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장된 학교
위장된
학교
지은이 : 김덕영 지음
출판사 :
인물과사상사
발간일 :
2004. 09. 17
이 책을 그양 그렇게 읽은 책인데 웬지 손에 잡힌다. 그 많고 많은 책중에... 이책은 이야기를 나열하고
있다. 저자가 국민들이 교육의 전문가[?]로 인정하면서 이야기를 나열하고 있다.
저자는 글속에는 한국교육의 현실에 대한 불만이
감정적으로 표현되어 있는데,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상식이어서 새로운 것은 전혀 없다고 생각된다. 현실의 부정적 측면의 나열하여 무엇을 어떻게
나아 가자는 걸까? 주제와 동 떨어진 이야기가 나오고 우리나라의 교육에 대하여 품고있던 불만을 나열식으로 이야기해놓은 것 같다는 생각이든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교육제도를 독일과 비교하며 비판한다. 저자 자신이 독일에 유학을 가 수학했던 교육과 비교하는데, 교육방식이
독일식과 다르면 비판의 대상이 된다는 논리가 다소 설득력이 부족함을 느낀다. 그러면 독일 외에서 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가? 좀더 다른
나라의 교육제도를 일목하게 연구를 하여 글을 고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꼭 나의것은 좋은데[저자는 독일에서 수학을 하였으니 독일식이
좋을 수밖에...] 니것은[독일 외의 국가들의 교육] 나쁘다는 것으로 밖에 들리지 않으니... 준비성이 부족한 것같은 느낌이다. 그리고 독일의
교육에 대한 문제점도 크게 다루지 않는다. 어느나라의 교육에는 모두가 장단점있기 마련인데...
그러면 자본주의로 만연한 미국이나
영국등에서도 어디가 좋니... 그렇지...하는데... 내가 하는 일이 외국과 교역을 하는 일리라 그런지 대한민국에서는 서울대학이 왕손가락이고
나머지는 다 그렇다고 생각하는 외국인이 많고 서울대학도 세계적으로 보면 그저 그렇다고 생각을 하는데 하물며... 서열화를 ... 이러한 문제가
대학을 졸업해도 외국인과의 대화가 소통이 잘 않되니 그런 것 같고...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
학벌주의와 대학의 서열구조는
단순하게 나열을 통해 무엇을 어떻게 하자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서열화와 대학의 권위로 점철된 전근대성을 극복할 것을 주장을 하는데 과연 대학의
서열과 학벌의 존엄성이 없어 질수 있을까? 없어진다면 언제 감쪽같이... 어려움 이야기다. 결국 저자를 다시 한번 더 생각을 하면은 저자 개인의
주관적 주체성이 강조되는 책인 것 같다.
네이브 뮤님의 글을 빌리면 책은 전체적으로 3개의 부로 나뉘어져 있는데 1부의 제목은
'패러다임의 대전환'. 그러니까 200여개에 달하는 대학을 일사분란하게 서열화하고 그것도 모자라 전세계의 대학도 줄세우고 한 번 정해진 순위는
변하지 않으며 막강한 권위를 가지게 되고 마찬가지로 교수의 권위에는 절대 도전할 수 없고 함부로 이론을 제기할 수도 없다는 등의 이런 이상한
풍토를 바꾸자는 것이다.
결국 우리가 만고불변의 진리라고 확신하고 있는 것이 사실은 별 근거도 없는 부조리한 난센스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특성화, 전문화, 다원화를 특징으로 하는 현대사회에서 하나의 획일적인 질서를 절대적인 것으로 여기는 게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하지만 한국에서는 절대 우스운 일이 아니며 아주 심각한 일이다. 교육부장관의 말 한마디에 수많은 사람들이 울고 웃는다.
물론 대한민국 교육의 미래가 걱정되어서가 아니다. 이는 단지 국민 개개인들이 좀 더 좋은 대학의 좀 더 좋은 학과에 입학하는 것을 지상목표로
하기 때문에 생긴 현상일 뿐이다.
그래서 매년 사교육비는 급증하고 명문대 진학이라는 아주 특수한 목적을 가진 특수목적 고등학교가
곳곳에 창궐한다. 그리고 한참 뛰어 놀아야 할 초딩들은 특목고에 들어가기 위해 수많은 학원을 전전하고 있다.
