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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32.구속사 읽기 훈련의 실제 2.-2

명호경영컨설턴트 2008. 12. 21. 07:03

구속사 읽기 훈련의 실제 2.-2

 

결국은 신앙의 모든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평생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그를 향하여 가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살기를  원하며(빌 2:5-11) 그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자기 희생을 배우고 실천하기 위하여 그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인내와 겸손(마 11:28-30)과 십자가 위에서 나타난 사랑을 배우기 위하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그를 향하여 발걸음을 돌려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 길을 가기 위하여 그리스도를 푯대 삼아 달려갔습니다. 경주(競走)하는 선수가 푯대만 바라보고 온힘을 다해 달려가듯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푯대 삼아 자기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고 전심 전력으로 주님에게로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고백했습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딤후 4:7,8)"


  이렇게 달려갈 길을 마친 노(老) 사도의 고백에는 주와 연합하여, 주님만이 나타난 부활의 신앙에 도달한 영성(靈性)이 있습니다. 주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한 충성된 믿음과, 주님이 기뻐하사 주시는 상급의 소망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자신과 그리스도의 연합을 통한 부활 신앙의 목표점에 이르기까지 달려가야 합니다. 겉만 깨끗이 할 줄 일고 속 사람의 변화를 모르는 껍데기 신앙인 속죄 신앙에 머물러 있지 말아야 합니다.


속죄 신앙으로 자기의 죄만 깨끗이 한 사람은 속 사람의 겉은 깨끗해졌을지라도 속 사람의 내적(內的) 부분인 혼(魂)은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죽고 부활한 변화가 없습니다. 자기(自己)가 죽고 그리스도의 영성(靈性)으로 변화되지 못한 상태입니다. 그러므로 속 사람은 예전의 그 모습대로 살아갑니다.

 

 영(靈)은 변화 받아 새 것이 되었을지라도 혼(魂)의 의식에서는 여전히 자기가 살아 있습니다. 영의 속 사람이 변화 받았을지라도 육에 속한 혼은 변화를 받지 못한 사람입니다. 아직 까지도 영이 혼을 지배하는 영에 속한 사람이 되지 못한 사람(롬 8:8-16)입니다. 육에 속한 혼이 자신의 주인 노릇을 하는 사람입니다. 육신적인 생각과 의식으로 자신을 지배하는 육에 속한 사람입니다. 아직도  자기가 죽지 않았으므로 자기가 인생의 주인 노릇을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으면서도 자신을 위해 삽니다. 자신을 위해 죽으신 예수를 위하여 살아야 한다고 배우면서도 여전히 자신만을 위하여 삽니다. 그러나 부활 신앙의 길로 들어서기 시작하면 이제는 자신만을 위해 살지 않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살려고 힘쓰게 됩니다.

 

자신은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죽고 이제 사는 것은 내가 아니고 예수가 산다고 고백되어지므로 예수를 위해 살게 됩니다.
  내 속에 있는 것은 예수이므로 자연히 예수를 위해 살게 됩니다. 예수가 내 안에 계셔 예수의 마음으로 살게 되므로 자연히 예수를 위해 살게 됩니다. 내 속에 계신 예수가 자신의 생각대로 나를 인도하여 살게 되므로 내가 예수를 위해 살게 되는 것처럼 됩니다.


  자신이 신앙 생활한다고 생각해도 예수를 위하여 살지 않고 자신의 뜻만 위하여 , 자신의 포부만 위하여 사는 사람은 진정한 믿음의 길에 들어서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함께 죽고 함께 부활한 부활 신앙의 길로 가야 합니다.


  부활 신앙에 들어가면 자기는 죽어 버리고 예수 만 자기 속에 있으므로 자연히 예수 중심으로 살게 됩니다. 예수를 위하여 살게 됩니다. 그리고 예수의 원하는 대로 이웃을 위하여 살게 됩니다. 복음을 위하여 살게 됩니다.


  우리는 이러한 부활 신앙의 길로 가야 합니다. 믿음의 선진(先進) 들이 달려간 부활 신앙의 길로 들어서야 합니다. 거죽만의 신앙이 아니고 속 사람, 영과 혼의 온전한 변화를 추구하는 부활 신앙의 길로 들어서야 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여야 합니다. 이제 내 속에 사는 것은 내가 아니요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는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길 끝에 서서, 달려오는 우리를 미소로 반겨 주시려고 서서 팔을 벌리고 기다리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 푯대이신 그리스도를 향하여 우리는 달려가야 합니다.


  이 길이 진정 우리가 가야 할 참되고 의미 있는 신앙의 길이기에 사도 바울은 이 길로 달려갔습니다. 우리의 앞장을 서서 이 길로 가는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뒤를 따라서 많은 믿음의 용사들이 예수를 바라보며 부활 신앙의 길을 달렸습니다.


  우리도 달려가야 합니다. 푯대이신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육신의 소욕을 쳐서 복종시켜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날로 날로 닮아 가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날로 날로 닮아 가는 것, 이것이 달려가는 신앙입니다.
 
  막연하게 문자적으로 읽고 의미를 모르고 넘어가던 성경에 기록된 부활 신앙에 내가 눈을 뜨게 된지도 여러 해가 흘렀습니다. 전에는 예수의 피로 나의 더러운 죄의 모습만 씻으면 다 된 것으로 알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내가 예수 믿는다는 것은 내가 그리스도와 연합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영으로 변화하여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가 내 안에 사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나를 위해 살지 않고 나를 위하여 죽은 예수를 위하여 살아야 한다는 부활 신앙의 진리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뒤로 그 진리대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의 살아온 모습을 보면 부끄럽고 주님께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 때가 많습니다.


