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단위가 쪼개내는 자신의 일분일초를 돈으로 환산해대던 한민국(이성재)이 우이경(이수경)을 위해 3년이란 시간을 거리낌없이 기다리는 사람으로 변하기까지, <대한민국 변호사>의 16회동안의 여정은 생각만큼 많은 시청자들의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나도 사실, 모든 회를 챙겨보진 못했다. 하지만, 마지막회는 보고 싶었다. 드라마 작가가 짧지 않는 16회를 이끌어 오는 동안 이야기 하고 싶었던 주제들은 늘 마지막회에서 빛을 발하기 마련이니까.
그리고, 내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서숙향 작가는 변하지 않았다.
서숙향 작가의 변하지 않는 매력은, 바로 이런 찌질함이랄까...ㅋㅋㅋ
대한민국 최고의 펀드매니저 한민국과 세기 최고의 이혼소송을 청구한 한민국의 아내 이애리, 그리고 이들 각자의 변호사 우이경과 변혁, 네 사람의 갈등의 시작은 "이혼소송"이라는 문제였다. (결혼보다 이혼을 하는 쌍이 더 많은 지금도, 당사자는 물론, 가족들 조차도 쉬쉬한다는 이 예민한 문제를.)
하지만, 정작 이 드라마는 "이혼"이라는 문제에 대한, "소송"이라는 법적제도에 대한 리얼한 문제접근 보다는, 이혼이라는 갈등으로 인해 네 사람이 얽히는 관계에 집중했다. 대게 한국 드라마는 이렇게 "관계"에 무게를 두고 문제를 풀어간다는 것에 대부분의 드라마가 공통점을 보이는데, 이러한 문제접근 방식이 이미 한국 드라마의 통속성으로 자리 잡고 있다.
서숙향 작가는 이렇게 드라마가 가지고 있는 통속성을 깔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전 <미스터 굿바이>에서도 그랬다. 성공하는 남자, 그리고 그 남자의 사업에 고용된 여주인공. 그리고 남주인공과 관계가 있는 여자. 여주인공을 좋아하는 또 다른 남자. 이러한 사각관계에서 발생되어지는 모든 갈등의 법칙도 상당히 통속적이다. <미스터 굿바이>는 죽음이었고, 이번의 <대한민국 변호사>에서는 이혼인 셈이다.
하지만, 드라마의 외적조건이 통속적이라고 해서 반드시 이야기가 통속적이라는 법은 없다는 것을 서숙향 작가는 몸소 실천한다.
가끔은 놀랍다. 겉으로 보기에 어느 한국 드라마에서나 볼법한 인물들이 전혀 다른 <대사>들을 주고받으며 갈등과 화해, 그리고 회복해 나가아는 모습을 지켜 볼때마다 서숙향 작가의 저력이 느껴진다. 솔직히, 이번 <대한민국 변호사>의 우이경 변호사는 이전의 <미스터굿바이>에서의 여주인공과 이미지가 많이 겹쳐지기도 했지만, 작가적 마인드를 지켜내려 노력하는 필력은 이보다 더 인정해 주어야 할 것만 같다.
"연애하자. 사랑하자."와 같은 평이한 대사가 시청자에게 전혀 새롭게 들리게 되기까지, 이전에 깔아놓은 포석들은 결코 만만치 않다.
우이경의 대사 중, "한민국씨는 좋은점도 많아요. 그는 아주 성실해서 주변의 사람들에게 그 에너지를 퍼뜨려요. 엘리베이터를 함께 타는 날이면, 그 날은 아주 운이 좋은 날이라는 생각이 들게 만들어요. 엘리베이터를 함께 타서 기분 좋은 사람은 한민국씨밖에 없을거예요. 그의 뛰는 듯한 발걸음을 좋아해요. 소리도 좋아요. 다른 이들은 돈을 벌기위해 늘 바쁘다고 하지만, 사실은 자신을 믿어주는 운전사와 한민국 펀드의 직원들을 위해 아주 성실히 일을 하고 있는 거고, 저도 그 중의 한 사람이기 때문에 한민국씨가 저를 좋아해주는 것 뿐..."
(기억력 상실의 시대.ㅡㅡ;)
이러한 대사의 포석은 그 다음의 평이하고 단순하며 짧은 대사들, "사랑하자." 따위와 같은 말에 막강한 힘을 실어준다. 아마도, 그 원동력은 "진심"일게다. 사람이 사람을 대하는, 그 순간의 진심. 그 마음을 작가는 알고 있고, 그것을 자신의 캐릭터에게 입혀줄 줄 안다.
마지막회가 다가올 수록 거의 동공을 푼채로 연기해준 이수경씨와 (진짜 피곤이 얼굴에 덕지덕지ㅠㅠ)
키스도 제대로? 보여준 이성재씨께 감솨!ㅋ
또한, 단어 하나의 미묘한 차이를 아는 작가는 반복, 수정을 통해 캐릭터의 감정을 조금더 예민하게 표현해낸다. 그래서, 서숙향 작가의 언어유희는 부담스럽지 않고, 즐겁다. 하지만, 이러한 서숙향 작가만의 "드라마적 즐거움"은 그 진폭이 크지 않다. 담백한 나물맛보다는 짜고 매운 맛을 더 즐기는 한국인에게는 그래서 심심하게 느껴지는걸까.
이혼소송이라는 팽팽한 갈등을 접한 네 인물이 한 밥상에서 "상추쌈"으로 감정적 갈등을 해소한다거나, 위기에 처한 한민국을 위해 승소한 위자료를 모두 한민국 펀드에 투자한 이애리의 태도, 이혼을 하고 나서도 여전히 친구처럼 지내는 한민국과 이애리, 그리고 뉴욕에서 변호사로 잘 나가는 변혁이 우이경을 위해 시간을 내서 재판을 도우러 오는 씬 등은 드라마가 제공하는 사람에 대한 "판타지"이지만, 시청자들은 이제 더이상 사람에 대해 "판타지"를 가지고 싶어하지 않는 것 같다.
늘 구박을 받고도 끝까지 거짓사장 행세를 하며 한민국을 기다렸던 펀드직원, 수족처럼 한민국을 위하는 운전기사, 커피판매 직원, 심지어 연예부 기자 배수진까지, 한민국 주변엔 늘 따뜻하고 인정많은 사람들 뿐이다. 서숙향 작가뿐만 아니라, <불한당>의 김규완 작가도 늘 동화같은 사람의 판타지를 놓치지 않으려 애쓰지만, 이러한 작품들은 언제나 대부분의 시청자들에게 외면 받았다.
그 이유가, 앞서 말한 '맛'이 전부가 아니길 그저 바래본다. 본래 인간의 본성은 이중성이 있는 법인데, 마냥 착하기만한 캐릭터들이 지니고 있는 환상은 허울이라는, 차라리 시니컬한 시청자들의 외면이 나을것 같다.
그래도, 끝까지 흔들리지 않고 "연애하자."라고 여주인공이 말하게 해줘서 작가께 너무 감사하다.
한번 더, "사랑하자."라고 말해줘서, 사랑이라는 단어가 여전히 아름다운 말임을 깨닫게 해줘서 고맙다.
성동일씨! 그저... 사... 사....사.... 좋아합니다!!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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