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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차 한잔에 깃든 의미

명호경영컨설턴트 2008. 9. 15. 08:38

   2) 대렴설(入唐使臣)
삼국사기의 흥덕왕3년(828)조(條)에 밝힌 것을 살펴보면,
 "12월, 사신을 당나라에 보내어 조공하니 당나라의 문종이 인덕전에 불러서 대면하고 잔치를 베풀었는데, 층하가 있었다. 당나라에 갔다가 돌아온 사신 대렴이 차씨를 가져오니 왕이 지리산에 심게 하였다.
茶는 선덕왕 때부터 있었지만 이에 이르러 성행되었다."
   3) 自生說
자생설이 있기는 하나 그 논거가 미약하여 다루지 않았다.
 2 . 茶道에 대한 定義와 내용
   1) 정의
草衣禪師의 『東茶頌』에서 살펴보면,
 "따는데 그 妙를 다하고, 만드는데 그 精을 다하고, 물은 眞水를 얻고, 끓임에 있어서 中正을 얻으면 體와 神이 서로 어울려 健實함과 神靈함이 어우러진다. 따라서 이에 이르면 茶道는 다했다고 할 것이다."고 정의했다. 이와 같이 茶道는 정성스럽게 잘 만들어진 차로 좋은 물을 얻어 알맞게 우러나게 해야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茶道를 관통하는 정신을 다도 정신이라 하여 茶室의 분위기, 茶具의 아름다움, 차의 성품, 차를 끓이는 여러 가지 일 등에 상징적인 의미를 담은 것을 뜻한다.
茶道精神은 茶人들의 정신생활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는데 다음과 같은 사실에서 그것을 증명해 준다.
다인들은 차를 통해 세속적인고 일상적인 것으로부터 초월하고자 했다.
고려시대 문장가 이규보의 시중에 "한잔 차로 곧 참선이 시작된다"는 구절은 차와 선이 한 맛으로 통하는 경지의 표현이다. 차와 선이 서로 같다는 茶禪一味는 선의 三昧境에 들어 大悟覺醒하는 길이나, 차의 三昧에 들어 妙境을 깨닫는 것이 한가지라는 禪家의 말로 우리 나라는 물론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상통하는 茶道精神이다.
 우리 나라의 茶道精神에는 中正이 강조되고 있다.
또 다른 다도의 정의는 찻잎 따기에서 차를 우려 마시기까지의 차일(茶事)로서 몸과 마음을 수련하여 덕을 쌓는 행위를 말한다.
2) 차에 대하여
차(茶)라는 말은 범어로 알가(閼加, argha)이다. 그것은 시원(始原), 혹은 원초(源初)라는 뜻이다. 佛敎에 있어서 시원이나 원초라는 말은 무착바라밀(無着波羅蜜)로서 욕심에 사로잡힘이 없는 순수한 본래의 마음을 뜻한다.
또한 알가(argha)의 頭音 ar은 곧 우리말의 알(卵)을 뜻하는 말이다. 그리고 보면 우리말의 알은 곧 차(茶)의 어원(語原)이 되는 시원(始原)이나 원초(源初)를 뜻하는 말이 된다. 쉽게 말하면 알은 곧 제로(0)인 동시에 하나(一)를 가리키며, 그것은 하나의 유예(猶豫)된 형태(形態)를 뜻한다. 그런 의미에서 알은 중심(中心)인 동시에 중용(中庸)이며 또한 무(無)이다.
차를 한자로 표기하면, 어떻게 되는가?
이에 대해 茶經에는 초도라고 표기하고, 나무 木변을 함께 쓰기도 한다고 했다. 그리고 초도와 나무 木변을 함께 쓰면 차가 되는데, 이 글자는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차서인 이아에 나온다. 이 외에도 도라는 글자가 있는데, 단연록에 의하면 이 글자는 茶字의 古字로 음은 도라고 하였다.
또 다른 자료를 살펴보면,
한국 불교에서 부처님께 차를 올리는 관습은 오래 전부터 시행되어 왔던 것 같다. {삼국유사}권 2의 [경덕왕조]에 보면 경덕왕 24년(765) 3월 3일 한 스님이(忠談師) 경주 남산 쪽에서 내려오고 있었던 바, 왕이 스님을 불러 물으니 "차를 끓여 삼화령의 미륵보살께 오리고 오는 길임"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부처님께 차를 공양했던 것일까? 아마 그것은 차라는 글자 자체의 상징성과도 결부가 되었던 것 같다. 즉 차라는 글자는 그 자체에 108이란 숫자적 표현이 가미되어져,  의 20이라는 숫자에 八十즉 80을 합한 데에다 또 八이란 숫자를 더한 108의 의미, 즉 인간의 108 번뇌를 소멸코자 하는 소박한 이상 속에 부처님께 차를 공양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할 수 있다.
 한편 불교의 사상이 수질이 좋지 않은 인도 및 중국을 거쳐오는 가운데, 차란 물과 동일시 인식되었던 것 같다. 그렇다면 불교적 의미에서의 물의 개념, 차의 개념은 어떤 것인가? 水란 생명의 원천을 말한다. 水란 불교의 궁극적 목표인 열반, 니르바나(Nirvana)를 상징하고 있기도 한다. 또한 영원불변의 진리 그 자체를 말하고 있기도 하였다. 중국인들은 진리 즉 다르마(Dharma)를 法이라 번역했던 바, 法이란 물(水,  )의 흐름(去)을 뜻하는 단어로서, 水 자체에 진리의 항구성이란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께 물(水; 혹은 茶)을 공양함은 진리 자체의 항구성을 진리의 원천에로 되돌리고자 하는 인간적 염원이며, 생명의 원천을 생명 자체의 주관자에게 되돌리고자 하는 소박한 기원이기도 하다.