2부의 제목은
'배움'의 또 다른 정의이다. 아시아 사람들은 근대화를 단순히 생산적인 노동력을 통한 경제발전과 동일시하곤 헀다. 하지만 서구사회의 근대화란
개인주의에 토대를 두고 있으며 근대적 교육의 일차적인 이념은 인을 자율적이고 주체적이며 개성을 지닌 인격체로 육성함에
있었다.
그런데 아시아, 특히 우리 나라에서의 근대화는 개인주의가 쏙 빠지고 경제 및 산업발전과 이를 통한 부국강병과 비슷한 의미를
가지게 된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한국 교육의 비극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더군다나 일제 강점과 오랜 반공교육은 기이한 규율문화를 낳고
말았다.
미셸 푸코에 의하면, 규율이란 인간의 몸과 영혼을 훈련시키고 복종시킴으로써 정치적으로는 유순하고 순종적이며 생산적이고
유용한 인간을 만들어내는 일련의 지배와 권력의 과정을 의미한다.
그래서 묻고 따지고 비판하며 논쟁하는 경우는, 기존의 질서를 문란케
하는 사람으로 간주되어 낙인이 찍히기 쉽다. 이는 어떤 면에서 공자의 述而不作(술이부작 - 토달지 말라)과도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그래서
근대와 전근대가 마구 섞인 우리의 교육 문화가 기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저자는 독일의 세미나식 수업을 대안의 하나로 보고 있다.
물론 저자도 인정하고 있듯이 우리 교육현실에 그대로 접목시키기엔 쉽지 않아 보인다.
3부의 제목은 '패거리 질서를 떠나서' 제목
그대로 내 학교, 내 학과, 내 사람을 지나치게 챙긴다는 것 그 중에서도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는 사람들이 심하게 많이 해먹는 것에 목소리를
높이다.
저자 자신이 독일에서 학위를 받고 미국 대학 출신들에 비해 차별을 받은 악감정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닐까 하는 추측이 들긴
하지만 우리 학문 풍토가 지나치게 미국 중심적이서 문제가 되고 있는 건 사실이다.
미국이 모든 학문 분야에서 1등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닌데 미국 대학만 나오면 우월적인 지위를 점하게 되는 것은 심각한 학문적 획일주의로 흐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외에 시간강사 문제, 대학
연구소의 난립, 왕따문제, 스포츠교육 문제 등에 관한 간략한 비판이 이어진다.
전체적으로 저자가 하고 있는 얘기에 동의하긴 하지만
너무 광범위한 분야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는 점이 아쉽다. 사실 왕따문제 하나만 해도 제대로 얘기하자면 두꺼운 책 하나의 분량이 나오는데 그걸
10여페이지속에서 다루다 보니 얘기가 뻔하고 단순해질 수밖에 없다.(400페이지가 넘는 김상봉의 <학벌사회>를 읽고 나서도 학벌에
대해 온전하게 이해하기 힘들었다) 비단 이 책뿐만 아니라 너무 많은 책들이 너무 많은 얘기를 하려고 한다. 좀 더 전문화되고 다양한 분야에서
상세하고 구체적으로 파고들었으면 좋겠다.
소개글
한국 사회의 근대성에 대해 고민해온 사회학자가 쓴 한국 교육에 대한 비판적 에세이. 형식적으로 서구 근대교육 제도를 취하고
있지만, 서구 교육의 중심의 이루는 근대적 인간관, 즉 개인주의적 인간관이 부재하다는 점을 한국 교육의 근본적인 한계로 지적한다. 그래서 제목도
근대성으로 '위장된 학교'.
한국과 독일에서 공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외국의 교육과 한국의 교육을 비교하며, 대학 서열화와 과열된
입시경쟁, 과도한 사교육비 지출 등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나아가 학생을 훈육 대상으로 보고 집단주의적 규범을 주입시키는 교육 등 한국의 지적
패러다임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요구하는 문제점들을 제기한다.
우리 한국인들은 서구에서 발달한 개인주의를 이기주의라고 비난하면서
우리의 전통적인 집단주의를 인간적인 가치라고 주장한다. 개인주의(자)는 한국 사람들에게 가장 큰 욕이자 비난이다. 왜냐하면 개인주의는 자기
자신만을 위하는 태도인 이기주의와 동일시되기 때문이다.
