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말며”(엡4:26). 성경은 분노와 화를 별개의 개념임을 강조하고 있다.
분노를 느끼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
사전의 정의대로 '강한 불쾌감과 분한 마음'을 경험하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
다만 그 분노를 화내는 행동과 죄의 행동으로 표출하는 것이 문제다.
성질을 부리고 그릇을 날리고 주먹다짐을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
자기의 마음을 다스린다'는 표현이 마음에 든다.
또 감사한 것은 이 구절을 쓴 사람이 긴장에 찬 관계와 격한 감정이 존재하는 현실 세계에서 살았던 사람이라는 점이다.
용케도 그는 감정을 다스리는 것이 때로 강력한 성을 빼앗는 것보다 더 큰 힘과 용기를 요한다는 사실을 잘 알았다.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성을 빼앗는 무적(無敵)의 전쟁 영웅보다 낫다고 잠언은 말한다.
여기서 마음을 다스린다는 것은 곧 분노를 제어한다는 뜻이다.
2. 분노를 통해 배우는 것만이 분노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근본 원인에 대한 이해가 없는 한 분노는 계속 악순환을 되풀이하게 되어 있다.
분노 표현은 '나는 왜 화가 났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 앞에 설 때에만 건설적인 과정이 될 수 있다.
분노란 좋은 것도 아니고 나쁜 것도 아니다. 뭔가 잘못을 알리는 신호일 뿐이다.
자동차 본네트 안쪽에 손볼 것이 있음을 일러 주는 계기판의 경고등 같다고 할까?
경고등을 보고 지침서를 꺼내 보거나 본네트를 열어 잘못된 곳을 찾아본다면
그 조그만 빨간 색 불빛은 큰 도움이 되는 셈이다.
분노도 똑같다. 분노를 계기로 마음의 이면으로 들어가 그토록 화가 난 이유를 정확히 찾아낸다면 분노가 큰 도움이 된다.
감정의 정체가 분노라는 것을 빨리 인식할수록 분노를 통한 배움도 그만큼 빨라질 수 있다.
일단 분노를 인식했으면 다음 단계로 분노에 대한 반응이 자신의 선택에 달려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분노란 반드시 부정할 필요도 없고 억누를 필요도 없다.
남이야 어떻게 되든 마구 내뱉을 필요도 없다.
분노관리에서 다음 단계로 배울 것은 이유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나는 왜 화가 났는가? 이 분노의 근본 원인은 무엇인가?
우리가 쉽게 알아차리지 못하는 부분은 특정관계나 사건이나 상황이 왜 내 안에 분노를 일으키는가 하는 점이다.
분노를 유발하는 것은 외적인 사건일 수 있지만
정작 우리를 분노에 휩싸이게 하는 것은 내적인 요인이다.
특정 가치관, 신념, 가정 등에서 비롯된 내면의 태도가
외적인 사건에 의해 침해당할 때 분노를 느끼는 것이다.
분노를 통해 배우려면 그 내면의 태도를 밝혀 내야 한다.
그래야 처리 과정에서 의식적이고 근거 있는 선택을 할 수 있다.
그 선택은 특정 상황을 바꾸려는 노력, 대의를 위한 투쟁, 불의의 타도 등이 될 수 있다.
다투던 사람과 화해하는 것, 실망스런 상황을 수용하는 것, 자기 내면의 태도를 고치는 것이 될 수도 있다.
분노를 다스리는 일의 진보는 바로 그러한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종류 여하를 막론하고 분노를 느낄 때마다 우리는 내면의 태도를 깊이 살펴보아야 한다.
특히 자기 이익만 따지고 자기 자격만 내세우는 이기주의에서 비롯된 상황적 분노의 경우
자신의 태도를 신중하게 검토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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