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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고통은 이기는 게 아니라 안고 사는 거란다”

명호경영컨설턴트 2009. 4. 14. 09:38
전신마비 장애인인 심리학 박사가 자폐증 손자에게 들려주는 인생편지

절망은 희망의 ‘다른 이름’임을 알려줘

 

 

<샘에게 보내는 편지> 대니얼 고틀립 지음·이문재 김명희 옮김/문학동네·1만원


“샘, 처음 내가 사랑한 것은 ‘내 손자’였다. 그리고 여섯 달이 지난 뒤에서 비로소 ‘너’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 여섯 달이 지난 날 무슨 일이 있었을까? 그러니까 샘의 외증조할아버지의 장례식 날, 샘은 외할아버지 고틀립의 무릎 위에 자꾸만 기어오른다. 그 순간 ‘우리가 서로 같은 영혼을 가진 사람이란 걸, 내가 다른 사람들이 쉽게 하는 일들조차 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걸 네가 알게 된 것 같았다’고 깨달은 고틀립은 ‘남들과 다르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법, 앞길을 스스로 헤쳐나가는 법’을 일러주기로 마음먹는다.


책은 할아버지이자 심리학 박사인 고틀립이 그 때부터 4년 동안 샘에게 쓴 서른두 통의 편지 모음집이다. 사실 이런 책의 의도나 형식은 너무 ‘상투적’이다. 하지만 책을 먼저 읽은 ‘시골의사’ 박경철씨처럼 “졸린 눈을 비비면서, 한장 한장을 넘기면서 자세를 바로잡고 마지막 장을 넘길 때쯤에는 어느새 팽팽하게 긴장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고틀립 박사는 서른세 살 때 교통사고를 당한 전신마비 장애인으로 왼손 엄지손가락에만 감각이 살아 있고, 2000년 그의 둘째딸이 낳은 유일한 손자인 샘은 자폐아다. 그러니 정작 샘은 이 편지를 읽어본 적이 없고, 앞으로도 제대로 읽고 이해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그래서 박사는 유대 경전과 성경과 이슬람의 시 등 재미있는 우화들을 활용한 쉽고 꾸밈없는 표현으로, 자신이 헤쳐온 역경 속에서 얻은 깨달음으로, 샘에게 ‘인생 지도’를 찾는 길을 안내한다.


청소년기에 학습장애로 어렵게 들어간 대학에서 두 번이나 낙제를 한 끝에 정신의학 전문가로 성공한 고틀립의 삶은 한마디로 기구하다. 결혼 10돌을 맞아 아내에게 줄 선물을 가지고 가다 끔찍한 교통사고를 당해 신체적 고통과 절망에 빠진 와중에, 4년 전부터 암 투병을 해온 아내는 이혼을 선언한다. 극심한 분노와 우울증을 안기고 떠난 아내는 다발성 경화증으로 먼저 저세상으로 간다. 설상가상으로 그가 인생의 스승으로 의지해온 5살 많은 누나마저 뇌종양으로 죽고, 뒤이어 부모마저 잃는다. 하지만 그는 결코 삶을 포기하지 않았다. 사고 직후 부러진 목을 고정시킨 채 누워 있는 순간에도, 바로 옆 병상의 여자 환자로부터 실연의 고통을 듣고 다른 상담사를 소개해주며, 자신이 세상에 여전히 쓸모가 있는 존재란 사실을 깨달은 덕분이다. 이후 휠체어에 앉은 심리치료사로 30년 가까이 ‘상처받은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하며 살고 있는 그는 필라델피아에서 공영방송의 진행자로, 신문의 고정 칼럼니스트로 왕성한 사회활동도 계속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샘에게 자신처럼 이겨내고 성취하라고 얘기하지 않는다. ‘문제를 안고 살아가는 법, 실패와 절망을 안고 살아가는 법, 상처를 안되 스스로 치유되도록 돕는 법’을 말하고, ‘사랑하라, 어제보다 조금 더’라고 당부한다. “내가 너와 나누고 싶었던 것은, 오랫동안 사랑해온 사람의 눈을 가만히 들여다볼 때 가슴속에 차오르는 느낌 같은 것이다. 눈물이 어리는 슬픔과 사랑, 말이 가 닿지 못하는 곳에 있는 깊은 감정들이 어우러져 빚어내는 춤사위 같은 것 말이다.”


  

심리학자 고틀립(왼쪽)과 손자 샘.

 

샘에게 작별 인사를 전하는 마지막 장에 이르면, 옮긴이의 한 사람인 이문재 시인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하게 된다. “이 글은 마음의 미성년자인 나에게 들려주는 육성이다. … 세상의 모든 샘에게 보내는 편지다. … 편지를 읽으며 마음의 성년식을 치르기 바란다.”

책의 수익금 중 일부를 자폐증치료재단 등에 기부한 지은이의 뜻을 이어 국내 수익금의 일부는 아름다운재단에 전달될 예정이다.


한겨레 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r



출처 : 본연의 행복나누기
글쓴이 : 본연 이해모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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