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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윤치호 일기> ; 일제시대의 생생한 현장기록

명호경영컨설턴트 2009. 1. 31. 16:05

제가 가장 감명깊게 읽은 책 중의 하나가 <윤치호 일기>라는 책입니다.

 

윤치호(1865~1945) 씨는 일제 시대 당대최고의 지식엘리트로, 그는 매일 영어로 일기를 썻습니다.

또한, 그는 대한민국 최초의 영어통역상기도 햇으며, 고급영어로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 뛰어난 역량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일부 역사가들에 의해 그가 "친일파"라는 비난도 많이 받고 있습니다만, 그의 문제의식과 깊은 고뇌를 알게하는 그의 회고록입니다. 그는 독립에 반대한 것이 아니라, 독립을 과연 쟁취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하고, 이런 준비나 자질을 가진 사람이 너무나 없는 조선의 상황에 크게 낙담하고 있습니다.

 

1978년 국사편찬위원회에서 번역하다, 1980년대 중반이후에 절판되었던 것을

2001년 서울대 국사학과 강사 김상태씨가 번역하였습니다.

 

------------------ (이상은 다른 분의 블로그에서 퍼온 평론입니다)

 

 

생소하면서도 어디서 들어본 듯한 이름, 좌옹(佐翁) 윤치호(尹致昊, 1865-1945). 최근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친일파로 규정한 인물. 언젠가 TV에선가 잡지에선가 ... KBS 윤아무개 아나운서가 윤치호 가계의 후손이라는 기사를 본 것도 같다.

그는 어떤 인물일까? 최초의 근대적 지식인, 개화 자강 운동의 핵심 인사, 조선 개신교계의 유력한 지도자, 교육가, 사회운동가, 민족지사, 친일파 ... 한 두 마디로 요약할 수 없는 화려하고 다양한 경력은 어떤 면이 그의 가장 진정한 모습일지 윤치호 자신도 판단하기가 쉽지 않을 듯하다.

<윤치호 일기>는 좌옹이 1883년부터 1943년까지 무려 60년 동안 써온 일기(그것도 영어로 썼다!!)를 편자가 일제 강점기의 주요 사건(3.1운동, 만주사변, 중일전쟁·태평양전쟁)을 기준으로 발췌하여 엮은 것이다. 이 책의 중요성은, 이미 편자가 지적했듯이, 사료 비판만 제대로 이루어지면 <백범일지>를 능가하는 정말 귀중한 한국 근대사 연구의 자료라는 점이다. 식민지 조선의 최고 원로로서 그와 연결된 수많은 정보들이 너무나 적나라하게 기록되어 있어서, 일제시대의 제반 실상이 생생하게 드러난 때문이다.

책을 읽다보면, 지식인이 자신을 지키며 산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거듭 생각하게 된다. 개화 자강의 핵심인물로서 조선 멸망을 바라보는 기분이 어땠을까? 그는 자신이 뜻한 바와 다르게 흘러가는 세상 일에 대해 한탄하고, 자괴한다. 특히 105인 사건으로 고초를 겪은 뒤에는 일제의 거대한 위력 앞에 나설 수도 물러설 수도 없는 무력함 느끼며 냉소적 관찰자로 돌아 선다. 당시 사람들을 네 부류로 나누어 설명한데서 그런 점이 잘 드러난다.

* 첫째 부류 : 미래는 생각지도 않고 지나간 과거에 흠뻑 취해서 사랑방에 앉아 담배나 빨고 있는 노학자들과 옛 관료층.
* 둘째 부류 : 오로지 자기의 탐욕만을 챙기는 무지몽매한 계층.
* 셋째 부류 : 자기들을 각성시키기는커녕 도리어 파멸로 이끌고 말 신사상이라는 등불에 매료된 날파리같은 학생계층.
* 넷째 부류 : 나처럼 독립 등에 대해 건전한 생각을 가지고는 있으나, 그다지 호응받지 못할 사상을 가지고 주도적으로 나설 만한 용기와 정력이 결여되어 있는 무기력한 계층.

 

그렇게 구분하고 그는 한탄한다. "자, 누가 날 이 답답한 수렁에서 꺼내줄까?"

좌옹의 태도는 3.1운동을 맞아서도 분명하다. 그는 열강의 제국주의적 본질을 정확하게 꿰뚫고 조선의 현실을 냉정하게 직시했다. 모두가 금방 독립이라도 될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혀 있을 때, 그의 이런 말을 한다. "대중목욕탕 하나 운영하지 못하는 우리가 현대국가를 다스리겠다고?"

