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이었다. 외출했다가 집에 돌아오는데 아주머니들이 예수를 믿으라면서 나에게 전단지를 주려고 한다. 나는 볼 것도 관심도 없지만 더위에 고생하는 모습이 안되어 보이기도 하고, 그녀들에게 희망과 위안을 주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여 한 장을 받아서 읽어보게 되었다.
전단지에는 간증 표제로 신앙의 힘으로 지병이 낫고 습관을 고치는 등 기행과 기행과 이적을 체험하고 은혜를 받았다는 사례들이 빼곡하게 들어 있었다. 그녀들의 교회에 다니면 모두 그런 체험을 할 수 있다고 홍보하는 내용이었다.
나는 기독인이 간증으로 표현하는 이유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간증(干證, confession)은 “자기의 죄를 고백하여 증명하기 위한 것”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기독인의 홍보를 직설적으로 이해하면 “우리들이 신앙생활을 통해서 이룩하는 기행과 이적, 은혜는 모두 죄이므로 다시는 그런 짓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식의 고백과 회개가 되지 않을 수 없다.
간증은 ‘신앙체험’이나 ‘신앙경험’ 등의 용어로 바꾸어 사용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 데도 기독교는 간증 용어에 길들여져 “우리는 모두 죄인들입니다.”고 만인 앞에 공개적으로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왜 그럴까? 기독인이 무식하여 간증이 무슨 뜻인지 모르고 있는 것일까? 그럴 수는 없다. 나 같은 서생도 알고 있는 것을 나보다 훨씬 더 똑똑하고 유식한 사람이 기라성처럼 많고 많은 기독인이 모르고 있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 사람만 간증 뜻을 알고 있다고 해도 문제는 간단하다. 그가 “간증은 적당한 용어가 아니므로 신앙체험으로 바꿔서 써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그만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그런 주장도.. 조짐도 없으니 그렇다면 기독인 중에는 간증의 뜻을 알고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이 아닐까?
그 이유는 다음과 같은 예수의 가르침에서 명백하게 해답을 구할 수 있다.
그 날에 많은 사람들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하리니 그 때에 내가 말하되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한 자들이! 나에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마태복음 7장 22-23)
언어는 의식적 언어와 무의식적 언어가 있다. 의식적 언어는 가식이 작용할 수 있지만 무의식적 언어는 불가능하다. 여자 목욕탕을 남자 목욕탕으로 잘못 알고 들어갔을 때 생각할 사이도 없이 얼굴이 붉어지는 것처럼 무의식적 언어도 본능적이어서 거짓이 개입될 수 없다.
기독인이 신앙체험과 경험을 간증으로 표현하는 이유는 기독인 입장에서는 그것들이 불법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예수 이름으로 행하는 기행과 이적, 은혜와 은총이 모두 불법이고 죄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는 둘째가 기독인이 된 것을 반대하지 않는다. 내가 무종파와 무교회를 표방하지만 나 역시 크리스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둘째가 어떤 무도한 목회자의 꼬임과 술수에 빠져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를 입에 달고 있으니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다.
둘째에게 묻겠다. 너는 예수와 목회자 중에서 누구를 믿느냐? 예수를 믿는다면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를 쓰레기통에 처박고, 목회자를 믿는다면 성경을 쓰레기통에 처박아야 할 것인데 어떤 것을 버리겠느냐?
둘째가 언젠가는 예수의 품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적어도 예수를 믿는다면 왜 예수가 자기 이름으로 행하는 권능을 모두 불법이라고 가르쳤는지 그 이유를 알고 신앙하는 기독인이 되기를 바란다.
아버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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