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생각 : 책꽃이에 딩굴고 있는 책들을 재탕 삼탕하여
다시보자.
百濟花苑 "일본은 백제의 꽃밭이었다!"
고대에 일본이 백제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알 정도로 보편화 된
이야기 이지만 내가 이 책을 처음 접한 1999년만 하더라도 감히 일본인이 이러한 내용의 책을 작할것이라고는 상상 조차하지
못했다.
"백제화원"은 일본 646년 대화개신(大化改新)의 비밀을 소설형식을 빌어 완벽하게 재현을 하는 소설로 일본이 백제의 꽃밭과
같이 백제인들에 의해 건설되고 만들어졌음을 상징하는 제목이다. 그는 '수수께끼의 시대'로 알려진 한일 고대사와 일본 천황의 비밀과 왕실의 역사를
부드럽게 이야기한다.
"백제화원"은 643년 2월부터 645년 6월까지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모두 10개의 장으로 구성됐으며
도유라사-매화, 백제대사-자양화 등 사찰과 꽃을 주제로 한일고대사의 수수께끼가 파헤져진다. 신라 학승 초청 법회 통해 미륵보살에 심취해
메이지시대에 국보1호로 지정하게 된 이야기와 가쓰라기 황자에게 백제어와 학문을 연마토록하는 이야기 등이 저자 우다노부오의 유려한 문체와 곁들여
재미를 더하는 것 같다.
百濟花苑 "일본은 백제의 꽃밭이었다!"
지은이 : 우다 노부오 지음, 이연승 옮김
출판사 :
디자인하우스
발간일 : 1999. 03 .25
일본 643년 2월부터 645년 6월까지를 배경으로
한 일본 천황가의 권력 투쟁 - 덴지청황이 황자시절의 이야기 - 을 다룬 역사 소설이다. 당시에는 일본 궁중의 표준어는 "백제어"였으며,
신라어나 고구려어, 왜어는 천박하다는 이유로 탄압을 받는 전제로 설정이 되어 시작된다.
이 소설의 내용은 주인공인 나카노
오에(中大兄) 황자는 고구려계 귀족인 어머니를 둔 탓에 백제어를 더듬거려 가족과 중신들에게 멸시를 받는다. 그 당시 궁중에선 백제계가 정권을
장악하고 있었고, 백제어를 능숙하게 잘하지 못하면 천황의 자리에도 오를 수 없었다.
저자 우다노부오는 고대 한반도 3국의 언어가
백제는 노래하는듯한 풍부하고 아름다운 표혀력이 있고, 신라는 또렷 또렷한 울림, 고구려는 소박한 모음이 있다고 했는데 그 당시의 한반도 예술의
특색에 비유하였는 것 같다.
황위 계승권을 갖고 있는 나카노 오에 황자를 위해 당나라 유학까지 다녀온 일본 최고의 석학 "나카토미
가마코(후지와라노 가마타리)"가 가정교사로 들어와서 말을 모양있게 가르치기 시작하는데, 처음에는 서툰 백제어 실력에 골 머리를 아파하던 가마코는
황자를 이해하고 그와 친해지게 되면서 쿠데타(다이카 개신)를 일으켜 그를 황위에 올리게 되는 데 큰 공을 세운다.
그 당시 일본의
궁중에서는 백제어만 사용해야 했는데 신라나 고구려의 사투리가 섞여 있으면 천박하다고 멸시를 당했고, 신라어는 많은 탄압을 받았는데 당시 한반도의
정치 상황이 일본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었던 듯 하다 - 신라가 나제 동맹을 깨고 백제 성왕을 죽였기 때문에, 신라의 문물은 배격하는 분위기가
형성된 것 같다.
신라계 유민을 옹호했던 야마시로 오에 황자 일족의 멸망과 신라계와 고구려계에 대한 탄압 속에서 쿠데타를 일으켜
황위에 오른 나카노 오에 황자는 "반도와의 종속 관계를 끊고, 신라어든 백제어든 고구려어든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평화롭고 평등한 나라를 우리
일본에 건설하자" 라고 끝을 맺는데, 이 시대에는 당의 문화가 한반도를 통하여 일본으로 이행되는 과도기라 할 수 있다.
이 시대는
불교는 사이쵸와 구우카이가 당불교의 교학을 배우고 돌아와 천태종과 진언종을 창시했고, 궁중에서는 한시와 한문이 성행하는 등 높은 수준의 문화가
형성되었는데, 이는 9세기 후반에는 '가나'문자가 나타나게 되는 동기가 되는 것이다.
그 당시의 시대상의 특색은 일본 왕실의 섹스
스캔들을 적나라하게 읽을 수 있는데, 나카노 오에 황자와 하시히토 여동생과의 근친상간, 호테이왕후의 에미시 왕과 아들인 황자 이루카 - 후에
왕이되지만 - 와 불륜 관계, 이루카가 어미와 딸에 대한 난교등은 요즘의 시각에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고대의 문란한 성관계가 태연하게 등장하기도
한다.