한국인들은 어려서부터 개인은 가족.기업 또는 국가를 위해서 사고하고 행위하고
봉사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 자기 자신을 희생하도록 배운다. 개인의 존재가치와 의미는 궁극적으로 개인을 초월하는 집단주의적 사회체의 구성원이라는
점에 근거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바로 이런 의식이 주도하는 사회를 인간적인 사회라고 간주한다. 반면 개인의 개성과 특성, 그리고
개인의 자율적이고 주체적인 인격을 주창하는 개인주의는 한낱 이기주의에 지나지 않는다고 본다. - 본문 156~157쪽에서
저자소개
김덕영 -
연세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했다. 독일 괴팅겐 대학교 마기스터(Magister)학위와 동대학교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독일 카셀(Kassel)
대학교에서 대학교수 자격취득하였다. 지은 책으로는 <현대의 현상학. 게오르그 짐멜 연구>, <주체.의미.문화. 문화의 철학과
사회학>, <이론.경험.실천. 인문사회과학 논리와 방법론 길잡이>, <논쟁의 역사를 통해 본 사회학>,
<짐멜이냐, 베버냐?: 사회학 발달과정 비교연구> 등이 있다.
작가의
말
한국에서의 배움과 가르침의 의미, 학교를 통해 진정한 근대성이 무엇인가를 고민했던
나의 작업은 평소 내가 전문적인 철학적.사회과학적 연구를 통해 추구했던 주제와도 통한다. 한국 사회는 과연 진정으로 근대성을 확보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가 늘 나의 가장 큰 지적 고민이다. - 김덕영
★
문화일보 : 최근 발간된 <위장된 학교>는
독일에서 공부한 한 사회학자가 진단한 한국 학교교육의 현실이다. 진단이라기보다는 자괴감에서 나오는 처절한 독백이다. 우리의 교육현실을 보면,
무엇하나 마음에 드는 부분이 없기 때문이다. - 홍성철 기자 ( 2004-09-18 )
★
한겨레신문 : 사회학자 김덕영씨가 쓴 <위장된
학교>는 이 꽉 막힌 절벽 같은 현실에 또다시 머리를 치받으며 달려 드는 책이다. 절망으로 끝내버리기엔 교육이라는 문제가 너무나도
중대하고도 결정적인 문제이기 때문일 것이다. - 고명섭 기자 ( 2004-09-18 )
★
허물어지는 '학교' 를 어찌할 것인가
한국의 ‘교육 문제’는 거대한 사회적 블랙홀이다. 어떠한 처방도 학생들을 입시지옥에서
해방시킬 수 없고 붕괴된 교실을 일으켜 세울 수 없으며 집단따돌림이라는 비인간적 폭력 행위를 근절할 수 없다. 교육과정이 수없이 바뀌어도 온
국민의 정신을 옥죄는 ‘교육 문제’는 여전히 제자리에 꿈쩍도 하지 않고 서 있다. 상황은 거의 절망적이다. 정신질환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이
총체적 강박증과 편집증의 원인은 어디에 있고 출구는 어디에 있는가?
한국 교육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는 책들은 그동안
여러 권이 나왔다. 그러나 아무런 메아리도 불어오지 못한 채 묻혀버렸다. 아무리 진지하게 이야기해도 아무리 처절하게 외쳐도 대답이 없었다.
사회학자 김덕영씨가 쓴 <위장된 학교>는 이 꽉 막힌 절벽 같은 현실에 또다시 머리를 치받으며 달려 드는 책이다. 절망으로
끝내버리기엔 교육이라는 문제가 너무나도 중대하고도 결정적인 문제이기 때문일 것이다.
학벌 연고 획일주의에 뒤처지고 일그러진 한국교육 현주소 진단
“대학서열 해체만이 학교정상화 외길이다”
지은이는 이
책에서 한국 교육의 현실을 초등학교에서부터 대학교까지 총체적으로 조망한다. 교실의 황량한 풍경을 묘사하고 그 교실을 떠받치고 있는 이념의
반교육성을 드러내며 그런 반교육적 현실이 완강하게 지속되는 이유를 설명한다. 그리고 독일을 비롯한 외국의 교육 현실을 거울로 삼아 한국의
교육이라는 것이 얼마나 우스꽝스럽게 일그러져 있는지, 얼마나 시대에 뒤떨어져 있는지 비교해 보여준다. 그가 진단하는 한국 교육의 질병은
학벌주의·연고주의·획일주의로 요약할 수 있으며, 그들은 서로 밀접하게 연관돼 하나의 전체를 이룬다.
