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인 관점에서 묵시적 갱신 다시 보기
1년 전 지인의 소개로 2호선 홍대입구역 근처에 위치한 3층짜리 상가건물을 임대하고 있는 건물주와 상담을 한 적이 있었다. 3층(80평)을 건축사무소에 보증금 1천만 원, 월 임대료 1백9십만 원 조건으로 임대하는 중이었는데 계약만기가 지난 지 1달 정도 되었고 이미 4달째 연체되고 있었다.
계약만기 1달 전 임차인에게 2달 분의 미납임대료를 완납해달라는 얘기와 함께 재계약시 보증금을 조금 인상해야겠다고 구두로 통보하였다고 했다. 그 후 임차인이 전화통화에서 재계약을 할거라고만 하여 그런 줄 알고 기다렸는데 만기가 다 지나도록 임차인은 나타나질 않았던 것이었다.
며칠 전, 임차인이 마침내 전화를 걸어왔다고 했다. 재계약 할 생각은 없으니 나가기 3개월 전에 알려주겠다며, 이미 묵시적 갱신이 되었으니 임대조건도 이전과 동일하고 자기가 원하는 경우 법에 따라 3개월 전에만 해지통보 하면 계약이 종료된다고 덧붙이기까지 했다. 평소 알고 지내던 변호사에게 물어보니 묵시적 갱신이 된 경우 임대인은 중도해지를 할 수 없으며 1년 후 계약갱신을 거절할 수만 있다는 게 아닌가? 월 임대료도 계속 연체되어 이미 임대보증금이 거의 소진되어 가는 상황이어서, 조금이라도 월 임대료를 올려줄 테니 출장 갔다 온 후 재계약하자는 건축사무소장 이야기를 믿고 계약갱신거절통지를 하지 않은 게 후회막급이었다.
이미 엎지른 물을 어찌 다시 담을 수 있으랴! 이미 상황이 이정도 되면 임대차관리 레벨을 넘어서서 채권관리 차원으로 들어가는 수밖에 없기에 임차인이 계속 임대료를 연체한다는 가정 하에 임대인으로서 손실을 최소화하고 채권담보를 최대한 확보하는 방안을 위주로 대안을 모색할 수 밖에 없었다.
일반적으로 계약만기에 임대인과 임차인이 계약의 변경에 대해 서로 침묵하면 묵시적 갱신이 성립되며, 이 경우 같은 임대조건으로 기간의 정함 없이 연장된 것으로 간주하게 된다. 묵시적 갱신이 성립하면, 민법에서는 임대인은 6개월, 임차인은 1개월 통보를 한 후 중도해지가 가능한 반면, 상가임대차보호법이 적용되는 경우에는 임대인은 1년(기간의 정함이 없는 임대차의 경우 임대인이 주장할 수 있는 최소 계약기간이 1년임)간 중도해지가 불가능하고 임차인은 3개월 통보를 한 후 중도해지가 가능해진다. 특히, 만기 후라도 임대인의 계약갱신거절의사를 비교적 존중해주는 민법과 달리 상가임대차보호법에서는 계약 만료 1달 전까지 갱신거절 또는 조건변경의 통지를 하지 않으면 자동으로 묵시적 갱신이 되는 것도 주의해야 한다.
그럼 과연 묵시적 갱신이 임대인에게 항상 불리한 것일까? 사실 상가임대차보호법이 적용되는 경우에는 임대인이 일부러 묵시적 갱신을 선택해서 이득이 되는 경우가 그리 많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민법이 적용되는 경우에는 꼭 그렇지만은 않다. 임대차관계를 유지했으면 하나 인근 임대시세가 많이 떨어져 재계약을 하면 오히려 임대인이 불리해 지는 경우가 그 중 하나다.
이 경우, 임차인이 인테리어, 시설비, 권리금 등을 이미 많이 지출해서 묵시적 갱신이 되더라도 중도에 묵시적 갱신 해지통보를 하고 갑자기 이전할 가능성이 적다고 한다면 임대인은 굳이 재계약에 연연할 필요 없이 침묵을 선택하는 것이 더 합리적인 선택일 것이다. 또한 임차인과의 임대차관계를 유지하지 않고 싶으나 현재 임대수요 및 공실이 부담스러운 상황이라면 이 또한 임대인이 고려해 볼만한 선택이기도 하다.
묵시적 갱신이라고 하는 것은 차임인상 또는 차임인하에 대해 서로 침묵하는 것이며, 계약기간의 확정에 대해 서로 침묵하는 것이어서 지극히 계산적이고 때로는 정치적인 선택일 수 밖에 없다. 사실 묵시적 갱신이 되었다가도 필요에 의해 합의에 의한 재계약이 추후 이루어지는 경우도 많다. 이것만은 기억하자. 임대인 입장에서 묵시적 갱신이라고 하는 것은 임차인과 주어진 상황을 여러 각도에서 고려한 후 전략적으로 선택하는 것이며 선택 후에도 계속해서 유효한 선택인지 관리를 해야 하는 대상이지, 임대차 관리상의 미숙함 또는 관리소장의 게으름으로 인해 수동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법적 결과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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