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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자유주의의 원리와 역사- 그 비판적 연구(민음사, 노명식)

명호경영컨설턴트 2009. 1. 31. 15:12

 

 

2008년 5월 17일, 토요일 오후 4시에 있었던 대구경북지역 모임을 끝내고 서울행 KTX에 오른 건 10시 28분. 밤이 주는 분위기와 고속열차 실내라는 특이 공간에서 나눈 좌담은 시종 차분하면서 생각을 더욱 깊이있게 만들었다. 주제는 소장님이 먼저 꺼내게 되었는데 "현재 논의하고 있는 신자유주의는 자유주의와 어떻게 다른 것이며 구체적인 개념정의가 무엇입니까?", "신자유주의를 경계하거나 비판하는 쪽에서 그 반대되거나 대척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무엇인지요?" 나는 귀경에 동행한 자이(zaiyi)님과 아는 만큼 이야기를 나누다가 문득 이 책을 떠올리게 되었다. 덧붙여 소장님의 이야기 중 "자유주의가 정치적인 의미와 경제적인 의미에서는 약간 다른 것 같습니다. 본래 자유주의는 진보적인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만, 경제적으로는 다른 의미가 있는 건 아닐까요?라는 의문이 이 책을 다시 읽어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서평을 쓰게 된 동기가 되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집에 돌아와서 책을 꺼내들어 보니 표지 다음 장에 95년 3월 20일이 써진 붉은 스탬프 속에 검토필이 찍혀져 있고 3월 16일 위병소 누구누구가 기재된 것이 눈에 띈다. 내 기억으로는 군을 제대한 후에 읽은 것으로 아는데 지금 보니 제대 두 달 전에 쫄병에게 심부름을 시켜 구입했던 모양이다. 참으로 기특한 군인이 아닐 수 없다. 이만 각설하고, 이 책은 제목처럼 자유주의의 원리와 역사, 크게 2가지로 서술하고 있는데 본 서평은 자유주의의 역사와 함께 경제적 자유주의에 편중하여 전개할까 한다.

 

 

 

먼저 이 책의 저자 노명식 교수는 서문에서, 오히려 자유주의의 참 모습을 객관적으로 추구하다 보니 자유주의가 그 발전과정에서 보여준 어둡고 비정한 면도 숨김없이 비판하였다고 하였듯이 나 역시 신자유주의에 대하여 경계의 태도를 갖기에 자유주의가 예기치 못한 역사적 사실을 전달하고자 하였다. 그래도 일반적인 자유주의의 내용과 성과를 소개하자면 자본주의가 봉건적 사회경제 질서와 끈질긴 투쟁을 통해 인류역사상 초유의 물질적 풍요를 창조해냈다면, 자유주의는 봉건적 정치사회 질서와 전근대적 우주관, 세계관, 인간관, 사회관과의 이념적 투쟁을 통해 개인의 자유와 개인의 권리를 무엇보다도 존중하는 개인주의 철학에 기초를 둔, 자유의 이념을 체계화하고 그것을 개인생활과 국가생활에 실제로 구현하는 데 성공하였다.

 

 

자유주의는 대략 개인이 사회보다 도덕적, 정치적으로 우월하다는 개인주의를 철학적 핵심으로 하고 제원리들로 개인적 자유, 관용과 이성, 입헌주의와 민주주의를 들 수 있겠다. 이러한 개념적 정의가 대한민국에서는 어느 한때라도 무시되거나 간과된 적이 없고 어느 헌법에서든 자유민주주의라는 것으로 강조되어 왔음에도 지난 역사는 불행히도 "과거 정권들이 추구하거나 실현하고자 했던 것이 자유주의도 아니고 민주주의도 아니라는 점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두가 자유주의 신조와 어긋나고 민주정치 제도와 거리가 먼 권위주의 정권들이었다."(p.20). "그들은 자유민주주의라는 나라의 간판과 그 간판 밑에서 실제 거래되는 권위주의적 독재를 보고 권위주의적 독재를 자유민주주의로 오인하게 된 것이다. 천년 묵은 전제주의와 반세기의 일본 군사적 파시즘밖에는 경험한 것이 없는 한국의 민초가 건국 후 40여년 사이에 듣고 보고 경험한 대로 권위주의적 독재를 자유민주주의로 오인하게 되었다면 하등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러니 그들에게는 자유와 자유민주주의라는 말은 독재와 부패와 무능에 일치하는 일고의 가치가 없는 혐오와 경멸의 대상이 된 것이다. 그러한 사상적 공동 상태에서 6.29를 맞게 된 민초에게 민주화의 물결을 타고 자유민주주의의 허구성을 폭로하는 급진적 이데올로기가 크게 소리치며 다가왔을 때 거기 쉽게 귀를 기울일 것은 뻔한 이치이다. ....... 만일 지난 40년간에 자유와 자유주의의 가치와 이념이 적극적으로 신봉되고 실현되었더라면 일반 민중이 사회주의라는 말을 들어 보기도 했고 말해 보기도 했을 것이다. ......따라서 6.29이후 급작스런 사상적 혼란이 일어날 조건들이 없었을 것이다"(p.21~p.22).

