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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참을 수 없는 중독 2 (아치볼드 하트, 두란노)

명호경영컨설턴트 2009. 4. 25. 21:40
   삶이 부유해지면서 사람들은 더 다양한 음식을 원하고 음악소리는 더 커지는가 하면, 차의 최고 속도는 더 빨라졌다. 털레비전 광고도 더욱 자극적으로 변하고, 오락은 심하게 기괴해지기까지 해졌다. 그러나 이러한 현대 생활양식의 자극에 대한 내성은 숨겨진 중독에 취약하게 하는 중요한 요인이다. 많은 자극을 받는 상황에서 새로운 자극을 느끼려면 더 많은 자극이 필요하다. 그렇기에 이러한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는 생활방식의 전환이 요구된다.

개선이 필요한 생활양식으로는 자극을 위한 쇼핑, 무질서한 삶, 미루는 버릇, 일중독 등이 있다. 기분전환을 위해, 진정하기 위해 쇼핑하는 습관에 젖어드는 것은 매우 쉬운 일이다. 강박 충동 쇼핑이 중독으로 발전되는 것을 막으려면, 용기가 필요하고 자신을 이해해야 하며 스스로를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쇼핑 중독에 걸리기 보다는 긴장의 근원을 발견하여 그것을 직접 해결하는 것이다.
 
무질서한 삶은 미리 계획하는 일이 없는데서 일어난다. 이들은 무질서하게 사는 것과 계획 없이 사는 것에서 흥분을 경험한다. 이는 불안을 파악하고 직면하기 위해 전문가의 상담을 받아야 하며 가벼운 무질서한 성향에서 자신 있게 자신의 주장을 말하는 방법을 배우고, 시간을 조직화하고, 내 인생에 집중하기를 배움으로써 극복할 수 있다.
 
미루는 버릇도 일종의 생활양식이다. 미루는 버릇은 풍요로운 인생을 살지 못하게 하며, 쉽게 중독될 수 있다. 이를 위해 왜 미루는지, 어떤 상황에서 미루는지 살피고, 모든 결정이 다 똑같이 중요하지는 않다는 것을 깨달아 선택을 잘하고, 자신의 판단을 의심하지 않아야 한다. 또한 모든 사실을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할 때까지는 결론 내리지 않는 것이 도움이 된다.
 
일중독자는 자유롭지 못하다. 놀지 못하고 빈둥거림을 참지 못한다. 또한 그는 자신의 가치를 자신이 하는 일에서 찾는다. 그리하여 일에 완전히 파묻히기에 억지로 쉴 경우 우울증이 생긴다. 이러한 일중독은 치료를 받아야 하는 중독이다.
 
권태 역시 심각한 생활양식 문제이다. 권태는 불만족, 좌절, 불안한 상태이다. 권태로운 사람은 그 문제에 대해 환경을 탓하거나 다른 사람들을 탓하며 또한 권태를 피하기 위해 또 다른 중독을 선택한다. 일중독으로 권태를 피하거나 도박으로 경마로 권태로움을 피하려는 것이 그 예이다. 권태로운 사람들이 근본적으로 찾는 것은 삶의 의미이다. 그렇기에 권태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존재의 근원을 진리 위에 새롭게 세워가는 데서 시작해야 하는데 그리스도가 그 진리이다.
 
   
동반 의존은 원래 ‘중독자가 필요로 하는 사람이 되고자 하는 욕구’,즉 ‘의존하려는 사람을 받아 주고 그들을 구조하는 사람’이 되려는 욕구를 의미했다. 동반 의존자들은 여러 가지 이유에서 문제 자체와 문제가 있는 사람들에게 지나친 애착을 보인다., 이 현상은 알코올 중독자의 가정에서 처음 발견되었다, 그래서 최초의 동반 의존 그룹은 알코올 중독자 가정에서 자란 성인 아이들이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하여 만들어졌다. 이 그룹은 알코올이 지배하는 가정의 혼란으로 정서적인 상처를 입은 사람들을 자유롭게 하는데 커다란 도움을 주었다. 그러나 이러한 동반 의존증 운동이 간과하는 몇 가지 중요한 점이 있다. 첫째, 중독자에게 노출된다고 해서 반드시 동반 의존증이 되지는 않는다. 둘째, 중독 이외의 다른 요소들도 동반 의존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즉, 알코올 중독자가 일으키는 것 같은 건강을 해치는 역동이 부모의 간통, 일중독, 혹은 만성적인 우울증 등에 의해서 일어날 수 있다. 셋째, 소위 말하는 동반 의존의 문제는 중독의 문제라기보다는 갈등의 문제이다. - 동반 의존증은 심한 갈등의 산물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이러한 질문이 주어진다. 어디까지가 사랑이고 어디서부터가 동반의존인가? 이러한 혼란을 해결할 수 있는 키워드는 ‘갈등’이다. 어떠한 관계라 하더라도 갈등이 빚어지면 그것은 동반 의존이 될 수 있다. 누군가에게 너무 가까이 다가감으로써 조종당하게 되거나, 당신이 동의하지 않은 어떤 행동을 같이 하게 된다면, 그 관계는 동반 의존이 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누군가 타인의 희생적인 사랑을 필요로 한다면, 동반 의존에 걸리지 않고도 그를 도와줄 수 있다. 그렇게 하려면 무엇보다 하나님과 늘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야 하며 하나님의 격려와 인도에 민감하게 깨어 있어야 한다.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면 우리 사랑도 늘 건강하다.

