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보며 오장육부가 물에 젖은 솜이불마냥 묵직해지고, 두 눈에서 눈물을 쏙 빼낸적은 그때가 처음이었던 것 같다. 스무살때였나... 넘의 차 뒷트렁크에 던져진 시집 한권 불쑥 집어들고 그냥 펼쳐본 그 곳에 바로 이 시가 있었다.
엄마 걱정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추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간 창 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학창시절 교과서에 실린 김춘수의 <꽃>같은 시에서 가슴이 저린 적은 있었지만, 시 때문에 엉엉 운 것은 내게 진정 충격적인 경험일 수 밖에 없었다. 그것두 넘의 차 안에서 말이지.ㅡ.ㅡ
그러구 아마도 한달음에 달려가 기형도씨의 시집 <입 속의 검은잎>과 수필집을 샀던 것 같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천천히 숙제를 한다.
숙제를 다 하기전에, 아무 할일이 없기 전에 부디 엄마가 와 주기를.
삶의 고단함에 좋은 신발도 신지 못했을 엄마의 발자국 소리. 배추잎 같은 발소리.
어둡고 무서운데 비까지 온다. 그래서 빈 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는 소년.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유년의 윗목.
그의 시들은 가난으로 인해 떨쳐버릴 수 없는 삶의 고통과 사랑의 고통, 그리고 인간으로써의 고통이 그득그득 담겨 있지만, 그는 고통 그 자체를 표현한다기 보다는 "고통의 지난 일"을 "기억속의 그리움 또는 추억"으로 형상화 하고 있다. 그런 글을 쓰고 있는 제 삶의 고통이 채 끝나지 않았음에도.
그래서, 끔찍하게 가난한 그들의 시는 아름답다.
기억하는 지난 일을 그는 추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리운 지난 일이라고 노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눈시울이 뜨거워 지는 유년의 윗목이라 하더라도, 그 차가운 유년은 가슴 속의 뜨거운 어떤 것을 끌어올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시들은 시대성이 짙고, 개인적 경험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어떤 면에선 '고전'이라 일컬어 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고전'이고 '명작'이고 다 필요없다.
그는 가난하고 고통스러운 삶을 지고서도, 그 가난한 삶을 외면하지 않고 똑바로 마주하며 노래했다.
그래서 그의 시들은 그리도 생생하고 컬러풀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는 일찍 죽었다.
새벽의 심야극장 안에서.
그의 시들은 그의 이른 죽음과 함께, 예술이 되었다.
어쩌면, 예술이라는 것은 인간의 삶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글이건 그림이건 노래건 춤이건.. 그것은 인간의 삶을 담아내는 수단이고, 결국 그 수단을 예술로 만들어내는 것은 한 인간의 삶이 아닐까.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대체 마음이 가난한 것이 무엇인지 가늠이 되지 않을 때가 있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이 어떻게 행복할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었다.
어렴풋이... 아주 어렴풋이 알 것 같기도 하다.
마음이 가난하다면, 아마도 먼지같은 미물에도 기쁠 수 있겠지. 마음이 가난하다면, 매끼 먹는 흰밥도 맛있게 먹을 수 있겠지.
마음이 가난하다면... 배추잎같은 어머니의 발자국 소리 하나에도 온전히 기쁠 수 있겠지.
마음이 가난한 자들이 남긴 몫들과 함께, 나 또한 마음이 가난한 자로 살려한다.
나에게 주신 이 순간을, 현재가 주는 행복을 함부로 놓치지않고 살뜰히 챙기고 사는
마음이 가난한 자가.
우리는 모두가 위대한 혼자였다. 살아 있으라, 누구든 살아 있으라.
ㅡ 기형도, <비가2>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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