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요부인의 재판[원제:The Trial of Maname Callaux]
미시사(微視史)란 어떤 사건을 전체적인 면에서가 아니라 개별적으로 포착하여 아주 작은 사실들을 파헤치는 역사서술방식으로 '사회적 경제적 행위들을 문화적 텍스트로 간주하면서, 구체적인 개인이라는 창을 통해 역사적 리얼리티의 복잡 미묘한 관계망을 이해하고자 하는 시도'로 정리된다. 미시사는 '거대한' 사회사에 대한 반작용으로 나타난 역사 방법론으로 전체의 숲만 보고 구체적인 나무와 생태를 무시한 사회사의 시각을 보안 혹은 대체안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미시사가 이탈리아에서 기원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 미시사 연구는, 1970년대에 유럽 각국과 미주 대륙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일어난 새로운 학문 운동이었다. 이 새로운 흐름이 '미시사'라는 이름을 얻기도 전인 1970년대 후반부터 독일에서는 일군의 역사학자들이 산업화에 대한 일반적인 이론을 미시적으로 검증해보려는 연구를 실행하고 있었다. 막스-플랑크 역사연구소를 거점으로 삼은 이들의 미시적 연구는 일상사, 역사인류학, 소규모 집단이나 지역사회에서의 사회관계에 초점을 둔 문화인류학의 연구 방법을 적극 수용하여 역사적 행위에 나타난 행위의 모형을 찾아내는 역사학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대표적인 미시사적 역사 서술서로는 <카를로 진즈부르그>의 『치즈와 구더기』, 『마녀와 베난단티의 밤의 전투』, <나탈리 제먼 데이비스>의 『마르탱 게르의 귀향』, <에드워드 베렌슨>의 『 카요부인의 재판』등이 있다.
전직 프랑스 총리인 조제프 카요의 부인 '앙리에트'는 《르 피가로》의 편집장인 '가스통 칼메트'를 총으로 쏴 죽였다. <에드워드 베렌슨>의『카요 부인의 재판』은 1914년 프랑스에서 벌어진 이 세기적인 살인사건의 재판을 정리한 책이다. 이 책은 치정과 성의 문제, 전쟁, 대중 언론 등이 복잡하게 얽힌 세기의 스캔들과 당시 부르주아의 사회의 일면이 어떤지를 신문, 잡지, 성명, 발언, 소설, 책 등등 세세하고 잡다한 자료들을 통해서 보여준다.
「1914년 3월 16일 저녁 6시, 앙리에트 카요가 《르 피가로》의 편집장 가스통 칼메트의 사무실을 찾아왔다. 지난 석 달 동안 칼메트가 이끄는 보수 신문《르 피가로》는 전직 총리이자 좌익 성향의 급진당 당수인 앙리에트의 남편 조제프 카요를 공격하는 캠페인을 벌여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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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요 부인은 오후 늦은 시간에 사무적인 방문을 하는 것으로 보기에는 지나치게 격식을 차린 드레스에 모피 코트를 입고 소박한 모자를 쓰고 왔다. 커다란 모피 머프가 코트 양 소매를 연결하고 있었고, 앙리에트의 양손은 머프 안에 들어가 있었다. 칼메트가 미처 말을 꺼내기도 전에 그녀가 물었다. “내가 왜 찾아왔는지 아시나요?”
편집장이 예의 바르게 대답했다. “전혀 모릅니다, 부인.”
그러자 앙리에트는 아무 말 없이 모피 머프에서 오른손을 꺼냈다. 그녀의 손에는 작은 브라우닝 자동권총이 쥐여 있었다. 여섯 발이 연달아 발사되었고, 칼메트가 배를 움켜쥐며 바닥에 쓰러졌다.」
[앙리에트 카요부인]
이 사건은 남편을 집요하게 공격하는 기사를 써온데 이어, 남편이 전(前) 부인에게 보낸 뜨거운 연애편지를 공개한 것이 빌미가 되었다. 사건 3시간 전 구입한 권총으로 침착하게 여섯 발을 쏜 카요 부인은 치열한 공방이 전개된 재판 끝에 무죄를 선고 받았다. 일단 분노나 질투, 증오에 휩싸이면 근본적으로 나약한 여자들은 쉽게 통제를 잃는다는 게 배심원들의 판단이었다. 미친 사람이 된 나머지 일을 저질렀다는 그녀의 법정 진술이 배심원들에게 완벽히 먹혔다.
이 사건은 당시 1차 대전을 앞둔 상황에서 프랑스 사회의 이목을 전쟁보다 더 집중시켰다. 이 사건의 재판은 프랑스 역사 최초로 대통령이 증서를 제출한 재판이기도 했고, 드레퓌스 재판에서 드레퓌스와 에밀 졸라를 변호했던 변호사인 페르낭 라비로가 앙리에트의 변호를 맡아 시민들의 관심을 증폭시켰다. 카요부인에 대한 재판은 ‘냉철하게 계획된 살인이냐, 명예를 지키려는 격정에 휩싸인 감정의 폭발이냐’를 두고 대단한 설전을 벌였다. 이 처럼 단순하고 명백한 사실을 두고도 정치적 입장과 이해에 따라 180도 다른 판단이 난무했다. 또 사건의 주인공이 거물 정치인의 부인인 '여성'이라는 점, 좌파와 우파의 권력 다툼이 걸려있다는 점, 프랑스-프로이센 전쟁 후 프랑스의 군사력 쇠퇴를 염려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팽배했다는 점이 사건을 더욱 화려하게 채색했다.
저자는 문학적 상상력을 더해 이 사건을 마치 한 편의 다큐멘터리 영화처럼 만들어 과거를 되살린다. 피소자와 판사 등 6명의 주요 인물들을 내세워 각자의 관점을 따라간 여섯 개의 장은 20세기 초 프랑스 사회를 대중과 매체라는 주제에 맞게 재구성해 낸다.
저자는 극적이고 황당하기까지 한 살인 사건의 재판을 통해 당시 프랑스 사회를 지배하던 문화와 이데올로기를 파고들어 당시 프랑스 시대를 재구성했다. 20세기 초 벨 에포크[Belle Epoque : 아름다운 시절]라 불리던 시기의 프랑스 사회를 미시사적인 방법론을 통해 드러낸다.
공적인 순결과 사적인 일탈이 교묘하게 뒤섞였던 이 '위선의 시대'는 거물 정치인과 아내, 전처, 피살당한 우파 언론인의 친구들인 유명 작가 등이 재판정에서 온갖 시시콜콜한 개인사까지 증언함으로써 가면이 벗겨져 버렸다. 저자는 카요 부인에 대한 무죄 판결이 '벨 에포크'의 종말을 의미한다고 설명한다. 재판 기록과 각종 언론 보도, 사진 대신 사용된 재판정 일러스트 등을 면밀하게 분석, 심리학과 성 정치학적 해석을 이끌어낸 연구 방법과 흥미진진한 소설처럼 써 내린 문체가 읽기에 흥미를 더한다.
에드워드 베렌슨(Edward Berenson)
뉴욕대학교에서 역사학을 가르치는 교수로, 근대 프랑스 사회와 문화사와 근대 유럽 역사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프랑스의 대중영합주의 종교와 좌익 정치가들,1830~1852』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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