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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조사, 추도사 / 10편

명호경영컨설턴트 2008. 12. 29. 17:43
1) 전통식 축문 쓰는 법/한문과 한글 축문
2) 조문 답례편지 견본/상주
3) 추도사
4) 친구의 죽음을 슬퍼함/친구 대표
5) 선생님께 드리는 조사/학생 대표
6) 사장님을 추도(追悼)함/사원 대표
7) 친구의 죽음을 애도함/장례위원장
8) 사장의 죽음을 애도함/사원 대표
9) 동료의 죽음을 애도함/사원 대표
10) 이경해 열사 추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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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전통식 축문 쓰는 법/한문과 한글 축문

- 축문 쓰는 방법

축문(祝文)은 제사지낼 때 신명(神明)에게 고하는 글이다.
그 내용은 추모의 정과 간소하고 보잘것없는 제수나마 흠향하여 주시라는 의미를 담으면 된다.

길이 36cm, 넓이 24cm 정도의 깨끗한 백지에 정자(正字)로 정성껏 쓴다.
제사지낼 때 엄숙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으로서 목청을 가다듬어 천천히 크게 읽는다.

(1) 한문축문

(축문)

維歲次 (간지) (몇)月(간지)朔 (몇)日(간지)
孝子 (이름) 敢昭告于
顯考 學生府君
顯搙 (본)(성)氏
歲序遷易 顯考 諱日復臨
追遠感時 不勝永慕
謹以 淸酌庶羞 恭伸奠獻 尙饗

(해석)

유세차(維歲次) ; '이번 해는',

유(維) ; 이어져 내려온다는 뜻, 혹은 발어사로서 '이에' 라는 뜻.
세차(歲次) ; 이번 해의 차례

간지(干支) ; 육십(六十)갑자(甲子), 천간(天干)지지(地支)

천간(天干) ; 갑(甲)을(乙)병(丙)정(丁)무(戊)기(己)경(庚)신(辛)임(壬)계(癸)
지지(地支) ; 자(子)축(丑)인(寅)묘(卯)진(辰)사(巳)오(午)미(未)신(申)유(酉)술(戌)해(亥)


예) 2000년의 간지는 경진(庚辰)년

삭(朔) ; 음력 매월 첫째일(초하루)이라는 뜻인데, 제사 일이 초하루가 아니어도 항상 똑같이 그대로 쓴다. 감소고우(敢昭告于) ; 삼가 밝게 고한다는 뜻
세서천역(歲序遷易) ; 세월이 지나갔습니다.
휘일부림(諱日復臨) ; 그 날이 다시 돌아왔습니다.
추원감시(追遠感時) ; 사모함을 느낄 때
불승영모(不勝永慕) ; 영원히 사모하는 마음을 이기지 못합니다.
근(謹) ; 삼가,
이(以) ; --로써
청작서수(淸酌庶羞) ; 맑은 술과 여러 음식
공신전헌(恭伸奠獻) ; 공손히 제사를 드립니다.
상향(尙饗) ; 제물(祭物)을 받으소서

(2) 한글 축문

단기 (몇)년 (몇)월 (몇)일, 아들 (누구)는 아버님 영전에 삼가 고하나이다.
오늘은 아버님께서 이 세상을 떠나신 지 만 (몇) 년이 되는 날이옵니다.
이 날을 맞이한 저와 가족 일동은 아버님이 생전에 저희들 양육에 끝없이 애쓰시던
그 한없는 깊은 은혜를 생각하오며 감회가 그지없어 하나이다.
이에 간소한 술과 안주로서 삼가 명복을 비옵니다.


(몇)년 (몇)월 (몇)일 孝子(孝孫) (누구)는 감히 고하나이다.
아버지(혹은, 어머니, 할아버지, 할머니) 해가 바뀌어
아버지(어머니, 할아버지, 할머니) 돌아가신 날이 또 돌아와 영원히 사모하는 마음을 이기지 못하여,
삼가 맑은 술과 여러 가지 음식으로 공손히 제사 드리오니 흠향하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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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조문 답례편지 견본/상주


- 삼가 인사드립니다

(부친) 상중에 정중하신 위문과 부의를 보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염려하여 주신 덕택으로 장례를 무사히 마쳤사오며, 진심으로 감사 인사 올립니다.
귀댁의 애경사시에 꼭 연락 주시어 보답의 기회를 주시옵고, 가족의 건승하심과 가내 행운이 항상 충만하시기를 기원합니다.

