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몸이 그 기능을 정상적으로 발휘하지 못하고 있음을 깨닫기에는
별로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물론 예외가 있지만 많은 경우 교회는 치유적인 집단으로 봉사하기보다는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여기에는 적어도 네 가지 원인이 있는데
우리가 참으로 효과적인 상담자가 되기를 원한다면 이러한 분야에서 변화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
고립
몇 해 전에 우리 외로운 사람들(We, The Lonely People)이라는 제목의 책이 나온 적이 있다.
(주12. R. Keyes, We, The Lonely People(New York: Harper & Row, 1973))
저자 랄프 키이스(ralph Keyes)는 우리 대부분이 더 큰 친밀감을 원하면서도
이 친밀한 관계에 저항하면서 세월을 보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우리는 우리를 알고 우리를 사랑하고 필요할 때
우리를 도와줄 수 있는 친근하고 가까운 친구들을 갖고 싶어한다.
그러나 우리는 다른 것, 즉 프라이버시나 이동성, 편리
그리고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유와 같은 것을 더 원한다.
이것이 교회에 어떻게 적용되는가를 생각해 보라.
우리들 중 많은 이들이 지역교회 즉 성도들의 지역적인 집단에 매여 있다고 느끼기를 원치 않는다.
우리는 움직이고 이전할 수 있는 자유를 원한다.
그래서 우리는 몸 안의(또는 몸 밖의) 다른 사람들에게 가까워지는 모험을 감행할 생각이 없다.
우리 중 하나가 이사를 하게 되면 쓰라린 이별에 직면해야 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우리는 다른 아이들과 함께 놀고 싶으나
어떻게 집단의 일원이 되어 같이 놀 수 있는지 자신이 없고
어울리려 하다가 거절당하는 것이 두려워 방관자처럼 서 있는 유치원생과도 같이
무관심한 듯 초연한 자세를 유지한다.
어떤 사람과 친밀한 친화관계를 맺었을 경우 우리는 새로운 사람의 침범을 불쾌하게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는 현존하는 그룹이 비슷한 방법으로
우리의 접근을 불쾌하게 생각할지 모른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 결과 그리스도의 몸은 사회 속의 여타 집단이나 기관과 다름이 없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 교회는 강한 공동체 의식과 함께 나타나는 위험부담을 직면하기를 주저하는
따라서 친밀감을 회피하는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스도에 대한 공통된 충성심과 믿음을 지니고 있고
서로 보안해 주는 은사를 지닌 성도의 집단으로서 우리는 사회의 다른 집단과는 달라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지 못하다.
교회가 친밀감을 증진하기 위하여 감수성(민감도) 향상 그룹을 후원해야 한다면
무엇인가 심각하게 잘못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몸이 도와주는 상담 집단이 되려고 할 것 같으면,
우리는 성경적인 형태의 코이노니아로 돌아가 피차 가까워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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