그리고 李能和는 차의 성품에 대하여『朝鮮佛敎通史』에서 '茶는 풀의 賢聖 즉 禪이다. 현미(玄微)한 도(道), 淸和의 德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하였다.
 3) 내용
여러 자료에 근거하여 茶道에 대한 정의를 두 가지 정점에서 살펴보면 첫째 물질적인 개념의 차이고 둘째는 정신적 개념의 차이다. 물질적인 차는 잘 끓인 탕수에 어떤 종류의 식물질을 적당히 첨가해서 우려 마시는 것을 말하며 정신적인 차는 법도에 맞는 차생활을 통해서 느끼는 玄玄한 이치가 지극한 경지에 이르러 妙境을 터득할 수 있는 차의 정신세계를 말한다.
  ①물질적 의미의 차
물질적 의미로서의 차는 대용차와 정통차로 나눈다. 이 物質 地境인 개념의 대용차란 흔히 시중의 서양식 음료수의 종류와 약차로서의 동양식 대용차를 말한다.
그리고 정통차란 산다화과에 속하는 상록 관엽수로 가을에 다섯 잎의 흰 꽃이 피며 동백나무 씨앗 같은 열매를 맺는 차나무의 어린순을 봄철(穀雨와 立夏 사이)에 채취해서 양호한 불기운에 볶아서 적당히 끓여 탕수에 울궈 마시는 차를 말하며 이에는 발효를 전혀 시키지 않은 순수한 녹차(綠茶;Green Tea)와 완전히 발효시킨 홍차(紅茶; Black Tea)가 있다. 물론 반쯤 발효시킨 반 발효차도 이에 속한다.
  ② 정신적 의미의 차
정신적 의미의 차는 또 茶의 精神과 茶道觀으로 나눌 수 있다.
차의 정신을 말함에 있어 성우스님은 
"한잔의 차, 그것은 인간의 영원한 벗이다.
인간의 일상 생활엔 기쁨이나 즐거움보다 슬픔과 괴로움이 많기 마련인 것 같다.
저 맑은 하늘에도 구름이 흐르기 마련이듯 우리 본래의 깨끗하고 티없는 청정 본연의 마음 자리에도 번뇌란 구름이 있기 마련이다.
번뇌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흔히 백팔번뇌라 하지만 더 한량이 없다. 또한 번뇌가 일어날 적마다 괴로움은 있기 마련이다. 번뇌란 인간의 근본 욕망이 없을 수 없다. 있는 것이 의당하고 당연하다. 그 욕망의 충족을 위한 삶이 인간사가 아닐까."
라고 하였고, 또 이기윤씨는 차의 정신에 입각하여 차의 맛에 대해,
"차에는 다섯 가지의 맛이 있다. 쓰고, 떫고, 시고, 짜고, 단맛으로 가장 먼저 닿는 맛은 쓴맛이고 오래 입안에 남는 맛은 단맛이다. 이 五味는 삶의 느낌과 같은 것이다.
차를 마심으로써 五味를 자기 안에서 서서히 하나의 향기로 승화시키는 일은 참으로 지혜로와 지는 훈련이 된다.
차 생활은 또 우리를 심오한 사색의 숲으로 인도한다. 도와 통하고 자연과 하나가 되며 예에 이르게 된다. 차 생활의 그 멋은 오랜 경험을 통해서만 도달 할 수 있다. 오랜 차 생활을 통해 자세가 바르게 되고 또한 邪氣없는 정성을 다할 수 있을 때에만 가능하다. 자세가 바르지 못하고 정성이 담기지 않으면 차의 좋은 맛을 느끼기 어렵다."
우리 선조들이 차를 즐겨 마신 이유를 종합해 보면 대략 세 가지로 집약할 수 있다.
첫째는 건강에 이롭기 때문이며,
둘째는 사색 공간을 넓혀주고 마음의 눈을 뜨게 해주기 때문이며,
셋째는 사람으로 하여금 예의롭게 하기 때문이다.
차 생활에는 법도가 있고 의식이 있고 절도가 있고 예절이 있고 일거리가 있고 기술이 있고 기교가 있고 즐거움이 있고 예능이 있다.
 우리가 평소에 차 생활을 통해서 얻는 정서적 안정감이나 정신작용에 의한 자기 구현이 바로 철학적인 경지인 것이다. 다시 말해 차 생활이나 그 발전 향상으로 얻어진 법도와 의식과 예절과 行茶에 따른 기술적인 동작은 모두가 행동규범에 따른 육체적인 동작이요, 물질적인 행동반경의 영역에 속하므로 형이하학적인 얘기가 된다. 그러나 형이하학적인 동작과 과정을 통하여 승화된 정신세계의 예술적 심미감이나 마음의 편안과 쾌락은 형이상학적인 문제로서 정신작용의 영역이다. 그래서 물질적 변화가 정신적 변화를 고무시킬 수 있도록 이루어진 예식과 법도가 바로 차 생활의 요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다도란 차 생활을 통해서 얻어지는 깨달음의 경지이지 차 생활의 예절이나 법도, 그리고 차를 끓이는 行茶法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차를 대접하는 예법이요, 차 끓이는 방법일 뿐이지 결코 다도는 아니다. 예는 차 생활의 예법이고 행동의식인 과학적인 차원이며 형이하학적인 범주이다. 그리고 예는 과학적 차원인 차 생활에 예의범절과 법도를 통하여 얻어지는 정신세계의 심미안적 예술세계요, 그 예술성을 포함한 정신적 만족감 등을 말한다. 그리고 도라고 하는 경지는 형이상학적 경지에서 최고도로 승화되어 이루어진 절대의 경지요, 진리의 차원이다. 이 경지에 이른 사람을 우리는 성인 군자 도인이라고 말한다. 이 경지는 완벽한 깨달음의 경지로서 상대적인 것이 무너지고 오직 하나의 세계로 선악과 시비와 유무와 색채와 형상과 언어가 떨어진 경지이다.
