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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중요무형문화재 제46호 피리정악및대취타-1

명호경영컨설턴트 2008. 9. 21. 09:15

피리정악및대취타

 

 

 
종    목 중요무형문화재  제46호
명     칭 피리정악및대취타(피리정악및大吹打)
분     류 무형유산 / 전통연행/ 음악/ 궁중음악
수량/면적
지 정 일 1971.06.10
소 재 지 서울 서울전역 
시     대
소 유 자
관 리 자 피리정악및대취타보존회
설     명
취타란 부는 악기(취악기)와 치는 악기(타악기)를 함께 연주하는 것을 말한다. 대취타는 왕의 행차나 군대의 행진 또는 개선 등에 취타와 세악(비교적 음량이 적고 실내에 알맞은 악기들로 연주하는 국악 합주)을 대규모로 연주하는 것으로, ‘무령지곡’이라고도 한다.

취고수(취타 악사)들의 행진음악은 고구려 벽화라든가 백제의 악기에 관한 기록으로 보아 삼국시대에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고려 때에는 음악을 연주하는 취각군이라는 군사가 있어 조선시대까지 이어졌으나, 조선 중기 이후부터 변화가 생겨 세악이 연주에 끼게 되었다.

군악수(취타와 세악을 연주하는 악사들을 합한 말)들은 황색 옷을 입고 남색 띠를 두르며 머리에는 초립을 쓰고, 악기는 징, 장구, 북, 나발, 소라, 태평소 등으로 편성된다. 집사(지휘봉이라 할 수 있는 등채를 양손에 받쳐들고 음악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사람)의 호령에 따라 징이 울리고 북을 치면 모든 악기가 일제히 연주를 시작하는데, 매우 씩씩하고 우렁차며 장엄한 느낌을 준다. 한말 일본에 의해 군대가 해산된 후 형식을 갖추어 연주한 적은 없으며, 민간의 광고악대나 사찰의 의식에 사용되면서 겨우 명맥을 유지해 왔으나 지금은 거의 절멸상태에 있다.

대취타는 우리 선조들의 기개를 한층 더 느끼게 해주는 고귀한 음악으로 그 가치가 큰 소중한 문화재이다
 
 
전승자 정보
보유구분 이름 성별 기예능 인정일 해제일 이력사항
  중요무형문화재보유자  최인서 ( 崔仁瑞 ) 남자   호적(呼笛) 19710610 19780601 이력사항
  중요무형문화재보유자  정재국 ( 鄭在國 ) 남자   피리,태평소 19930802  
  전수교육조교  사재성 ( 史載成 ) 남자   용고(龍鼓) 19890615  
  전수교육보조자  김관희 ( 金冠熙 ) 남자   피리 1995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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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설명

취타란 부는 악기(취악기)와 치는 악기(타악기)를 함께 연주하는 것을 말한다. 대취타는 왕의 행차나 군대의 행진 또는 개선 등에 취타와 세악(비교적 음량이 적고 실내에 알맞은 악기들로 연주하는 국악 합주)을 대규모로 연주하는 것으로, ‘무령지곡’이라고도 한다.

취고수(취타 악사)들의 행진음악은 고구려 벽화라든가 백제의 악기에 관한 기록으로 보아 삼국시대에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고려 때에는 음악을 연주하는 취각군이라는 군사가 있어 조선시대까지 이어졌으나, 조선 중기 이후부터 변화가 생겨 세악이 연주에 끼게 되었다.

군악수(취타와 세악을 연주하는 악사들을 합한 말)들은 황색 옷을 입고 남색 띠를 두르며 머리에는 초립을 쓰고, 악기는 징, 장구, 북, 나발, 소라, 태평소 등으로 편성된다. 집사(지휘봉이라 할 수 있는 등채를 양손에 받쳐들고 음악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사람)의 호령에 따라 징이 울리고 북을 치면 모든 악기가 일제히 연주를 시작하는데, 매우 씩씩하고 우렁차며 장엄한 느낌을 준다. 한말 일본에 의해 군대가 해산된 후 형식을 갖추어 연주한 적은 없으며, 민간의 광고악대나 사찰의 의식에 사용되면서 겨우 명맥을 유지해 왔으나 지금은 거의 절멸상태에 있다.

