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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서평-불사조의 민주주의(Democratic phoenix)

명호경영컨설턴트 2009. 1. 27. 11:27

불사조의 민주주의(Democratic phoenix)

 

저자 : 피파 노리스(Pippa Norris)

 

서평 글쓴이 : 윤재웅[1]

 

 

이번 대선에서도 나타난 바 있듯이, 국민들이 투표에 참여하는 비율이 갈수록 저하되고 있다. 정치참여의 대표적인 형태인 투표율이 하락하고 있다는 것은 국민의 관심과 참여로 유지되는 민주주의에 있어 커다란 문제점을 야기시킨다. 소수에 의해 당선된 지도자는 대표성의 문제를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통치과정에서 어려움에 직면하기 쉽다. 그리고 저조한 국민의 관심과 참여는 주권자의 감시기능과 민주주의 작동 자체를 불가능케 한다. 사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한국에만 국한된 현상이 아니라 전세계적인 현상이다. 또한 투표율이 하락하고, 정당 정치에 대한 회의가 팽배하며, 저항정치가 활성화되는 추세는 민주주의의 쇠퇴와 위기론을 부추기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일부의 우려와 같이 민주주의는 위기에 빠져있는가?

 

이번에 소개할 책은 아직 한국에 번역되지는 않았지만, 앞서 언급한 전세계적인 민주주의 위기론에 대한 분석과 대안을 제시하고 있는 피파 노리스(Pippa Norris)의 ‘Democratic phoenix’이다. 이 책은 비교정치학계가 쌓아온 종전의 연구성과를 집대성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의 연구방향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주고 있다는 점에서 커다란 의미가 있다. 그리고 기존의 민주주의에 대한 저서들이 가지고 있던 이론적 난점과 서구 중심의 편중성을 극복하고 민주주의에 대한 새로운 평가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저자는 민주주의가 위기에 빠져 있다는 기존의 담론을 비판적으로 분석한다. 그리고 민주주의는 위기가 아니라 새로운 유형의 참여형태가 나타나는 과정이며, 이를 통해 민주주의를 새롭게 바라봐야 한다는 점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고 있다. 책의 제목에 나타난 바와 같이 민주주의는 죽지 않는 불사조(phoenix)와 같이 살아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저자인 피파 노리스는 영국 출신의 여성 정치학자이다. 그녀는 정치 커뮤니케이션, 선거, 젠더 정치 등 다양한 분야에서 탁월한 연구업적을 남기고 있으며 현재 하버드 대학 등에서 강의하고 있다. 유엔, 유네스코, UNDP 등 국제기구 자문역을 맡고 있으며,「Radical Right(2005)」, 「Sacred and Secular(2004)」, 「Digital Divide?(2001)」 등 다수 저작이 있다. 그리고 그녀의 거의 모든 저서와 활동은 http://www.pippanorris.com 에 잘 나타나있다.

 

