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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의 물결

명호경영컨설턴트 2009. 2. 15. 09:08

제3의 물결


  저자: 엘빈 토플러

  역자: 원창엽

  출판사: 홍신사상신서



      (하이디)


  내가 이 '제3의 물결'을 쓰게 되기까지는 그녀의 설득력 있는 권유에 힘입은 바

크다. 이 책의 곳곳에는 나의 사상에 대한 그녀의 끊임없는 비평과 편집인으로서의

전문가적 충고가 배어있다. 그녀의 공헌은, 동료로서, 지적 반려로서, 친구로서,

연인으로서, 그리고 아내로서의 역할 이상이었으리라.

     

(서론)


테러리스트들이 인질을 잡아 죽음의 개입을 연출하고 제3차 세계대전의 발발설이

나도는 가운데 각국의 통화는 변동을 거듭하고 있다. 곳곳에서 대사관이 불타오르고

각지에서는 기동타격대가 만반의 출동태세를 갖추고 있다. 이러한 상황아래 우리는

날마다 공포에 질려 신문을 들여다보고 있다. 불안심리를 민감하게 반영하는 금값은

터무니없이 폭등을 계속하고 있다. 금융기관의 경영기반이 흔들리고 있다. 걷잡을

수 없는 인플레이션이 맹위를 떨치고 있고 세계 각국 정부는 속수무책인 채

무능상태에 빠져 있을 뿐이다.

  이러한 상황아래 어디를 가도 트로이의 멸망을 예언한 카산드라의 그것과 같은

불길한 예언의 대합창소리가 들려오고 있다. 거리의 경제가들은 세상이 미쳤다고

하는가 하면 전문가들도 세계의 추세가 파멸을 향해 치닫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이 책은 이러한 견해와는 전혀 다른 의견을 말하고자 한다.

  세계는 결코 정상적인 길을 벗어나 광기 속을 헤매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얼핏

무의미한 사건들이 뒤를 이으며 불협화음을 내고 있는 것 같지만 실은 그러한

사건들의 배후에는 놀랄 만큼의 희망적인 하나의 경향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의 주장이다. 이 책을 통해서 나는 그러한 희망에 이어지는 그 경향에 대해 말해

보고 싶은 것이다.

  '제3의 물결: The Third Wave'은 인류의 역사가 종말을 맞이하려는 것이 아니라

지금 막 사작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위한 책인 것이다.


  오늘날 하나의 거센 물결이 전세계에 밀어닥치고 있다. 사람들이 일을 하고,

여가를 즐기고, 결혼을 하고, 자식을 양육하고, 드디어는 은퇴하는 환경을 둘러싸고

이 물결은 새롭고도 기묘한 상황을 연출시키고 있다. 기업인들은 밤낮없이 격변하는

경제의 흐름과 맞서 분전하고 있으며 정치가는 자기들에 대한 지지율이 극단적으로

상승하기도 하고 하강하기도 하는 현실에 놀라고 있다. 대학과 병원, 그 밖의

연구기관들은 인플레이션에 대해 필사적인 투쟁을 계속하고 있다. 가치체계가

산산조각으로 분열되었고 궤멸되었다. 가정이나 교회, 국가라는 구명보트도 격렬하게

바닷속으로 내던져졌다.

이같은 격심한 변화에 직면하여 우리들은 그러한 것들이 불안정하고 분열과 혼란을 되풀이하고 있는 세태의 반영이라고 생각하며 사건을 개별적으로

받아들이기가 쉽다. 그러나 좀더 냉정히 그리고 더 장기적인 안목에서 본다면

하나하나의 현상에 이끌려 지금까지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면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우선, 오늘날 일어나고 있는 여러가지 변화의 대부분은 서로 무관하지 않다는

점이다. 또한 제멋대로 그와 같이 되는 것도 아니다. 예를 들면 핵가족의 붕괴, 지구

전체의 에너지 위기, 신흥종교의 융성, 전화와 텔레비젼의 보급, 자유근무시간제의

일반화, 유급휴가, 건강보험 등 일련의 부가급여의 증대, 캐나다의 퀘벡주에서

프랑스의 코르시카섬에 이르기까지 세계 각지에서 일어나고 잇는 독립운동 등의

현상은 제각기 관계가 없는 사건들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주의깊게 관찰해

보면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현상 외에도 무관계한 것처럼

보이는 여러 사건들은 서로 관련을 갖고 있다. 그러한 현상은 산업주의의 종말과

새로운 문명의 출현이라는 보다 큰 현상의 일부를 이루고 있을 뿐이다.