0000년 0월 0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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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추도사


- 오늘도 어제와 같이 변한 것은 없는데,

우리는 오늘

永遠히 우리 곁을 떠나시는

00體育의 큰 별

000 선생님의 靈前에

삼가 머리 숙여

冥福을 빌고 있습니다.



尊敬하는 000 선생님!



누구보다 삶에 대한 의욕이 강하시고

남을 위해 獻身하는 일에

더 열심이셨던 훌륭하신 분이

이제는 靈前에 피어오르는

한 줄의 향불로만 만날 수 있는

먼 나라로 기어이 가시고 말았습니다.



만나는 자 헤어진다는 平凡한 眞理를

알고 있으면서도



이토록 눈시울이 뜨겁게

아쉬움을 느끼는 것은



그동안 선생님께서 남기신 발자취가

너무 크셨기 때문입니다.



소년 시절 부터

그 토록 좋아 하셨던

蹴球와 因緣을 맺으시면서

이 고장 體育人 대표로서



대통령선거인단에 當選되기까지

선생님의 업적은 실로

00 체육인의 큰 師表 였습니다.



한때는 남한 最强의 축구 일화를

남기셨던 애착심과



이 지방 최초의 올림픽 대표선수

選拔이며,

축구협회회장과

전국 새마을 축구협회 000도 단장등

그 화려한 발 자취를 우리는 잊을 수가 없습니다.

강인하셨던 鄕土사랑의 마음과

후배들을 사랑하였던 다뜻한 가슴이며

변할줄 몰랐던 체육 진흥에 대한

불같은 愛着心이 우리 모두를

채직질 해주는 龜鑑이 되었는데

그토록 갈망하셨던 지방자치 시대의

체육 00에 대한 열매를

채 맛 보기도 전에

이렇게 유명을 달리 하셨으니

참으로 애석한 일이 아닐수 없습니다.





존경하는000선생님



00市民의賞을 수상하기 까지

고매하고 헌신적인 생활철학을 가지고

우리에게 전해 주신 적극적인 삶의

모습을 이제 가까이에서 볼수 없다는 아쉬움을 마음 깊이 느끼고 있습니다.



그동안 情熱的으로 피력하셨던

시정에 대한 자문이며



이 지역의 체육을 전국 수준으로 올리신 熱情이며

평화통일 정책자문회의 사무총장상을 수상하셨던 고귀한 人品을

우리는 이제 어디에서 찾으라는

말입니까?



장하셨던 헌신과 희생의 지난 생활이

여기 국화꽃 향기와 함께 사위어 가는데

인자하고 자애로우시던 모습을 어디에서 찾으라는 말입니까?

선생님같이 훌륭한 鄕土人이 계셨기에 우리 順天은 그 어느 지역에도

비길 수없는

큰 이상이 살아숨쉬는

幸福의 母胎로 자리를 굳히고 있습니다.



날마다 울리는 개발의 숨소리와 함께

급변하고 있는 주변의 여러 여건들이



우리에게 푸르고 알찬 미래를 약속해

주고 있습니다.



생전에 말씀하셨듯이

00을 발전시키는 일을 남에게

맡길수가 없습니다.



오늘이 우리의 터전인것 처럼,

후손에게도

자랑스러운 터전이 될

아름답고 복 받은 땅 00이

우리의 손에 의하여 기필코 가꾸어

질것입니다.



이제 70여 平生을 누구보다

成功的으로 사신 발자취를 뒤로 하고

아쉽게 떠나 시지만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고

어려운 일을 도맏아 하셨던

평소의 崇高한 精神을 거울 삼아

전국제일의 平和롭고 살기 좋은

떠오르는 00을 만들기 위해

헌신하고 또 노력 해 나갈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께서 못 다한 일들을 이어 받아

결코 소홀함이 없이 이루어

나가겠습니다.



