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테크/다니엘박 스튜디오

[스크랩] 세상을 바꾼 사진 작품들

명호경영컨설턴트 2008. 12. 27. 23:33



...대공황기, 미국 서부 이주 농민들의 어려운 처지를 알리기 위해 도로시아 랭은 이 사진을 찍었다. 사진 속 여자와 그녀의 아이들은 캘리포니아 완두콩을 따는 야영지의 한 텐트에 살고 있었는데, 완두콩 작황이 좋지 않아 일자리를 잃고 빈털터리가 되었다. 결국 그녀와 아이들은 밭에서 얻은 얼어붙은 채소와 아이들이 잡은 새로 겨우 끼니를 연명했고, 위기에 몰린 어머니는 차의 타이어를 떼어 팔아서 먹을 것을 마련했다.
도로시아 랭은 지방 신문에 완두콩을 따는 사람들의 사진을 발표함으로써 세상의 관심을 굶주린 노동자들의 야영지로 집중시켰다. 당시 미국 농민들은 1929년 주식시장이 붕괴되기 10년 전부터 이미 농산물 가격 하락으로 고생하고 있었고, 소작인들은 일자리를 찾아 서부로 떠날 수밖에 없었다.
당시의 시대상을 잘 반영하고 있는 이 사진은 그 후 인간의 고통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이미지로 유명해졌다.
사진 출처_밀턴 멜처, <도로시아 랭-어느 사진작가의 인생>, 뉴욕, 1978


..일본 공군기지 부지인 이오지마는 1945년 초기에 전략상 아주 중요한 곳이었다. 연합군은 그 섬을 점령해 일본을 폭격하기 위한 발판으로 삼으려 했지만, 일본군은 그 섬의 화산암에 지하 요새를 만들어 놓았다. 제2차 세계대전의 막바지에 벌어진 몇몇 치열한 전투에서 2만 명 이상의 일본인과 7천 명에 달하는 미국인이 사망했다. 연합통신사의 사진기자인 조 로젠솔은 1945년 2월 23일 미군이 이오지마에 성조기를 게양하는 모습을 찍은 이 사진으로 퓰리처상을 받았다. 당시 미국 해병대는 섬에 있는 스리바치 산을 점령하고 커다란 깃발을 세웠는데, 얼굴을 알 수 없는 사진 속 군인들의 협동 작업과성조기 게양이 상징하는 승리의 의미는 전쟁 막바지의 힘겨운 몇 달 동안 미국인들의
사기를 높이는데 일조했다.
사진 출처_비키 골드버그, <사진의 힘-사진은 어떻게 우리의 삶을 바꾸었는가>, 뉴욕, 1991 제임스 브래들리, 론 파워스, <우리 아버지들의 깃발>, 뉴욕, 2000


..1953년 6월 2일, 런던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에서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의 대관식이 거행되었다. 여왕은 보석이 장식된 왕관을 쓰고, 군주정치의 상징인 보주와 왕홀을 들고 있으며, 6명의 궁녀들이 모피를 두른 여왕의 자줏빛 벨벳 옷자락을 들고 간다. 신과 국민을 위한 봉사에 헌신하는 대관식의 본질적 의미는 천 년이 넘게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주목할 점은 엘리자베스 2세의 대관식은 엄연히 20세기 중반의 분위기를 띠었다는 것. 전시 통제는 줄어들었고 런던 중앙을 통과하는 길에서는 영국 국민 50만여 명이 황금 마차를 타고 지나가는 여왕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또한 대관식과 함께 베일에 싸여 있던 왕족의 모습이 반나절 동안 텔레비전 생중계를 통해 공개되었는데, 덕분에 2천7백만 영국 국민은 물론 서부 유럽과 북미 사람들까지 대관식을 관람할 수 있었다. 50여 년이 넘도록 영국 여왕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엘리자베스 2세의 대관식 사진은 역사의 한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사진 출처_벤 핌롯, <여왕-엘리자베스 2세의 일대기>, 런던, 1997




