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에서 아파트를 짓기도 전에 분양하는 ‘선(先)분양’은 절대 악으로 통한다. 선분양하에서는 건설업체들이 봉이 김선달처럼 장사를 한다. 부작용도 많다. 입주하고 보니 아파트 바로 앞에 공동묘지가 있다든지, 고압선이나 소각장이 들어서 있는 경우도 있다. 건설업체들이 배포한 조감도에 나와 있는 멋진 공원이나 학교가 주차장으로 둔갑하는 마술을 부리기도 한다.
더군다나 한국처럼 선 분양이 일반화된 나라도 드물다. 선진국 뿐만 아니라 우리보다 후진국이라는 중국·베트남 등도 후 분양이 일반적이다. 건설 업체에 대한 불신 때문에 선 분양할 경우, 아파트를 사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중국·카자흐스탄 등에 진출했던 한국 건설업체들이 대부분 선 분양에 실패한 것도 이런 이유이다.
그렇다고 해서 후분양이 절대선은 아니다.
선 분양을 경제학적 논리로 분석하면 이렇다. 아파트가 입주할 시점의 가격에 대한 리스크를 계약자와 건설업체가 공유하는 게 선 분양이다. 공사(2~3년)가 끝난 후 가격이 오르면, 계약자에게 1000% 유리한 구조이다. 반면 입주시점에 가격이 하락한다면 건설업체에 1000% 유리한 구조이다.
즉 선 분양이나 후 분양이냐가 아파트 가격을 낮추는 방법은 아니라는 것이다. 일부 지역은 입주시점에 분양가 만큼, 프리미엄이 붙은 아파트들도 많다. 건설업체들이 후분양을 한다면 과연 프림미엄을 배제하고 분양가를 책정하겠는가. 가령, 선분양시 분양가(원가+이윤)가 3억원 하는 아파트가 입주시점에 6억원이 됐다고 하자. 건설업체들은 3억원이 아니라 시세 상승을 반영해서 5억원, 혹은 5억5000만원쯤에 분양가를 책정할 것이다.
민간업체뿐만 아니라 공공기관이 분양을 해도 근본적으로 차이가 나기 어렵다. 공공기관이라고 해도 시세가 6억 원인 아파트를 원가가 3억 원이라고 해서 3억 원만 받고 팔기는 어렵다. 정부 스스로 아파트 분양을 ‘로또’로 전락시켰다는 비난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 원가로 분양하는 것이 반드시 바람직한 것도 아니다. 가령, 원가 3억원, 시세차익 3억원이라면 공공기관도 4~5억원쯤에 분양가를 책정, 시세차익 1억~2억원을 서민주택 공급에 사용하는 것이 합리적일 수 있다.(물론 공공택지를 무주택자들의 재산형성의 수단으로 정부가 인정하고 제도 자체를 100% 바꾼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주택가격 상승기에는 선 분양이 소비자에게 유리하다. 물론 주택가격이 하락하면 건설업체는 후 분양 하에서는 절대적으로 불리하고 소비자가 유리하다. 선 분양으로 분양가를 3억 원으로 책정했다. 하지만 공사가 끝난 시점에 주택 경기가 급랭해서 주변 시세가 2억 원으로 떨어졌을 경우, 건설업체는 3억 원의 분양가를 고집할 수 없다. 결국, 집을 팔기 위해 분양가를 떨어뜨릴 것이다.
후 분양이 소비자 선택권 측면에서 월등히 뛰어난 것은 아무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가격과 관련해서, 특히 가격 상승기에는 선 분양이 후분양보다 소비자에게 유리하다. 국토연구원이 경기도 죽전택지개발지구의 개발이익(시세차익)에 대해 연구해 발표한 결과, 소비자가 가장 큰 차익을 얻었다. 다음이 건설사, 토지공사였다. 만일 후분양을 했다면, 건설사-토지공사-소비자였을 것이다.
좀 더 근본적으로 생각해보자.