그래서 000도 제일의 아니 전국 제1의

名譽로운 都市로 가꾸어 나갈 것입니다.



사랑하는 아버지를 여의고

오열하는 가족들도 우리가 위로 하겠습니다.







尊敬하는000선생님

그 동안 못다 하셨던 서운하고 아쉬운

일들을 모두 잊으시고

平和 만이 가득한 이생의 세계로

편히 가십시오



이제 비록 선생님은 떠나지만

앞으로 우리의 곁에 영원히

살아계실것입니다.



오늘, 선생님과 잠시

헤어질 뿐입니다.





부디

부디



安寧히 가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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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친구의 죽음을 슬퍼함/친구 대표


- 삼가 친구의 영전(靈前)에 애도(哀悼)의 뜻을 표합니다.
젊은 나이에 심장병을 앓아 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받던 친구를 마지막으로 만난 것은 10일 전이었습니다.
그 때 친구는 아주 씩씩하게 담소(談笑)를 나누면서 "퇴원하면 생선회도 먹고 술 한 잔 해야지." 라고 빙그레 웃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때 그 하얀 치아를 보고, 이 정도라면 1, 2개월 후에는 퇴원할 수 있으리라고 믿었었습니다.
그런데 3일 전에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고 믿어지지 않는 마음으로 달려갔을 때에는 친구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너무나 갑작스런 뜻밖의 일에 저는 말문이 막혀 그냥 서 있기만 했습니다.
저와 똑같은 나이에 같은 반 친구였던 그는 학생 시절부터 이름난 수재(秀才)로, 모든 면에서 저보다 앞서 있었습니다.
가지고 태어난 풍부한 재능이라고는 하지만, 그 그늘에는 남모르는 노력이 있었을 것이라고 지금도 저는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친구는 성격이 명랑하여 저희들과 잘 어울렸으며 운동도 잘 했고, 항상 리더 역할을 했습니다.
또한 저희들은 친구를 따라 공원을 자주 산책했습니다.
그리하여 저희도 모르는 사이에 자연의 아름다움과 풍요로움, 그리고 자연 속에 깃들인 생명의 신비를 알게 해주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학생 시절부터 모든 친구들이 그를 좋아하고 있었으며 정신적인 마음의 지주(支柱)로 삼기도 했습니다.
우정이 깊으면 그에 따른 갖가지 추억을 가지는가 봅니다.
드디어 ○○대학을 졸업하자, ○○주식회사의 총무과에 근무하면서 샐러리 맨으로서의 새로운 인생 출발을 했습니다.
그 후 2년도 채 되지 않았는데, 친구의 진지한 근무 태도와 책임감이 강한 언동은 선배와 동료들 사이에서 신뢰와 존경을 받게 되어 친구의 장래는 참으로 밝았습니다.
죽음이란 이렇게 무정한 것일까요.
회사의 희망이었던 친구의 빈자리를 볼 때마다 저희들의 마음은 말할 수 없는 쓸쓸함에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저희들은 언제까지나 탄식만 하고 있지는 않겠습니다. 친구는 저희들 마음속에 영원히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도 친구를 중심으로 한 저희들의 우정은 굳게 맺어져 갈 것입니다.
아름다운 자연의 품속에 있기를 좋아하던 친구는 이렇게도 일찍 자연으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부디 친구가 좋아하던 아름다운 들꽃에 싸여 편안히 잠들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슬픈 이별을 맞이한 친구 일동을 대표하여 영전(靈前)에 공손히 절하며, 영원한 명복(冥福)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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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선생님께 드리는 조사/학생 대표