  여러가지 현상들 하나하나를 고립된 변화로 보아서 이 커다란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의사결정은 목표를 상실하거나 자기 부정적인 것일 수밖에 없게 된다.

또한 정부차원에서 말한다면 위기상태 속에서 계획도 희망도 비젼도 없으면서

정책을 억지로 밀고 나가는 격이 되고 만다.

  오늘날 세계를 지배하는 세력들이 어떻게 충돌하고 있는지를 알아야 하며 거기에

대한 체계적인 기초지식이 없다면 우리는 마치 폭풍우 속에서 위험한 암초 사이를

나침반도 해도도 없이 항해하려는 승무원과도 같은 상태에 놓이게 된다. 전문가들이

서로 대립하고, 단편적인 자료와 불필요한 정보로 면밀한 분석이 난문하는

문화상황에서의 종합적 분석은 유용할 뿐만 아니라 극히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이유로 해서 '제3의 물결'은 대대적인 종합적 분석을 시도한 책이라 할

것이다. 이 책은 우리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준 지금까지의 문명에 대해 서술함과

동시에 우리들 안에서 지금 꽃피고 있는 새로운 문명의 포괄적 모습을 신중하게

그려 보이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문명은 극히 혁명적인 것이어서 지금까지 우리가 받아들이고 있던 모든

정설에 도전하고 있다. 낡은 사고방식이나 낡은 공식, 도그마(dagma), 낡은

이데올로기는 과거에 아무리 유효한 것이었고 존중되어왔다 해도 벌써 현실에

대응하지 못하게 되었다. 새로운 가치관이나 기술, 새로운 지정학적 관계, 새로운

생활양깃이나 커뮤니케이션 방식 등이 서로 부딪치는 가운데 급속히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세계는 완전히 새로운 발상, 새로운 유추, 새로운 분류, 새로운

개념을 요구하고 있다. 우리들은 내일의 세계에 살게 될 태아를 과거의 연습 속에

가두어 둘 수는 없다. 지금까지 정통이라고 알려졌던 행동이나 마음가짐도 이제는

통용되지 않는다.

  이 미지의 새로운 문명에 관해 기술을 전개해 가는 동안 세상에서 지금 범람하고

있는 건방진 염세주의에 반박할 수 있는 논거가 점차 분명해진다.

절망이^6,36^절망을 말하고 노력을 포기하는 제멋대로의 행동^36,3^이미 10 년

이상이나 문명을 지배했다. (분명, C.P. 스노가 어디에선가 언급한 일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절망은 단순히 죄일 뿐만 아니라 도저히 시인할 수 없는 부당행위인

것이다. 이것이 '제3의 물결'의 결론이다.

  나는 쓸데없는 낙천적인 환상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니다. 핵무기로 인한 세계의

파멸, 환경파괴와 광신적 인종차별, 국지적인 폭력사태 등 오늘날 우리들이 직면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서는 더 이상 부연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나 자신이 이러한

위험들에 관해 지금까지 몇번이나 집필한 바 있고 아마 앞으로도 또 쓰게 될

것이다. 전쟁, 경제의 와해, 대규모적인 기술의 혼란, 이런 것들 중에서 어느 하나를

보더라도 미래의 역사는 파멸적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에도 불구하고 변화하고 있는 에너지 양식과 새로운 생활양식과의 관계 혹은

새로운 생산방식과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은 자기가 한다는 자조운동과의 관계 등

