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강 - 성경이 말하는 경제
성경이 말하는 경제에 대해서는 메소디스트의 창시자인 존 웨슬리의 설교, “돈의 사용”(The Use of Money), “부의 위험”(The Danger of Riches), “선한 청지기”(The Good Steward) 등에 잘 나타나있다. 성경을 깊이 분석하여 설교하는 것으로 유명한 웨슬리는 이 설교들을 통해 성경이 증거하고 있는 경제관에 대해 다각도로 선포하였다. 이 설교들을 통해 웨슬리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이 맡기신 모든 재화를 소유하려 하지말고, 선하게 관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선한 청지기’가 되어야 함을 강조한 것이다. 청지기로서 인간이 가져야 할 경제 윤리는 근면(industry), 검소(frugality), 제한 없는 구제(boundless generosity)이다. 이것을 웨슬리는 그의 설교에서 세 단계로 설명하고 있다. 첫째, 근면(industry)한 생활을 통해 “할 수 있는 대로 많이 벌어라(Gain All You Can)”, 둘째, 검소(frugality)한 삶을 통해 “할 수 있는 대로 많이 저축하라(Save All You Can)”, 셋째, 제한 없는 구제(boundless generosity)를 통해 “할 수 있는 대로 모든 것을 나누라(Give All You Can)”는 것이다. 이와 같은 웨슬리의 경제관을 중심1)으로 성경이 말하는 경제 윤리관에 대해 함께 알아보고자 한다.
1. 할 수 있는 대로 많이 벌어라(Gain All You Can)
그리스도인들은 ‘일만 악의 뿌리’가 ‘돈을 사랑하는데’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딤전 6:10)
그러나 이 말씀은 돈 자체가 악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돈을 사랑하는 것”, 즉 하나님보다 돈을 더 사랑하는 것이 악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돈 자체는 ‘가치 중립적’인 것이다. 돈은 가장 악하게 사용될 수 있는 것처럼 충분히 선하게도 사용될 수 있다. 돈은 살아가는 제반 문제들에 있어서 큰 공헌을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모든 종류의 상업을 함에 있어서(기독교인들이 가지고 있는 지혜대로만 사용한다면), 그리고 모든 선을 행함에 있어서 가장 편리한 수단이다. 따라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이 이 가치 있는 달란트를 어떻게 사용할 수 있을까 하는 방법을 바로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우리는 할 수 있는 대로 많이 벌기 위해 본래의 값보다 더 비싸게 사들이지도 말고, 그렇다고 너무 싸게 지불하지도 않으면서 바른 가치와 방법으로 될 수 있는 대로 많이 벌어야 한다. 그러나 생명을 희생시키며 돈을 벌거나, 혹은 건강을 해치면서까지 돈을 벌어서는 안 된다. 또한 사기와 속임수가 없이는 사업을 제대로 유지할 수 없고, 양심에는 거리끼지만 고객들이게 선심을 사지 않고서는 사업이 운영되지 않는 것들은 절대로 피해야 한다. 왜냐하면 돈을 벌기 위해 우리의 영혼을 팔아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가 하는 일이 모든 사람의 영혼에 유익을 끼친다면 그 일에 종사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이 경우 그 직업은 선하며 얻는 수익도 깨끗하다. 그러나 직업 자체가 악하거나 여러 가지 죄 가운데로 사람들을 빠뜨리는 것이라면, 우리는 그 직업을 당장 그만 두어야 한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정직하게 노력하여 “할 수 있는 대로 많이 벌어야 한다.” 가능한 한 모든 노력을 다하고, 시간을 헛되게 보내지 말라. 만일 우리가 자신과 하나님과의 인간관계를 잘 이해하게 된다면 우리에게 주어진 어떤 것도 낭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무슨 일을 하든지 전력을 다하라. 되도록 신속히 그 일을 하고, 지체하지 말라. 그 날 할 일을 결코 내일로 미루지 말고, 그 시간에 할 일을 다음 시간으로 미루지 말아야 한다. 어떤 일이라도 중도에 그치지 말며, 경박하고 부주의한 태도로 하지 말라. 노력과 인내로 성취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그 일을 못 다한 채 남겨 두어서는 안 된다.
이처럼 정직하고 신용이 있으며 근면한 자세를 기반으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지혜를 사용하여 할 수 있는 대로 많이 벌어야 한다. 이러한 삶의 좋은 예를 『나는 한국의 아름다운 왕따이고 싶다』의 저자인 김성주 성도2)를 통해 볼 수 있다.
