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동교회 연혁
1885. 05. 03 - 스크랜턴(william B. Scranton)선교사 서울에 도착하여 선교사역 시작.
1886 - 스크랜턴 선교사 정동병원 설립, 병원선교시작. 고종황제 시(施)병원명 하사.
1887 - 남대문 근처 상동으로 병원을 옮겨서 선교하다.
1888. 10. 09 - 상동교회를 창립하고 대지를 구입하다.
1893 - 스크랜턴 목사 초대 상동교회 담임목사 취임.
1895 - 1907 - 달성궁(현 한국은행터)내에 건물을 구입하여 한? 달성교회로 호칭하다.
1898 - 전덕기 입교, 엡윗 청년회 조직, 민족 독립운동을 전개하다.
1899 - 전덕기 공옥(攻玉)학교 설립, 신학문 보급, 6.25전쟁으로 소실.
1901 - 1907 - 역대 담임목사. 스웨어러(W.C.Swearer,2대,4대), 최병헌(3대),스크랜톤(5대)
1902. 05. 12 - 새 성전 건축 봉헌
1904 - 전덕기 상동청년학원설립, 신학문 보급과 민족운동전개, 1914년 일제 강제폐교.
1905 - 상동청년학원의 상동파가 주축이 되어 신민회를 조직, 구국민족운동 전개.
1907 - 1914 - 전덕기 목사 제 6대 담임.
1907 - 전덕기, 이회영, 이준(당시 상동청년회회장) 해이그 밀사파견 추진. 시행
1907 - 상동청년학원에서 주시경 선생을 통하여 민족운동의 일환으로 한글보급 운동
1907 - 1913 - 설립된 지교회-공덕동, 창의문(세검정), 연화봉, 북창동, 사촌리(마포), 녹번현교회.
1914. 03. 23 - 전덕기 목사 옥중고문으로 순국.
1919. 03. 01 - 교회가 삼일운동에 적극 참여 (민족대표 33인중 본 교회 출신 4인 - 최석모, 오화영,
이필주, 신석구)
1902년 준공되어 전덕기 목사를 중심으로 민족지도자들이 모여 에배드리던 옛 교회
1885년 오랜 봉건사회 제도의 굴레 속에서 살고 있을 때 스크랜튼 일가가 이 땅에 찾아왔다. 이들이 서울에 짐을 풀고 하나님 나라 건설이라는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 어머니인 스크랜튼 대부인과 스크랜튼은 당시 우리 민족의 소원이었던 근대화의 물결과 상응하면서 민중의 중심지 남대문에 상동교회를 세웠다. 이들 모자는 상동교회와 상동병원을, 어머니는 이화학당을 중심으로 한국의 복음화와 의료사업 및 최근세사에 불후의 업적을 남긴 셈이다. 상동교회는 ‘한국민족운동의 요람지’가 되었으며 요람지에서 길러낸 인물들은 모두 한국의 지도자가 되었고 전덕기 목사를 길러내 교회사에서 한 획을 그렀다.
양지 한국기독교순교자기념관 상동교회 전시장
상동교회가 운영하던 공옥학교, 1950.9.28. 서울 수복 때 전소되었다.
공옥학교 수업증서, 한국기독교순교자기념관 전시물
스크랜튼
상동교회 창설자 스크랜튼 선교사 편지, 1900.7. 옛 교회 머릿돌에서 발견, 한국기독교순교자기념관 전시물
스크랜튼의 묘지, 일본 고베 (출처- http://cafe.daum.net/kchistory)
1922년 3월 Japan Chronicle과 Japan Advertiser 기사에 의하면 스크랜튼은 고베에 온 후에 고베의 외국인촌으로 통하는 야마모토도리(山本通) 니죠메(二丁目)에 살면서 미국 영사관 고문 의사로 일하는 한편, 고베에 있는 외국인 전용병원(International Hospital of Kobe)의 자문으로 돕다가 별세하기 1년 전에 교통사고를 당해 몸이 쇠약해진 상태에서 폐렴으로 2주간 고생하다가 별세하여 그가 출석하던 올세인츠교회(All Saint's Church)에서 장례식을 치른 후 가츠가노(春日野) 외국인 묘지에 매장되었다고 한다. 유족으로는 부인과 네 딸이 있었는데 딸들은 모두 외교관 부인이 되어 첫째는 중국 봉천의 영국 영사 포터(Porter) 부인, 둘째는 일본 나가사키의 미국 영사 커티스(Curtice) 부인, 셋째는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의 영국 영사 패튼(Paton) 부인, 넷째는 대만 대북의 영국 영사 버틀러(Butler) 부인이 되었다. 장례식엔 부인과 과부가 된 둘째 딸만 참석했으며 장례 미사는 올세인츠교회를 담임하고 있던 브라이들(G.A. Bridle) 신부가 집전했다. 스크랜튼의 묘는 로코산(六甲山)에 있는 외국인공원묘지에 있으며 그 옆에는 1920-30년대 한국에서 활동한 바 있는 영(L.L. Young) 선교사의 무덤도 있다. 본래 이들은 고베 시내 가츠가노 공원 묘지에 묻혔었는데 고베 도시를 개발하면서 1961년 이 곳으로 옮겨오게 되었다.
(출처- “2002년 여름 일본 도쿄와 고베 답사기” 감신대 이덕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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