대취타는 우리 선조들의 기개를 한층 더 느끼게 해주는 고귀한 음악으로 그 가치가 큰 소중한 문화재이다.

※ 보충설명

대취타는 호적(湖笛), 나발(喇叭), 소라(나각, 螺角), 바라징북(용고, 龍鼓)과 같이 음량이 큰 악기들로 편성되어, 왕의 거동이나 귀인의 행차 및 군대행진에서 취고수(吹鼓手)들이 연주하는 행진음악을 가리킨다.

고구려 벽화에 고취악대(鼓吹樂隊)의 행렬이 보이고 백제의 음악에 고(鼓), 각(角)과 같은 고취악기가 쓰였다는 것을 통해 취고수들의 행진음악은 삼국시대부터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고려 때에는 법가위장(法駕衛仗), 팔관위장(八關衛仗), 순행위장(巡幸衛仗)과 같은 각 위장(衛仗)에 기악(伎樂), 잡기(雜技)와 더불어 취각군(吹角軍), 취라군(吹螺軍)이 딸리어 행진음악을 연주하였다. 고려의 취각군의 행진음악은 조선조에 이어져 왔는데 조선중기 이후에는 행진음악에 호적, 나발소라, 바라, 징과 같은 음량이 큰 악기들로 편성된 취고수에 향피리, 젓대, 해금, 장고와 같은 삼현육각(三絃六角) 즉 세악(細樂)으로 편성된 세악수들이 행렬에 포함된다. 조선 말기에는 행렬의 선두에 취고수가 앞장 서고 뒤에 세악수가 딸리었고 이들이 연주하는 음악도 분화되었다.

취고수는 취타(吹打), 굿거리염불을 연주했는데 세악수가 연주하는 음악과 구별하기 위하여 대취타, 취타, 굿거리타령, 염불(打令念佛)이라 불렀다. 세악수가 연주하는 행진음악에는 취타, 길군악, 길타령, 별우조타령, 군악이 있다. 취고수들은 취라치(吹螺赤)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황철릭(黃天翼)을 입고 남색 띠를 두르며 머리에는 초립(草笠)을 쓰고 미투리를 신었다. 임금의 거동이나 귀인의 행차에 행진음악이 딸리는 것이지만 취라치들은 오영문(五營門)각 감영(監營), 병영(兵營)의 군대행렬에 대취타를 연주하였다. 한말 군대해산 후 군영의 취라치들은 없어졌으나, 민간의 광고악대와 사찰의 재의식에는 취라치가 등장했다. 그러나 지금은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취라치 최인서(崔仁瑞)가 중요무형문화재 대취타의 보유자로 인정받았으나 작고하였으며 현재 보유자는 정재국이다.

대취타는 행진음악으로 일명 무령지곡(武寧之曲)이라 이르며 호적(태평소, 太平簫), 나발, 소라, 바라, 북, 징으로 편성된다. 호적은 주선율을 연주하며 나발과 소라는 교대로 뚜- 하고 지속음을 길게 불며 바라, 북, 징은 리듬을 연주한다. 장단은 12박인데 쿵-쿵-쿵-쿵쿵쿵-쿵- 하고 친다. 철릭을 입고 전립을 쓰고 손에 등채를 든 집사(執事)가 '명금이하대취타(鳴金二下大吹打) 하랍신다' 하고 구호를 부르면 징수가 징을 두 번 크게 치고 북수가 북을 딱 딱 치면 호적을 비롯하여 모든 악기들이 일제히 '퉁 쾌 처르르' 하고 장중하게 울린다.

대취타는 매우 씩씩하고 장중한 음악이다.