성주 인터내셔널을 통해 유통 및 패션브랜드를 경영하고 있는 김성주 성도는 현재 전 세계의 정․재계 인사들이 주목하고 있는 사업가가 되었다. 재벌가의 막내딸로 태어났지만 부모님의 도움을 마다하고 월 18만원의 봉급 생활을 시작으로 여성의 몸으로 창고 일도 마다하지 않는 열성으로 오늘의 기업을 일구어 냈다. 그녀가 얼마나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았던지 1997년 스위스에서 열리는 다보스 세계경제포럼(WEF)에 차세대 지도자 100인에 지명되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 이 모임의 무게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데, 그 모임에 참여하는 인물만 봐도 조지 소로스, 빌 게이츠 등 한 개인이 왠만한 중소 국가의 경제를 좌지우지 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삼성이나 현대 기업의 총수도 아닌, 한 조그만 중소기업의 사장에 불과한 김성주 성도가 전 세계적으로 이런 인정을 받게된 이유가 무엇인줄 아는가? 그것은 바로 ‘정직한 경영’을 목표로 지금껏 달려온 결과였다. 즉 “할 수 있는 대로 벌되 그리스도인의 가치관을 가지고 정도(正道)를 걸으며 벌었던 것이다.” 그것이 전 세계의 경재계 인사들을 감동시키는 단초가 되었다.
그녀가 미국 유학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 청운의 꿈을 안고 기업을 시작했을 때 처음 느꼈던 감정을 “한국이 썩어도 이렇게 썩어 있는 줄은 몰랐다”는 말로 표현하고 있다. 그런 현실을 반영하듯 그녀가 사업에 고전하는 모습을 보며 가장 절친했던 선배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한국에서 기업을, 그것도 유통업을 운영하려면 술, 거짓말, 흰 봉투 없이는 절대 불가능하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김성주 성도는 다짐했다고 한다. 한국이 이렇게 썩어 있다면 나는 한국의 아름다운 왕따가 되고 싶다고 말이다. 그녀가 이 다짐을 지키기 위해 겪었던 어려움은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이유 없이 백화점에서 쫓겨나는 일은 다반사였고, 매장에 있던 물건들이 밤새 사라져 버린다든지, 아니면 아예 못쓰도록 망가뜨려 놓아서 그렇게 당한 피해액만 해도 어마어마하다고 한다. 그 고통이 얼마나 극심했던지 한 직원이 찾아와 이렇게 하소연했다고 한다.
“사장님, 그냥 적당히 타협하면 안 되겠습니까? 정말 일하기가 너무 힘듭니다.”
그 말을 듣는 김성주 성도의 마음이 얼마나 아팠겠는가? 그러나 그녀는 눈물을 머금고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러느니 차라리 이 사업을 때려치우고 집에 가서 애나 잘 키우는 게 낫지요. 힘든 심정은 이해하지만 앞으로 다시는 그런 얘기 꺼내지 마세요. 만약 한 번만 더 그런 말을 하면 그 다음날로 당신 책상을 없어질 테니 그리 아세요. 길게 보면 우리가 옳은 거예요.”
길게 보면 우리가 옳은 것이라는 말속에서 삶에 대한 바른 안목을 가진 크리스천의 자세를 엿볼 수 있다. 한 사람의 크리스천으로서 깨끗한 손으로 나아가는 것이 처음에는 힘들지 몰라도 결국 옳은 길로 인정받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끝까지 이 싸움을 싸워간 것이다. 그 결과 한국 언론인협회가 주관하는 ‘자랑스런 한국인 대상’(경제부문)을 수상하기에 이르렀다.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두고 ‘한국을 대표하는 커리어 우먼’이라고 표현한다. 그러나 그녀가 자신에 대해 참으로 듣기 원하는 수식어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당당하고, 의롭고, 정직하고, 투명한 크리스천 경영인’이라고 한다. 이처럼 정직하고 투명한 자세를 가지고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 안에서 최선을 다해 버는 것, 그것이 그리스도인이 가져야 할 삶의 자세이다.
2. 할 수 있는 대로 많이 저축하라(Save All You Can)
정직한 지혜와 불굴의 노력으로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것을 벌었다면 기독교인들이 신중하게 행해야 될 두 번째 규칙은 “할 수 있는 대로 저축하라”는 것이다. 재물을 무익한 경비로 쓰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것은 재물을 바다에 던지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육신의 정욕이나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충족시키기 위해 조그만 재물이라도 사용해서는 안 된다. 어거스틴은 그런 모든 생활을 ‘죄’라고 말했다.
첫째, 육신의 정욕을 위해서 재물을 써서는 안 된다. 다시 말해 즐거움이라든지 관능적인 기쁨을 얻기 위해 낭비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리스도인은 단지 몸에 필요한 것만으로 만족한 삶을 살아야 한다.
