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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치유에 대한 태도

명호경영컨설턴트 2009. 4. 12. 19:00

        

치유에 대한 태도

장봉운목사

 

치유와 축사와 예언 사역을 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헤어집니다. 오랜 세월동안 심각한 문제로 인해서 가족들의 삶이 고단하고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더 이상 치유를 기대할 수도 없고 그런 고통에서 벗어날 수도 없기에 모두 심령으로 지쳐있습니다. 그래서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다른 사람들과 정서적으로 다른 면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는 오랜 세월 어려운 상황 속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따스한 마음과 밝은 얼굴빛을 잃지 않고 있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고통스런 현실 때문에 마음이 삭막해져 있습니다. 이제는 치유될 것이라는 기대를 접은 지 오래 되어 무덤덤한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도 있고, 오히려 사역자를 걱정하면서 괜히 안 될 일에 시간을 쓰는 것이 부담이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절망적인 현실과 해볼 것은 다 해보았으나 아무런 결과도 얻지 못했기 때문에 마음으로 이미 포기한 것입니다. 그래서 반응이 시큰둥합니다. 굳이 치유하겠다고 하니 한 번 허락은 하지만 기대는 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이미 기대했다고 절망한 슬픈 경험이 너무도 많았기 때문에 섣불리 기대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와는 반대로 가능하다면 풀포기라도 잡아보려는 간절함이 있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미 치유의 시기를 넘겨 가능성이 거의 없는 상황이지만 포기하지 않으려는 가족의 기대가 안타까울 때가 많이 있습니다. 질병이나 귀신들림의 경우, 적절한 치유시기를 놓치면 만성이 되어버려 치유가 무척 어려워집니다. 환자의 내면에서 스스로 회복할 수 있는 능력이 이미 상실되어버린 만성질환의 경우에 안타까운 일이지만 치유가 거의 불가능하거나 오랜 시간이 필요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특별한 목적에 의해서 기사와 이적을 보여주실 경우에는 이런 조건들이 상관이 없습니다. 수 십 년을 불치의 병으로 거동조차 하지 못했지만 단번에 일어나 걷게 되는 일은 아주 특별한 예외적인 일입니다. 이런 일들은 하나님이 군중들을 놀라게 하기 위해서 행하시는 표적으로서의 기사와 이적입니다. 이 일은 일반적인 치유와는 전혀 다른 차원이기 때문에 혼동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치유하시는 일(divine healing)은 실체는 같지만 목적이 다르기 때문에 대상도 다른 것입니다. 일반적인 영적 치유 역시 흔한 일이 아닙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병이 들지만 그들 모두가 하나님으로부터 치유를 받을 수 있는 대상이 아닙니다. 이들 가운데 특별히 일부만이 하나님으로부터 치유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들은 치유 사역자와의 만남을 통해서 그 일이 일어나게 되는데, 또한 치유사역자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그 대상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어떤 사람은 치유해주고 어떤 사람은 치유해주지 않는 것은 우리로서는 전혀 알 수 없는 하나님의 영역입니다. 치유에 관한 여러 가지 설명이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원론적인 것이고, 환자들마다 우리가 전혀 알 수 없는 비밀이 있는 것입니다. 공식처럼 치유의 원리를 적용한다고 해서 고침을 받을 수 있는 그런 정형화된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치유를 행하는 사역자는 환자를 대할 때마다 늘 새로운 각오를 하게 됩니다.

늘 처음처럼 항상 긴장하게 되고 그 결과에 대해서 어떤 결론도 내어 놓을 수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다만 성경적 원리에 따라서 사역을 행하지만 그것이 절대적인 치유의 수단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사역자는 잘 알고 있습니다. 어떤 환자에게도 치유를 자신할 수는 없습니다. 간혹 지식의 말씀이 임해서 긍정적인 결론을 얻었다고 해도 결과가 현실로 나타나기까지 섣불리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심각한 질환이어서 의사가 치유를 포기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병명도 잘 모르겠고, 최선을 다해서 치료를 했지만 현대 의술로는 더 이상 치료할 수 없는 한계에 이른 환자의 경우, 그 질환이 발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면 치유될 수 있는 확률은 높습니다. 이런 불치의 병은 성공확률이 낮지만 치유는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성질환의 경우에는 거의 치유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다급한 일을 만나면 신앙생활을 하다가 좀 편안해지면 세상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특히 남자들의 경우가 많은데, 조금 교회에 나오다가 다시 세상에 휘말려 신앙생활을 포기하기를 반복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이런 시계추 같은 사람들에게 믿음의 뿌리를 내리게 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듯이 재발을 계속하는 질환의 경우에도 치유가 쉽지 않습니다.

재발을 계속하는 사람의 경우 기질적으로 이미 그렇게 되어버렸기 때문에 완전한 치유를 얻어내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특히 귀신들림의 경우에는 악습에 물들어 있고, 자신감이 상실되어 있어서 축사 후에도 자신감을 회복시켜 주는 일이 말처럼 그리 쉽지 않습니다. 귀신들림과 유사한 정신질환의 경우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위축되거나 상실된 자신감을 다시 회복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마치 무거운 것에 오래 눌려 있어 압축되어버린 물체가 다시 원상을 회복하려면 시간이 많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무거운 돌에 짓눌려 있던 시간이 짧은 경우 돌을 제거하면 곧 다시 원상을 회복하지만 오래 눌려져 있었다면 돌을 제거해도 당장에는 아무런 변화가 나타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다시 원상을 회복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한데, 그 기간 동안 다시 어떤 불행한 일이 생길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환자는 다시 위축되어 삶을 포기하고 우울증에 휘말려 들어가는 악순환을 스스로 반복하는 경우에는 도무지 치유가 되지 않습니다. 소를 물가까지 데리고 올 수는 있지만 물을 먹일 수는 없는 것처럼 귀신을 쫓아낼 수는 있지만 스스로 회복하는 일은 본인의 몫이기 때문에 주변의 사람들이 도와주는 일에는 한계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질환을 다 고치시는 것은 아닙니다. 그 선택권은 하나님의 주권에 속하기 때문에 누가 무어라고 할 것이 아닙니다. 나아만 당시 수많은 나병환자가 있었지만 나아만만 고침을 받았다는 사실을 성경은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으로 나간다고 해서 모두 고침을 받는 것이 아니며, 고침을 받지 못했다고 해서 신앙에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의 현실에는 고칠 수 있는 병과 고칠 수 없는 병이 있습니다. 모든 귀신이 예수의 이름만 대면 다 달아나는 것이 아닙니다. 쫓아낼 수 있는 경우가 있고 할 수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A 사역자가 할 수 없었던 일을 B 사역자가 할 수 있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비밀에 속합니다. 영적인 일은 영에 속한 것이지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의 안목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너무도 많이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질환은 하나님으로부터 치유를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은 동등하게 열려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으로 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병고침을 기대했다가 고침을 받지 못했다고 해서 낙망하거나 하나님의 능력을 의심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지금도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주고 계십니다.

 

 

출처 : Joyful의 뜰
글쓴이 : Joyful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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