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보의 성탄화
요한 1서 4장 1 -21절
6절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으니 하나님을 아는 자는 우리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자는 우리의 말을 듣지 아니하나니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이로써 아느니라”
7절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16절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
우리가 교회 생활을 하는데 꼭 있어야 할 세 가지가 있습니다.
필자가 교회를 개척할 때에 세 가지 목표를 정하였는데 智, 情, 意 세 가지를 교회 창립의 목표를 세웠습니다.
1. 智라 함은 알아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에 대하여 정확히 알아야 하고, 예수그리스도에 대하여서도 알아야 하고, 성령에 대하여서도 알아야 하고, 성경 말씀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 말씀을 안다는 것은 바로 진리에 대하여 안다는 것을 말합니다.
안다는 것은 지식적으로 동의한다는 것이 안다는 것이 아닙니다. 안다는 것은 경험을 한다는 말입니다.
마리아에게 천사가 나타나서 잉태 될 것을 말할 때, 마리아는 “내가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떻게 잉태 할 수 있는가?” 반문한 누가복음1장 34절 말씀을 보아도 마리아가 남자가 외모적으로 어떻게 생겼는지 몰라서가 아니라, 성적으로 경험하지 못하였다는 것을 말한 것입니다.
마리아가 이 때의 나이가 13살 때입니다. 초경이 시작될 무렵의 나이에 하나님의 능력이신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도무지 잉태가 되지 않을 나이이고, 남자를 알기에도 이른 나이입니다.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다음으로는 나에 대하여 알아야 합니다.
내가 누구이고, 어떤 것이 나인가를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눈으로 보이는, 거울에 비쳐지는 내가 나는 절대로 아닙니다. 거울에 보여지는 나는 내가 살고 있는 집입니다.
“나” 라는 것은 내 속에 살고 있는 사람이 나입니다. 이것을 영혼이라고도 말합니다.
이빨을 닦는 것은 청소를 하는 것이고, 화장을 하는 것은 페인트를 칠하는 것이고, 집이 낡으면 수리를 하듯, 우리 육신이 낡으면 병원에 가서 수리를 하다가, 수리를 못할 정도가 되면 폐가를 시키듯, 나도 폐가를 시키고 그 집안에 살던 사람이 나는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갑니다.
영원한 나라로 이사를 가는 것입니다.
나는 세상이라는 나라에 출장을 와서 잠시 살다가 영원한 나의 집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7장 16절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같이 저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삽나이다”
빌립보 3장 20절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나는, 나의 소속은 하늘나라에 속한 사람이고, 잠시 세상에 출장을 와서 볼일을 보다가 다시 영원한 집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내가 어디서 왔으며 무엇을 하다가 어디로 돌아 갈 것인가를 아는 사람이 나를 아는
사람입니다.
나를 아는 사람은 하나님도 알고, 예수도 알고, 성령에 대하여서도 알고, 말씀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진리를 알고, 나를 정확히 아는 사람이 되어야 진정으로 가치가 있는 사람입니다.
2. 情이 있어야 합니다.
알기만 하여서는 부족합니다. 이제 알은 것을 실제로 느끼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한번 경험하는 것으로 끝이 나는 것은 잘못된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항상 경험을 하면서 느끼면서 날마다 하나님을 경험하며 느끼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천국이 있는 것과 지옥이 확실히 있음을 날마다 느끼며 살아야 합니다.
감사를 느끼면서 살아야 합니다.
예수를 오래 믿으면서도 느끼는 감격이 없이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교회에 다니면서 기쁨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나, 눈물을 흘려 보지 못하는 일이나, 솟아오르는 감사와 소망을 느끼지 못하고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처럼 불쌍한 사람도 없습니다.
기도도 자신이 느끼는 감격 속에서 하는 기도가 아닌 것은 주문을 외우는 기도일 뿐입니다.
주문과 기도는 완전히 다른 것으로, 주문을 외우는 기도는 종교 생활을 하는 것이고, 감격 속에서 기도를 하는 것은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교회에 다니면서 느끼는 감격이 매 예배 시간마다 있어야 정상적인 신앙인입니다.
목사의 설교를 들으며, 찬송을 부르며, 기도하며, 헌금하면서 모든 감격 속에, 기쁨과 감사의 마음과 느낌으로 모든 순서가 되어야 하나님이 열납하신 예배가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느낌이, 감격이 없이 예배를 드리면 하나의 종교 행사에 그친 것입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나 제사장들이 이러한 감격 없는 제사를 드릴 때에, 예수님으로부터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이라 하면서 큰 책망을 받았습니다.
예배에는 항상 감격의 정이 있어야 합니다.
3. 意志가 있어야 합니다.
알고 느꼈으면 이제는 행동이 따라 나와야 합니다.
사람이 의지를 동원하여 알고 있고, 느끼고 경험 한대로 실천을 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죽은 믿음으로는 구원을 얻지 못한다고 분명히 야고보서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7장 21절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행함이 없는 사람은 주님이 부인하는 사람이 됩니다.
오늘날 많은 기독교 신앙인들이 지탄을 받고 있는 것은 행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높은 직책을 가진 사람들이 세상 사람보다 못하게 행동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러한 사람은 심판 때에 주님이 내가 너를 모른다고 부인하고, 불법을 행한 사람이라고 책망하면서 지옥으로 좇아 버림을 당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1장 28-32절 “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 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저희가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 하다고 하나님의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 일을 행하는 자를 옳다 하느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잘 알면서도 실천을 안 하는 사람은 마음에 하나님을 모셔 두기를 싫어 한 사람으로 그 행함의 벌을 받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믿는 자 답게 자기의 의지를 동원하여 불신자와는 다른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마귀의 미혹에 빠져서 행함이 없는 입으로만 믿고 마음으로만 믿는 그러한 신앙에서 탈피를 하여야 할 것입니다.
성도는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 말씀에 대하여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진리를 아는 것이고, 알았으면 느껴야 하고, 알고 느꼈으면 행하여야 합니다.
이 세 가지를 知情意라 말합니다.
성도의 삼 요소를 항상 잘 유지하고 살펴보면서 살아가시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신앙테크 > 은혜와 소망의 설교집'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빛과 소금 (0) | 2008.10.09 |
---|---|
[스크랩] 에베소 교회 2. (0) | 2008.10.09 |
[스크랩] 큰 잔치 (0) | 2008.10.09 |
[스크랩] 한사람의 힘 (0) | 2008.10.09 |
[스크랩] 한사람의 힘 (0) | 2008.10.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