- 선생님, ○○○선생님,
몇 번을 불러도 이제 다시는 선생님의 대답을 들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저희들의 가슴은 당장이라도 터져 버릴 것 같습니다.
선생님, 가만히 눈을 감아 보면 그 활기차시던 모습이 눈앞에 떠오르고 자상하시던 목소리가 꼭 들려올 것만 같습니다.
지금 당장이라도 돌아오실 것만 같아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저희는 이제 두 번 다시 그 모습도 그 목소리도 들을 수가 없습니다. 이 얼마나 슬프고 쓸쓸한 일입니까.
저희들 모두는 선생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서로 멍하니 얼굴만 바라보고 있다가 일제히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교실에서 열심히 칠판에 글을 쓰시며 가르쳐 주시던 선생님, 보충 수업이나 소풍 때에는 때때로 유머를 섞어 가며 친절하게 설명해 주시던 선생님, 그러한 갖가지 추억들이 꼬리를 물고 주마등(走馬燈)처럼 떠오릅니다.
선생님께서 가을 운동회 준비 중 쓰러지셔서 그대로 병원에서 정양(靜養)하고 계실 때 몇 번인가 병원으로 문안을 드렸는데, 그 때는 비교적 건강해 보이셨습니다. 그래서 완쾌하실 날이 가까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선생님은 이제 저 먼 세상으로 떠나셨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이제 저희들과 같은 세계에 사시지 않습니다.
그러나 선생님께서 저희들 마음속에 심어 주신 가르침의 씨앗은 생생하게 저희 학생들의 가슴속에 싹이 트고 있습니다.
저희들은 앞으로도 선생님을 생각하면서, 가르쳐 주신 여러 가지 것들을 마음속에 새겨 놓아 훌륭하게 길러가자고 다짐했습니다.
선생님, 부디 편안히 잠드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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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사장님을 추도(追悼)함/사원 대표


- 지금, 사장님의 생애(生涯)의 발자취가 새겨진 이 사옥(社屋)에서, 영원히 잠드신 영혼을 앞에 두고, 저희 사원 일동은 마지막 인사를 드리려고 합니다.
생각해 보면, 3년 전의 그 큰 병도 이겨내시어 최근에는 골프를 즐기실 정도로 건강 하셨었는데, 이렇게 어이없이 고별(告別)을 하리라고 그 누가 생각인들 했겠습니까.
그러나 이제 저희는 이 슬픈 현실 앞에 다 같이 머리 숙여서 아버지와 같이 인자하셨고 은사와 같이 존경스러웠던 사장님의 모습을 좇을 수밖에는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돌이켜 보면 사장님께서는 6·25이후의 혼란과 격동 속에서 불퇴전(不退轉)의 신념으로 이 회사의 부흥에 노력하시고 중흥(中興)시킨 위대한 인물이셨습니다.
그 신념은 사장님께서 손수 정하신 회사의 실천 강령(實踐綱領)에 명백히 나타나 있으며, 지금은 저희들의 귀중한 유훈(遺訓)이 되어버렸습니다.
특히 사장님은 언제나 저희 사원들을 가족처럼 생각하셨으며, 모두의 생활과 복지(福祉)에까지 배려하시며 살기 좋은 환경을 만들기에 노력하셨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어떤 경우라도 안심하고 업무에 열중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또한 '일하기 좋은 사회, 각자의 능력을 힘껏 발휘할 수 있는 회사'라는 것이 사장님의 이상이셨으며, 그렇게 하기 위해 당사(唐絲)의 독자적인 연구도 계속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지난 4월 1일에는 저희 회사가 창업(創業) 40주년의 기념 축하회를 이 사옥에서 개최했었습니다.
그 때에 사장님RP서는 장기 근속자를 손수 표창 하셨었고 연회장에서는 좋아하시는 시를 낭송(朗誦)하시기도 했었습니다.
사장님의 사진 속에서 그 우렁차셨던 목소리가 지금이라도 들려올 것만 같습니다.
그날은 특별히 기분이 좋으셔서 저희 사원들과 더불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담소(談笑)하셨습니다.
생각해 보니 저희와 자리를 같이 하셨던 것은 그날이 마지막이었습니다.
"남이 싫어하는 일에 앞장서서 하는 사나이가 되라."고 하신 사장님의 말씀도 이제 다시는 들을 수 없게 되었고, 항상 미소지으시던 자상하시던 모습도 이제는 접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미 앞에는 사장님의 관(棺)이 안치되어 있고, 생애를 두고 이룩하신 사옥(社屋)을 이제 떠나려 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지금 슬픈 마음에 가슴이 아파옵니다.
그러나 각자의 임무는 결코 잊지 않고 있습니다.
지금부터는 사장님의 유훈(遺訓)과 이상을 이어받아 회사의 발전을 위해 더욱 노력할 것을 맹세드립니다.
부디 저희들의 충정을 받아들이시어 편안히 잠드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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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친구의 죽음을 애도함/장례위원장