둘째, 안목의 정욕을 만족시키기 위해 값비싼 의복이나 불필요한 장신구를 소유하는 데 귀중한 달란트를 낭비하지 말아야 한다. 그렇게 밖에 할 줄 모르는 당신의 이웃으로 하여금 죽은 자들로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라. 우리 주님은 “그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냐”고 하시며 “너는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주님의 그 음성에 예! 하고 따를 수 있어야 한다.
셋째, 이생의 자랑, 즉 생활의 허영심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나 사람들의 존경과 칭찬을 받기 위해 아무 것도 쓰지 말아야 한다. 이러한 낭비의 동기는 위에서 언급했던 사실 중에서 어느 한 쪽 아니면, 양쪽과 흔히 관련된다. 사람들은 식사를 하거나 의복과 가구를 사는 데 경비를 쓰고 있는데, 그것은 단순히 식욕을 즐기거나 눈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그들의 허영심을 만족시키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비싼 대가를 지불하여 세상 사람들의 칭찬을 사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인은 오로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칭찬에 만족해야 한다.
“할 수 있는 대로 많이 저축하라”는 정신이 이 땅의 자본주의 문화를 꽃 피우게 했다고 베버는 주장한다. 그의 저서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1905)에 그러한 사상이 잘 드러나 있다. 이 책의 내용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개신교 윤리가 근대 자본주의 생성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베버는 역사적, 사회적으로 많은 사회들이 자본주의 경제체제가 생겨날 수 잇는 기본적인 여건들을 갖추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16-18세기의 유럽 사회에서만 근대적인 합리적 자본주의가 형성되었던 이유를 종교적 요인에서 찾았던 것이다. 즉 베버는 근대 자본주의가 가장 발달했던 지역이 바로 개신교 지역이었던 것을 발견하고, 종교(개신교 윤리)와 경제체제(자본주의) 사이의 인과적 상관관계를 추적했다.
베버가 개신교윤리에 대해서 말할 때에 칼뱅주의를 가장 핵심으로 취급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 세상적 금욕주의 성향을 띠고 있는 메소디스트 운동, 경건주의, 침례교 윤리가 모두 포함되어 있다. 이들을 총칭할 때 베버는 퓨리턴(Puritan)이라는 말을 흔히 쓴다. 그렇다면 개신교윤리가 어떻게 자본주의 정신과 관계를 맺고 있는가? 이에 대해 간략히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베버는 사람이 만일 자신의 행동이 근본적으로 그리고 이상적으로 하나님이 원하셨던 것임을 확신할 수 있다면 그는 “개신교 종교가 추구했던 최고의 선, 즉 구원의 확신”을 성취했다고 믿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선택받은 자들 가운데 있다는 최상의 가능한 표시는 “소명”의 의무를 완성하는 것이며, 직업을 수행하는 것이고, 직업을 따르는 것이고 선택된 경력이나 사업에서 성공하는 것이다. 그 결과 사업에의 헌신과 위탁은 단순한 의미를 넘어서 선택받은 자들 가운데 있다는 표시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일의 성공을 하나님의 인정과 축복으로 간주했다. 부는 그것이 게으름과 삶의 죄악적인 즐김에의 유혹일 때에만 윤리적으로 악한 것이며, 그것의 축척은 그것이 나중의 즐거운 삶의 목적으로 될 때에만 악한 것이었다.
소비의 제한이 축척적 활동의 허용과 결합되었을 때의 결과는 명백했다. 금욕적 삶을 통해 저축함으로써 가능해진 자본의 축적, 그리고 부의 소비에 부과된 제한은 자연적으로 자본의 생산적인 투자를 가능하게 만듦으로써 부를 증대시키도록 작용했다.
개신교 윤리와 근대자본주의의 관계에 대한 베버의 설명을 간단하게 도식화하여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칼뱅주의와 근대 자본주의의 연관성3)
모든 사람의 구원 여부는 태초에 하나님이 이미 결정하셨다. |
↓ |
그가 구원받았다는 것을 어떻게 아는가 하는 의문이 생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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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적인 소명(vocation)에 따른 직업활동에서 성공하는 것이 내적 구원의 외적 표시라고 일반 신도들이 믿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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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과 성공은 기독교적 소명에 충실한 상징이 되었고, 칼빈교도들의 특징적인 태도가 되었다. |
↓ |
엄격한 칼뱅주의자는 세상적인 쾌락을 누리도록 허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돈을 ‘하찮은 일’에 낭비할 수 없었다. 대신에 그는 그것을 ‘자본의 투자’로서 그의 사업에 재투자하였다. 그 결과 17세기 유럽에서 자본주의 체제가 시작 되었다. |
자본의 축척이 성서적으로 옳은가 하는 문제는 다음 세 번째 단계를 염두에 둘 때에만 옳을 수 있다. 그렇다면 할 수 있는 대로 벌고, 저축한 다음에 그리스도인으로서 가져야 할 자세가 무엇인가? 바로 “할 수 있는 대로 모든 것을 나누는 것”이다.