 

 

자유주의는 17,18세기 계몽주의시대에 인간 해방을 시작으로 봉건제 신분사회를 타파하는 동력으로 기능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러한 자유주의는 존 로크, 볼테르, 몽테스키외. 아담 스미스, 멜서스, 리카도, 밀, 버크, 페인, 콘스탕, 콘도르세 같은 계몽사상가들에 의해 계승되고 내용이 풍부해지면서 두 갈래 흐름으로 나뉘어진다. 자유주의는 정치적 자유주의, 경제적 자유주의가 따로 있었던 것은 아니다. 자유주의가 이론에서 나아가 실제 정책으로 실현되었던 18세기부터 비정하고 암울한 그림자를 드리운 것은 정치분야보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자유방임이라는 경제철학이 금과옥조처럼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경제적 의미에서 자유주의 사상의 기초는 아담 스미스 이래 고전경제학파의 '자유방임'이다. 국부론은 개인들의 경제활동에 대한 국가 간섭을 배제하고 모든 사람을 자유방임케 하면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사회 전체의 조화가 이루어지고 국가의 부는 저절로 증대되게 된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산업혁명이 본 궤도에 오르자 멜서스의 '인구론'은 "가난한 사람들은 생활조건이 나아지면 그만큼 아이들을 더 낳기 때문에 오히려 더 가난해지고, 아이들을 기를 만한 물질적 준비없이 아이들을 낳아 더 궁핍해지는 것은 그 무책임과 성적 무절제에 대한 벌이고, 그 벌은 자연의 법칙이 내리는 벌이지 사회나 정부가 내리는 벌이 아니라고 했다.....아아들을 많이 낳아서 굶어 죽거나 병들어 죽고 늘 궁핍을 면하지 못하는 것은 자연히 법칙이고 따라서 신의 법칙이므로 아무도 그 법칙을 어길 수 없다는 것을 모든 사람이 알아야 한다고 강조하였다"(p.207). 리카도는 기본적으로 계급간의 갈등이론으로 자유주의 경제학에 한결 더 비관적이고 비정한 경향을 띠게 만들었는데 "높은 임금은 노동자에게 더 많은 아이들을 낳게 하여 노동자의 수를 늘리어 결국 긴 눈으로 볼 때 임금을 떨어뜨린다고 주장하였다. 임금이 떨어지면 노동자의 출산율도 떨어져서 노동자의 수가 적어지고 임금이 올라간다"(p.208).

 

 

 

이처럼 근대자본주의의 대두와 함께 빈곤과 빈민에 대한 비정한 태도가 17-18세기부터 자유주의 경제이론과 재산권사상의 지원아래 널리 일반화되어 가고 있었는데, 그러한 태도는 19세기초에 오면 그 절정에 달한다. 19세기 영국의 빈곤과 빈민의 문제는 자유방임정책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빈곤에 대한 국가간섭을 반대하고 있었다. 이유로 국가간섭은 첫째, 개인들의 선택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고, 둘째, 개인들이 책임을 다른 데로 전가시킬 뿐만 아니라 일자리를 찾는 유인동기를 빼앗는 것이고, 끝으로 그것은 다른 과학에서처럼 객관적 과학이 발견한 시장의 법칙을 부질없이 건드리는 잘못이라는 것이다. 이에 따라 새로 제정된 구빈법으로 작업장은 공포의 대상이 되었고 차라리 자살하는 실업노동자도 있었다. 그것은 새로운 바스티유 감옥이었다. 신구빈법의 성격에 대해서는 디킨스의 소설 '크리스마스 캐롤'을 회상하하는 것이 효과적인데 스크루지는 작업장 유지비로 이미 세금을 냈다는 이유로 자선을 거부하고 거기 가기보다는 차라리 죽으려는 사람이 많다라는 말에도 '그거 잘하는 일이지. 과잉 인구가 그만큼 줄어드니까'. 자유주의 고전경제학은 빈곤과 실업의 원인을 경제적 구조에서 찾으려고 하지 않고 개인들이 태만, 무절제, 협잡 등에서 찾으려고 하였다. 이런 비인간적 냉혹성은 1846년부터 3년간 강타한 아일랜드 감자 흉작에 대해 불간섭과 방임으로 일관한 영국정부의 정책이었는데 150만명이 아사하였다.   