관련 자료 

<출처;blog.daum.net/sanatana>
 
취타, 대취타(大吹打)-동영상

대취타(大吹打) 1
감상자료
 
취타는 글자 그대로 불고 치는 악기들이 중심이 되는 형태의 음악을 말한다 . 원래의 취타인 대취타를 관현악곡으로 편곡한 곡이 지금의 취타인 만차정식지곡이다
옛 악보의 하나인 <삼죽금보>에 의하면 거문고는 4괘,5괘. 6괘. 7괘.등 자유롭게 그 조를 바꾸어 연주하였던 것을 알 수 있는데. 현재의취타는 현악기는 7괘법 ,관악기는 4괘법으로남아있따 ㅡ그러나 합주할때는 모두 4괘법인 황<黃>으로 연주한다
그러면 이 취타의 원곡인 대취타의 음악 형태는 예전 행악의 악기 편성법은 시대에따라 다소 차이가 있었지만 전부 고취 와 후부고취로 나누며 전부 고취를 담당하는 취고수. 후부 고취를 담당하는 악사드릉 세악수라고 불렀다
악기 편성도 서로 다라 취고수의 대부분은 타악기이고. 세악수는 적, 해금.피리. 장고등 취악기와 가락악기로 되어잇다. 그러므로 현재의대취타는 예전의 전부고취를 맡았던 취고수의 축소된 편성을 말한다 그래서 여기에 편성되는 악기들은 가락을 맡은 태평소(호적)와 용고.징.자바라.나발.나각 등 일정하지 않은 음정을 가진 악기들로 편성된다 . 주로 그 용도는 임금의 거동이나 현관(顯官)들의 행차,근대의행진또는 개선등에 쓰였다.
리듬을 규칙적으로 짚어주는 타악기군과 위엄잇는 나발과 나각이 어울려 규칙적이면서도 제각기 마음 내키는 대로 내는 듯이 "쿠 쾅 뚜 따" 하고 야단스럽게 호령하는 장코해나 소리를 우주의신비에 비유하하고 하늘높이 메아리치는 호적의애원한 가락을 인간사에 비유한 서양사람들의 평을 들어보아도 대취타가 얼마나 위풍당당하고 호쾌한 음악인가를 짐작할 수있었을 것이다. 대취타를 따로 무령곡이라고도 부른다
취타와 대취타의 차이점
취타(吹打)
대취타의 태평소 가락을 장2도 올려서 편곡한 관현 합주곡이다.
관악은 황종을 시작음으로 하고, 현악은 중려를 시작음으로 하여 서로 4도 차이가 나는 병진행의 합주를 했었으나, 최근에는 현악의 선율을 4도 낮추어 연주함으로써 음높이를 통일하고 있다. 전부 7장으로 되어있으며, 12박이 1장단이 된다. >취타를 길군악·길타령·별우조타령·군악 등과 함께 연주할 경우에는 향피리·대금·해금·아쟁·좌고·장구 등의 편성으로 연주하기도 한다. 6장 후반부터 목피리가 한 옥타브 높여서 연주하기도 한며, 곡의 끝에서 초장 중간으로 반복하는 형식을 취한다. 군대의 행악인 대취타의 선율에서 유래한 음악인 만큼 씩씩하고 호쾌한 분위기를 가진 음악이다.


대취타(大吹打)