동반 의존이 중독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명확하지 않다. 전형적인 동반 의존은, 술이나 약물에 중독되거나 의존하는 사람이 있고, 그 상황이 빚어내는 갈등 때문에 중독자의 문제에 동반 의존되는 사람이 있다. 동반 의존은 중독자의 행동에 영향을 받도록 자신을 허용하며, 다른 사람들의 행동을 통제하는 일에 몰두하게 된다. 일부에서는 중독과 동반 의존은 같다고 주장하는데 동반 의존이 중독이 되려면 반드시 한 가지 요소를 갖추어야 하는데 그것은 ‘쾌감’이다. ‘쾌감’이라는 단어는 중독의 경우에는 중독자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자기만족을 갖게 된다는 말로 이해되어야 한다. 동반 의존증은 하나님의 계획을 무산시킨다는데 그 심각성이 있다. 동반 의존자들은 흔히 자아에 문제가 있다. 대부분 자존감이 낮고, 자신의 내면과 분리되어 있고, 자신을 위하여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거나 돌볼 능력을 잃어버렸다. 또한 상당히 많은 동반 의존자들이 ‘학습된 무력감’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아무리 불만스러운 상황에 처하더라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학습된 무력감은 학대 희생자들에게서 많이 나타나는데 이것은 그들이 학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가 되고 있다. 만일 당신이 동반 의존자라면 당신을 향한 하나님의 온전하신 계획대로 살아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우리가 무엇을 할 것인지, 어디로 갈 것인지, 혹은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를 하나님이 아닌 누군가가 결정하도록 허용한다면, 우리는 하나님께 순종할 수 없으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자유롭게 따르지 못한다. 여기에 그 문제의 심각성이 있는 것이다.
 
   열정적인 신앙을 가진 사람들을 중독자라고 쉽게들 이야기한다. 그러나 종교적인 열정과 종교 중독은 다르다. 그럼 이 열정적인 신앙과 종교 중독은 어디가 경계선인가? 그 판단 기준은 상당히 주관적이다.
 
하나님께 헌신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종교 행위에 헌신되어 있다면 종교중독이다. 자신이나 주변 사람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면 종교 중독이다.
 
하나님이 없는 영적체험에는 위험성이 존재하는데 종교적인 황홀과 행복감이 그것이다. 이것은 정당한 영적 추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중독을 일으킬 수 있는 가장 큰 위험 요소이다. 그리스도인 대부분은 중독 물질은 피하려고 하지만,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영적 체험으로 기분을 상승시켜 인생의 긴장을 완화시켜 보려는 덫에 걸린다. 많은 사람들은 황홀한 체험을 통해 쾌락을 얻거나 긴장을 완화시키는 것을 중독적으로 추구한다. 이들에게 종교적 황홀감은 하나의 ‘마약주사’가 된다. 그리고 많은 경우 이런 경험도 오래 가지 못한다. 중독도 쉽게 정당한 영적 활동으로 가장될 수 있다. 신앙의 영역에서는 더욱 그러한데 신앙을 감정을 피하려는 방편으로, 혹은 불안한 현실에서 도피하는 수단으로 많이들 사용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믿지 못하는 성향이 있기에 믿지 못하는 문제나 교리에 대해 정반대의 입장을 취하고는 그것에 강박적으로 몰두하곤 한다. 이는 잘못된 방법으로, 단지 불신앙을 내쫓는 수단으로 신앙에 중독되는 것이다.
 
독단적이며 완고한 믿음이나 행동에 대한 중독의 배후에는 반동형성 (reaction fomation) 이라는 심리적 현상이 도사리고 있다. 반동 형성은 부인(denial)을 한 단계 넘어선 것인데, 현실로부터 자신을 차단시키는 것이 부인이라면 반동 형성은 진정한 감정과 반대되는 거짓 감정을 자신의 감정으로 받아들여 현실을 바꾸려고 노력한다. 그렇기에 반동 형성은 특정 행동에 중독되게 할 가능성이 높다. 이것이 한편으로는 우리를 진정한
 
감정으로부터 차단시키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어느 정도의 자극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진정한 영적 체험을 경험하고 싶다면 많은 함정을 피해야 한다. 역동적이고 건강한 영적 생활을 보장해 주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균형이다. 이것은 현재에 사는 것과 내세의 소망 속에 사는 것 사이의 균형을 포함한다. 이같이 균형을 잡으며 살 수 있다면 종교 중독에 걸릴 확률은 아주 희박해진다.
 