이처럼 도는 절대 경지요, 예는 철학적 경지요, 예는 과학적 차원으로 엄격한 차별이 있는데 이것이 옳다 저것이 그르다 라고 말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우리네 조상들이 완성해 놓은 차 문화를 소급해 보면 그곳에는 도와 예와 예의 경지가 다 포함되어 있다.
 3. 차 정신(茶道)의 역사적 관점
차 정신에 대하여 역사적 시각에서 살펴보면, 차 정신은 차 생활을 하던 그 시대의 사상가들이나 종교인들에 의해서 거의 완성된 것이라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다. 우리 나라의 차 정신은 차생활이 보편화되면서 정립된 것으로 그 세대를 지배하던 사상과 철학 내지는 종교 정신에 의해서 완성된 것이다. 그러면 당시 차 생활을 하던 사람들은 어떠한 사람들인가?
 삼국시대는 대부분이 승려들에 의해서 차 생활이 유지되었으며, 일부 귀족들과 화랑도, 그리고 선(仙)사상을 가진 선인들과 도교의 사상가들이었다.
그리고 고려 시대에 들어와서는 왕족과 귀족계급의 유학자들과 선승들 사이에 유행했으며 일부 도가의 사상을 가진 은거인이 차 생활을 했다. 그리고 고려시대에는 팔관회와 국가 제의에서 고대의 습관이 통행되어 제주와 차가 공히 사용되었다.
조선시대에는 불교가 쇠퇴해가면서 유학자가 득세하게 되어 관인계급에서 다례를 행했으며 은거인이나 처사들 사이에서 차 생활이 이어졌고 산중으로 밀려난 스님들 사이에 차 생할이 유지되었다.
 이처럼 우리 나라의 차 생활을 즐기면서 자기들의 종교 사상이나 철학으로 차 정신을 확립시켰으며 법도와 체계를 세워 놓았다. 출가 수행자들은 선사상에 차를 끌어들여 같은 경지로 승화시켰으며 유가의 유학자들은 그들의 윤리의식에 차를 유입하여 다례의식을 제정하였으며 도가의 사상가들은 자연과 합일하려는 신선사상에 의하여 풍류의 정신세계를 완성하였다.
다시 말해 茶정신은 그 시대를 지배하던 사상과 철학에 바탕을 두고 완성된 정신세계로 불교의 선사상과 계합하여 禪茶一如의 精神世界를 이루고 儒敎의 禮儀式에 의거하여 茶禮儀式과 정신이 확립되었으며 선교(仙敎: 중국으로 건너가 도교가 됨)의 불로장생 연단설(不老長生 練丹術)에 의해 神仙이 되어 自然과 합일하는 사상으로 자연을 예찬하는 詩歌 風流로 멋의 세계를 완성했다. 이외로 佛紀의 精神世界와 波羅密의 경지를 얻는 우리의 독특한 차 정신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茶道觀은 茶生活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경지를 말한다.
 4. 茶와 禪
수도자에게 있어 茶의 효능은 잠을 쫒아 내고 정신을 맑게 할 뿐 아니라 명총정궤(明聰淨 )에 산중송도(山中松濤)와 함께 탑상차향(榻上茶香)이 끓어오를 때 좌선의 유적현묘(幽寂玄妙)함을 도와 준다하여 禪僧들은 의례 茶를 마셨다.
禪이란 特殊한 修行의 길이다. 사원에서 사용하는 특수한 용어로써 진리를 체득하고자 하는데 드는 방편의 문으로 범어로는 dahyana라고 하며 漢譯하여 禪那라고 한다. 이를 줄여서 禪이라고 하는데 고요히 생각한다고 하는 靜慮 또는 생각하여 닦는다는 思惟修 혹은 寂滅, 한 마음의 극치하고도 한다. 그러므로 一心不亂한 마음으로 일하는 것이 禪인 것이다. 모두가 禪이다. 그래서 行住坐臥 語默動靜이 모두 禪이 되는 것이다. 이처럼 정신적 의식이 있는 곳에는 禪 아닌 것이 하나도 없다. 그리고 선은 산란한 마음을 고요히 가라앉히고 진리를 직관하여 지혜를 얻어 해탈, 대 자유를 얻는데 목적이 있다.
茶가 禪과 같다는 말은 禪의 三昧境에 들어 大悟覺醒하는 길과 茶의 三昧에 들어 妙境을 깨닫는 것이 한가지라는 뜻이다(禪茶一如).
이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서 옛 고사를 소개하고자 한다.
먼저 차와 관련된 선사를 들면 우선 중국의 조주선사의 喫茶去를 위시로 들 수 있겠다. 이 조주선사의 喫茶去(일반적으로 잘 알려진 이야기이기에 상세히 적지는 않았다)에 대하여 명정스님은,
"와 봤다거나, 처음이라거나 큰스님께서 권하신 차, 우리가 일상 생활가운데 그저 마시는 차, 그런데 일상 생활에서 옷 입고, 밥 먹고, 차 마시고, 오고 가고 하는 것을 살필 줄 알아야 한다. 가장 깊고 오묘한 해탈의 진리가 가장 고귀한 보물들이 이러한 일상 생활 속에 있는 것이다. 그래서 천하에 노고추(老古錐) 조주의 淸茶인 것이다."라고 하였다.
온 자와 오지 않은 자, 의심하는 자 모두가「喫茶去」이다.
이것이 茶와 禪이 한 경지임을 말해 주는 것이다. 이 자리는 언어나 문자가 떨어진 法道의 자리요, 空劫 이전의 소식이니 누가 입을 열어 말할 것인가.
"喫茶去!"
