하는 데에 방향을 제시해 준다. 압도적이고 반복되며 과도한 욕구가 어떤 물질, 대상, 느낌, 행동, 환경이나 개인적 상호 작용을 향해 존재할 때 그 사람은 중독되었다고 여겨질 수 있다. 정신 의학적으로 중독증은 주로 약물 중독을 의미한다. 동일한 효과를 얻기 위해 지속적으로 그 약물의 사용량을 늘려 가야 하는 ‘내성’과 그 약물의 체내 농도가 어느 수준 이하로 줄어들면 도저히 견딜 수 없는 불안, 초조, 식은 땀 그리고 각종 신체 이상 증상이 발생하는 ‘금단 증상’이라는 무서운 생물학적 의존 증상이 나타난다. ‘금단 증상’은 대뇌의 신경 세포들을 완벽한 포로로 사로 잡아, 그 약물을 얻기 위해서라면 어떠한 범죄 행위도 서슴지 않고 저지를 수 있도록 사람의 인격을 철저히 파괴시킨다. 중독증이란 단어는 사회적으로 매우 부정적 이미지를 함축한다. 마약 중독이나 알코올 중독에서 시작해, 한국 중년 남성의 반 이상이 걸렸다는 일 중독, 안 겪어본 네티즌이 없다는 인터넷 중독, 일부 유한 계층의 부동산 투자 중독, 명품 쇼핑 중독, 벤처나 주식 투자에 대한 광풍처럼 이미 중독이란 말은 복잡한 현대 사회의 한 단면을 지칭하는 중심 단어가 돼 가고 있다.
손상된 자아 기능의 반영
정신역동적 이론에 따르면 물질 남용이나 중독은 ‘자위 행위’와 유사하며, ‘동성애적 충동’에 대한 방어이고 ‘구강기적 퇴행’의 표현이라고 설명한다. 중독 증상은 우울증과도 관련돼 있고 손상된 자아 기능의 투영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물질 남용자 및 중독자들이 일반 인구에 비해 자살률이 20배나 높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또 중독에 잘 빠지는 사람들은 보통 강하고 지속적인 아버지 상이 없고, 어머니에 대해 소유와 거절의 감정이 있다. 방어기제나 적응기제 또는 내적 통제가 부족하고 심리적 욕구의 즉각 만족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목표를 향해 장기간 끈질기게 노력해 만족을 획득할 수 있는 자아 능력이 부족하고 기쁨을 추구하며, 쉽게 목적 달성을 이루려고 고통을 참지 못하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중독자들은 욕구, 고통, 성적 충동, 사회적 좌절감 등을 물질 효과로 즉각 해결하려 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물질 효과가 사라지고 나면 다시 불안하거나 우울하고 외롭거나 습관적인 절망감에 잡혀 적개심과 죄책감이 복합적으로 나타날 수 있다. 이 같은 느낌을 피하기 위해 반복적으로 더 많은 양의 물질을 사용함으로써 더욱 심각한 중독에 빠져들게 된다.
다른 정신사회적 이론에 따르면 가족과 사회 전반의 관계 속에서 부조화가 중독을 초래할 수 있다고 하여 가족과 사회적 역할의 중요성을 논하고 있다. 청소년들은 가족 간 불화, 특히 부모와의 불화에 의해 심리적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수단으로 본드나 가스를 흡입하는 경우가 많다. 흡입에 의한 중독 상태에서 억압돼 있던 갈등이 폭력적, 공격적, 망상적 형태로 표출돼 가족 내 갈등을 심화시킨다. 사회적 문제로 볼 때 중독을 초래할 수 있는 물질에 쉽게 노출돼 있는 상태다. 따라서 호기심으로 시작해 결국 빠져 나올 수 없는 중독 단계를 초래하기도 한다.
행동 이론에 따르면 중독 과정을 ‘물질 추구 행동’에 초점을 두고 있다. 즉 어떤 물질을 사용한 후 결과가 좋으면 다시 그 물질을 찾게 되는 행동을 한다. 물질 추구 행동이 ‘양성 강화’돼 점차 심각한 중독을 초래하게 된다. 특히 알코올 중독은 그 원인에 유전적 요소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쌍생아 연구, 양자 연구 등을 통해 밝혀지고 있다. 최근에 새로운 유전적 연구 방법을 통해 다른 중독들도 유전적 근거가 있음을 밝혀내고 있다. 한 정신과 의사는 중독을 ‘뇌의 병’이라고 언급하면서 중독은 뇌 질환이라고 말한다.
현실 도피가 주는 파괴적 쾌감
중독은 근본적인 동기, 시작하는 속도, 신체적·정서적 손상의 정도, 사회가 수용하는 정도, 그 밖의 많은 요인들로 인해 원인이 매우 복잡하고 다양하다. 아치볼드 하트(Archibald D. Hart)는 저서 「숨겨진 중독」에서 물질 중독과 과정 중독 그리고 숨겨진 중독을 연결시키는 개념을 통합하면서 다음과 같은 공통점이 있다고 말한다.
첫째, 중독은 개인을 진실한 감정으로부터 떼어놓아 일종의 도피를 제공하는 목적에 이바지한다. 중독은 현실로부터 유리시킴으로써 인생의 진정한 불안을 피하게 해준다.