여기서 저자 우다노부오의 말을 빌려보면 세계2차대전 때 미국이 평화스러움을 자랑하는 먼로주의를 뒤로 하고 자신들의 고향인
영국의 전쟁에 대한 핍박의 위기에서 구하려는 고통을 약 1200년전 지구의 정반대쪽인 한반도에서 660년에 바다를 건너 백제를 도왔다는 것을
이야기하는데, 이는 모국인 백제를 구하기위한 핏줄의 힘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
그리고 이상 야릇한것은 이
책표지에 "한 일본 지식인이 목숨을 걸고 쓴 수천년동안 숨겨져 왔던 진짜 일본이야기",
"마침내 밝혀지는 한일 고대사의 수수께끼같은 비밀들", "이소설을 읽으면 한국인으로서의 궁지와 비애를 동시에 느낀다." 라고 적혀있다.
출판사도 우습지만 우리가 초딩 때 부터 알게되는 자연스러운 이야기를 일본에서는
비밀(?)이라고 나불데는가 본데... 어떻게 보면-(개인적인 생각이지만)-읽고 나면 후회 할것 같은 생각이 왜(?) 읽었는가(?)라고 반문을 해
볼 만 도 하다.
우다 노부오 1952년 일본 기후현(岐阜縣)에서 태어난 저자는 1974년 나라(奈良) 공과대학을 졸업하고
다양한 기술 관련 업종에 종사하다가 지난 1977년 소니(ソニ)주식회사에 입사하여 현재까지 20년 넘게 한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유달리 역사 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바쁜 시간을 쪼개어 틈틈이 일본 최고의 역사서인 「고사기」와 「일본서기」 등의 문헌을
집중적으로 연구하였으며, 그러는 동안 그는 한일 고대사 연구자로서 명성을 날리며 많은 연구 성과들을 남기게 되었다. 1996년에는 '수수께끼의
시대'로 알려진 한일 고대사와 일본 천황의 비밀 그리고 일본 왕실의 역사를 파헤친야심작 「백제화원」(근대문예사 간)을 출간하여 화제가 되었고,
'백제화원'의 후편격인 ‘신라화원’을 집필했다.
★
세기경의 고대 일본 조정을 다룬 이 작품은 무엇보다 한일고대사의
비밀을 파헤쳤다는 점에서 커다란 의미를 지닌다. 일본 천황가와 소가(蘇我) 백제왕조의 형성과정, 백제의 일본 진출사를 재현하는 등 일본이 숨기고
싶은 부분을 과감히 들춰낸 것. 아스카(飛鳥)지역을 본거지로 해 오사카(大阪)까지 영역을 넓혀간 소가씨들은 한반도에서 건너간 백제의 후예로,
백제궁을 짓고 백제대사(大寺)를 건축하는 등 당시의 일본을 사실상 지배했다. -대한매일신문
★
한·일 고대사
다시 썼스므니다
4년 전 백제의 일본 진출사를 소개한 역사소설 ‘백제화원’(百濟花園)으로 화제를 모은 우다
노부오씨(49)가 한국을 방문했다. 막 집필을 끝낸 ‘신라화원’의 번역작업을 독려하고, 중편 ‘애틀란타에서’의 한국어판 출판을 홍보하기
위해서다. ‘신라화원’은 9월중 한국과 일본에서 동시에 출간할 예정이다.
"백제화원’이라는 제목이 7세기경 고대 일본이 백제의
꽃밭이었다는 의미인 것처럼 ‘신라화원’도 백제에 이어 신라의 영향권에 있던 일본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특히 ‘백제화원’은 각종 문물의
도래뿐만 아니라 삼국시대 언어와 일본어의 관계를 유추해 학계에서도 큰 반응을 일으킨 작품. 우다 씨는 ‘백제화원’의 후편 격인 ‘신라화원’에서
상대적으로 차별받던 신라인들이 백제를 극복하고 권력을 장악하는 과정을 그렸다고 귀띔했다.
일본 전후세대인 우다 씨가 일본 속의
한국에 눈뜬 것은 고등학교 때 재일동포 친구를 사귀면서부터. 나라공대를 졸업한 후 소니사에 입사한 우다 씨는 평범한 엔지니어로 살아가던 중 재일
한국인 역사학자 김달수씨의 ‘일본 속의 한국문화’(한국어판 ‘일본 열도에 흐르는 한국혼’)를 읽고 자신이 배운 일본사가 엉터리였음을 깨닫는다.
그 후 일본고대사를 뒤집을 수많은 사료를 모으고 분석해 논문 대신 소설을 집필했다.
우다 씨는 일본인들이 애써 감추고 싶어하는
백제 도래설을 주장해 눈총받기도 했지만, 예상 밖으로 일본 중-장년층이 대부분 이 사실을 인정한다는 것을 알고 힘을 얻기도 했다. 그는
역사교과서 왜곡사건이 마사코 왕세자비의 임신 발표와 맞물려 일본인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났음을 안타까워하면서 왜곡은 반드시 수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역사 왜곡에 대해 한국과 중국이 수정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아예 빠진 부분에 대해서도 주목해야 합니다. 특히
현대사 부분에서요. 저는 창씨개명이나 명성황후 시해사건 등 한-일 근현대사의 주요 사건들이 교과서에 실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주간동아 [김현미 기자] 제287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