- 삼가 나의 벗, 고 ○○○ 씨의 영전에 사룁니다.
당신은 생전에 "사람이 언젠가는 죽는다, 그때가 오면 나는 웃으며까지는 아니더라도 엄숙하게 그때를 맞겠다. 그러니 내가 죽더라도 너무 호들갑스럽게 슬퍼하지는 말아 주었으면 좋겠어. 쑥스러워지니까"라고, 자주 말하곤 했었습니다.
그 말대로, 당신은 매우 의연한 태도로 그때를 맞았으며, 그것을 받아들였습니다.
당신께서는 40대도 후반이 되어서, ○○중학교의 교감 자리들 던지고, 스스로 사숙(私塾)을 여시었습니다. 학부모와 학생들의 신망이 두터우셨던 당신의 그 행위에 대해서, 주의에서는 온갖 목소리가 나왔었다고 듣고 있습니다.
"좀더 현장에 남아서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주었으면"이라든가,"현재의 교육제도에 연연할 필요는 없다. 소신껏 믿는 바를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라든가, 개중에는 당신의 참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 선생도 마침내 이상을 버리고 수험산업의 세계에 몸을 던졌는가" 라는 비방의 목소리까지 있었다고 합니다.
그와 같은 상황 속에서, 당신께서는 사재를 던져서 현재의 교육체제에 제대로 적응할 수 없는, 이른바 '문제아'를 받아들이는 00학원을 설립하셨습니다. 그리고 꾸준히, 또한 정력적으로 활동을 전개하셨습니다.
우연한 일로 당신의 일을 알게 된 저는, 똑같은 고민에 직면하고 있던 교사의 한 사람으로서 00학원을 찾아 그 교육내용을 참관하여, 그 독창적이고 인간적인 교육에 감동했습니다.
학생들의 한 사람으로서 00학원을 찾아 그 교육 내용을 참관하여, 그 독창적이고 인간적인 교육에 감동했습니다.
학생들의 얼굴은 밝고 발랄했으며, 대체 이 아이들의 어디에 문제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당신과 몇 시간이나 대화를 나눈 결과, 저는 전폭적으로 당신의 이념에 공명하며, 00학원에서 함께 일하게되었던 것입니다.
당신은 기성의 상식에는 전혀 얽매이지 않고, 어느 학생에게도 흉금을 열었으며, 학생들도 역시 당신에게 정면으로 부딪쳐, 각자가 안고 있던 문제를 극복해 나갔던 것입니다.
그리고 많은, 이른바 '문제아'가 훌륭한 사회인으로서 각 방면에서 활약하고 있습니다.
저는 당신과 같은 진정한 교육자를 만날 수 있었던 것을 저의 인생에서 최상의 행운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가신 후, 그 유지를 받들어 미력을 다할 것을 이에 맹세합니다.
○○○씨, 당신의 뜻에 따라, 여기에는 요란스런 화환 같은 것은 일체 없습니다. 이 청초한 회장에는 당신께서 좋아하시던 밀러의 곡이 당신의 영혼을 진혼하듯이 조용히 흐르고 있습니다.
이제 저에게는 만족스러운 듯이 끄덕이시는 당신의 온화한 얼굴이 눈에 선합니다.
이것으로 작별의 말씀을 대신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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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사장의 죽음을 애도함/사원 대표


