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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산중턱에 숨어있던 헤롯대왕의 무덤-히브리 대학 발굴팀 찾아내

명호경영컨설턴트 2009. 1. 19. 22:11

산중턱에 숨어있던 헤롯대왕의 무덤
[해외리포트] 히브리 대학 발굴팀 찾아내... 아기 예수 죽이려던 인물
▲ 최근 2000년만에 발굴된 헤롯 왕의 무덤. 헤롯 왕은 기독교가 태동하던 시대에 정치적으로 중심에 있던 인물이다.
ⓒ 이강근

지난 8일 오전 10시. 예루살렘 히브리대학 시낫홀의 300석은 이미 외신기자들로 가득 찼고, 단상에는 각 방송사들의 마이크가 수북히 쌓여있었다. 연신 카메라 플래시 세례를 받으며 발표순간을 기다리는 에후드 네쩌르 교수의 얼굴도 사뭇 상기된 표정이었다.

세기의 고고학 발굴로 기록될 헤롯 왕의 무덤 발굴 발표를 위해 네쩌르 교수가 마이크 앞에 서자 사진기자들과 일단 내용을 좀 듣자는 취재기자들간의 공방으로 몇 번이나 회견이 아수라장이 되기도 했다.

헤롯 왕의 무덤이 세계의 관심을 끄는 것은 그간 수십 년간 여러 고고학자들이 그렇게도 찾고자 노력했지만, 헤로디움에 묻혔다는 역사기록에도 불구하고 역사의 미스터리로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날, 네쩌르 히브리대 교수가 1972년부터 약 35년 간의 발굴 끝에 드디어 헤롯 왕의 무덤을 발견했음을 발표한 것이다. 헤롯 왕의 무덤이 발견된 곳은 베들레헴 앞 유다 광야로 헤롯 왕이 그의 생전에 인공으로 쌓아올린 요새 및 궁전이다.

▲ 히브리대 고고학과 에후드 네쩨르 교수가 기자회견에서 헤롯 왕의 무덤발굴 사실을 발표하고 있다.
ⓒ 이강근
아기 예수 죽이려고 했던, 바로 그 사람

헤롯 왕은 2000년 전 멀리서 경배하러 온 동방박사들에서 유대인의 왕이 나셨다는 소식을 듣고는 예수가 유대인의 왕이 될 것을 우려해 당시 2살 이하 사내아이를 모두 죽이라고 명령한 장본인이다. 헤롯은 25세때 로마제국으로부터 유대인의 왕으로 임명되어 약 34년간 유대땅을 다스린 왕이었다.

헤롯 왕이 중요한 것은 그가 바로 기독교 탄생 시기에 정치적으로 핵심에 있었던 인물로 그의 실존이 바로 기독교 탄생의 배경이 되기 때문이다. 헤롯 왕은 건축광으로도 유명한데, 예루살렘 '통곡의 벽'· 맛사다·가이사랴·여리고 겨울궁전·헤브론 막벨라굴 그리고 유대광야에 쌓아올린 헤로디움 등 현재 이스라엘의 주요 유적들이 그에 의해 건축된 것이다.

서기 1세기 역사가였던 요세프스는 헤롯 왕이 장례식 후 그의 요새인 헤로디움에 묻혔다고 기록하고 있다. 역사적 실체를 밝히기 위해 지금까지 끊임없이 그의 무덤 발굴을 시도했으나 그의 무덤은 발견되지 않았다. 다만 현재까지는 산 정상의 궁전과 산 아래의 교회유적이 그의 무덤으로 유력시되었지만 확실한 증거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네쩌르 교수는 기자회견을 통해 그간의 발굴 과정을 10여장의 자료사진을 보여주며 하나 하나 설명해 나갔다. 그리고 헤롯 왕의 무덤으로 단정한 여러 증거자료를 제시했다.

자신의 원래 전공은 건축학이라는 점을 강조한 네쩨르 교수는 발굴된 무덤의 규모나 수준이 왕이 아니면 건축될 수 없는 대규모 석관묘라는 것을 힘주어 말했다. 특히 그가 헤롯 대왕의 석관 일부로 제시한 문양이나 장식은 요르단 페트라 왕의 무덤에서 발견된 것과 비슷한 것으로 당시 왕이나 최고위층 인사의 무덤에 썼던 것과 같은 형태라는 주장이다.

