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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BECOMING JANE - 제인 오스틴의 연애 이야기...

명호경영컨설턴트 2008. 8. 9. 21:25
제인 오스틴에게 로맨스만 있었을까
[오마이뉴스 김홍주선 기자]


 
포스터
ⓒ 비커밍 제인


<이 기사에는 영화의 내용을 암시하는 스포일러가 담겨 있을 수 있습니다.>


제인 오스틴의 소설은 BBC에서 시리즈 드라마로 제작하고, 영화에서도 다른 수많은 작가들을 제치고 몇 번씩 영화화됐다. <오만과 편견> <이성과 감성> <엠마> <설득> 등 지금까지 두루 읽히는 명작들이다.


제인 오스틴이 이처럼 대중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중상류층의 예법과 삼각관계, 재기넘치는 심리묘사와 대사를 지루하지 않게 담았던 까닭이다. 이와 더불어 제인 오스틴의 소설에는 늘 계급을 뛰어넘는 인간성의 제시가 등장하며 부모의 사후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녔던 작가 자신의 경험이 풍부하게 녹아있다.
 


스무 살의 로맨스, 탁월한 감성

<비커밍 제인>은 연애 소설에 능했던 한 여성 작가, 제인 오스틴의 연애 이야기다. 18세기 후반의 영국 시골을 영화적 기법으로 재현해낸다. 하얀 기둥의 나무들, 안개 낀 숲 사이 청명한 얼굴, 18세기의 드레스, 이들이 역상으로 비치는 호숫가에 이르기까지, 소장하고픈 동화책처럼 매 장면이 빛난다.

'너무 예뻐서' 유족들의 캐스팅 반대에 부딪쳤다는 앤 해서웨이(제인 역)의 클로즈업 화면은, 빗방울 떨어지는 창밖으로 초점이 바뀌어 줌 아웃된다. 인물들의 심리 묘사와 재치있는 대사에 능했던 제인 오스틴이 살아 돌아온다면, "영화, 그것이야말로 종이 밖의 무한대"라고 펜을 내던지지 않을까 싶다.


리프로이와 제인
ⓒ 비커밍 제인


"글을 써서 살겠다(I'll live by my pen)"라고 주장해 부모에게 걱정을 끼치던 당돌한 처녀 제인.



"당신의 소설은 시골의 유치한 자아도취다"라고 오만하게 깎아내리던 세련된 도시 청년 리프로이가 제인의 마음을 얻게 된다. <오만과 편견>의 남자 주인공 다아시가 리프로이의 초반에 덧입혀져 있다면, 제인 오스틴 사후 발표작 <설득>의 남자 주인공이 리프로이의 후반에 덧입혀진다.


제인 오스틴의 소설에 단골로 등장했던, 돈 많은 청혼자는 <비커밍 제인>에도 등장한다. 그러나 현실적인 선택을 하라는 어머니의 조언에도 불구하고 제인은 무일푼에 가족까지 줄줄이 딸린 리프로이와 사랑의 도피를 한다. 안타깝게도 영화는 해피엔딩이 아니다. 여러 번 어긋난 연인의 백발의 조우 앞에, 관객의 가슴 한 켠이 애틋하게 무너진다.


누구라도 사랑의 도피를 하고 싶어질 듯한 하얀 나무 숲에서, 감정에 휘둘리고 마는 그들의 청춘은, '소금에 절여진 듯한' 로맨스 그 자체다. 노동의 고됨, 계급과 돈의 현실성을 알기 이전에 사랑에 갇힌 한 쌍 연인들의 이야기는 스무 살 그 나이에 꼭 맞도록 처연하고 안타깝다. "아니 저런 정신나간 딸을 봤나"라며 제인 어머니의 잔소리에 더욱 공감하는 현실적인 관객일지라도, 리프로이의 푸른 눈에서 옛 연인의 얼굴을 만난다.

18세기에 태어나, 시대를 앞서 펜을 들다




 
제인 역을 맡은 앤 헤서웨이
ⓒ 비커밍 제인

다만 이 아름다운 영화에 안타까운 점이 있다면, '프랑스의 스탕달, 남자로는 셰익스피어'에 비유된다는 한 여성 작가를 단지 '연애담'에 초점 맞춰 조명했다는 사실이다.


제인이 살았던 1775년에서 1817년의 영국은 여성작가들이 호락호락하게 활동할 수 있을 만한 곳이 아니었다. 대학에 들어가 펜을 쥐기에는 여성의 뇌도 손가락도 너무 연약하다는 편견이 난무하던 시대였다. <비커밍 제인>에도 등장하듯이, 당시의 영국은 여성이 경제적 독립을 이루지 못하며, 글을 쓸 경우 '괴팍한 성격의 여류 작가'라고 비난받았다.


"괜찮다면 책에 나온 예들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남성들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 늘 우리 여성들을 이용해왔지요. 교육도 남성들의 훨씬 더 많이 받았고 펜 또한 늘 그들의 손에 쥐어져 있었죠. 나는 책이 무언가를 증명하게 하고 싶진 않아요." - 제인 오스틴 <설득> 중에서


조지 엘리엇이, 세간의 비난을 피하기 위해 남성의 이름을 필명으로 써야만 했던 때로부터 바로 전 세대. <폭풍의 언덕> 히드클리프가 탄생하기 한 세대 전. 그리고, 버지니아 울프가 "남성중심의 사회와 평생을 싸웠습니다. 오로지 글로써"라는 유서를 썼던 때로부터 한 세기 이전이었다. 제인 자신은 오빠 에드워드에게 말년을 의탁하며 소설을 쓰다가 42세의 나이에 홀로 죽었다.


결혼을 통해서만 재산과 가족을 보장받을 수 있었던 시절, 작가의 고군분투. 이를 연애담으로만 기린다는 건, 무덤 속의 작가에게 참된 위로는 못될 것 같다. 버지니아 울프를 현재의 문제의식으로 재해석했던 <디아워스(The Hours)>가 비교되어 떠오르는 것도 그 때문이다.
출처 : Joyful의 뜰
글쓴이 : Joyful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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