(이런 것은 한두 개의 예에 불과하지만) 새로 태어나고 있는 상관관계를 조사해

보면 우리는 오늘날 심각한 위기를 조성하고있는 대부분의 상황이 실은 매혹적이며

새로운 가능성에 이어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제3의 물결'은 우리들에게 이러한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려는 책이다. 이 책은

파괴와 황폐의 속에서 우리의 새로운 생활이 시작되려 한다는 주목할 만한 증거를

잡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이 제3의 물결문명은

통찰력과 약간의 행운이 주어진다면 지금까지의 어떤 문명보다도 건전하고

바람직하며 인간에게 보다 알맞은 민주적인 문명이라는 것은 두말할 여지없이

분명해지고 있다.

  만일 이 책의 이론이 대체적으로 옳은 것이라면 우리는 앞으로 폭풍과 위기로

가득 찬 시기가 과도기적으로 몇년간 계속된다 해도 장기적으로는 낙관적인 입장에

설 수 있다는 유력한 논거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제3의 물결'을 집필하고 있던 지난 몇년 동안 나의 강연을 듣는 청중들에게서

'제3의 물결'이 먼저 저술했던 '미래의 충격(Future Shock)'과 어떻게 다르냐는

질문을 받았다.

  한 권의 책을 통해서 저자와 독자의 견해가 완전히 일치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나는 '제3의 물결'은 형식면에서나 논의의 초점이라는 면에서도 '미래의

충격'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생각한다. 우선 '제3의 물결'은 '미래의 충격'보다

미래는 물론 과거에 대해서도 시간적으로 훨씬 광범위한 영역을 다루고 있다. 또

단순히 사실을 기술하는 데 그치지 않고 앞으로의 시대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하는 것을 전망하고 있다. 또한 책으로서의 구성도 다르다. (예리한 통찰력을 가진

독자라면 이 책의 구성이 바로 물결과 물결의 충돌이라는 핵심적 비유를 반영하고

있음을 간파했으리라 생각한다.)

  내용에 있어서의 차이는 더욱 분명하다. '미래의 충격'은 앞으로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가 하는 점에 주목했던 데 반해 이 책에서는 이러한 변화가 개인이나

사회에 어떤 희생을 강요하는가 하는 점에 중점을 두었다. '제3의 물결'은 변화에

대한 적응의 어려움에 주목했고 동시에 어떤 사태가 일어났을 때 그 변화에 재빨리

적응하지 않으면 얼마나 큰 손실이 따르는지를 강조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나는 '미래의 충격'에서는 '너무 이른 미래의 도래'에 대해 쓰면서도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 미래의 사회에 관해서는 어떤 그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스케치를 한 것은 아니었다. '미래의 충격'의 초점은 변화의 방향이 아니라 그

과정이었던 것이다.

  이 책에서는 렌즈의 초점이 뒤바뀌어 있다. 나의 관심은 그러한 변화의 진전보다

그 변화가 우리의 생활을 어떻게 변화시키려 하는가 하는 변화의 방향에 중점을

두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해서 두 권의 책은 본편과 속편이라는 관계가 아니라

양자가 상호보완해 가면서 보다 큰 체계를 이루려고 하는 자매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두 책의 성격은 매우 다르다. 그러면서도 어느 하나를 읽게 되면 다른 책에

대한 이해가 더 깊어질 것이다.


  이 책처럼 방대하고 종합적인 저술을 시도하려면 단순화, 일반화된 요약이

필수불가결한 일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렇게 광범위한 영역을 망라한 문제를

한 권의 책으로 묶는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다.) 그 결과 이 책은 문명을

농업단계의 제1의 물결, 산업단계의 제2의 물결, 그리고 지금 막 시작된 제3의 물결,

이렇게 3 단계로 나누었다. 역사가 중에서는 이렇게 구분한 데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농업문명이 전혀 다른 여러가지의 문화로 구성되었다는 것, 산업주의 자체가

현실적으로는 실로 여러가지 발전단계를 겪었다는 것을 지적하기는 쉬운 일이다.

