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테크/성지순례이야기

[스크랩] 정동제일교회, 배재학당, 이화학당 (서울 중구 정동)

명호경영컨설턴트 2009. 2. 1. 07:06

 정동제일교회 예배당  (출처- http://image.search.naver.com)


서울특별시 중구 정동(貞洞)에 있는 한국 최초의 프로테스탄트 교회 건축물이다. 1977년 11월 22일 사적 제256호로 지정되었다. 1895년 9월에 착공, 이듬해 헌당식(獻堂式)을 거행하고 1897년 10월 무렵에 준공된 고딕풍의 붉은 벽돌 건축물이다. 교회 내부는 평천장(平天障)에 별다른 장식 없이 간결하고 소박하며 기단(基壇)은 석조(石造)이고 남쪽 모퉁이에 종탑을 세웠다. 건물은 벽돌쌓기로 큰 벽체를 구성하고 아치 모양의 창문을 낸 고딕 양식의 교회당이다. 1926년 양쪽 모퉁이를 넓혀 삼랑식(三廊式) 평면형으로 교회 건물을 증축하였으며 1953년에는 6·25전쟁으로 반파(半破)된 교회를 수리하여 복원하였다. 정동교회의 역사는 1885년 10월 11일, 미국 북감리교 선교부 목사 아펜젤러가 정동에 마련한 '벧엘예배당'이라는 그의 집에서, 감리교회로서는 처음으로 한국인을 위한 공중예배를 가짐으로써 시작되었는데, 이 날 여자 한 사람을 포함한 4명의 신자가 예배를 드리고 세례를 받았다. 아펜젤러는 이보다 앞서 1885년 6월에 입국하였으나, 당시 조선 정부로부터 그리스도교의 전도사업이 공식적으로 승인되지 않아 배재학당(培材學堂)을 세워 신학문 교육부터 시작하였다. 정동교회는 1889년 한국 최초의 월간잡지 《교회》를 발간하여 자유주의 사상을 불어넣기 위해 힘썼고, 1897년에는 미국의 엡�청년회 운동을 도입하여 청년사업을 전개하였는데, 1922년에는 한국 최초로 여름성경학교를 개설하는 등 선구적인 선교활동을 전개한 한국 감리교회의 대표적인 교회이다. (네이버 백과사전) 

 

정동교회와 문화재 예배당 

 

정동교회와 문화재 예배당  

 

정동교회 100주년 기념교회

 

정동교회와 문화재 예배당

 

정동교회와 문화재 예배당

 

100주년 기념탑

 

100주년 기념교회 내부

 

정동 문화재예배당        

 

정동(문화재)예배당은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예배당으로 감리교 창시자 요한 웨슬리의 신앙정신이 담겨있는 영국 빅토리아풍 고딕식 붉은벽돌 건물로 이 땅에 예수그리스도의 몸된 성전을 최초로 형상화 한 것입니다. 한국감리교회의 창시자이며 정동제일교회의 설립자인 아펜젤러 목사는 1895년 연회에서 500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는 서울제일감리교회당을 정동에 건축하도록 허럭받은 후 4년동안 정동교회당 건축을 위해 모든 노력을 다했습니다. 이 예배당은 길이 77척 너비 40척 높이 25척으로 회당안에 좌우로 좁은 방 하나씩, 그 길이는 28척 너비는 14척 11평으로 설계되어 1895년 8월 7일에 착공된 후 하나님의 축복속에 순조롭게 건축이되었습니다. 그해에 기초공사를 끝냈고, 1896년에는 지붕을 얹었습니다. 1897년 6월에는 거의 완공되어 배재학당의 졸업식을 이 첫 예배당에서 하였으며 정동교인들이 입당한 것은 10월 3일 주일이었으나 1897년 12월 26일 성탄주일을 기해 하나님과 이 민족앞에 봉헌하였습니다. 이 예배당은 5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당시 최대의 건물이었으나 1914년 대부흥운동으로 교인수가 2천명 이상으로 늘어나자 1926년 모퉁이 주춧돌을 종각 남쪽 모퉁이 서편으로 옮겨놓고 동으로 10자, 남으로 14자, 합 60평형을 증축하여 175평 건물로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정동 문화재예배당,  복구된 정동예배당


1950년은 우리 민족에게 잊을 수 없는 해이다. 6. 25전쟁으로 말미암아 주요 관공서 기관이 파괴되고 주요기관이 마비되었다. 정동교회도 예외는 아니어서 강단이 폭격을 맞아 폭삭 무너져 내려앉았고 파이프 오르간이 망가져서 파이프가 휘고 부서져 파편이 여기저기 널려져 있었다. 교회는 절반이나 파괴되고, 목사관도 날아가고 없었다. 실로 처참한 광경이었다. 정동교회는 곧 1953년 11월 8일 임원회가 열리고 `정동교회당복흥위원회'가 조직된다. 그리고 최단시일 안에 중수할 것을 결의하면서 모은 헌금이 528,830원에 달했다. 한편 총리원에서도 보조금 70만원을 보내주어 총 수리비 1,225,000원을 조달하게 된다. 수축공사는 12월 3일에 착공하여 약 3주만에 완료된다. 그리하여 1953년도 성탄 축하예배는 새로이 복구된 예배당에서 드릴 수 있었다. 

출처 : Joyful의 뜰
글쓴이 : Joyful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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