이제 본격적으로 책의 내용을 소개해보도록 하자. 흔히 투표율은 민주주의의 발전 단계 및 수준을 측정하기 위한 중요한 지표로 사용된다. 많은 학자와 언론은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투표율이 하락하고 있으며, 특히 탈산업화된 선진국에서 시민동원 능력이 감소함에 따라 투표율이 점차 하락하고 있다고 우려를 표명해 왔다. 이들은 선진국의 경우 시민참여와 (+) 상관관계를 가지는 근대화 과정이 정점에 도달했기 때문에 근대화 이후에는 투표와 같은 전통적인 참여형태가 감소하고 인터넷 참여나 토론, 직접 참여가 증가할 것(전위효과 displacement effect)이라고 주장해 왔다. 하지만 저자는 미국의 투표율 하락세를 과장하지 않고 각국의 통계치도 면밀히 살펴본다면 투표율 하락에 대한 일반적 우려와는 다른 분석결과가 나온다는 점을 지적한다. 즉 투표율이 일방적인 하락 추세만을 나타내지 않을 뿐만 아니라 국가마다 다양한 양상(경향성)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아시아나 라틴아메리카와 같은 개발도상국의 경우에는 최근까지도 근대화 과정에 따른 사회경제적 발전과 민주적 정치제도의 발달로 투표율이 지속적으로 증가해왔다. 그리고 선진국에서도 투표율 감소보다는 오히려 정점에서 안정적인 경향을 보여주는 ‘상한 효과(ceiling effect)’가 존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탈산업국가에서의 시민참여와 정치참여가 침체기에 있다는 기존의 비관적인 인식이 다소 과장된 것이며, 실증분석 결과 투표율은 하락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투표율에 영향을 주는 것에는 어떤 요인들이 있을까? 저자는 중요한 요인의 하나로써 제도적 요인을 들고 있다. 기존 학자들은 비교적 안정적인 패턴을 보이고 있어서 변수라기보다는 상수로서 기능하는 ‘제도적 요인’은 투표율의 변화를 설명하는 데는 적합하지 않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저자는 제도적 요인과 투표 참여율 간의 중요한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투표율에 있어서 제도적 요인의 중요성을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정당 제도에서부터 선거제도, 유권자 등록 절차에 이르기까지 제도적 요인은 유권자들이 투표시에 직면하는 투표비용의 문제, 유권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정당 및 정책의 다양성의 문제, 대표자와 유권자간 의사소통의 원활성 등에 영향을 미치며 이것이 투표율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저자는 일반적으로 비례대표제, 너무 짧지 않은 선거주기, 경쟁적 정당체제, 소규모 선거구에서 투표율이 증가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투표율 저하와 함께 민주주의의 위기를 나타내는 지표로 사용되는 것 중 하나는 정당참여도의 하락이다. 이제껏 정당조직은 정치적 의사교환의 경로로써 대의제 민주주의에서 중요한 행위자로 인식되어 왔으며 사회 각 구성원의 이익을 결집시키는 중요한 통로(기제)로 간주되어 왔다. 또한 정당은 유권자의 이익대변뿐만 아니라 대표체제, 권력구조 측면에서도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따라서 정당에 대한 시민의 참여와 활동이 감소하고 정당 역시 더 이상 유권자를 동원하고 조직하는 기능을 담당하지 못한다면, 기존의 학자들이 주장한 바와 같이 정당정치의 위기를 넘어선 민주주의의 위기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도 저자는 다른 측면을 바라볼 필요가 있음을 지적한다. 1980~2000년 기간 동안의 정당참여도에 대한 분석결과를 보면 모든 국가에서 지속적이고 일률적으로 정당참여도가 감소한 것이 아니라 나라마다 정당 참여도의 경향이 매우 다양하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즉 미국과 서유럽에서 나타나는 일부 참여율 저하가 전세계적 현상이라고 볼 수 없으며, 심지어 서유럽에서조차 정당 참여도가 저하되었다고 단정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탈공산주의 사회에서는 정치적, 제도적 요인으로 인해 정당참여도가 낮게 나타나지만 라틴아메리카나 아시아와 같은 지역에서는 정당 참여도가 매우 높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는 정당참여에 영향을 주는 다양한 원인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가 필요함을 나타낸다.

 

이처럼 국가별로 상이하게 나타나는 정당 참여도를 설명하기 위해 저자는 정당 참여에 대한 공급과 수요의 측면을 살펴본다. 먼저 공급 측면에서는 후기 산업사회에 들어서면서 생활양식과 가치체계가 변화하고 그에 따라 정당의 참여와 전통적 경로를 통한 유권자의 이익표출에 대한 유인이 감소한다고 본다. 그리고 수요 측면에서는 TV 보급과 같은 근대화 과정이 정당참여와 선거운동에 변화를 야기시키고 광범위한 대중 동원보다는 선거 광고를 주요한 의사소통의 매개체로 활용함에 따라 정당조직의 필요성이 감소한다는 것이다. 이는 높은 문맹률과 TV 접근성이 낮은 저개발국의 경우를 살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이들 나라에서는 TV와 같은 매체를 이용하기 보다는 군중동원, 지역별 득표활동, 포스터 등과 같은 개인접촉 방식의 의사소통에 기반한 선거운동을 한다. 여기서는 정당 참여와 지지자들의 역할이 중시된다. 이를 통해 저자는 국가별로 언론매체의 활성화 정도에 따라 대중참여, 동원기제의 양상이 다양하게 나타남을 밝히고 있다.

