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신학에서 신은 전지전능한 완전한 존재다. 이 존재의 완전성이야말로 이스라엘의 민족종교인 유대교에서 분화한 종교들을 다른 종교들과 구별시키는 근본적 특성이다. 고대 그리스의 어떤 신들도 완전성과는 거리가 멀다. 그들은 불완전하고 인간적이다. 신의 속성으로 완전성을 가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기독교는 독특한 종교다.
그러나 그 완전성이 내적 모순을 품고 있음을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은 보여준다. 예를 들어, 모든 것을 안다는 ‘전지성’과 모든 것을 마음먹은 대로 할 수 있다는 ‘전능성’은 서로 양립할 수 없다. 도킨스는 전지와 전능의 충돌을 재치있게 묘사한 시를 읽어준다. “전지한 신, 미래를 아는 신은 알 수 있을까? 전능함이 미래에 자신의 마음을 바꾸리라는 것을.” 도킨스의 말은 이렇게 이어진다. “신이 전지하다면 그는 자신이 전능을 발휘하여 역사의 경로에 개입하여 어떻게 바꿀지를 미리 알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그가 개입하겠다고 이미 마음먹은 것을 바꿀 수 없다는 의미이며, 따라서 그가 전능하지 않다는 뜻이다.”
신학을 과학으로 해체하는 〈만들어진 신〉은 아주 만만하게 읽히는 책은 아니다. 기독교인들에게는 불편하기 짝이 없는 책이기도 하다. 그런 책이 시장에서 이변을 일으켰다. 지난 7월 출간된 후 한 달 보름 만에 출고부수 5만부를 훌쩍 넘겼다. 600쪽이 넘는 두께의 ‘인문교양서’로는 전례가 드문 현상이다.
박은주 김영사 대표는 “이 책을 계약할 당시에는 많이 잡아도 5000부쯤 팔릴 책이라고 보았다”며 예상 밖의 독자 반응에 놀라워했다. 박 대표는 “기독교에 대한 맹목적 신앙을 무신론의 관점에서 비판하는 책도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 출간을 결정했다”며 “지금 팔리는 속도를 보면 10년 전 김영사에서 펴낸 〈문명의 충돌〉을 능가한다”고 말했다. 1997년 6월 출간된 새뮤얼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은 보수적 관점에서 ‘문명 사이의 충돌’을 예견함으로써 지적 스캔들을 일으킨 책이다. 〈만들어진 신〉도 영미권에서 출간됐을 때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지만, 두 책의 이념적 지향은 정반대라 할 만큼 다르다. 〈문명의 충돌〉이 미국적 가치를 옹호하는 책이라면, 〈만들어진 신〉은 미국적 가치, 특히 기독교 근본주의를 깨뜨리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이 책의 판매 폭주에 동력을 제공한 것은 언론의 폭발적 관심이었다. 거의 모든 일간신문이 이 책을 말 그대로 대서특필했다. 그 직전에 탈레반의 기독교 선교단 납치 사건이 터진 것이 그런 관심 집중의 직접적 배경이 됐음은 물론이다. 인터넷상에서도 기독교 선교활동에 대한 찬반 논란이 거세게 일어나고 있던 때였다. 출판사에서는 적극적인 광고 마케팅으로 풀무질을 했다. 독자들의 반응은 찬반으로 갈려 뜨겁다. 인터넷 서점 알라딘에 글을 올린 한 독자(아이디 오지랍의 마법사)는 “차라리 소설을 써라, 실망이다”라고 했고 다른 독자는 “너무 종교적인 책만 난무하는 현실에서 이런 책이 나온다는 것 자체가 아주 신선하다”라고 썼다.
한겨레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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