과거를 12 단계나 38 단계, 또는 157 단계로 나누는 일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미래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한없이 세분화되어 큰 구분을 파악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의 문제를 그런 식으로 취급한다면 한 권의 책이

아니라 도서관 하나쯤은 필요하게 될 것이다. 우리의 목적을 위해서는 다소

조잡하더라도 보다 단순한 구분이 효과적인 것이다.

  방대한 범위를 다루고 있는 이 책은 다른 이유에 의해서도 단순화할 필요가

있었다. 예를 들면 나는 가끔 제1의 물결, 혹은 제2의 물결이 이러저러한 일을 했다

하면서 문명 자체를 주체화할 때가 있다. 물론 문명 자체가 어떤 행동을 할 수

없다는 것은 나도 충분히 알고 있고 독자도 알고 있을 것이다. 행동을 일으키는

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인 것이다. 그러나 때에 따라서 문명이 이러저러한 일을

했다라고 쓰는 것으로 시간이 절약되고 쓸데없는 논쟁을 피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학자, 미래학자, 경제계획의 입안자에서 점성술사나 전도사에 이르기까지

누구하나 미래를 알고 있는 사람은 없으며 또 알 수도 없다. 현명한 독자들은 그런

것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없으며 또 알 수도 없다. 현명한 독자들은 그런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내가 어떠한 사태가 일어날 것이라고 말하더라도 독자들은

당연히 그런 일이 일어날 것에 대한 불확실성을 감안해 가면서 읽어 줄 것이라

생각하며 쓰고 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불필요한 유보가 많이 쌓여서 뭐가 뭔지

모르게 되어 도저히 읽을 수 없는 지리한 내용의 책이 되고 말 것이다. 도대체

사회적 예측이라는 것은 아무리 전산화된 자료를 이용한다 해도 결코 객관적인

가치관과 무관계하다고는 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로는 과학적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제3의 물결'은 객관적인 예측의 책은 아니며 그 내용에 대해서도

과학적 근거가 있다고 주장할 생각도 없다.

  그렇지만 이 책에서 전개시킨 사고방식이 자의적이며 체계가 '권력영역'이라는

면에서 분석하고 그 영역들이 모두 오늘날의 세계에서 어떻게 혁명적 변혁을

이룩하고 있는가에 대해 설명해 준다. 그리고 앞에서 말한 네 개의 영역 상호간의

관계를 명확하게 한 것은 물론 더 나아가 '생물영역', '심리영역'과의 상관관계를

밝히려고 노력했다. 왜냐하면 이러한 인간 상호간의 심리적, 내면적 연결을 통해야만

비로소 외부의 여러 변화가 인간의 사생활에 영향을 미치게 되기 때문이다.

  '제3의 물결'에서는 문명이라는 그 자체가 어떤 종류의 과정과 원칙을 사용하여

현실을 설명하고 그 문명의 존재 자체를 정당화하는

'슈퍼이데올로기(superideology)'를 발전시킨다라는 사고를 바탕에 두었다.

  이러한 체계, 방법, 원칙의 상관관계를 이해하고 그것들이 상호간에 어떤 변화를

강요하며 그것에 의해서 일어나는 강력한 변화의 흐름이 어떤 것인가 하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면 현재 우리들의 생활에 밀려오고 있는 거대한 변화의 물결에 대해

보다 명확한 이해를 구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서 사용한 중요한 비유는 이미 밝힌 바와 같이 변화의 물결이 서로

충돌함으로써 생겨난 현상들이다. 이 물결이라는 비유는 별로 독창적인 것은

아니다. 노버트 엘리어스는 그의 저서 '문명의 프로세스: The Civilizing

Process'에서 '수세기에 걸쳐 완성도를 높이고 있는 문명의 물결'에 대해 언급한 바

잇다. 1837 년에는 미국 서부의 정착화 과정을 설명하면서 계속적으로 밀려오는

'물결'에 비유한 적도 있었다. 우선 초창기의 개척자, 뒤를 잇는 농민, 그리고

기업인의 이주가 '제3의 물결'이라는 것이었다. 1893 년에는 프레데릭 잭슨 터너가

그의 고전적 명저 '미국 역사에 있어서의 프로티어의 의미: Significance of the

Frontier History'에서도 이와 비슷한 표현을 사용했다. 따라서 물결이라는 비유는

별로 신선한 것도 아니며 다만 그것을 오늘날의 문명적 변화에 적용시켰다는

점에서는 새로운 것이다.