 

이외에도 우리나라에서는 그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덜하지만 서구에서는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교회와 노조를 통한 참여 및 동원에 대해서도 논의하고 있다. 종교조직이나 노동조합에 소속된 구성원일수록 전통적 경로를 통해 지역사회 관여와 정당가입 등 공공영역에 참여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따라서 최근 조합원 감소로 대변되는 노조의 쇠퇴와 세속화로 인한 종교의 쇠퇴는 민주주의에서의 참여 문제와 밀접히 연관된 문제라는 것이다. 저자는 종교단체나 노조와 같은 전통적 동원기제의 약화가 곧바로 시민적 참여의 약화로 이어진다면 이는 민주주의의 위기라고 볼 수 있지만, 단지 전통적 동원기제가 새로운 유형의 동원기제로 대체되면서 참여 경로가 바뀐 것이라면 이는 위기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신사회 운동에서 보여진 것과 같이 또 다른 참여유형의 등장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이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가 필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이상에서 저자는 투표율, 정당참여, 교회, 노조 등과 같은 전통적인 정치참여 지표로는 시민참여가 어떻게 진화하고 분화되어 왔는지 파악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새롭게 등장하고 있는 정치참여의 형태를 간과하게 되는 우를 범하기 쉽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는 이익집단과 정당, 노조와 같은 참여 경로뿐만 아니라 유동적이고 분권화된 조직 구조와 개방적인 회원을 기반으로 사회변화를 성취하는 신사회 운동, 국경을 초월하는 초국가적 네트워크가 존재한다. 다시 말해 기존의 이익집단과 정당이 강조하는 국가의 범위를 넘어선 세계화와 분권화로 인해 형성된 새로운 형태의 시민참여 형태가 등장했다는 것이다 예컨대, 온라인 참여, 국제 인권조직, 초국가적 환경단체 등이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는 정치참여 형태를 전통적인 형태의 참여 활동과 저항적 형태의 참여활동으로 구분해왔지만, 공공 집회와 평화적 대중운동이 일반화된 현재에는 그런 구분 자체가 모호해졌다. 청원서 서명, 합법적 시위 참가, 비공식적 파업 등도 일반화된 참여의 유형으로 간주해야만 기존의 제한된 정치참여 틀로는 파악할 수 없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다. 이로부터 전통적 참여 유형에서 벗어난 새로운 유형의 참여가 인터넷의 발달과 사회구조의 변화와 함께 등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책의 제목과 같이 민주주의는 위기에 빠진 것이 아니라 불사조와 같이 새롭고 역동적인 모습으로 살아있음을 알 수 있다.

 

새로운 참여 형태가 도래하더라도 기존의 국민국가 내에서 정책결정 과정과 민주주의의 작동 기제였던 선거와 정당, 이익집단의 중요성은 지속될 것이다. 그와 함께 민주주의와 시민참여 경로의 다양화는 새로운 동원방식과 작동 기제를 통해 그 영향력을 확대해갈 것이다. 국가는 더욱 다원화되고 복잡한 요구들을 종합하고 조정하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게 될 것이고, 그 도전 과정에서 대의민주주의를 더욱 건강하게 할 다양한 참여 형태와 기회도 늘어날 것이다.

 

이상으로부터, 저자는 민주주의에 대한 성급한 비관론과 위기론이 간과하고 있는 새로운 참여 형태와 민주주의의 새로운 가능성에 대해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물론 투표와 정당활동과 같은 전통적인 참여 형태는 여전히 중요한 참여 방식이며, 그것을 고양할 제도적, 법적 유인도 강조되어야 한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새로운 형태의 시민참여 경로와 방식이 점점 더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기존의 참여방식에 부차적인 것으로 인식되어야 할 것이 아니라 기존의 참여방식과 함께 민주주의에 새로운 활력을 가져다 줄 동력으로 적극 활용되어야 한다. 인터넷의 확산, 일상화된 저항정치, 시민사회의 성장 등은 종래의 틀에서 보면 혼란과 위기로 비추어질 수 있다. 하지만 이를 다른 시각에서 보면 정체와 위기에 직면한 민주주의를 위한 새로운 기회를 제공한다. 따라서 만약 정치권과 언론이 변화된 환경과 다양화된 참여 형태에 적응하지 않고 구태의연한 모습을 보인다면 국민으로부터 외면 당하는 위기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1] 윤재웅씨는 현재 정치학을 전공하는 대학원생으로 많은 인문사회과학 서적을 탐독하였으며, 연구소의 포럼과 정기모임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해오고 있습니다. 본 서평은 윤재웅씨가 직접 작성하고 연구소에서 간단히 교정을 본 것입니다. 참고해보시기 바랍니다.

출처 : 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
글쓴이 : 김광수경제연구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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