또 우리 나라의 조사스님들 가운데 高麗時代 나옹선사는 충숙왕(忠肅王)7년에 태어났다. 스님의 휘는 혜근(慧勤)이요, 호는 나옹(懶翁)이며 이름은 원혜(元慧)다. 거처하던 방이름은 강월헌(江月軒)이다. 속성은 牙씨인데 寧海府 사람으로 그의 아버지는 서구(瑞具)이며 어머니는 鄭氏로서 靈山郡 사람이다. 스무 살에 친구의 죽음을 보고 공덕산 묘적암(妙寂庵)의 了然禪師에게 가서 출가하였고, 24세 때에(1347) 회암사로 가서 4년 동안 밤낮으로 혼자 앉았다가 하루아침에 홀연히 깨치고는 중국으로 가서 스승을 찾으리라 결심하였다. 스물 여덟 살 때(1347년) 원나라 法源寺에서 인도스님인 지공선사를 만나 수행하였다. 指空禪師에게서 法衣一領, 拂子一枝, 信書一紙로써 법을 전해 받았다.
1358년에 指空禪師를 하직하고, 공민왕 7년에 귀국하여 평양과 동해 등 여러 곳에서 인연 따라 설법하고는 1360년 경자해 가을에 오대산 상두암에 들어가 살았다.
왕실의 귀의와 함께 金 袈裟와 법복, 발우 등을 하사 받았다. 이어 임금은 '왕사대조계종사 선교도총섭 근수본지 중흥조풍복국우세 보제존자(王師大曹溪宗師 禪敎都總攝 勤修本智 重興祖風福國祐世 普濟尊者)'로 봉하였으며, 임금이 승하한 뒤 산사로 돌아가 佛事를 펴시고, 여주 신륵사에 이르러 열반에 드셨다.(우왕 2년 1376년) 스님의 世壽 57이요 法臘은 37, 시호는 선각(禪覺)이다.
평생에 세속의 문자를 익히지 않아 항상 '山僧은 문자를 모른다'하였다. 그러나 그 歌頌과 法語는 經典의 뜻이 아니더라도 모두 이치에 맞고 묘하다.
깊은 禪定에 들어 妙境을 터득함은 修行者의 本分인데, 스님의 일상사는 산에 살면서 시름없이 산길을 걷기도 하며 자연에 맡겨 만사를 쉬어 버리고 오직 天全만을 기르는 일이다. 문 밖 세상의 온갖 시비는 상관할게 아니고 오직 때가 되면 배고픔만 아네. 그래서 '피곤하면 자고 배고프면 밥 먹고 목마르면 차 마시는 일'이 스님의 할 일이였다. 
그가 중국에서 수행할 때 지공스님으로부터 전법을 받았는데 다음의 이야기는 차와 인연이 있는 이야기이다.
혜근의 차생활은 하나의 도이다. 법도와 이치를 묻는 사람이 있으면 서슴지 않고 차 한잔을 권한다. 혜근이 권하는 차 한잔에는 묘한 법도와 이치가 구족되어 있는 것이다. 어느 날 지공선사가 혜근을 불러 말하였다.
「그대는 보경사를 보았는가?」
나옹은 대답하였다.
「벌써부터 보아 왔습니다.」
하니 지공이
「문수와 보현보살이 거기 있던가?」
하니 나옹이
「예. 잘 있습니다.」
하였다. 지공이
「무슨 말을 하던가?」
하고 물었다. 나옹이 답하기를
「그래. 그러면」
하니 지공이
「차를 마시고 가거라」
라고 하였다. 그 뒤 다른 날 지공선사는 나옹스님을 방장실로 맞아들여 차를 권하고 드디어 法衣 한 벌과 佛子 하나와 法語 한 통을 주었다.
[백양에서 차 마시고 정안(正安, 지공방장실의 이름)의 열매는
해마다 어둡지 않은 한결 같은 약이네
동서를 바라보면 남북도 그렇거니
종지 발긴 법왕에게 천검을 준다.
(百陽喫茶正安果  年年不昧一通藥
 東西看見南北然  明宗法王給千劒)」
 이렇게 전법계를 받고 나옹스님이 답하는 게송을 지어 바쳤다.
「스승님 차를 받들어 마시고
 일어나 세 번 예배하나니
 다만 이 참다운 소식은
예나 이제 난 변함이 없네
(奉喫師茶了 起禮 禮三
 眞消息 從古至于令)」
이상과 같이 차로써 전법(傳法)한 것은 특별한 예로써 禪과 茶가 眞水를 얻어 神과 體를 규명하고 거칠고 더러운 것을 없애고 나면 大道를 얻는 것은 어렵지 않다고 하였다.
또, 차는 妙한 根源을 가지고 있어 그 根源에 집착하지 않으면 바라밀이라고 했다. 일체 법에 집착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이 세상 어떠한 것에도 집착하지 말고 걸림이 없음으로써 자유자재한 경지에 이를 수 있으면 차를 마시면서 神과 體를 규명하여 健과 靈을 얻어 집착함이 없는 경지에 이르면 묘경(妙境)하는 것이다.
초의 선사는 이처럼 바라밀에 이르는 길에서 모든 법이 불이(不二)하고 고로 차와 선이 불이(不二)하니 모든 법이 일여(一如)하다고 했다. 참고로 이런 사상은 추사 김정희에게도 많은 영향을 주어 추사는 초의(艸衣)선사께 명선(茗禪)선탑다연(禪榻茶烟) 정좌처다반향초(精座處茶半香初) 묘요시수류화개(妙用時水流花開)라는 글을 써서 보내게 되었다. 이러한 글귀들은 모두가 禪茶一如의 경지를 천명한 것이라 하겠다.