  물결이라는 비유를 이 책에서 사용한 것은 참으로 적절한 표현이었다는 것이

밝혀지고 잇다. 물결이라는 개념은 극단적으로 다양하고 방대한 정보를 조직화하는

데에만 사용되는 것은 아니다. 격동하는 변화의 배후를 꿰뚫어 보는 데에도 소용이

되는 것이다. 물결이라는 비유를 사용함으로써 혼란스러웠던 많은 것들이 명확하게

된다. 일상적으로 자주 보던 낯익은 것들이 새로운 조명 밑에서 간혹 놀랄 정도로

신선한 것으로 드러나기도 하는 것이다.

  내가 변화의 물결이 서로 충돌하고 겹치면서 우리들의 주변에 모순과 긴장을 낳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서부터 변화 그 자체에 대한 생각마저도 달라지고 말았다.

교육이나 건강문제에서 기술, 혹은 개인생활에서 정치에 이르기까지 각양각색의

변혁 속에서 단순히 표면만의 변화, 즉 과거 산업사회의 연장에 불과한 변화인지

아니면 정말로 혁명적인 변화인지를 구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가장 유효한 비유라 하더라도 부분적인 진실만을 제시하는 데에 불과하다.

그 어떤 비유도 도저히 전체적인 내용을 모든 측면에서 설명해 줄 수는 없다.

따라서 미래의 전망은 커녕 현재에 관한 어떠한 관찰도 결코 완전한 것 또는

최종적인 것으로 나타내지는 못한다. 내가 마르크스주의자였던 10 후반에서 20 대

초반 당시^6,36^벌써 25 년 전의 일이지만^3,63^모든 청년들이 그러한 것처럼 모든

문제에 대해 해답을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라나 나는 곧 내 자신이

'답'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편견에 찬 일방적이고 진부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분명히 말해서 대개의 경우 그릇된 질문에 대한 옳은 해답보다는 옳은

질문 자체가 중요하다는 것에 생각이 미친 것이었다.

  나는 '제3의 물결'이 이것저것 문제에 답하는 것과 동시에 여러가지 새로운

질문도 이끌어 내게 되기를 원하고 있다.

  지식은 완전할 수가 없고 전체적인 진리를 나타내는 비유도 있을 수 없다는

인식은 그 자체가 참으로 인간적이다. 이러한 인식만 있으면 광신에 빠질 염려는

없다. 반대론자에게도 부분적인 진실은 있는 법이다. 자기자신이 과오를 범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인정케 하는 것이다. 규모가 방대한 통합적 견해를 전개하려 하면

할수록 잘못을 저지르는 위험성이 따른다. 그러나 평론가 조지 스테이너는 '보다 큰

질문을 하는 것은 사물을 잘못 다루게 되는 위험성이 있지만 전혀 질문은 하지 않는

것은 지적 생활을 속박하는 것과 같다.'고 주장했다.

  개인의 생활이 여러 갈래로 조각나고 기존의 사회질서가 붕괴하는 한편

기묘하고도 새로운 생활양식이 팽배하게 일어나고 있는 이 폭발적인 변화의 시대에

우리들의 미래에 관한 최대의 질문을 던지는 것은 단순한 지적 호기심의 문제는

아니다. 이것은 인류의 생존에 관한 문제인 것이다.

  자각하고 있든 아니든간에 우리 모두는 이미 새로운 문명창조에 참가하거나 혹은

그것을 거부하는 세력에 가담하는 둘 중의 어느 한 편에 속해 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그 어느 쪽을 선택하든 '제3의 물결'이 도움이 된다면 좋겠다는 것이

나의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