 

 

 

그러나 세상의 여론은 자유방임의 원리에서 차츰 멀어져 갔다. 자유주의의 분수령은 1848년 2월 프랑스 부르주아민주주의혁명인데 인간사회에 진정한 자유와 평등과 정의의 질서를 수립하려는 사회주의의 동기와 이념을 수립하기 위해서 사회경제적 평등을 실현해야 했고, 그 평등의 실현을 위해 자유경젱의 원리에 제한을 가하고 집단주의적인 생산조직과 사회구조 및 정치체제가 불가피하게 되었다. 이는 곧 자유주의에 대한 위협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19세기 중반을 전후하여 국가의 간섭주의적 역할이 사실상 점점 더 커져갔다는 사실이다. 국민의 실제 경제생활이 (자유방임의) 경제학 이론의 일반적 법칙에서 벗어나는 경우가 날로 많아졌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은 그러한 새로운 경향을 다만 예외적인 것으로 가볍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니 그들이 국가간섭의 이론을 새로 개발할 까닭이 없었다. 오히려 사태가 그들에게 불리해지자 그들은 자유주의 경제의 원리를 하나의 도그마처럼 신주 모시듯 절대화하였다.

 

 

 

아메리카 독립혁명과 프랑스 대혁명으로써 승리를 거둔 자유주의는 19세기에 그 전성기를 맞이하지만 1848년 혁명들의 해를 고비로 사회주의와의 대결의 필요에서 자체변혁을 모색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거기서 19세기 말엽 이래의 자유주의는 신자유주의 내지 사회민주주의의 길을 찾아 그 전통적 진보성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였으나 사회주의에 밀려 점차 보수화하는 경향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그 보수화의 경향은 20세기의 양차 세계대전을 전후하여 군국주의, 공산주의, 파시즘에 의해 자유주의의 가치들이 무참히 짓밟히는 가운데서 한결 더했으나 냉전시대의 퇴조와 함께 다시 그 진보성을 회복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어떠한가? 대체 자유주의는 좋은 것이라는 것인지 함부로 받아들일 것이 못 된다는 것인지 혼동되지 않는가?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자유주의는 봉건질서의 압제에 대항하여 인간해방과 인간의 자유와 권리를 보편타당한 원리로 만든 진보적 사상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경제영역에서의 자유방임이라는 철학적 태도와 정책에의 반영은 뜻하지 않게 너무도 비정하고 반인간적인 상황이 전개되면서 그 본래의 의의를 잃어버렸던 것이라고 하면 맞을까 한다. 이러한 역사적 맥락에서 우익의 보수주의 좌익의 파시즘, 공산주의로부터 맹렬한 공격을 받아왔고, 더욱이 오늘날 고도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유주의가 독자적인 정치운동의 형태를 취하지 않고 있는 이유는, 자유주의의 제가치- 개인적 자유, 인권, 정치적 자유, 정치적 종교적 관용, 입헌정치 - 는 이미 다 실현되어 있어서 그런 가치의 실현을 위한 투쟁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21세기 한국 사회에서도 위 지적은 유효한가? 성공한 시민혁명이 없이 분단체제의 지독한 반공이데올로기에 속에서 사상적 반신불수의 어둔 터널을 이제 벗어난지 20년이 채 안된 시공간에서 자유주의는 얼마만큼 인식되어 왔으며 어느 정도 성숙한 단계인가? 이에 대한 해답을 얻기 전에 여지없이 한국 사회에 몰아치는 신자유주의의 전지구적 광풍속에서 우리는 어느 만큼의 사상적 방패막이를 벼리어 왔는지 자문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의 발간년도는 1991년이다. 아직 문민의 정부가 들어서지 못한 시점에서 세계화라는 허울이 등장하기도 전에 신자유주의에 대한 나름의 해답을 찾으려는 것은 처음부터 무리였다. 하지만 이 책이 전달하는 자유주의를 체계화하고 잘 정리한 내용은 세계적으로 거센 신자유주의 반대운동을 충분히 짐작하게 할 수 있을 것이며 사상적인 깊이를 더해 줄 것이라고 확신한다. 

 

 

 

출처 : 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
글쓴이 : 바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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