그리고 차는 인간의 사고와 언행이 이상의 경지에 이르러 품위가 있고 운치가 있어 속되지 않고 사려가 깊다. 한 잔의 차를 마시는 사색공간을 통해 사람들은 무한한 세계를 개척했고 시공을 초월한 자기 완성을 통해서 영원히 사는 비법을 터득했고 또 자연과 내가 하나가 되어 우주의 일부분으로 완전한 자유를 얻었으며 정신적 자기구현을 통해 두려움이 없는 마음의 평안을 얻은 것이다.
또 차는 '불기(不器)'라고도 한다. 불기란 공자 말씀에 '군자는 불기이다.'라는 말이 있다. 군자가 그릇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말인데, 그릇이란 크거나 작거나 둥글거나 모진 모양을 갖추고 있다. 만약 군자의 마음이 크고 작고 둥글고 모진 형태, 즉 한계성을 가지고 있다면 그 한계 내에서만 쓰여질 뿐 다르게 이용될 수 없으며 크게 쓰여질 수 없게 된다. 차 또한 이와 같아서 한계와 차별이 없어야 한다. 이처럼 군자나 차는 그릇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艸衣禪師의 詩句에
 '고래현성구애다 다여군자성무사
 (古來賢聖俱愛茶 茶如君子性無邪)'
라는 말이 있다. 이는 예전부터 성현이 다 차를 사랑했는데 차가 군자와 같아서 성품이 사악하지 않다는 말이다.
태초부터 청정한 이 마음에는 한 점 바람도 일지 않았다. 그러나 인간은 욕망의 폭풍을 맞고 서 있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서 길을 잃었다. 이처럼 길을 잃은 인간들이 차 한잔의 여백을 통해서 진실을 깨닫고 자기의 잃어버린 本來面目을 찾는 길이야말로 진정한 茶人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다. 옛 조사스님들의 자연 속에서 白雲과 靑山을 마주하고 깊은 사색에 잠기는 것이 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5. 다성 초의선사의 실천다도
  1)생애
 초의의순(艸衣意恂1786-1866)선사는 1786년 조선 정조(正祖) 10년 병오(丙午) 4월 5일 전남 무안군 삼향면에서 태어났다. 俗姓은 무안 張氏이며 흥성(興城)이 본관이다. 字는 中孚, 法名은 意恂, 초의는 염화지호(拈花之號-法號)이다. 또 다른 號로서는 해옹(海翁), 해양후학(海陽後學),해상야질인(海上也窒人), 일지암(一枝庵), 우사(芋社), 자우(紫芋), 해사(海師), 해노사(海老師), 초사(艸師)라고도 했다.
스님의 출생과 생애에 관해서는 신헌(申櫶)이 편찬한 '사호보제존자초의대종사의 순탑비명(賜號普濟尊者艸意大宗師의 洵塔碑銘)'과 이희풍(李喜豊)이 찬술한 '초의대사탑명(艸衣大師塔銘)', 그리고 구계화상(九階和尙)이 저술한 『동사열전(東師列傳)』중 '초의선백전(艸衣禪伯傳)', 유경도인(留耕道人)이 저술한 『초의대선사운(艸衣大禪師韻)』등에 보이고 그 외에도 진도(珍島)사람 우당(愚堂)이 쓴 대둔사초암서(大芚寺草庵序)와 허소치(許小痴)의 몽연록(夢緣錄)과 이능화(李能和)의 『조선불교통사(朝鮮佛敎通史)』下卷에 잘 나타나 있다.
위의 전적들에 의거하면 초의의 가계에 대해서는 상세하지 않고 초의의 母가 큰 별을 몸에 품는 꿈을 꾸고서 낳았다고 하며, 5세 때 강물에 빠진 그를 한 스님이 건져준 것을 계기로 출가를 권유받은 적이 있어 15세에 羅州郡 茶道面 德興山 雲興寺의 碧峰敏性을 의지하여 득도했다. 19세때 海南 大興寺의 玩虎倫佑和尙에게서 具足戒를 받고 艸衣라는 法號도 받았다. 이때 받은 艸衣라는 호에 대한 내력으로 내려오는 이야기 가운데 하나를 소개해 보면 고려말 野雲禪師가 지은 『自警文』 가운데 "풀뿌리와 나무열매로 주린 창자를 달래고, 송락과 풀 옷으로 몸뚱이를 가린다.(草根木果慰飢腸 松落草衣遮色身)"는 구절에서 유래했다는 최범술의 설과 신헌(申櫶)이 「艸衣大禪師塔碑銘」에 적은 대로 "艸衣는 그 염화의 이름이다.(艸衣 其拈花之號也)"라는 說이다.
그리고 艸衣의 스승인 琓虎는 蓮潭의 適嗣로서 높은 修行과 學德을 겸비한 선사였다. 艸衣의 法脈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임제의현………太古 普遇 - 幻菴 混修 - 龜谷 覺雲 - 碧溪 淨心 - 碧松 智嚴 - 芙蓉 靈觀 - 西山 淸虛 - 鞭羊 彦機 - 楓潭 義諶 - 月潭 雲齋 - 喚惺 志安 - 虎岩 體淨 - 蓮潭 有一 - 白蓮 禱演 - 琓虎 倫佑 - 艸衣 意恂이다.
艸衣의 일생을 살펴보면 전 40여 년은 주로 대흥사에 주석 하였음을 알 수 있는데 이 대흥사에서 선과 교를 두루 섭렵하고 梵學을 익혀 거로( 盧)의 뜻을 통했으며 그가 24세 때는 강진에 유배온 정다산에게서 시와 유학을 배워 그의 字 '中孚'도 易에서 따왔다.
40여세부터는 一枝菴이라는 작은 암자를 짓고 홀로 止觀兼修에 몰두하였던 것 같다.
 이 암자는 스님께서 일생동안 은거하셨던 곳으로 스님의 사상과 철학을 집대성한 곳이요 차 문화를 펴던 자리이기도 하다. 