 

그는 시위 학생들이 끌려가는 모습을 보고 안타까워 흐느껴 울면서도, 이성보다는 감정이 앞서는 무모한 방법론을 경멸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좌옹의 운동 참여를 강권했지만, 그는 온갖 비난을 무릅쓰고 거부했다. 조선의 악정이 일본의 유능한 행정으로 대치되었다고 세계열강이 믿고 있는 마당에 <만세 = 독립>이라는 생각은 순진하다 못해 바보 같은 짓이었다. ‘물 수 없으면 짖지도 말라’것이었다

 

그렇다면, 일제 강점 상황에서 그가 생각했던 애국은 무엇이었을까? 조선 사람들이 어떻게 살기를 바랐을까? 열혈 투사의 입장에서 보면 현실타협 내지 변절로 비난받을 수밖에 없지만, 그는 현실적인 실력양성론을 주장했다. 그가 생각했던 애국은 이런 것이었다.

“두 명의 조선인이 있다. 한 명은 열심히 일하며 자기 가족을 편안하게 부양하고 주변사람을 도와가면선 젊잖게 살아간다. 하지만 그는 만세를 부르고 다니지 않는다. 다른 한명은 도박꾼에다 난봉꾼이다. 재산을 다 탕진한다. 하지만 그는 시도 때도 없이 만세를 부른다. 어느 쪽이 진정한 애국자일까? ...”


“아름답고 유용한 나무를 사랑할 줄 알아야만 독립을 얻을 자격이 있는 것이며, 또 실제로 독립을 얻을 수 잇을 것이다. ... 외국인을 증오하는 것 자체가 곧 미덕은 아니다. 개나 닭이라면 그렇게 할 수 있다. 그들을 증오하기 전에 우리의 지적, 경제적 수준을 적어도 그들 수준만큼 끌어 올려야 한다. ...”

“농경지를 매입해서 그 땅이 일본인 손에 넘어가는 걸 막는 사람이야말로 그 땅을 팔아서 독립운동 자금을 대어주는 이보다 더 현명한 애국자다. 가난한 소년을 더 똑똑하게 만들려고 학교에 보내는 사람이 정치적 소요를 위해 학생을 선동하는 이보다 더 많이 기여하는 것이다. 지금은 조선인들이 배우며 기다릴 때다. ...”

그는 조선이 독립하려면 그에 걸맞은 역량과 국민적 자질이 있어야 하는데, 아직은 그 시기가 아니라고 단정했다. 그의 눈에 비친 조선 사람들은 이랬다. “머리도 좋고 정직하기까지 한 종복이나 피고용인을 구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난 그런 사람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종복들은 남자건 여자건 낭비가 심하고 교활하며 주인에게 감사할 줄 모른다. 지위가 높을수록 게으르고 무능하다. ... 조선인들이 은행이나 능력과 정직성이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회사를 경영하는데 실패한 게 바로 이 때문이다. ... 일본이 조선인들에게 독립국가를 운영하도록 모든 현대적 발전과 함께 정부를 넘겨준다손 치더라도 조선인들이 죽으나 사나 오로지 할 일은 파벌투쟁과 살육뿐일 것이다.”

따라서 일본을 바라보는 좌옹의 심리는 반감과 선망의 계속된 교차였다. 일찍부터 세상 문물을 접하고 개화운동에 참여했던 좌옹은 조선이 열강과 같은 강한 나라가 되기를 바랬고, 일본은 그 모델이었다. 그는 우리 입장에서 최상의 행동은 일본인들의 뛰어난 자질, 즉, 그들의 청결성, 근면성, 협동심, 응집력 등을 가능한 많이 배우고 모방해야 한다고 했다. 특히 일본 육해군의 치밀한 준비, 신속한 행동, 기강, 용기, 집요함, 위험과 죽음에 조금도 굴하지 않는 태도 등에는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일본을 선망하면 할수록 자신이 속한 조선은 더욱 초라했고, 경멸스럽기조차 했다. “우리는 신시대가 찾아올 때마다 뭘 했나?” “우리는 지난 500년 동안 쓸 만한 다리 하나 놓은 게 있는가? 일본인들을 경멸할 자격이 있는가?” 조선의 자치 능력에 회의감만 높아갔다. 우승열패(優勝劣敗)의 사회진화론적 관념 속에 좌옹에게 있어서 애국과 친일의 경계는 모호해져 갔다.

힘의 숭상이 지나쳤을까? 좌옹은 일본에 대한 선망과 더불어 일본의 조선통치를 점점 더 긍정하게 된다. 만주에서 중국에서 들려오는 일본의 승전보는 좌옹으로 하여금 그런 생각을 더욱 굳게 했다. 결국 태평양으로 전쟁이 확대되었을 시점에 이르러서는 확신이 되었다. 물론, 그의 친일은 일제가 그를 회유하려는 공작에 굴복한 결과이기는 하나(그의 주변 인물들이 일제로부터 고통을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 타협), 단순히 개인적 출세나 권력에 영합 차원이 아닌 사상적으로 오랜 내면화의 결과였다.