선전관청(宣轉官廳)과 영문(營門)에 속한 취타대가 연주하던 행악으로, 악기 편성은 징·용고·자바라 등의 타악기와 나발·나각·태평소 등의 관악기로 편성되는데 이 중에 태평소만이 유일한 선율악기이다. 악기 연주자들 외에 이 음악의 시작과 끝을 지시하는 집사(執事)가 있는데, 이 사람이 대취타를 시작하기 전에 지휘봉에 해당하는 등채를 두 손에 받쳐 들고 있다가 머리 위로 높이 쳐들면서 '명금일하 대취타(鳴金一下 大吹打)'라고 명하면 대취타 연주가 시작되고, 끝날 때는 '허라금'이라고 한다.
연주자들은 머리에 전립(戰笠)을 쓰고 누런 빛깔의 천익(天翼)을 입으며 남전대(藍纏帶)라는 띠를 두르고 미투리를 신는다. 12박 한 장단이며 모두 7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임금의 거동 때 군대의 행진 및 진문(陣門)의 열고 닫음 또는 통신사(通信士)의 행렬 때 취타대들이 연주하였다. 타악기와 관악기들의 힘찬 연주 그리고 태평소의 강렬한 음색 등이 쾌활하고 늠름한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공통점과 차이점 : 취타와 대취타는 우리 나라의 전통적인 행진곡으로 주요 가락은 같 지만, 취타는 앉아서, 대취타는 행진하면서 연주되며, 취타는 대취타 를 관현악곡으로 편곡한 것이다.
▒지정번호: 중요무형문화재 제46호
▒지정연월일: 1971년 6월 10일
▒보 유 자: 정재국(鄭在國), 피리정악 및 대취타보존회
▒전 승 지: 서울특별시
대취타는 호적(胡笛)·나발(喇吹)·소라〔螺角〕·대평소(大平簫) 등 관악기와 징·북(龍鼓)·바라·장고 같은 타악기로 편성되어 왕의 거둥이나 귀인의 행차, 그리고 군대행진에서 선전관청(宣傳官廳)과 영문(營門)에 소속된 취타수(吹打手)에 의하여 연주되던 행진곡풍 군례악(軍禮樂)이다. 아명(雅名)으로는 무령지곡(武寧之曲), 속명으로는 대취타, 세칭 구군악(舊軍樂)이라고도 한다.
취타란 불고(吹), 친다(打)는 뜻으로 취악기와 타악기를 뜻한다. 취타를 달리 고취(鼓吹)·고취악(鼓吹樂)이라고도 하는데 이 또한 치는 악기와 부는 악기의 연주라는 뜻으로 취타와 같은 말이다. 곧 불고 치는 군악기에 북·장구·피리·젓대·해금이 취타에 합쳐진 것을 대취타라 한다. 순수한 군악기 만의 취주(吹奏)를 취타라 하고, 피리·젓대·해금 같은 일반악기의 취주를 세악(細樂)이라 하였다. 취타의 주자(奏者)를 취고수(吹鼓手) 또는 취악내취(吹樂內吹)라 하며, 세악의 주자는 세악수(細樂手) 또는 세악내취(細樂內吹)라 하였다.
취타와 세악으로 구성된 대취타와 악수 중 황의초립(黃衣草笠) 차림의 취악내취는 호적·나발·나각·대각·발라(??)·장고·용고(龍鼓)·징(鉦)·나(?) 등의 악기로 한 조(組)를 이루어 군중(軍中)의 행진곡ㆍ승전곡의 취타를 주로 연주하고 세악수 연주에도 합주하였다.
취고수의 악곡 종류는 대취타ㆍ소취타에 불과하고 세악수는 취타가곡(吹打歌曲) <도드리> 등 짧은 곡을 연주하였다.
현재 연주되고 있는 악기는 호적(胡笛, 태평소)만이 선율을 연주하며 나각ㆍ나발과 같은 단음악기와 북·장구·징·자바라 등의 타악기로 편성된다. 대취타 중심의 음악내용은 7장으로 구성되었으며, 1장단은 12박으로 소삼(小三)·대삼(大三)이 모여 이루어졌다. 이 곡은 모두 19각 반각으로 되어 있는데, 제7장 끝에서 제1장 3박으로 반복되는 도드리〔還入〕형식으로 되어 있다.
연주자 외에 시작과 끝을 알리는 집사(執事)는 지휘봉이라 할 수 있는 등채를 들고 "명금일하대취타(鳴金一下大吹打) 하랍신다."하고 호령하면 연주가 시작된다. 취타수는 작우(雀羽)가 꽂힌 초립을 쓰고 누른 색의 천릭(天翼)에 남전대(藍纏帶)를 띠고 미투리를 신는다.
취타는 고구려 안악(安岳) 제3호분인 동수묘(冬壽墓)에서 전정고취(殿庭鼓吹) 등 모습이 보이고 백제에서도 고(鼓)ㆍ각(角) 등 고취악기가 쓰였다는 것으로 봐서 고취수들의 행진음악은 이미 삼국시대에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고려시대에는 궁중의식과 군사행진시에 고취악이 사용되었음은 ≪고려사≫ 악지(樂志) 용고취악절도(用鼓吹樂節度)에 기술되어 있으며, 조선시대에는 선전관청에 대취타가 있었고 오영문(五營門)과 각 지방의 감영(監營)·병영(兵營)·수영(水營) 등에도 각각 취타수가 있었으며 각 고을에는 소취타(小吹打)를 두었다.
대한제국 대취타의 마지막 명맥이었던 당시 겸내취(兼內吹) 임원식(林元植)에 이어 최인서(崔仁瑞)가 겸내취의 법통을 이어 왔으며, 현재는 정재국(鄭在國)이 이어오고 있다.
대취타는 비록 타악기 중심으로 몇 개의 취악기로 편성되지만 호령하듯 위엄이 있는 장쾌한 음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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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너와집나그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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