이곳 일지암에서 백파의 선문수경에 대한 그의 선 논지를 밝힌 『禪門四辨漫語』와『艸衣 禪課』를 저술하여 종래의 전통적인 편협한 禪觀에 대해 새로운 신학풍의 영향을 받은 그의 융통성있는 禪論을 전개한다. 또한 『東茶頌』과 『茶神傳』을 저술하여 사대에서 비롯되는 중국차에 대한 애호 내지 흠모를 타파하고 우리 나라 차에 대한 우수성을 말하여 민족정신을 고취한 것을 엿볼 수 있고 아울러 실제적인 다생활을 통한 끊임없는 수선을 일관성 있게 논술함을 알 수 있다. 55세에 憲宗으로부터 '대각등계보제존자 초의대종사(大覺登階普濟尊者艸衣大宗師)'라는 승려로서 최상위인 대종사의 賜 를 받았다. 71세 때에 동년생으로서 42년간이나 교분을 나눈 절친한 秋史가 관악산 아래서 유명을 달리하니 초의는 추사의 영전에 제문을 지어 위로한 뒤 一枝庵으로 돌아와서는 山門을 거의 나가지 않았다고 한다. 80세에 入寂하니 法臘 65세로서 고종 2년 7월 2일이다.
  2) 초의선사의 茶 思想
초의선사의 다도관을 알고자 한다면 문(門) 행(行) 득(得)의 길을 거쳐야 한다. 대저 문(門)이 있어서 들고 행(行)해서 얻는(得) 법이다. 4문(四門)이 있으니 채(採) 조(造) 수(水) 화(火)가 그것이며, 행(行)에는 4행(四行)이 있으니 묘(妙) 정(精) 근(根) 중(中)이 그것이며, 득(得)에는 4득(四得)이 있으니 신(神) 체(體) 건(健) 영(靈)이 그것이다.
4문의 채(採)란 採茶를 말하며 造란 造茶를 말하며, 水란 水品을 말하며, 火란 화후(火候)를 말한다. 4행의 妙는 採茶의 玄妙함을 말하며 精은 造茶의 정성스러움을 말하며, 根은 水品의 근본을 말하며, 中은 화후의 中和를 말한다. 4득은 眞茶와 眞水를 얻어야 만이 얻을 수 있는데, 茶는 물의 神(정신)이요, 물은 차의 體(몸)이니, 진수가 아니면 그 신이 나타나지 않으며 진다가 아니면 그 체를 볼 수가 없다고 하였다.
체와 신이 비록 온전하다 하더라도 오히려 중정(中正)을 잃으면 안된다. 中正을 잃지 않으면 건(健)과 영(靈)을 함께 얻는다. 신과 체는 기(機;기틀)와 용(用;작용)과 같고, 건(健;건전)과 영(靈;신령)은 이(理;이치)와 묘(妙;현묘)와 같다. 그러므로 신(神)이 건(健)하면 기(機)가 이(理)하고 신(神)이 영(靈)하면 기(機)가 묘(妙)하고 체(體)가 건(健)하면 용(用)이 이(理)하고 체(體)가 영(靈)하면 용(用)이 묘(妙)하다.
신(神)과 체(體)는 기(機)와 용(用)과 같아서 불이(不二)해야만 건(健)과 영(靈)을 얻는다. 건(健)과 영(靈)이 불이(不二)하면 묘리(妙理)하고 妙理하면 묘경(妙境)하고 妙境하면 묘각(妙覺)한다.
 채다란 차를 따는 일을 말한다. 차나무에서 차잎을 따는 것은 그 시기가 매우 중요하다. 너무 빠르면 맛이 온전하지 못하고 늦으면 싱그러움이 흩어진다. 곡우(穀雨;4월 20일)와 입하(立夏;5월 5일) 사이가 적기인데 일창일기(一槍一旗) 이기(二旗)의 잎이 푸른빛이 나거나 쭈글쭈글하거나 돌돌 말린 것이 좋다. 차잎을 딸 때 밤새 구름이 끼지 않고 이슬이 흠뻑 내린 후에 딴 것이 좋으며, 비온 후나 구름이 끼지 않고 이슬이 흠뻑 내린 후에 딴 것이 좋으며, 비온 후나 구름이 끼었을 때는 따지 않는다. 그리고 계곡이나 암석 사이에서 자란 것이 좋다. 이처럼 採茶는 玄妙함을 다 해야만 된다.
그 玄妙함을 다해서 채취한 차잎을 가지고 造茶를 하는데 솥이 매우 뜨거워졌을 때 급히 차잎을 넣어 덖어야 한다. 차가 익어서도 안되며 태워서도 안된다. 차가 익으면 빛깔이 검고 타면 노랗고 흰 반점이 생긴다. 이렇게 적당한 열기로 대여섯 번 덖으면 착 잘 건조된다. 불은 연기가 나지 않아야 되며 불의 기운이 고르게 되어야만 한다. 양질의 차잎과 고르고 순수한 불과 만드는 사람의 정성스런 마음이 합쳐져서 진다가 나오는 것이다.
水品은 차를 끓일 물을 말하는데, 산마루에서 나는 석간수가 좋고 우물물이 다음이며 강물은 나쁘다. 물에는 여덟 가지 덕이 있으니, 가볍고 말고 시원하고 부드럽고 아름답고 냄새가 나지 않고 비위에 맞고 탈이 나지 않는 것이 그것이다. 물은 그 군본을 구하지 않으면 상하거나 오염되기가 쉬워서 고여 있는 우물물이나 강물은 쓰지 않는다. 바로 그 근원지에서 솟아나는 샘물이어야 한다. 이 샘물을 구하여 체성이 튼튼한 불로 끓이면 좋은 탕수가 된다. 만약 대나무나 석은 나무 가지나 낙엽 같은 연료는 불의 체성이 하약하여 탕(湯) 또한 체성이 약해진다. 이런 탕은 쓸모가 없는 것이다. 연기가 나지 않고 체성이 튼튼한 불을 구하여 가볍게 빨리 끓여야 한다.