만주사변이 일어났을 때, 그는 일본의 성공을 기원했다. 그 이유는, 일본의 만주정책이 성공을 해야 재만 조선인들의 생명과 재산이 안정해질 것이고, 일본이 경제적으로 위기에서 벗어나, 조선에 대해 좀 더 관대해질 것이고, 조선인 고학력자들에게 일자리가 제공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그리고 재만 조선인이 수백만에 이르면 조선인으로서 대규모 사업가가 나타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위대한 인물이 등장하기에는 조선은 너무나 좁은 활동 공간이었다.

태평양전쟁이 터졌을 때는 “이제 새 시대의 먼동이 떠올랐다. 진정한 인종간의 전쟁, 즉 황인종 대 백인종의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 이번 태평양전쟁에서는 미국에게 100%의 책임이 있다고 할 수 있다. ... 일본이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전쟁을 시작한 이상, 백인종 특히 앵글로색슨족의 참기 힘든 인종적 편견과 민족적 오만과 국가적 침략으로부터 유색인종을 해방시키는 데 성공했으면 좋겠다”는 소회를 피력했다.

일본에 대한 호감은 그들의 조선 강점을 오히려 근대화의 기회로 보게끔 했다. 그런 점에서 좌옹은 최초의 식민지근대화론자라 할 수 있다. 그는 일본을 여행하고 나서, “일본이 국내외에서 한 일을 보면 볼수록 난 위대한 일본인들에게 깊은 존경심을 품게 된다. 그들은 조국을 아름답고 부유하게 만둔 후, 자기들의 정력과 능률을 조선에 쏟았다”고 하여, 일본의 근대화 추진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철도가 복선화되었고 임진강위에 철교가 부설되었으며... 일본인 친구들이 도처에서 보여주고 있는 저 정력과 능력을 보라! 조선인들이 저만큼 하려면 何세월이 걸렸을 거다.”

영욕(榮辱)의 삶!!
좌옹은 성실하고 똑똑한 사람이었다. 매사에 생각이 깊었다. 설득력을 갖추고 있어서 주변의 신망과 존경을 받았다. 당대의 덕망있는 지식인이며 지도자였다. 그러나 이러한 요건들은 그에게 榮이었을까 辱이었을까? 좋은 세상을 만났다면 전자겠지만, 불행히도 그가 산 세월은 그렇지 못했다. 개인을 개인으로 놓아두지 않는 시대. 편하게 산다는 자체가 부담일 수밖에 없는 시대. 자신의 선택이 과연 옳은지 그른지 판단자체가 쉽지 않은 시대. 그에게 있어 親日은 역설적으로 애족의 표현이었다. 그것이 그의 한계이자 비극이었다.

상황에 대한 판단과 그의 성찰은 너무나 객관적이고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그의 이야기들이 모두 조합되어 하나의 결론에 이르면 희망없는 패배감의 연속된 재확인만 남는다. 그래서 허무하다. 우리가 <백범일지>의 저항성에 너무 익숙해져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과거로부터 자유로운 지금의 우리가 그 시대의 사람들에게 너무 가혹한 요구를 하는 것일까? 그의 통찰이 시대적 진실을 담고 있어 외면할 수 없지만, 그것을 자연스럽게 용납할 수없는 ‘지금 시대와의 불화’가 또한 그의 비극이다.

어쨌든, 책을 접으며, 새삼 생각하게된 몇 가지를 적어본다.

첫째, 친일파의 스펙트럼은 참으로 넓고 복잡하고 상대적이다. 이 말은 친일파라는 용어가 절대적 개념으로 사용되면 역사적 폭력이 될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둘째, 역사의 진실은 윤봉길과 유관순만이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회색지대의 사람들도 갖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이름없는 다수의 사람들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자칫 전자의 사례만 교과서적으로 강조된다면, 그것 역시 역사의 중대한 왜곡 내지 폭력이 될 수 있다. 그냥 생활을 할 따름이던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윤봉길, 유관순 수준의 義烈을 요구하는 것은 공부 못하는 아이보고 '왜 1등 못하냐'고 야단치는 격이나 다를바 없다.

셋째, 사람이 '잘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당대에 잘 살아야 하나, 죽은 다음에 잘 살았다고 평가받아야 하나? 참으로 정답을 찾기 어려운 고민거리다.

넷째, 역사적으로 잘 알려져 있는 사람이라도, 설사 내가 그 사람, 그 사건을 안다고 해도 그것은 단지 일면의 지식인 것을 인정해야 한다. 좌옹의 증언에 따르면, 안재홍은 '썩은 달걀'이고, 홍난파는 '파렴치범'이고, 베델은 '사기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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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라이트라는 극우세력이 그 뿌리가 "윤치호"라는 것은 억측과 변명에 불과하다고 봅니다.

 

많은 분들의 일독을 권합니다.

 

 

 

 

 

 

 

 

 

 

출처 : 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
글쓴이 : 이성과감성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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