둘째, 중독은 중독자를 완전히 지배(통제)하며 그 지배력은 모든 논리나 이성을 능가한다. 집착이 너무 강해 논리나 이성만으로 극복되거나 격퇴될 수 없다는 뜻이다. 결국 스스로 ‘조절할 능력’을 상실한다. 이것이 중독을 치료하거나 극복하기 어렵게 만드는 이유이다.
셋째, 중독은 언제나 쾌감을 포함한다. 중독적인 행동은 물질이나 활동에 직접 관련되는 모종의 쾌감(자극, 흥분, 진정, 해방감, 그 밖의 어떤 즐거운 감정)을 반드시 제공한다.
넷째, 중독은 파괴적이고 건강하지 않다. 중독 물질이
나 행동(예: 일 중독)이 계속 쾌감을 준다고 해도, 결국 몸과 마음과 영혼에 해를 끼치거나 파괴시킨다. 또한 인간 관계를 손상시키고 사랑하는 사람을 파멸시키며, 균형 있는 생활을 깨뜨린다.
다섯째, 중독 행동은 다른 모든 인생의 문제보다 우선 순위이다. 예를 들어 도박 중독자는 한 가지 주제를 중심으로 자신의 모든 인생을 계획한다. “다음 게임은 언제 들어갈 수 있을까?” “저 카지노를 어떻게 내 여행 계획에 포함시킬 수 있을까?” 등이다.
여섯째, 중독자는 자신의 중독을 부정한다. 중독자는 중독이 자신들에 대해 행사하는 지배력과 파괴력을 부정한다. 중독으로부터 회복은 이런 처음 부정이 깨어지고 나서야 비로소 시작될 수 있다. 중독의 회복은 부정을 해치고 나가는 지속적인 과정이다.
일곱째, 어떤 의미에서 모든 중독은 물질 중독이다. 물질 중독과 과정 중독은 모두 화학 물질에 홀리는 신체의 성향에 의해 생기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모든 중독은 결국 물질 중독으로 보여진다.
여덟째, 모든 중독은 심리적 의존을 포함한다. 중독에서 심리적 집착은 쾌감을 자리잡게 하고 쾌감을 위해 쾌감을 열망하게 된다. 또한 모든 중독자들은 배우자와 자녀들에게 의존하고, 배우자와 자녀들은 중독자에게 의존한다. 이런 의존 관계를 동반 의존이라고 한다.
숨겨진 중독에 다양한 욕구 엿보여
우리는 불완전하며 끊임없이 먹여주기를 추구하는 심리적 굶주림을 가지고 성인이 된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결함을 충족시키거나 고치려고 할 때 자멸적인 행동에 갇힐 수 있고 훨씬 더 깊은 욕구를 눈치 채지 못할 수도 있다. 중독의 끈에 기초를 놓는 것이 바로 이런 행동이다. 즉 근심이나 불안에서 도피하고자 하는 욕구, 죄책감을 줄이려는 욕구, 자기 환경에서 지배감이나 권력감의 욕구, 신체적·심리적·영적 고통을 피하려는 욕구, 완전한 사람이 되고자 하는 욕구(완전한 자아, 건강, 인격, 성취의 욕구) 등이다. 이런 욕구들을 가리켜 숨겨진 중독이라고 한다.
숨겨진 중독의 성격 유형에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첫째, 자기 본위이다. 개인적인 문제와 걱정을 가지고 있다. 너무 곰곰이 생각하고 집중하는 데 어려움이 있으며, 일반적으로 지속성이 결여돼 있다. 종종 수줍어하고 다른 사람들과 관계 맺는 것을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
둘째, 스릴 찾기다. 흥분이나 자극에 대한 과도한 욕구에 의해 움직인다. 새로운 경험에 대한 호기심을 좋아하고 근심이 없으며, 불합리하고 외향적이며, 대개 정서적으로 미성숙하다. 자신들이 갈망하는 자극을 발견할 수 없을 때 항상 언짢아하고 우울해 한다. 흥분을 경험하고 단조로움을 탈피하려는 것으로 동기 부여가 된다.
셋째, 자기 결함이다. 중독에 걸리기 오래 전부터 낮거나 움츠러든 자존감으로 고통 받는다. 자신들이 가치 있다는 사실을 본인이나 남들에게 증명할 필요를 느낀다. 종종 대단한 스타가 된다든가, 재정적 성공을 이룬다든가, 영웅적 행위를 한다든가 하는 공상에 빠진다.
넷째, 사회적인 고립이다. 조깅할 때 혼자하기를 고집하며, 일도 혼자 한다. 관계에 대한 책임을 원치 않으며, 영속적인 접촉을 갖지 않기를 좋아한다. 자신에 대해 확신을 갖지 못하고 진정한 모습이 알려질까 봐 두려워 남들과 너무 가까워지는 것을 피한다.
다섯째, 자기 징벌이다. 이런 사람들은 고통에서 쾌락을 끌어낸다. 이들은 종종 신경증적 죄책감과 자신의 무능함과 실패에 대한 과도한 생각으로 고통 받는다.
글·고병인 한세대 상담학 교수로 한세카운셀링 아카데미 소장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