그러므로 진다와 진수를 얻어서 신과 체를 규명하고 신과 체가 不二해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 포법(泡法;차 울궈내는 법)을 하는데 포법은 중정을 지켜야 한다. 그 요체는 세 가지가 있는데, 첫째로 차가 많아도 안되고 물이 많아도 안된다. 차가 많으면 빛깔이 노랗고 빨가며, 맛은 쓰고 떫으며 향내도 좋지 않다. 반대로 차가 적고 물이 많으면 맛이 온전하지 않고 빛깔도 엷고 향내도 미숙하게 된다. 적당한 양의 차와 물을 넣어야 한다. 둘째로 다관에서 차를 울구는 시간이다. 너무 빨리 따라내면 맛이 미숙하고 향내도 약하며 빛깔이 엷고 좋지 않다. 반대로 너무 오래 울구면 빛깔도 탁하고 맛도 쓰고 떫으며 향내도 지나치게 된다. 알맞게 울궈야 한다.
셋째 차를 잔에 골고루 나누어 따를 때, 너무 급히 서둘러 따르는 것을 급주라고 하고, 게으르고 완만하게 따르는 것을 완주라고 한다. 완주나 급주를 해서는 안된다. 편안한 자세로 앉아서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자연스럽게 따라야 한다. 이와 같이 적당한 양의 차를 넣어 알맞게 울궈서 적당한 시간에 편안한 마음으로 자연스럽게 따라서 마시는 것이다. 이것을 중정법이라고 한다. 中正法을 잘 지키는 길은 마음속에 중용의 덕을 품되 그 팔이 책임을 다하는 것이다. 그래서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어 적의함을 다하면 중정을 얻게 된다. 중정을 얻게 되면 자연히 현묘한 경지에 들어 뜻한 바를 얻게 되는 것이다. 생각으로 헤아릴 일이 아니로다. 오직 체득하는 데 그 眞體가 있으니 진정으로 구해 볼일이다. 그러면 이상과 같은 茶道觀을 완성한 선사의 차생활과 정신은 어떠했는가. 선사는 형식적이고 의례적인 번거로움은 피하고 자유스럽고 검소하며 편안하게 즐기는 방법을 취했다.
物慾 밖에서 淸高하고 담아하게 살다간 선사의 차 정신은 무엇인가. 선사는 그의 茶論에서 말씀하시기를 "8덕을 겸비한 진수를 얻어 진다와 어울려 체와 신을 규명하고 거칠고 더러운 것을 없애고 나면 대도를 얻는 것은 어렵지 않다." 고 했다. 그래서 옛부터 성현들께서 즐겨 마시게 되었고 그 성품은 군자를 닮아 사악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처럼 사악하지 않은 차, 이 차는 묘한 근원을 가지고 있어 그 근원에 집착하지 않으면 바라밀의 경지에 이른다고 한다. 바라밀이란 일체 법에 집착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이 세상 어떠한 것에도 집착하지 않고 걸림이 없으므로서 자유자재한 경지에 이른 것을 말한다. 차를 마시면서 신과 체를 규명하여 건과 영을 얻어 집착함이 없는 경지에 이르면 바라밀의 경지에 이른 것이다. 이처럼 玄妙한 경지에 이를 수 있는 것이 차이다. 선사는 이와 같이 바라밀에 이르는 길에서 모든 법이 不二하니 선과 차도 不二하고 제법이 一如하다고 했다. 그래서 선사는 차 자체에도 집착하지 않았다. 이 같은 선사의 차 정신은 '모든 법이 둘이 아니니 선과 차도 한 경지니라(諸法不二 禪茶一如)'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不二思想은 모든 면에 나타나 선과 차가 둘이 아니고 시와 선이 둘이 아니고 시와 그림이 둘이 아니고, 차와 시가 둘이 아니었다. 그리하여 선의 여가에 시를 읊고 그림을그리고 차를 마시며 글씨를 썼다.  그는 출가한 僧侶로서의 本分事에 힘썼으며 아울러 禪僧일 뿐만 아니라 일생동안 흐트러짐 없는 수행승으로서 그 眞面目을 갖추었다.
   3)저술에서의 茶와 禪
초의선사가 남긴 저서로는 『艸衣集』 上,下卷, 『一枝庵文集 』一卷, 『一枝庵詩稿』 一卷,『 禪門四辨漫語』 一卷, 『艸衣禪課』 一卷, 『震默祖師遺蹟攷』 一卷, 『東茶頌 』一卷,『茶神傳』 一卷,『艸衣手  』 一卷, 『郡芳譜』 一卷 등이 있고 그 외 屛風序, 伽藍의 上 文, 탱화7점(대부분 대흥사 소장) 白雲圖, 書簡文, 詩文, 書畵등이 있다.
