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테크/역사이야기

[스크랩] <연의-촉한정통론> (1)

명호경영컨설턴트 2009. 2. 28. 06:19

나관중의 삼국지연의가 촉한정통론을 기본 밑바탕으로 깔고 저술되어졌다는 사실은

웬만큼 삼국지를 접해보신 분들이라면 거진 다 알고 계실 이야기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신 분들은 적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그에 대한 나의 생각을 한 번 끄적여 보고자 한다.

또한, 이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께서 경어체를 쓰지 않는 무례를 이해해 주셨으면 한다.

 

 

 

먼저, 모두가 알고 있는 내용으로 삼국지연의의 주인공격인 유현덕은 중산정왕의 후예, 즉 한실의 종친이었다.

중국의 한족은 자신들의 뿌리를 상당히 중히 여긴다. 따라서 한족이 아닌 민족이 세운 나라는 아무리 번창했어도 그리 좋게 보질

못한다. 진시황이 다스리던 고대의 진나라와, 멸한지 얼마 되지않은 청나라가 그 예가 될 것이다.

나관중 또한 한족이었다. 그리고 나관중은 역사 집필가이기 이전에 소설가였다. 소설가라면, 책을 쓰는 작가라면 분명

독자들의 수도 고려를 하며 책을 지을 것이다. 한족은 중국 인구의 90%를 차지했고, 당연히 주요 독자층은 한족이었다.

여러 가지 이유를 고려하였을 때 그들이 중시하는 정통성을 가진 나라는 한실의 종친인 유비가 세운 촉한이었다.

따라서 연의의 저자는 촉한정통론으로 자신의 책의 밑바탕을 깔게 된 것이고, 우리나라에서 보통 볼 수 있는 삼국지들을

소설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거기에 있는 것이다.

 

삼국지연의에서 흔히 유비는 너무 과장되었고 조조는 너무 깎아내려졌으나 손권은 거의 비슷하게 적혀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왜 촉한정통론을 채택한 저자는 조조와 손권 중 조조를 더 많이 깎아내렸던 것일까?

조조의 무엇이 그토록 유비와 촉한을, 그리고 촉한을 중심으로 하려는 저자를 두렵게 했던 것일까?

 

그 해답은 조조의 성격에 있다.

 

조조는 실보다 득이 많다면 그 실이 어떤 것이 되든 간에 버릴 줄 알았던 냉철하고 결단력 있는 군주였다.

먼저 여백사의 일이 있다. 동탁의 암살에 실패한 조조는 수배령이 내려지나 당시 현위로 재직하고 있던 진궁 덕택에

아버지의 벗인 여백사의 집으로 도피할 수 있게된다. 그러나 쫓기는 통에 모든 신경이 예민해져 있던 조조는

돼지를 잡으려던 여백사의 가족들의 대화를 자신을 잡아 죽이려는 것으로 오해하여 그들을 모두 죽이게 되고,

때마침 돌아오던 여백사까지 죽여버리고야 만다.

물론 인의로 무장된 사람들은 그런 조조를 깎아내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을 것이라 이해한다.

그러나 아무리 친구의 아들이라 해도, 자신의 가솔들을 모두 죽여버린 자라면 여백사의 심정은 어떠할까?

도무지 말로 용서를 빌어서는 그의 성에 차지 않았을 것이다. 조조를 토막내고도 남았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조조의 그같은 빠른 판단은 난세 속에서 자신을 살리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이같은 예는 여백사의 일만 있는 것이 아니다.

아마도 여러분은 완 전투도 기억할 것이다. 장수를 평정했을 때의 일이다. 조조가 술기운에 추씨를 탐한 일로

장수의 반격을 당한 일을 말한다. 이 때 조조는 전위를 잃었고, 아들 조앙과 조카 조안민을 잃었다.

잠에서 깨 당황한 조조가 여차하면 혼전 속에 죽을 수도 있었던 상황이었다.

그 상황에서 조앙은 조조에게 자신의 말을 넘겨 조조를 피하게 했고, 조조는 아무런 거절 없이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만약 그 상황 속의 조조가 유비였다면, 그는 어떻게 했을까?

유비는 덕과 인의를 중시하는 사람이라고 묘사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는 후세 사람들의 평가를 두려워한다.

"그렇게 하면 후세 사람들이 나에게 뭐라고 하겠느냐?" 유비의 명대사가 바로 이것이다.

아들을 죽이고 자신이 살아남았다는 사실을 후대의 사람들이 욕할 것을 두려워했을 것이고,

아마도 그 자리에서 아들과 함께 죽었을 것이다.

하지만 조조는 다르다. 조조는 아마도 그 짧은 시간 동안에 많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나의 아들은 아직 어리고 경험도 없다. 아마도 이 난세를 살아가기에는 어려움이 많으리라. 내가 죽고 아들이 산다면 과연 나의 아들이 나의 복수를 해 줄 수 있을 것인가? 차라리 내가 살아남아 나의 아들의 복수를 해 주는 것이 옳은 일일 것이다.'

아마도 위와 같은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이러한 조조의 빠른 판단과 냉철함, 이것이 바로 촉한 팬들이 두려워하는 것이었고,

그렇기에 더욱더 깎아내리고 싶었던 것이었을테다.

 

이에 비해 손권은 어떤가. 손견은 그야말로 무장이었다. 뛰어난 맹장으로서 항상 전투의 앞쪽에서 적군을 몰아치고 무공을

뽐내며 부하들을 격려했었다. 그러한 손견을 닮은 그의 맏아들이 손책으로, 그들 부자는 성정이 급하고 무장답다.

그러나 손권은 어머니를 더 많이 닮았다고 기록되어있다. 그는 조조와 비교하기에는 큰 무리가 있을 것이라 보인다.

판단이 빠른 것도 아니고 그다지 냉철하지도 않기 때문에 촉한으로서는 그가 큰 위협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겠다.

적벽대전 전에, 조조가 항복을 권유하는 편지를 보내왔을 때 손권은 정말 우유부단한 모습을 보여주며 갈팡질팡했다.

만약 그 당시의 군주가 손견이나 손책이었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바로 그 자리에서 그 편지를 찢어버리고 바로 전투 준비를 시작했을 것이다.

 

이러한 조조와 손권의 성정 차이 때문에라도 저자는 조조를 더 깎아내리게 된 것이다.

 

 

 

오늘은 이만, 다음에 계속하겠습니다.(__)

출처 : 삼국지 커뮤니티
글쓴이 : 청공의 조운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