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한국인들이 토론에 약하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것은 한국사람들이 특별히 말재주가 없거나 감정절제 능력이 떨어져서가 아니라, ‘토론’이라는 것이 크게 요구되지 않았던 사회 문화적 특성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전통적인 유교사회에서는 토론이 그다지 바람직한 의사교환 양식이 아니었다. 여자가 남자에게, 자식이 부모에게, 선배가 후배에게, 제자가 스승에게, 그리고 신하가 임금에게 ‘토론’을 걸어 온 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탈이었기 때문이다. 대인관계가 수평이 아닌 수직선상에 존재하는 위계사회에서 토론은 존재하기 어렵다.
미국의 문화인류학자인 에드워드 홀(Edward T. Hall)은 한 사회의 소통양식을 “고상황(High-Context)”과 “저상황(Low-Context)”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고상황 문화"란 두 사람이 만나 대화를 시작하기 이전부터 이미 그 대화의 내용과 형식이 사회적으로 결정되어있는 경우를 말한다.
예를 들어 목마른 두 사람이 물가에 동시에 도착했을 때, 고상황 문화권의 사람들은 누가 먼저 물을 마실까에 대해서 토론할 필요가 없다. 나이가 많은 사람이나 지위가 높은 사람에게 ‘자연스럽게’ 우선권이 양보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대화가 시작되기 이전부터 상황적 의미체계를 결정한다는 점에서 위계질서는 고상황 문화의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홀에 따르면, 고상황 문화권의 대화는 경제적이고, 신속하고, 또 효율적이다. 문자 그대로 ‘말이 필요 없는’ 문화이기 때문이다.
대화가 시작되기 이전부터 이미 의미가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새삼스레 토론을 벌일 필요가 없는 것이다. 홀의 지적대로, 이런 고상황 문화권의 사회는 획일적일 수밖에 없고 변화에 적응하는 데에도 어려움을 겪는다.
미국사회는 한국에 비해 이런 위계질서가 약하다는 점에서 “저상황문화”라고 부를 수 있다. 보편적 상황이 사회적으로 미리 결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이들은 매 상황마다 서로가 합의할 만한 의미를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대화하고 토론한다. 그런 면에서 토론이란 많은 인내심과 시간이 필요한 대단히 ‘비효율적인’ 의사소통 양식이다. 위계사회에서라면 고함 한마디면 끝날 수 있는 간단한 일이 저상황문화에서는 서로가 만족할 때까지 끝없이 이야기를 계속해야 하는 복잡한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자동차 접속사고 현장에서 당사자들이 사건 자체에 대한 논의보다 (상대방이 묻지도 않은) 사회적 직책과 나이를 제시하는 것도 이미 프로그램화된 상황적 의미를 끌어들임으로써 ‘간단히’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일 것이다. 사회적 권위를 통한 해결이 어려워지면 ‘포효’소리의 크기를 통해 우위를 가리는, ‘자연적 권위’에 의존하는 방식이 사용되기도 한다.
제대로 된 토론문화가 형성되지 못한 사회.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부끄러운 이름 중 하나다. 각종 토론 프로그램을 볼 때면 우리의 토론문화 현주소를 보는 것 같아 얼굴이 화끈거릴 때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토론을 그만 둘 수는 없다. 현재의 부족함을 뛰어넘고 성숙한 토론문화를 정립하기 위해서는 부단한 노력과 시행착오의 과정이 요구될 따름이다.
토론이 가지는 여러 가지 긍정적 측면 가운데 필자는 그것이 가지는 ‘운동성’에 높은 의미를 부여한다. 내 안에 고인 생각을 표출하고 상반된 의견과 충돌함으로써 또 다른 것을 창조해나가는 과정, 단발성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 가는 노력이 ‘토론’ 속에 담겨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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