헤롯의 이름이 적히 묘비나 그와 관련된 직접적인 유물 등 헤롯 왕의 무덤이라는 확실한 증거를 찾는 것은 숙제이지만, 외신들은 네쩨르 교수의 주장을 반론의 여지 없이 세기의 고고학 발굴 성과로 타전하고 있다.

▲ 헤로디움을 하늘에서 본 모습. 헤롯 왕이 쌓아 만든 요새이자 왕궁이다.
ⓒ 이강근 기자
▲ 헤로디움 전경. 산 중턱에 무덤 발굴 현장이 보인다.
ⓒ 이강근 기자
산 중턱에서 무덤이 발견된 까닭은

기자회견 다음날, 기자는 헤롯 대왕의 무덤이 발견되었다는 헤로디움으로 향했다. 예루살렘에서 분리장벽으로 둘러싸인 베들레헴으로 들어가 다시 유다광야 쪽으로 달려 자동차로 약 1시간 만에 헤로디움에 도착할 수 있었다.

현장에서 마침 발굴을 지휘하고 있는 에후드 네쩌르 교수를 만났다. 네쩌르 교수는 지금까지 헤롯 무덤으로 추측하고 있는 두 장소에 대한 의심을 갖고 새로 지목한 현재의 장소를 발굴하게 된 경위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우선 산 정상 왕궁의 동쪽 탑 아래 무덤이 있었을 가능성인데, 왕궁 안에 무덤이 있다는 것은 좀 믿기 힘들었다고 한다. 당시 유대인들은 무덤을 성 밖이나 집에서 좀 떨어진 곳에 두는데, 하물며 왕궁 안에 무덤을 만들었을까 하는 것이다. 물론 후에 유대인 반란시 훼손될 것을 우려해 육중한 탑 아래 묻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그간 헤롯 왕의 무덤으로 주장되어온 또다른 장소는 헤로디움 산 아래 교회 유적 안이다. 그러나 이 또한 결정적인 단서가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1년 전부터 지금 무덤이 발견된 산 중턱을 집중 조사하고 발굴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첫 발굴에서 위치를 잘못 짚기는 했지만, 산 중턱을 완전히 감싸고 있는 성벽축대를 발견했어요. 이것은 분명히 자연적인 산과 그 위로 인공으로 쌓아올린 경계였으며, 이 성벽이 무덤을 보호하는 축대역할을 하고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네쩨르 교수의 생각은 적중했다. 그리고 지난 3주전에 고급스런 석관 일부를 발견했다. 네쩌르 교수는 기자에게 석관을 가르치며 이렇게 말했다.

"이것 봐요! 헤로디움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아주 훌륭한 석조기술입니다. 이것은 당시 최고위층 석관으로 우리가 찾고 있던 헤롯 왕의 무덤이란 확신이 듭니다."

1972년 이래 약 35년간의 발굴 노력 끝에 에후드 네쩌르 교수가 얻은 성과이다.

성서 고고학의 최대 미스터리 풀리나

▲ 요세프스의 기록과 발굴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헤롯 왕의 장례행렬 루트과 무덤의 위치(네쩌르 교수 재구성)
ⓒ 이강근

헤롯 왕의 무덤은 서기 135년 전쟁 때 유대인들이 이같이 훼손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헤롯의 어머니는 원래 에돔의 이방 여인으로 집안이 개종을 통해 유대인이 되었고, 로마의 도움으로 유대인의 왕이 되었다.

따라서 헤롯은 언제든지 유대인이 반란을 일으켜 자신을 해할 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떨었으며 유사를 대비해 헤로디움을 비롯해 맛사다·여리고·마케루스 등 여러 개의 피신할 수 있는 요새를 만들었다.

사후에 자신의 무덤이 유대인들의 공격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안전한 장소를 찾던 중 헤로디움 중턱에 만들었을 것이라는 게 네쩌르 교수의 추측이다. 헤로디움 북쪽 기슭에 자리잡은 이 무덤은 분명 예루살렘쪽 을 향하고 있었다.

고고학자들은 추가 발굴을 거쳐 이 유적이 헤롯 대왕의 무덤으로 최종 확인될 경우 중동 지역의 고고학 발굴 사상 사해 두루마리 발견 이후 최대의 발견이 될 것이며 이스라엘 성서 고고학계에 최대의 미스터리가 풀린 것이란 의미를 부여했다.

 

출처:이스라엘 투데이

출처 : Joyful의 뜰
글쓴이 : Joyful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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