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석기 시대 말부터 인간은 돌을 이용하여 보다 좋은 석기를 만들게 되었고, 지혜가 늘어 나면서 짐승의 뼈로 낚시 바늘을 만들었고 그물을 만들어 고기를 잡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기술이 늘어나니 짐승 사냥도 많이 하게 되었고 고기도 많이 잡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식량의 여유가 생기므로 종전처럼 식량을 찾아서 유랑할 필요가 없어져서 한곳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이때부터 신석기 시대라고 부르는데, 이때가 지금부터 약 1만년 전, 즉, 기원전 8000년 전 입니다.
암사동 우적지 입구
숲 속에 자리 잡은 전시관
신석기시대의 모습(특징)은
(1) 간석기 (돌을 갈아서 정교한 석기로 만든 것)를 사용하였고,
(2) 한곳에 살게 되므로 농사를 짖게 되었고,
(3) 한곳에 정착하여 살면서 농사를 지으니 곡식을 보관하거나, 음식을 끌이기 위하여
그릇이 필요해 져서 흙으로 그릇(토기)을 만들어 사용하였습니다.
발굴 유물과 집터를 토대로 복원해 놓은 신석기인 들의 집
우리나라의 신석기 유적은 강가나 해변가에서 아주 많이 발견 됐습니다. 북한의 두만강 가 와 남한 전역, 심지어 흑산도에서 까지 발견되고 있습니다. 그런 많은 유적 중에 가장 큰 유적지가 바로 서울 시내 한 복판에 있습니다.
암사동에 있는 "선사유적지"가 바로 그 곳으로 지하철 8호선 암사 역에 내려서 걸어서 10분 가면 만날 수 있습니다. 이곳에는 전시관을 지어서 각종 출토 유물을 전시하고 있으며 주변 숲이 울창하고 식수대, 식탁, 의자 등 시설이 잘되어 있어서 가족단위 소풍을 나와도 좋습니다. (주차장도 넓으며 입장료는 500원임)
발굴한 집토와 유물이 있던 자리를 표시한 것
이 유적지는 일본 강점기 시대인 1925년 대홍수 때 우연히 발견되고, 해방이 된후 1967년 기초 발굴이 있었고, 1971년부터 1975년 사이에 국립 중앙박물관에 의하여 4차례 종합발굴을 시행하여 24개의 집터와 많은 유물을 찾아 냈으며 이중 9개의 집을 복원하여 놓았습니다.
돌도끼. 나무 손잡이는 전시를 위하여 만들어 붙인 것
발굴된 유물은 국립 중앙박물관 및 다른 박물관에 나누어 보관하고 있으며, 현장에 있는 전시관에도 잘 전시되어 있습니다. 유물이 돌 종류이므로 보관상 별다른 문제가 없어서 아이들을 옆에 세우고 사진을 찍을 수도 있다.
출토된 낚시 바늘 --- 한강에서 고기잡아 먹었을 것이다.
집터에서 나온 각종 돌로 만든 작업 도구들
출토된 도토리 화석 --- 도토리는 그 시대 사람들의 좋은 식량 이었을 것이다.
돌맹이 류의 유물은 출토되면 더러울 뿐 이지 부서져서 출토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도자기 류는
출토되면 전부 산산 조각으로 부서져서 나온다. 상기사진은 여기서 출토된 토기.
부서져서 출토된 토기를 박물관 전문가들이 부서진 편편을 퀴즈 풀듯 맞추고, 특수 본드로 붙이고 하는
작업을 거쳐서 사진과 같은 모습을 찾는다. 끝까지 찾지못한 조각 부분은 다른 물질을 이용하여 땜방한
다. --- 사진 아래의 검은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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