..더벅머리에 정장 차림을 한 리버풀 출신의 네 남자 조지 해리슨, 폴 매카트니, 링고 스타, 존 레넌. 1963년 비틀즈가 <Please please me>를 발표한 후 영국은 비틀마니아가 휩쓸었다. 19세기 네덜란드 초상화풍의 이 단체 사진에서 대중음악계의 네 선도자는 행실이 바른 학생처럼 보인다. 똑같은 더벅머리에 교복 스타일의 재킷, 흰 셔츠, 폭이 좁은 넥타이는 그들의 트레이드마크로 행복하고 편안해 보인다. 비틀즈만큼 신선하고 편안한 음악으로 전후의 음악과 사회를 극적으로 바꾸어 놓은 밴드는
없었다. 비틀즈팬들이 보인 병적인 흥분과 도취, 일명 비틀마니아는 시대적인 현상이었다. 보수적인 사회를 깜짝 놀라게 한 광적인 히스테리는 이제 대중음악과 로큰롤 계에서 일반적인 현상이 되기도 했다. 초기의 성공으로 비틀즈는 그룹 이미지를 파는 기술을 금세 익혔고, 개개인의 개성이 뚜렷하게 나타난 이 초상 사진이 그 점을 증명해준다. 1970년 밴드가 해체된 후에도 그들의 인기는 사그라지지 않았다.
사진 출처_마크 허츠가드, <일생의 하루-비틀스의 음악과 예술성>, 뉴욕, 1995

..1963년 3월 28일, 흑인의 인권을 요구하는 시위에 참여한 20만여 명이 링컨 기념관 앞 광장과 그 옆길까지 가득 메우고 있다. 침묵을 명하며 오른손을 든 인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은 왼손에 원고를 들고 연단에 섰고, 이후 군중은 인종차별, 증오, 폭력이 없는 세계에 대한 비전을 담은 그의 연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를 귀 기울여 듣는다. 억압받는 미국 흑인들 편에 서서 인종차별주의에 항거하고 평등과 관용을 쟁취하기 위해 투쟁한 마틴 루터 킹. 인도주의적 정치 활동으로 여러 차례 체포되고 몽고메리에서 비폭력 시위를 이끈 후 집이 불타는 등 목숨의 위협을 받으면서도 그는 계속해서 시위와 행진에 참여하여 대담하게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되풀이되는 구속, 흑인 침례교도들의 저항, 신나치주의자와 KKK단 회원이 주도한 백인 폭력배들의 무장 위협이 이어졌지만 그는 끝까지 비폭력의 원칙을 고수했다.
사진 출처_마틴 루터 킹 주니어,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샌프란시스코, 1993

..1969년 7월 16일, 마이클 콜린스, 에드윈 올드린, 닐 암스트롱은 아폴로 11호를 타고 케이프케네디 발사장을 떠났다. 그리고 7월 20일, 올드린과 암스트롱은 착륙선에서 내려 달을 밟은 최초의 인간이 되었다. 달 표면에 서 있는 올드린과 그가 쓰고 있는 헬멧의 보호 유리에 비친 닐 암스트롱을 담은 이 사진은 행성을 보는 인류의 시각을 바꾸어 놓았고, 그것은 1960년대의 우주에 대한 환상을 완성했다. 인간이 달을 밟았다는 유일한 증거는 사진뿐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사진이 위조된 것이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고, 미국 항공우주국의 달 탐사 목적이 애매모호하다는 것이 드러나면서 아폴로 11호와 그 이후의 우주비행이 선전 활동의 일환이며 이와 같은 사진을 찍기 위해서였음이 명확해졌다. 사실인지 거짓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이 사진은 인간의 우주 비행에 희망을 담은 사진이라 말할 수 있다.
사진 출처_앤드루 차이킨, <달 위의 인간>, 뉴욕, 1994

..1969년 11월 10일, 동독은 기습적으로 동베를린과 서베를린간의 경계를 허물어 버린다. 곧이어 엄청난 인파가 브란텐부르크 문이 보이는 서독 진영에 몰려들어 축하의 환호성을 보낸다. 브란덴부르크 문의 위와 아치 앞에는 아직도 소련과 독일민주공화국의 국기가 펄럭이고 있다. 그러나 벽주위와 꼭대기에서 군중은 떼를 지어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있다. 그 위협적인 장벽은 혼란스럽고 열의 넘치는 인간 벽으로 바뀐다. 동독과 서독의 통합을 상징하는 더할 나위 없는 이미지다. 안드레아스 스프링거는 이 역사적인 순간을 현장에서 맞이하기 위해 밤을 새워 달려온 사람들을 찍었다. 브란덴부르크 문이 개봉되고, 온갖 색깔의 낙서로 가득한 장벽은 깨지고 팔리고 경매에 부쳐지고 땅에 뭍혔다. 도시 전체가 흥분으로 들썩였고, 그 어떤것도 사람들을 막을 수 없었다.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는 순간은 그야말로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는 순간이다.
사진 출처_페터 슈나이더, <장벽을 뛰어넘어-베를린 이야기>, 시카고. 1998



에디터_박수민 자료출처_씨네21 www.cine21.com

 

 

출처 : 꿈꾸는 정원에서
글쓴이 : 희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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