  주님을 위하여 헌신한 것도 없고 신앙의 덕을 세운 것도 없이 무능한 신앙인으로서 세월만 보냈습니다. 자신을 돌아 볼 때에 인격적으로 너무나 부족하고 신앙인으로서 본이 되지 못함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습니다. 아무리 자신을 쳐서 주님의 뜻에 복종시키려 하여도 나 자신의 혈기와 완악함과 부족함을 더욱 절감할 뿐입니다. 힘으로 되지 아니하고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신이신 성령의 능력으로 만 주님 앞에 합당한 신앙적인 열매를 맺을 수 있기에 성령의 은혜만 간절히 소망할 뿐입니다.

 

 이렇게 부족하고 허물이 많은 인생이지만 주님께서는 여전히 관심과 사랑을 보여주신 것을 생각할 때에 오직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만 주님의 은혜로 올바른 신앙의 길, 주와 연합한 부활 신앙의 길을 알았기에 그 길로 가고자 할뿐입니다.


  믿음의 선진들이 힘을 다하여 달려 간 길인 부활의 길로 나도 나아가고자 한 걸음 내딛어 보려고 합니다. 몰랐으면 이 길로 갈 것을 꿈에도 생각을 못했겠지만 이제는 이 길을 알기에 이 길로 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 길을 알게 된지도 여러 해가 지났지만 아직도 부활 신앙의 문턱에서 머뭇거리고 진행하지 못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바라보며 한 걸음씩이라도 나아가기를 소망합니다. 다른 신앙의 용사들처럼 달음박질하지 못하지만 이 길을 알기에 어찌하든 한 걸음씩이라도 나아가기를 바랄 뿐입니다.


  이 글을 읽는 독자(讀者) 중에는 분명, 주님을 푯대로 하여 부활 신앙의 가도(街道)를 힘차게 달려갈 분들이 많이 있을 줄 믿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신앙의 경주자를 맞이하는 예수 님과 기쁨의 상봉을 하게 될 것입니다. 나도 부족하나마 이 길로 행하여 사모(思慕)하는 주님과 만나기를 소망합니다.
 
  부할 신앙의 길로 가는 길은 여러 방법이 있을 것입니다. 김 진홍 목사처럼 예수 님의 가신 길을 따라서, 가장 낮은 자리에 내려가서 그들과 고난을 함께 하므로 몸으로 체득(體得)하여, 부활의 영성에 이를 수도 있습니다.

 

이 중표 목사처럼,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깊이 들어가서 그와의 연합을 통하여 부활의 영성(靈性)을 자기화(自己化) 시킬 수도 있습니다. 주님을 위하여 순교한 주 기철 목사나 손 양원 목사 같은 분은 말 할 것도 없고 주님과 연합하여 부활의 영성으로 순교한 분들은 우리 한국 교회에 많이 있습니다. 또한 지금도 주님과 연합한 부활 신앙으로 고난과 희생을 마다 않고 어려운 농촌이나 낙도(落島)에서 평생을 주님을 위하여 헌신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또한 자기 인생을 주님께 헌신하여 여러 가지 어려운 환경에서도 원주민들에게 복음을 전하기에 힘쓰는 선교사들이 있습니다.


  이 분들은 부활 신앙의 영성으로 그리스도를 푯대 삼아 달려가는 신앙의 용사들입니다. 이런 분들이 그리스도의 정신을 따라가는 사람들이요, 사도 바울의 부활의 영성의 맥(脈)을 이어오는 사람들입니다. 이 들을 통하여 한국 교회를 주님이 붙들고 있습니다. 이들의 헌신과 기도와, 고난받는 이웃을 위한 눈물을 주님께서 귀하게 보시고 교회와 민족과 나라를 붙잡아 주고 있는 줄 믿습니다.


  이러한 부활 신앙의 영성에 이르기 위하여 우리들 모두가 이분들과 같이, 순교자의 길이나 자기 희생의 헌신의 길로 가기는 힘듭니다. 그러나 여기서 소개한 구속사 중심의 성경 해석 훈련은 부활 신앙이 어떤 것인가를 깨닫게 합니다. 속죄 신앙에서 한 단계  진보한 부활 신앙을 바라보게 합니다. 깨닫지 못하면 부활 신앙으로 들어갈 생각도 못하겠지만 이 훈련법으로 성경을 읽을 때에 그리스도의 구속과 부활의 진리에 깊이 접하게 되므로 부활 신앙을 알게 되고 이 길로 가게 되기를 원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이 부활 신앙의 길로 주님이 오라고 요구하시기 때문입니다(롬 14:7-9). 이 길이 믿음의 올바른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구속사 중심 성경 훈련은 우리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구속과 부활에 연합한 부활 신앙에 눈뜨게 하고 부활 신앙의 길로 가고자 하는 동기(動機)를 부여하는데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이 구속사 중심의 성경 해석 훈련으로 그리스도와의 연합(聯合)을 이루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에 깊이 들어가서, 부활(復活)의 영성(靈性)을 자기화 시킬 수 가 있다면 이 훈련은 의미 있는 영적작업(靈的作業)이 될 것입니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이 이 방법을 잘 활용하여 부활 신앙의 영성에 다 도달하여 가족과 이웃과 교회와 나라와 민족과 세계를 살리는 신앙(信仰)의 용사(勇士)들이 되기를 기원(祈願)합니다.

 

 

출처 : 충신사 기독교 문서 선교회
글쓴이 : joseph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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