- 삼가 ○○○ 사장님의 영전에 고별의 말씀을 바칩니다.
사장님의 서거라는 비보를 앞에 하고, 우리 사원 일동, 이루 말할 수 없는 비탄과 고뇌에 싸여, 앞으로 어떻게 처신할 것인가, 그저 망연자실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사장님의 지도력은 탁월하셨으며, 그 대담한 행동력과 시대를 읽는 선견성은 괄목할 만한 것이 있었습니다. 그 때문에 우리 일동은 안심하고 사장님이 가리키는 길을 걸어갈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회고해 보건대, 사장님이 창업자시었던 선대 사장님으로부터 회사를 이어받았을 당시만 해도 동아 정밀기기의 전신인 동아철공소는 사원 30명 정도의 영세한 규모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것을 현대의 최첨단 산업인 정밀기기 메이커로 놀랍게 변신시키고, 사원 수도 10배 이상으로 비약적으로 발전시킨 것은 오로지 사장님의 수완에 힘 입은 것이었습니다.
보잘것없는 철공소의 한 구석에서 밤늦게까지 설계도를 그리며, 시해착오를 거듭하면서 개발하신 부품이 ○○산업의 컴퓨터에 채택된 것이 그 후의 동아정밀의 발전의 초석이 되었다는 것은, 널리 업계에 알려져 있습니다.
그 후도 항상 앞장서서 신제품개발을 위하여 힘을 기울이시어, 동아 정밀이 발표하는 신제품은 업계에서 주목하는 바가 되었던 것입니다.
어떤 때에는 연구실에서 기사와 논쟁을 하시는가 하면, 어떤 때에는 공장에서 스스로 공구를 조작하고 계시던 모습은, 사장님의 일에 대한 집념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우리 사원들에게 있어서 그것은 바로 무언의 가르침이었습니다.
그런 한편에서, 소규모의 철공소 시절부터 사장과 사원이라는 경직된 관계를 허물도록 힘쓰시어, 사원의 가족에 대한 배려까지도 게을리 하시는 법이 없으셨습니다.
가을 운동회에서 사원과 그 가족들과 함께 아이들처럼 신명나게 뛰던 모습에서는, 권위주의적인 구석이라고는 추호도 찾아볼 수가 없었으며, 일에는 무섭도록 철저하신 반면 좋은 가정인 이기도 하신 인품을 풍기셨습니다.
그런 사장님과 이에 유명을 달리한 것은, 마치 자부를 잃은 것 같은 슬픔을 가눌 길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언제까지나 슬픔에만 잠겨 있다는 것은 사장님의 유지에 반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우리 사원 일동, 사장님의 가르치심을 가슴에 간직하면서, 이 슬픔을 딛고 새 사장님 밑에서 일치단결하여 동아정밀기기의 발전을 위하여 매진할 생각입니다.
사원 일동을 대표하여 사장님의 명복을 빌며, 일동의 결의를 피력하여 작별의 인사에 대신합니다.
사장님, 부디 편안히 잠드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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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동료의 죽음을 애도함/사원 대표


- ○○○ 씨, 마침내 당신에게 괴로운 작별을 고할 때가 왔습니다.
아직도 믿고 싶지 않은 심정은 마찬가지지만, 눈물을 머금고 이 엄숙한 사실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습니다.
마지막 2,3개월은 극심한 고통과의 싸움이었다고 들었습니다만, 당신께서는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고통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으셨다지요.
당신의 투병생활에 대한 강한 의지에, 의사도 간호사도 감동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역시 당신답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마지막으로 문병 갔을 때, 당신은 부인과 훌륭하게 성장한 세 자녀들에 대해서 즐거운 듯이 말하시며, 무언가 달관한 듯한 웃는 얼굴로, "나도 그런대로 남 만큼의 책임은 다한 셈이지, 안 그래, 달수?" 라고 하셨습니다.
일과 가족을 비롯하여, 자신의 인생에 그 나름의 만족감을 품고 있는 한 남자가, 이제 조용히 자신의 얼마 안 남은 인생의 시간을 응시하고 있다는 느낌으로, 나는 깊은 감명을 받았던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당신과 나는 동기로 입사하여, 젊었을 때는 근무지도 서로 엇갈리는 수도 있었지만, 둘이 모두 본사로 돌아오고 부터는 라이벌로서 서로 겨루며, 때로는 콤비를 이루어서 한 프로젝트를 추진하기로 하는 사이였습니다.
서로 격론을 주고받기도 하고, 서로 위로하기도 하여 푸념을 듣고 말하고, 그런 교우관계는 평생 변하지 않았습니다만, 젊었을 때의 "저놈에게만은 절대로 질 수 없지" 하는 오기는 중년이 되자 사라져버리고, 서로가 상대방을 인생의 동지로 느끼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 저는 너무도 개인적인 감개에 잠겨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일에 관해 말하자면, 당신이 개척한 길을 많은 후진들이 이어받아서, 당신의 가르침을 따라서 더욱 발전시키고 있습니다.
당신의 뜻은 그들 속에 면면히 이어져 존재할 것입니다.
부디 고이 잠드소서.
「개관사정(蓋棺事定)」이라는 말이 있습니다만, 당신의 진가는 이제부터 더욱더 그 빛을 발할 것입니다.
○○○ 씨, 당신과 만나고, 당신과 함께 같은 회사에서 살아왔던 다행스러움을, 당신이 없는 지금처럼 절실히 느껴본 적은 없습니다.
이제부터는 당신이라는 보이지 않는 동지와 서로 대화를 주고받으며, 저는 나머지 인생을 계속 걸어가려고 합니다.
○○○ 씨, 당신의 죽음은 당당한 일개 남아의 죽음이었습니다.
부인과 세 자녀도, 당신이 보여 주신 삶의 모습을 제각기 가슴속에 숨기고, 슬픔을 넘어서서, 앞으로의 스스로의 인생을 굳건히 살아가실 것입니다.
가족의, 그리고 우리의 앞으로의 발걸음을, 부디 지켜보아 주십시오.
편안히 잠드소서, ○○○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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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이경해 열사 추도사


