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원제일교회 터 (출처- http://blog.naver.com/jeongdaiee) 철원제일교회는 페허만 남아있는 곳이다. 전쟁 당시 북한군이 숨어있다는 이유로 무차별 공습을 한 결과였다. 그때에는 철원의 중심부였다고 하는데 지금은 황량한 들판으로 남아있다. 1905년에서 1907년에는 장로교 웰번선교사가 담당했던 지역인데 선교지역 분할 후에 감리교회가 들어섰고 그것이 철원읍교회(철원제일교회)이다. 지금의 잔해는 1936년에 착공, 이듬해 완공된 서양식 건물이었다. 여기에서 백마고지가 보인다. 철원제일교회 터에서 400m 옆에는 북한의 옛 로동당사 건물벽이 남아있다.
수많은 재산과 인민들을 동원하여 지었다고 하는데 역사의 변혁기에 철원이 북쪽에 속했다가 남쪽에 수복된 아픈 사연을 말해준다. 철원제일교회는 교인수가 500여명에 달할 정도로 철원지역의 대표적인 교회였다. 1937년 1,200평 규모의 지하 1층, 지상 3층으로 건립된 교회건물은 웅장한 건축미를 자랑하며 한강 이북지역에서 아름다운 교회 중 하나로 손꼽혔다. 철원제일감리교회는 백마고지전적비 등 안보교육 현장으로 들어가는 초입에 위치한다.
철원제일교회 터 (출처- http://skysunshine.pe.kr)
철원제일교회 터
철원제일교회는 이화여대 캠퍼스를 설계 건축한 보리스에 의해 건립되었다. 1880년 미국에서 태어난 보리스는 대학 졸업 후 해외선교를 위해 1905년 일본으로 건너왔다. 그는 일본서 영어교사를 거쳐 오미미션을 조직해 일본과 한국에서 왕성한 미션건축 활동을 했다. 보리스가 어떤 경로로 한국내 미션건축에 참여하게 됐는지 명확하게 밝혀주는 자료는 없다.
단지 당시의 정황으로 미루어 짐작할 뿐이다. 감신대 석사과정 중인 이정선은 논문 <건축선교사 보리스의 한국내 건축활동>에서 ‘보리스가 주로 방문했던 지역이 서울과 평양, 부산, 개성 등 한국내 기독교 선교의 중심지라는 점에서 그의 한국 방문이 미션건축사업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짐작케 한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실제로 보리스는 1905년부터 1964년까지 60년 가까이 일본에서 활동하면서 한국내 건축사업과 관련 1908년부터 1938년까지 총 17회에 걸쳐 한국을 방문했다.
보리스의 초기 한국내 건축물은 서울에 건립된 협성여자신학교와 피어슨기념성경학원의 기숙사를 들 수 있다. 협성여자신학교는 1917년 설계돼 1918년 완공됐으며, 이 해에 피어슨기념성경학원의 기숙사도 완공됐다. 이듬해인 1919년 5월과 1920년 1월 한국을 방문한 보리스는 미국감리교 해외선교 1백주년을 기념하는 ‘백주년 기념운동’건축사업 관련해 감리교의 많은 미션건축물을 설계ㆍ건축했다. 감리교 계통의 공주영명학교, 해주남학교, 평양여학교, 송도(개성)학교 등이 이때 건립됐다.
이후 보리스는 1932년부터 1941년에 이르기까지 이화여대 캠퍼스 건립사업에 참여해 본관, 체육관, 음악관 등 총 10여 개의 건물을 설계 및 건축했다. 또한 그는 이 기간 중에 원산중앙교회(1935~37), 철원제일교회(1936~37), 태화사회복지관(1937~1939), 평양요한학교(1939~40) 등을 건립했다. 이 중 이화여대 캠퍼스는 보리스 자신이 각별한 애착을 갖는 작품이었으며, 당시 한강 이북지역에 있는 교회들 중 가장 아름다운 교회로 손꼽혔던 철원제일교회는 보리스를 대표하는 한국내 건축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철원제일교회 터에서 기도하는 미연합감리교회 북일리노이주연회 정희수 감독과 대표들
폭격의 흔적인 외벽을 붙잡고 기도하는 UMC 및 철원제일교회 복원추진 관계자들
미선교부의 지원으로 건축됐다가 미군의 폭격으로 파괴된 구 철원제일교회(본지 419호 소개) 현장에 미연합감리교회 북일리노이주연회(정희수 감독)의 대표들이 방문했다. 모두 9명으로 구성된 방문단은 서울남연회(김충식 감독)와 자매결연을 맺기 위해 내한했다가 교회의 소식을 듣고 이곳까지 찾아왔던 것이다. 이들은 지난 21일 본부 비서실과 철원서지방(방 현 감리사)의 안내로 한국전쟁과 선교의 역사를 간직한 이곳에 대한 전반적 설명을 듣고 기도회를 진행했다.