그리고 艸衣는 佛敎의 禪理, 律文, 梵考 등에 조예가 깊었고, 諸子書에도 精博하였으며 詩, 書, 畵 등에도 탁월한 경지에 이르렀던 인물이었다. 그의 이러한 수행도상 가운데에 불피워 찻물 끓여 茶生活을 하면서 한국 唯一의 茶書인 『東茶頌』을 남기는 일생을 茶道에 精進함으로써 <茶道의 達人>, <韓國의 陸羽> 혹은 <韓國의 茶聖> 등으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위에서 다루었듯이 艸衣禪師가 茶禪修行을 통해 체득한 정신으로서 진리를 대척적인 二元論으로 보지 않고 體와 用, 禪과 敎, 禪과 茶, 부처와 중생 등 그 모두를 평등한 한 맛으로 융섭하여 삶 전체로 작용하여 전개해 가는 것으로 파악하고 분리하여 이해할 수 없는 것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艸衣船師가 東茶頌을 저술한 그 정확한 연대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艸衣가 {東茶頌}을 지어 해거도인 호연주에게 보낼 때 동봉했다고 생각되는 {上海居道人書} 중 <憶昔辛卯獲奉巾拂於淸 松軒> 云云한 것으로 모아 그의 나이 46세 되던 辛卯年 이후의 作이라고 생각된다. 이 때는 이미 智異山 七佛庵에서 {茶神傳}을 지은 이후로써 艸衣가 茶道에 관한 문헌을 상당히 연구한 뒤였다. {東茶頌}에는 茶의 효험이나 産地에 따른 茶名과 그 品等, 그리고 茶道의 구체적인 내용으로 造茶, 泉品, 泡法, 飮茶之法 등을 말하고 있다.
{東茶頌}은 모두 31송으로 되어있고 각각 頌에는 古人의 茶에 관한 說이나 詩등을 인용하여 住를 붙여 두고 있다. 이것은 평소 그가 茶道에 대한 관심이 지대했음을 알게 해 준다.
 이러한 艸衣의 實踐佛敎 정신은 茶生活과 禪修行을 통해 얻은 것이라고 한편 여겨진다. 이에 현재까지 발표된 艸衣의 禪과 茶를 두고 '一禪觀' 혹은 '茶禪一切', '茶禪一味'라고 한다.
이것은 종래의 형이상적인 심지법문의 도리를 터득하는 수선의 입장을 인간의 생생한 일상생활인 즉 물적인 차를 마시는 생활을 통해서도 곡 같은 궁극의 도리에 도달할 수 있다고 본 것으로 곧 현실의 토대 위에서 진리를 파악하려는 실천불교정신인 것이다.
Ⅲ. 마무리를 지으며
結論的으로 마무리를 지어본다면, 茶道란 차를 마시는 멋과 더불어 인간의 건전한 삶의 길을 걷자는 것을 말함이다. 건전한 삶의 길이란 心身, 즉 몸과 마음을 건전하게 하며 멋 속에 삶의 도리를 다하자는 것이다.
또 다도라는 것은 茶와 道자가 합쳐져서 이루어진 문자로 차라고 하는 물질적 또는 거기에서 얻는 정신적 세계와 도라고 하는 절대적 진리의 경지가 한 단어로 표현된 말로도 표현되고 있다. 이는 다도가 절대의 경지인 도의 차원에까지 이를 수 있다는 데에서 생겨난 말로 차를 끓이는 行茶法을 말하는 것이 아닌 깨달음의 경지를 의미한다.
그리고 道라고 하는 경지는 형이상학적 경지에서 최고도로 승화되어 이루어진 절대의 경지요 진리의 차원이다. 이 경지는 완벽한 깨달음의 경지로서 상대적인 것이 무너지고 오직 하나의 세계로 선악과 시비와 유무와 색채와 형상과 언어가 떨어진 경지라고 표현한다.
불교에서의 다도는 마음의 번뇌 씻음을, 고의 윤회에서 벗어나게 함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궁극적 열반을 지향함에 그 뜻이 있게 되어, 이는 선을 통한 수행의 궁극으로서 해탈과 동일시되며 이러한 까닭에 茶禪一味나 茶禪一如라는 말이 생겨져 나오기도 하였다. 한편 禪과 茶와의 관련 속에 達磨大師의 눈썹이 차나무로 화하였다는 이야기며, 선가에서는 坐禪時 除夜해도 잠이 오지 않고, 滿腹時에는 소화가 잘 되어 神氣를 가볍게 하며, 性慾을 억제하는 약 등 茶道의 三德을 말 하기도 하는바, 적암 종택의 {禪茶錄}에는 '喫茶는 禪道를 宗으로 한다.' '點茶는 곧 禪法에 의해서 自性을 解하는 공부다.' '茶事는 방편지견을 點茶하는 일에 의거해서 본분을 證得하는 灌法이다.'라고 하여 禪과 茶와의 밀접한 관계를 설명하고 있기도 하다.
한잔의 차를 마심에 그에 대한 역사와 정신과 그리고 함께 수반되는 많은 지식과 견해들이 다뤄지고 있었다. 오늘날 정리되어 있는 茶書들은 긴긴 시간동안 그 명맥을 이어주고 이어가고 있는 가운데에서 나온 결정체들이 아닐까하고 여겨진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의 茶文化와 禪文化의 合一이 進展되고 아울러 現代社會에 큰 자리 매김으로 더욱 발전하리라 믿는다.
 자신의 삶에 대한 지적인 여유를 지녔을 때, 다도와 어우러진 上向된 인격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차의 정적인 그 멋과 향기 속에서 자신을 뒤돌아 볼 수 있고, 자신의 주변과 친화하며 마음의 고요와 자신의 진정한 자아와 만날 수 있는 여유, 적당히 데워져 있는 다관 안에 덖여진 몸을 풀고 곡우 때의 모습으로 되돌아 가 있는 찻잎들을 보자니, 本然自性의 천진함이 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마지막으로 佛 菩薩 전에 一心으로 茶供養文을 올리며 보고서를 마무리 하고자 한다.
어리석음과 迷惑의 業으로 덮혀 있는 衆生界,
맑은 甘露茶 十方 三寶님 前에 奉獻하옵나니
원하옵건데, 모든 이들이 바른 見解로 바른 境界에서
戒·定·慧의 三學 勇猛精進 不退轉修行 證明하여 주옵소서.
 
 
      ※ 참고문헌 및 싸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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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광사학인스님들의 불교관련자료집C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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