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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책]정한아 “달의 바다”를 읽고

명호경영컨설턴트 2009. 1. 31. 15:35

 

 

<꿈은 따뜻한 현실의 위로가 있을 때에야 그 의미를 갖게 된다.> (정한아 “달의 바다”를 읽고)



 “꿈꿔왔던 것에 가까이 가본 적이 있어요? 그건 사실 끔찍하리만치 실망스러운 일이에요. 희미하게 반짝 거렸던 것들이 주름과 악취로 번들거리면서 또렷하게 다가온다면 누군들 절망하지 않겠어요. 세상은 언제나 내가 그린 그림보다 맛이 떨어지죠. 현실이 기대하는 것과 다르다는 것을 일찍 인정하지 않으면 사는 것은 상처의 연속일 거예요.” <본문 7쪽>


 사람은 태어나게 되면 살아가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죽음에 이르기 전까지는 계속된다. 그렇다면 사람은 무슨 이유로 살아갈까. 누구든 살기위해선 삶의 이유가 필요하다. 그 이유를 잃게 되면 죽지 못해 사는 삶이 되고 만다. 사람은 무언가를 꿈꾼다. 그것이 삶의 의미와 원동력이 된다. 나도 꿈을 꾸고 당신도 꿈을 꾼다. 우리는 그 꿈을 향해 쫓아간다. 다만 잊고 있는 것은 달에는 바다가 없다는 진실이다.


 “세상은 언제나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이야.” “생각처럼 나쁘지는 않은데 늘 우리의 밑그림을 넘어서니까 당황하고 불신하게 되는 거야. 이렇게 네가 나를 보러 와준 것처럼 기대 밖의 좋은 일도 있는 거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는 거고. 고모는 그걸 알기 때문에 세상에 빚진 것이 없어.” <본문 145쪽>


 고모는 엄마를 속인다. 그런데 그 덕에 엄마는 행복할 수 있었다. 그녀는 꿈을 이루지 못했다. 하지만 그 덕에 그녀의 편지는 더 없이 아름다웠다. 사람은 누구나 꿈과 현실 사이의 괴리감 속에 놓여있다. 그리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결국 현실과 가까워져 꿈의 소실에 대한 정당성 획득의 삶을 살아간다. 하지만 그것을 나쁘다고 할 수 있나? 그럴 수 없다. 꿈이란 삶의 원동력이지 삶 그 자체는 아니다. 삶 그 자체는 현실이며 현실은 상처받은 사람들이 우글대는 곳이고 꿈을 상실한 사람들의 슬픔이 있는 곳이다. 그곳에 필요한건 꿈의 성사에 대한 강요가 아니라 단지 따뜻한 위로이다.


 ‘꿈에서 깨고 나면 갖고 있던 걸 뺏긴 것처럼 허허로운 마음이 되지만, 그래도 저는 멈추지 않고 다시 꿈을 꾸려고 이불을 끌어당’기는 소설 속 화자처럼 꿈은 오히려 이불을 끌어당기기에 가능하다. 꿈은 현실과 닿아있으면서도 현실 그 이상의 것이다. 따라서 꿈의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는 장담할 수 없다. 달에 바다가 없는 것은 과학적 진실이다. 하지만 달의 과거의 어느 날 혹은 미래의 어느 날에도 바다가 없으리라는 법은 없다. 꿈이란 그런 것이다. 당장 지금, 오늘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언젠가는 될 수도 있을 가능성이다. 존재하지 않는 꿈의 오늘에 따뜻한 위로가 필요하다. 그리고 오늘을 살아갈 이유의 꿈은 기대 밖의 좋은 일 혹은 나쁜 일과 같이 빚질 것 없는 나와 세상의 매개체이다. 그렇다. 꿈은 현실 밖에서 존재하는 것 같지만 결국 현실을 끌어안지 않고서는 이룰 수 없다. 꿈은 따뜻한 현실의 위로가 있을 때에야 그 의미를 갖게 된다.


 이 소설은 제 12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이다. 1982년 태생의 아주 젊은 작가다. 그녀의 가벼워 보이는 나이를 보고 얼마 전 읽은 백영옥의 “스타일”이 떠올라 괜스레 우려가 되었다. 하지만 책장을 넘겨감에 따라 그 걱정이 기우에 불과했다는 것을 깨닫고는 즐거웠다. 소설은 꽤나 의미심장했고 감동적이었다. 물론 진부한 캐릭터 설정이라든지 작중 화자 ‘나’의 밋밋함 등의 아쉬운 대목도 있었지만 대체적으로 꽤나 밀도 있는 완성도를 가졌다. 앞으로의 작품 활동에 기대를 걸어본다.



추천 강도 ★★★★ 


08.07.22 두괴즐

 

출처 : 두뇌를 괴롭히는 즐거움
글쓴이 : 최일섭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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