3. 할 수 있는 대로 모든 것을 나누라(Give All You Can)
할 수 있는 한 많이 벌고, 저축하는 데까지 이르고 나서, 다 된 것처럼 생각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 만일 거기서 그치고 더 높은 목표를 향해 나가지 않는다면 모든 것이 다 허사로 돌아갈 것이다. 돈을 쌓아 놓기만 한다면 진실한 의미에서 저축한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 돈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결과적으로 돈을 버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첫째, 할 수 있는 대로 많이 벌고, 둘째, 될 수 있는 대로 저축하고 나서, 할 수 있는 대로 모든 것을 나누어야만 한다. 그 근거와 이유는 천지의 소유주이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간 되게 하시고 세상에 보내셨을 때, 소유주로서가 아니라 청지기로 보내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잠시 동안 여러 가지 종류의 재물을 위탁하셨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의 완전한 소유권은 하나님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충실하고 현명한 청지기가 되기를 바란다면, 현재 나의 수중에 위탁하셨으나 하나님께서 원하신다면 그 어떤 것이라도 하나님께 모두 돌려 드릴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 재물을 나누는 원칙은 무엇인가? 다음 세 가지 원칙을 가지고 재물을 나누어야 한다.
첫 번째,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하라. 스스로가 먹을 음식, 입을 의복, 신체를 건강하고 강하게 보존하기 위해서 적절히 요청되는 바를 공급하라는 뜻이다.
두 번째로, 아내와 자녀, 그리고 당신 가족에 속한 모든 이들에게 공급하라.
세 번째, 그 외에 남는 것은 기회가 있는 대로 모든 사람에게 선용하라.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할 수 있는 대로 모든 것을 나누게 된다. 이렇게 나누는 것은 모두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 된다. 이 때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우리가 가난한 자들에게 주는 것뿐 아니라, 우리 자신이나 가족에게 필요한 물건을 공급하기 위해 소비하는 것도 하나님께 속한 물건을 하나님께 돌려보내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 스스로는 모두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기 때문이다.
만약 자신과 자신 가족을 위해 돈을 소비하는 데 있어서 마음 속에 때때로 의문이 생길 경우 다음과 같은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짐으로써 바른 소비를 지향해야 한다.
① 이것을 지출할 때 나의 신분에 맞게 행동하고 있는가?4)
② 주님의 말씀에 복종하는 마음으로 이렇게 하고 있는가?
③ 이러한 행동과 소비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께 바치는 희생제물이 될 수 있는가?
④ 이러한 일 때문에 내가 의인들의 부활이 있을 때 상급을 받을 수 있다고 믿을 만한 근거가 있는가?
전체적으로 정리하자면, 하나님께서 주신 근면함과 모든 지혜를 적용하여 영적으로나 육적으로 나와 내 이웃을 해치지 않고 될 수 있는 대로 많이 벌어야 한다. 그리고 나서 어리석은 욕망에 빠지는 데 사용되는 모든 비용을 중단하고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것을 저축하여야 한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 그리고 이생의 자랑을 충족시키려는 목적으로 소비되는 모든 경비를 중단함으로써 말이다. 그 후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이웃을 향해 아낌 없이 나누어주어야만 한다. 앞의 두 단계는 이 마지막을 이루기 위한 과정임을 기억하라. 우리는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어야 한다. 이것저것 쪼개어 인색하게 굴지 말고, 십일조나 뿐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것을 모두 하나님께 돌려 드리는 마음의 자세가 될 때 우리는 이 땅의 충실한 청지기로 서게 될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에게 원하시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이다.
1) 존 웨슬리, 『요한 웨슬레 설교선집』, 조종남 편역, (서울: 도서출판 서로사랑, 1998), 324-344.
2) 연세대학교를 졸업한 뒤 미국 앰허스트대와 하버드대 그리고 영국 런던정경대학(LSE)에서 사회학과 경제학을 공부했다. 대성산업 그룹의 막내딸로 태어나 미국 최고의 백화점 블루밍데일스에서 소매 유통업의 기본을 익힌 그녀는 88년 귀국, 패션 명가 성주인터내셔널을 굴지의 패션 유통 회사로 일구었다. 김성주, 『나는 한국의 아름다운 왕따이고 싶다』(서울: 랜덤하우스중앙, 2005).
3) 이원규, 『종교사회학의 이해』(서울: 나남출판, 2001), 175.
4) 지금 나는 주님의 재산의 소유주로서가 아니라 청지기로서 행동하고 있는가를 묻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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