-한 줄이 한 호흡입니다.

이 일을 어찌합니까?
우리의 문제들을
스스로 해결해보자 노력하였던
위대한 농촌 지도자가 이렇게 가시다니요.

수백년 대대로 살아왔던 우리의 고향 농촌이
큰 파도로 붕괴되는 것을
그냥 지켜 볼 수밖에 없었던 400만 농민들을 대표하여
그 큰 파도의 근본과 이유를 찾고자
그토록 적극적으로 애써주셨는데,
이렇게 가시다니요.
이 일을 어찌합니까?

인류는 지금
극소수 강대국과
그 대리인인 WTO와 이를 돕는 국제기금
그리고
다국적 기업의 상업적 로비에 의해 주도되고 있는
반인류적이자 반환경적이요
비민주적인 세계화의 위험에 빠져있다는 것을
당신은 지난 3월,
WTO 정문 앞에서
세계 시민들을 향해 경고하였습니다.

이를 하루 빨리 중단시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 허구적인 신 자유주의가
세계 각지의 다양한 농업을 말살시킬 것이며,
이로써 모든 인류에게 재앙을 가져올 수도 있음을
당신은 온몸으로 부르짖고 가셨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가시다니요.
암울한 우리 농업을 뒤로하고 가시다니요.
그 날은 한가위
햇과일에 햅쌀송편을 먹는 추석명절이었습니다.
한해농사를 감사하는 날
이 무슨 참변입니까?
집채만한 태풍 󰡐매미󰡑가
한국농촌을 향해 질주하던 날
그 날 당신은
밀려오는 WTO 백만대군을
홀로 막고 운명을 달리했습니다.

400만 농민들의 삶과
7천만 민족의 생명을 책임지겠다는 자세로
농업보호
식량주권 확보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고인의 뜻임을 잘 압니다.
2004년에 밀어 닥칠
단군 할아버지 이래 처음 맞는
초강력 태풍 WTO에 대한 해답은 아직 없습니다.

하지만 이제, 우리에게 맡겨 주십시오.
WTO가
우리 농업의 뿌리를 뽑아버려도
해일이 되어 우리 농촌을 덮친다 해도
우리 농업을 죽이지는 못 합니다.
고품질 농업, 수출 농업으로
세계농업과 맞서 당당히 싸울 것입니다.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 농민 모두의 생존권을 앗아가는
WTO 체제에 항거하고자
당신의 목숨까지 던지며 투쟁했던
고인의 깊은 고뇌와 결의에 찬 행동에,
모든 장수군민은
가슴 찢어지는 슬픔으로 애도를 표하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출처 : 김태옥스피치&리더십센터
글쓴이 : 써니가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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