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20여년 전에 썼던 글인데 다시 보내는 것을 이해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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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생일이 기쁘지도 않고 반갑지도 않았다. 내가 탄생을 축하받을 만큼 기여와 업적을 이룬 것도 없고 그럴 기미가 있지도 않기 때문이었다. 태어나는 바람에 결혼도 하고 아이도 갖게 되었을 뿐 아무런 의미도 뜻도 없이 시간을 축 내면서 살고 있는 것이 나였다.
그래서 나는 생일이 돌아올 때마다 그냥 넘기려고 했는데 아내는 그럴 수 없다면서 생일을 꼬박꼬박 챙겨주는 바람에 생일 때마다 곤욕을 치르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 해도 부모님과 아내와 아이들의 생일은 그냥 넘기지 않았다. 내가 별 볼일 없는 인생이라고 해도 남들의 인생까지 그렇게 생각해서는 안되기 때문이었다.
아내가 걱정하는 소리에 또 생일이 돌아오게 된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왜 생일이 되기만 하면 대변을 보고 나서 닦지 않고 팬티를 올린 것처럼 찜찜하고 허전해지는지 이유를 알아야 겠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한국인의 전통도 없이 서양 흉내를 내어 케이크에 불을 붙이고 끄는 풍속이 달갑지 않아서인가 하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전부는 아닌 것 같았다. 나는 성미가 집요하여 의문이 있기만 하면 그냥 넘기는 법이 없었다.
나는 생일의 허전함을 알아야 겠다고 생각하고 생일을 화두로 삼았다. 출근할 때 퇴근할 때는 물론 조금이라도 짬이 나기만 하면 생일의 의미를 생각하게 되었는데 생일이 임박하여 느낌이 온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감사의 의미였다.
시간을 죽이면서 사는 인생이라고 해도 태어남이 있었기 때문에 인생을 구가하게 되었다는 것, 생일은 기쁜 날이고 축하받아야 하는 날이지만 고마움과 겹치는 날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생일날이 되어 아이들이 일찍 귀가하라고 성화를 댔지만 나는 퇴근하자마자 동생 집으로 갔다. 동생이 아버지를 모시고 있기 때문이었다. 내가 아버지께 말했다. “절을 받으세요.”
아버지가 갑작스러운 나의 행동에 당황하여 물었다.
“안하던 짓을 하니 웬일인지 모르겠다.”
“생일이 되기만 하면 해피버스데이만 부를 줄 알았습니다. 제가 이제야 철이 들게 되었습니다.”
처음으로 드리는 절이어서 여간 어색한 것이 아니었다. 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절을 드리는 나의 등에서는 땀이 주루루 흘러내렸다. 동생과 제수씨, 어린 조카가 신기한 듯이 나를 지켜보았다.
자식이 부모께 절을 드리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런데도 절을 구정에 한번 드리는 습관에 길들여지다 보니 나의 생일에 절을 드리는 것이 어색한 예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
절을 드리고 나서 아버지께 봉투를 드렸다.
“생일의 보답으로 선물을 살까 했으나 무엇이 필요한지 몰라서 돈으로 드리는 것을 이해해 주십시오.”
집에 돌아오자 10시가 넘었다. 아이들이 난리를 쳤다.
“생일이라는 것을 까먹었지요?”
“이모와 이모부가 생일을 축하한다고 기다리다가 방금 전에 돌아가셨어요.”
이듬 해의 생일 때도 아버지께 절을 드렸다. 두 번째 드리는 절이어서 어색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늦게 돌아오자 중3 큰 아이가 성화를 대면서 물었다.
“아버지는 평소에는 일찍 퇴근하면서 왜 생일이 되기만 하면 늦게 들어와요? 생일이 싫은가요?”
“미안하다. 너도 어른이 되면 알게 될 것이다.”
나는 40이 넘어서 겨우 철이 든 것이 부끄러워서 얼버무리고 말았다.
그로부터 2주가 지나서였다. 퇴근하여 집에 돌아오자 큰 아이가 갑자기 절을 하겠다고 한다. 내가 이유를 묻자 오늘이 자기 생일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딸의 생일을 챙겨주지 못한 것이 부끄러워서 아내를 책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내는 딸에게 미안하다면서 사과하느라고 난리를 쳤다.
“생일을 챙겨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오늘 많이 섭섭했지?”
“아니에요. 오히려 스릴이 만점이었는 걸요?”
“? ???”
딸은 내가 생일이 되기만 하면 늦게 귀가하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다가 할아버지한테 들렸다가 귀가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딸이 절을 하고 나서 선물을 내밀었다. 포장지로 예쁘게 싼 담배 한 갑이었다.
“제가 학생이어서 좋은 선물을 드리지 못해서 미안해요. 커서 돈을 벌면 좋은 선물을 많이 드릴 테니까 그 때까지 참아 주세요.”
벅찬 감격에 나의 눈에 눈물이 핑 돌았다. 아내도 마찬가지였다.
(딸아! 고맙다. 지금까지 좋은 아버지가 되어 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앞으로는 더 좋은 아버지가 되도록 노력하마. 효도를 하지 않아도 좋고 공부를 못해도 좋으니 건강한 마음과 정신으로 훌륭하게 잘 자라거라.)
아버지의 생일이 임박하자 아버지가 말했다.
“이 달에는 내 생일이 끼기도 했으니 시골에 한 번 다녀와야 겠다.”
70줄에 드신 분들에게 내가 우리 집 이야기를 하자 한 분이 무릎을 치면서 말했다.
“우리가 오늘 좋은 이야기를 들었네 그려. 우리도 절을 열심히 가르쳐서 무너진 윤리를 되찾는 일에 일조하도록 하세.”
절을 하는 일에 무슨 교육이 필요한가?
어른과 선생이 드리면 자녀와 학생들이 보고 배우게 될 것이 아닌가?
자기들은 절을 하지 않으면서 가르치겠다는 것은 죽은 교육이 아닌가?
신문에 부도덕한 사건이 터지기만 하면 도덕과 윤리가 실종되었다고 개탄하고, 품안의 자식타령을 읊어대기 일쑤인데 오늘의 현실은 50살 이상의 어른과 선생, 위정자, 정치인, 종교인, 공무원이 책임을 져야 한다.
사람들이 절을 드리면서 살았다면 오늘날과 같은 부도덕하고 비윤리한 세상이 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절은 만행의 근본으로 대학, 정치, 경제, 학문, 종교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을 생각하여 너희도 동방의 예의지국과 해동성국을 되찾는 일에 힘을 합치기를 바란다..
딸들에게 보낸 러브레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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