특히 이 자리에선 3년간의 법정투쟁을 통해 망실된 철원제일교회의 토지를 본부 유지재단에 편입시켰던 이금성 장로(장흥교회)가 전반적 설명을 진행했다. 이 장로는 “초기 미군 폭격이 시작돼 철원지역이 초토화돼도 이곳은 무사했는데, 인민군 병영으로 쓰이는 바람에 파괴되고 말았다”며 교회와 지역의 전반적 역사를 설명했다. 그는 또 “미 선교사들에 의해 종교부지로 쓰이다 망실된 재산에 대한 관심을 갖고 있다”면서 “이를 통해 선교사들로부터 시작된 신앙의 역사를 회복하는 것이 희망”이라고 덧붙였다. 북일리노이주연회의 자매결연위원회대표로 이 자리에 참석했던 로버트(Rev. Robert B. Campbell) 목사는 교회를 복원하고자 하는 감리교회의 노력을 전해 듣고, “파괴된 이 곳의 회복은 부활의 상징과 같다”며 “복원을 위해 일정의 역할을 하고 싶다”고 전했다. (출처- 기독교타임즈 이준협 기자, 200605)
철원제일감리교회 옛모습 찾는다…기감,통일염원 담아 복원 추진
일제의 압제와 수탈,공산 정권의 만행에 항거한 강원도 철원군 철원제일감리교회를 복원하는 사업이 추진된다. 특히 기독교대한감리회(감독회장 신경하)는 민족 화해와 평화통일을 기원하는 차원에서 이 교회 복원 사업을 적극 추진키로 해 관심을 끌고 있다. 신경하 감독회장은 주일인 26일 오후 철원제일감리교회의 잔해가 있는 철원읍 관전리를 방문해 동부연회 철원서지방 목회자들과 함께 교회 복원을 위해 간절히 기도했다. 그는 이 교회 1층 교육관이 있던 자리에서 목회자들의 손을 굳게 잡고 “민족 수난의 시대에 상당한 역할을 했고,동족상잔의 전쟁으로 폐허가 된 이곳에 교회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역사해달라”고 간구했다. 또 “전쟁의 어두움이 사라지고 복원의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 이 교회가 민족 구원의 큰 도구로 쓰이게 해달라”고 기원했다.
목회자들이 둘러본 철원제일감리교회는 이끼가 낀 출입구와 뼈대만 앙상한 벽 등 일부만 남아 있을 뿐 전쟁의 상흔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1920년 붉은 벽돌로 지어졌다가 1937년 9월 현무암 화강암 벽돌을 이용해 건평 198평(지하 1층,지상 3층)으로 지어진 석조건물의 위용을 찾을 수 없었다. 1919년 3월10일 박연서 목사를 중심으로 강원도에서 처음으로 만세운동을 일으켰고,1920년 일제에 의해 해산될 때까지 ‘철원애국단’을 조직해 항일운동을 벌였던 이 교회의 독립운동의 자취도 잔해 더미 속에 묻혀 있는 듯했다.
또 공산 치하에서 기독청년들이 반공 투쟁을 벌였고,박재봉 박재곤 장시화 목사 등 많은 교역자를 배출했으며,기도처이던 지하실에서 주민들이 학살된 것으로 전해지는 이 교회의 역사적 업적과 아픔도 무너져내린 벽돌 조각처럼 성도들의 뇌리에서 잊혀진 듯해 안타까움을 더했다. 이 지역 장흥교회 이금성 장로는 “일본 오사카예술대학 박물관에서 철원제일감리교회를 설계한 보리스씨의 설계도면을 찾았다”며 “실물 그대로 복원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허물어진 교회 터를 살펴본 신 감독회장은 철원엘림교회에서 철원서지방 역사보존위 위원장으로 활동하는 김진산 오지교회 담임목사를 ‘철원제일감리교회 재산관리 명예관리인’으로 임명하고 교회 복원을 위해 노력할 것을 당부했다.
신 감독회장은 “철원제일감리교회를 복원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면서 “철원서지방 독자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면 버거울 테니 동부연회를 통해 오는 10월 감리교단의 행정총회에 안건으로 올려달라”고 주문했다. 그는 연합군의 폭격으로 철원제일감리교회가 부서진 점을 상기시키면서 “다음 달 방문하는 북일리노이즈연회 정희수 감독과 오는 7월 세계감리교대회(WMC)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하는 조지 프리먼 세계감리교협의회 총무와도 복원 문제를 논의하겠다”고 약속했다.
기감은 철원서지방 역사보존위가 감리교 역사 발굴·기념·계승사업을 펼치고 있는 본부 산하 역사위원회에 교회 복원 문제를 건의하면 역사위원회에서 다루는 문제도 적극 검토하기로 했다. 한편 1905년 장로교 웰번 선교사가 설립했다가 1907년 선교지역을 나눌 때 감리교로 편입된 철원제일감리교회는 1920년대에 교인 330여명,주일학교 학생이 270여명에 이를 정도로 철원지역 부흥의 요람 역할을 해왔다. (국민일보/철원=염성덕 기자/ 2006-03-2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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