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테크/영화세상

[스크랩] 양산도, 1955

명호경영컨설턴트 2008. 9. 4. 10:57

 

 

 

전근대적 폐쇄성 속에서 겨루기

 


 

  김기영의 영화를 나열해보면, 영화적 배경을 크게 근대/전근대로 나누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양산도>(1955)와 <고려장>(1963)은 전근대적 배경을, 하녀 시리즈를 포함한 그의 대부분 작품이 근대적 배경을 취하고 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위치한 <이어도>(1977)는 근대와 전근대적 배경이 주술적 토속신앙으로 혼재되어 경계를 흐린다. 그러나 그의 괴기한 연출과 예측 불가능한 전개 양상은 근대/전근대를 구별하지 않고, 선택한 시공간적 배경을 이상한 방식으로 그려낸다. 그 시대를 대변하는 갈등과 행동양상을 인간 내면의 본성과 성욕과 관계짓고 극적으로 표출해낸 뒤 비극으로 끝내는 것이다. 이를테면 <하녀>(1960)나 <육식동물>(1984)의 공간은 인물의 욕망이 극적으로 투사될 수 있게 세워져 있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매혹과 죽음을 끝까지 지켜본다. 흥미로운 점은 <양산도>나 <고려장>이 보여주는 폐쇄성이다. <이어도> 역시 섬이라는 지리적 성향으로 꽉 막힌 광기의 공간을 보여주나, 다른 영화와 달리 플래쉬백의 빈번하고 중첩되는 사용으로 시/공간을 넘어선다. 그렇게 본다면 전근대를 배경으로 한 <양산도>와 <고려장>은 ‘빽빽한 그물망’이나 다름없다. <고려장>은 전통과 윤리에서 빚어지는 갈등을 집요하게 파헤치고 있고, <양산도>는 계급을 넘어선 동일선 상 겨루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두 영화의 ‘전투의 장’은 그들의 삶을 유지했던 공간에서 절대 벗어나지 않는다. 그들은 그 곳에서 태어났으며 그곳에서 자랐고 그곳에서 싸우며 죽어나간다.


 <양산도>를 보며 의문이 가시지 않는 점은, 영화 속 배경이 되는 공간이 미로처럼 얽혀있다는 것 이었다. 수동이 옥랑과 혼례를 치룬 뒤 무룡을 피해 도망가는 장면이 영화 속 수시로 나오나, 그들은 벗어날 수 없다. 무룡의 하인들에 의해 추적을 당하고 그들을 피해 강을 건너고 산을 넘고 절벽에 도달하지만 그들은 결국 붙잡히거나 죽음을 면하고 마을로 돌아오게 된다. 이들이 속한 공간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카메라는 그들을 쫓지만 그 이상의 범주로 나아가지 않는다(나아 갈 수 없다). 이로써 인물들은 서로 충돌하며 대결을 하게 된다. 왜 이들은 벗어날 수 없던 것인가? 사실 이 질문은 김기영의 작품을 돌이켜본다면 의도적 폐쇄성으로 몰고 가는 길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김기영은 무룡/무룡의 아버지와 수동/수동의 어머니/옥랑/옥랑의 아버지를 부딪히게 함으로써 파토스를 불러일으킨다. 즉 양반과 평민의 계급 갈등을 하나의 장에 소환시키는 것이다.


 ‘비극’에서 볼 수 있듯이 각 인물들은 위험을 무릎 쓰고 자신의 선택에 몸을 내맡긴다. 그렇기에, 옥랑과 수동이 혼례를 맺을 사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무룡은 포기하지 않는다. 과녁 중앙에 꽂히는 활은 그러한 심리를 대변한다. 이를테면, 무룡이 등장한 뒤, 활쏘기에 집중하겠다고 말한 장면 바로 뒤에는 여성들이 그를 쳐다보며 조아리고 있다. 또한, 직접적으로 옥랑을 갖겠다는 신념은 그녀를 위협하는 화살로 나아가고, 수동을 제거하겠다는 의지는 닭을 대신 맞추는 것으로 보여 진다. 남성들이 가지고 있는 특수한 능력은 일방적이면서 폭력적인, 그러나 성공해야만 하는 무엇인 것이다. 수동의 돌팔매질과 무룡과 그의 아버지로 대변되는 활은 물리적인 힘으로 대변되고, 그 대결에서 굴복하거나 승리한다. 처음 수동과 무룡의 대결에서, 수동은 그를 제압하지만 결국 손가락이 잘리고 추방당하게 된다. 그 뒤 무룡의 하인들과의 대결에서 수동은 승리를 하지만, 집으로 피신하는 신세가 된다. 손가락을 더 이상 쓸 수 없게 되었기 때문에 그의 능력은 무능해진다. 무능력해진 수동은 옥랑과 혼례 이후, 무룡의 하인들에게 거의 죽을 뻔 한다. 그 뒤, 수동은 옥랑을 찾으러 무룡의 집에 찾아가지만 이제는 더 이상 대결도 하지 못한 채 내쫓기며, 마지막으로 무룡과의 결투를 하게 될 때는 옥랑에게 저지당한다. 그의 능력도 남성성도 완전히 제거 되는 것이다. 결국,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상대에 대한 저주와 자신의 죽음뿐이다.


 전근대적 공간을 철저히 막아놓고 양반과 평민이 ‘전투의 장’을 벌인 뒤, 평민은 철저하게 패배하는 듯 보인다. 그 패배에 중심에는 여성(옥랑)이 있다. 옥랑의 가치는 남성들의 일방향적 흐름과는 다르게 변화한다. 그녀의 유동적 가치로 변절한 여성이 되고 처벌을 받는다. 이 처벌은 그녀를 둘러싼 남성이 아닌, 어머니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이 전복과 처벌이 영화를 전근대적인 것을 와해할 수는 없다. 결국 영화의 결말에서 등장하는 것은 양반의 죽음이 아닌 또 하나의 평민의 죽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평민은 철저하게 패배하게 된다. 옥랑과 수동의 영혼이 함께 하늘로 승천한다고 해도, 그들의 죽음이 전근대적 폐쇄성 안에서 벗어나기는 힘들어 보인다.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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