왜 그토록 ‘입시제도’가
바뀌었는데도 학생들이 느끼는 중압감은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등골이 휘어지기만 하는가. 지은이가 보기에 이유는 명확하다. 학벌주의의 성채 바깥에서
문제를 해결하려 하기 때문이다. 서울대를 정점으로 하여 온 나라 대학에 일렬로 등급이 매겨진 ‘대학 서열화’의 이 완고한 체제 속에서는 그 어떤
대책도 진정한 대책이 될 수 없다. 이해찬 전 장관이 내놓았던 ‘제7차 교육과정’도 실패로 끝났고, 올해 2월 안병영 현 교육부장관이 발표한
‘사교육비 경감대책’도 실패로 끝날 것이 뻔하다. 환부에 메스를 대지 못하고 응급처치일 뿐이기 때문이다.
△ 초·중·고·대학이라는
교육시스템은 미국에서 들여온 근대적 형식이지만,우리교육의 내용은 전근대성을 벗어나지 못했다.특히 명문대 입학을 지상과제로 삼아 학생을 점수따는
기계로 훈육하는 중·고등학교의 교실은 인격마저 서열을 매기는 비인간적 살풍경을 연출한다.
학부모들이 아우성치며 말하는 ‘공교육 부실’이라는 것이 무슨 뜻인가? 학교가 학생들을 주체적이고 자율적인 인격체로 사고하고
행동할 수 있도록 키워주지 못한다는 뜻인가? 아니다. 대학 교육을 따라갈 지적 능력을 제대로 키워주지 못한다는 뜻인가? 아니다. “한국인들은
이런 것들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다.” ‘공교육 부실’을 판단하는 잣대가 교육 자체가 아니라 ‘대학 입시’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더 서열이 높은 대학, 할 수만 있다면 최고의 대학에 자식을 입학시키느냐 하는 것일 유일한 관심사인데, 평등하게 제공되는
‘공교육’은 언제나 ‘부실’할 수밖에 없다. 사교육은 여기서 필연적으로 등장한다. 그 사교육조차도 평준화되면 더 비싼 사교육, 더 고급스런
사교육이 등장하는 ‘인플레의 악순환’을 막을 수 없다. 서울대를 정점으로 한 이른바 명문대 출신이 정치·경제·교육·문화의 모든 것을 장악한
학벌주의가 철폐되지 않는 한 ‘공교육의 부실’은 지속될 수밖에 없고, ‘사교육의 창궐’은 갈수록 심해질 수밖에 없다.
그 폐해는
학교의 붕괴로 나타난다. 중고등학교 교실은 학생들의 인격을 함양시키는 곳이 아니라 점수 따기 기계로 만드는 곳이다. 이런 곳에서 창의성과
주체성이 자랄 수 없다. 규율과 훈육은 학생들의 상상력을 짓누르고 개성이 꽃필 기회를 박탈한다. 일류대 진학할 가능성이 높은 학생들을 우대하고
나머지 학생들은 ‘잡초’ 취급하는 교실에서 인간성이 자랄 수 없다. 그 폐허 같은 풍경은 대학에서도 그대로 재연된다.
서열의
아래쪽에 자리잡은 대학의 학생들이 이미 패배한 인생이라는 생각에 자부심과 탐구심을 느낄 겨를이 없다. 어렵게 공부를 해서 학자의 길을 걸어도
서울대가 장악한 한국 대학 사회의 연고주의 속에서 패거리에 굴종하지 않는 한 대학에 자리를 잡을 수 없다. 한국의 대학은 서울대 출신-미국제
박사를 ‘성골’로 한 현대판 골품제 사회다. 교육의 체제와 형식은 근대적이지만, 그 내용은 하나같이 전근대에 머물러 있는 것이 한국 교육의
현실이다.
지은이는 말한다. 개성이 온전히 존중받는 개인주의를 보장하는 교육이 진정한 교육이며, 그 개인들이 모여 이룬 ‘조직화된
개인주의’가 이른바 ‘국가 발전’의 토대다. 대학은 전근대적 학벌주의·연고주의·권위주의가 아닌 논쟁과 비판이 살아 있는 진정한 학문의 전당이
돼야 한다. 그렇게 되려면 무엇보다 한국 교육체제를 짓누르는 학벌주의와 그 토대인 대학서열화가 깨져야 한다. 서열화 해체는 학생의 정신을 짓밟는
학교를 정상화하기 위한 전제조건이다. 그밖에 다른 길은 없다고 지은이는 힘주어 말한다.
한겨레신문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