왜 한국에서는 선 분양이 주류를 이루는 것일까. 일부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건설업체의 로비로 발생한 정부와의 유착관계 때문일까. 유착관계 때문이라면 검찰이 책임을 방기한 것이다. 검찰이 사정의 칼을 정말 열심히 휘두른다면 선분양이 소멸할 것이다.
세상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선 분양’ 한국에 뿌리를 내리게 된 근원을 살펴보면 한국적 특수성이라는 것이 상당부분 작용했다.
우선, 한국 사회는 전세계적으로 유래가 없을 정도로 주택에서 아파트가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이다. 전체 주택의 50%가 아파트이고, 주택공급의 70~80%가 아파트로 이뤄진다. 아파트는 수 백가구에서 수 천가구의 대단지도 많다. 단지규모가 크면 사업비가 수천억원이 넘는다. 후 분양이라면 수천억원의 자금을 건설업체가 선 투자해야 한다. 불행하게도 한국은 건설업체들이 선 투자를 할 수 있을 만큼, 자체 자금에 여유가 있지도 않고 건설업체에 자금을 빌려줄 금융제도도 발달해 있지 않았다.(물론 공공기관은 가능하다)
그렇다면 선진국은 왜 후 분양이 일반적일까. 아파트의 비중이 일본만 해도 10% 정도에 불과하다. 대부분이 주택이고 (아파트에 비해) 소규모 단지가 많다. 단독주택의 경우, 건설기간이 6개월에 불과하고, 단독 주택의 특성상 순차적으로 건설이 가능하다. 선 투자자금이 한꺼번에 들지 않는다. 거기다가 금융제도도 발달해 있다. 아파트의 비중이 절대적으로 높은 홍콩 역시 선 분양이 상당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대규모 단지는 대부분 후분양하고 소규모 단지는 후분양한다. 후분양단지는 당연히 시세에 맞춰 분양가가 책정된다.
둘째, 집값 상승에 대한 소비자들의 기대감이다. 한국의 모든 주택시장이 선분양이라고 생각하면 절대 오산이다. 서울에서도 중소업체가 짓는 소규모 아파트, 단독주택-빌라-다세대 등 상당수가 후 분양으로 공급되고 있다. 소비자들이 가격 상승 가능성이 별로 없다고 믿는 아파트는 건설업체들이 선분양해도 아무도 사지 않는다. 집값 상승 가능성이 낮은 지방에 준공 후 미분양주택들도 널렸다. 집값이 지속적으로 하락한다면(소비자가 그렇게 믿는 다면) 정부가 개입을 하건, 시민단체가 떠들든지 말든 100% 후 분양으로 바뀐다. 실제 발라-단독주택 등은 거의 100% 후 분양이다.
셋째, 정부가 주택공급을 늘리기 위해 선 분양을 활용해왔다. 주택보증이란 기관을 만들어 건설업체가 부도가 나도 공사를 대행해주는 시스템을 만들어 놓고 운영하고 있다. 후분양이라면 필요 없는 보증시스템을 만든 것은 주택의 공급을 늘리기 위한 수단이었다. 정부가 왜 주택공급을 늘리려 했을까. 그것은 주택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고 정부가 믿었기 때문이다.(물론 지금은 상당히 다르다)
결론적으로 아파트 건설자금에 대한 금융제도, 아파트 분양가 산정방법, 아파트 가격 상승에 대한 기대감, 중소업체와 대형업체의 양극화 등 다양한 문제를 해결해야 후분양이라는 제도가 정착될 수 있다.
세상은 흑백논리로 재단할 수 있을 만큼, 간단하지 않다. 선 분양은 단점이 물론 많다. 하지만 우리의 독특한 시장구조가 만들어 놓은, 그래서 뿌리가 깊은 제도라는 사실을 잊어서 안 된다. 이를 바꾸려면 그만한 대가를 치뤄야 한다.
부동산이 사회적 초점이 된지 꽤 오래됐다. 하지만 논쟁은 언제나 흑백논리가 지배했고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문제의 악화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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