 
   알코올과 마약중독을 가장 심각한 중독이라고 생각할지 모르나, 잘못된 성, 성중독에 비하면 미비하기 짝이 없다. 성은 건강한 방법으로 표현될 수도 있고, 인간성마저 손상시키는 왜곡된 방법으로 표현될 수도 있다. 성 중독은 몇가지 부류로 나눌 수 잇다. 지나친 성적 욕망에 대한 중독인 성욕중독, 그리고 사랑과 관계중독이 그 대표적인 예다. 또한 도착증과 같은 왜곡된 성생활에 대한 중독도 있다. 남자는 대체로 성욕중독에 걸리기 쉬운반면, 여자는 사랑과 관계 중독이 잘 걸린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도착증 현상은 이러한 성중독의 문제를 더 악화시킨다. 대가 말하는 도착이란 정상에서 벗어난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의 기독교 문화에는 이러한 성중독을 양산키시는 두가지 요소가 있다. 첫째는 성적충동과 갈등을 드러내 말하는 것을 꺼려하는 것이며, 둘째는 이러한 감정을 죄책감으로 키우는 것이다. 죄책감의 부담이 크면 클수록 그 충동을 더 강렬해지며, 충동이 크면 클수록 죄책감도 더 커진다.
성욕을 동물적 충동으로 부르는데, 성욕은 인간에게만 있는 특이한 현상이다. 이러한 성욕은 뇌의 작용으로 인해 시작되는데, 뇌는 이렇게 다른 대상물을 ‘대체물’로 상징하고 창조하는 환상을 만들어 내는 능력이 있게 때문에 눈에 보이는 대상을 성적인 대상으로 바꾸는 것이다. 일단 사람이 성적 상징을 만들어 내게 되면 이것들은 영구적으로 사람의 마음에 자리는 잡는 것 같다. 다행인 것은 건강한 사람의 두되는 이 상징들을 구분하고 분류하며 어느 때 자극을 받는 것이 적합한지 결정하는 법을 배운다.
 
성욕이 중독이 되는 것을 막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정직하게 욕망을 인정하고, 성욕이 우리를 휘두르기 전에 통제 할수 있을까?

1. 성욕을 끌림이나 존경과 혼동하지 말라.
건강하지 못한 성욕이란, 성을 탐하는 것이며 탐한다는 것은 당신이 갖고 있지 않은 것을 가지려는 일에 사로잡혀 있는 것을 말한다. 좋아하는 것은 그가 보는 것을 인정하고, 그리고 멈출줄도 알아야 한다.

2. 이성을 대할 때 성적 매력에만 관심을 집중하지 말라.
매력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면 사실을 받아들여라. 다만 계속해서 매달리지 말고, 재빨리 그 생각을 끊어버리고 한계를 인식하라.

3. 환상에 빠지지 말라.
성적인 환상은 건강하지 않은 이미지를 갖게 한다. 의도적으로 성적인 환상을 만들어 내는 것은 분명히 음란한 것이다. 실제 인물에 대한 환상은 상대를 비참하게까지 한다. 그것은 그들의 인격을 손상시키는 행위다.

4. 새로운 것을 추구하려는 성적 욕구에 한계를 정하라.
성이라는 것도 인생의 다른 많은 것처럼 내성이 생긴다. 어느 정도 지나면 그 정도 자극에는 습관이 들어서 더 강한 자극을 요구한다. 그런데 그 내성은 결과적으로 어떤 것으로도 만족시킬 수 없기에 과도하게 이런 내성을 길러 낼 수 있을 만큼 새로운 것을 추구해서는 안된다.

5. 자위행위를 통제하라.
자위행위가 죄냐, 아니냐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단순히 성적 욕구를 발산하기 자위행위가 죄냐, 아니냐 하는 문제는 개인에 양심에 관한 문제이다. 그러나 자위행위가 강박 충동적이 될때 그것은 분명히 치명적이다. 쉽게 중독증으로 발전하는 것이다.

6. 만일 성욕에 강박관념적이고 통제할 수 없을 경우에는 전문 상담가를 찾아 도움을 구하라.
모든 성 중독중 가장 심각한 것이 성도착이다. 성적인 흥분과 공포를 동시에 경험하면, 이 두 가지는 마음속에서 연결되고, 이후에 공포가 느껴지면 성적으로 더 크게 흥분하게 된다. 최악의 도착은 물론 성을 고통이나 죽음과 연결하는 것이다. 이 것이 가학/파학 형태의 성행위를 부르는 동기로, 성적 자극을 받으면서 고통을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하는 것이다.
 
   모든 큰 중독뒤에는 신체적, 정서적으로 좋은 기분을 느끼고 고통을 피하고자 하는 강박적인 충동이 있다. 이렇게 좋은 기분을 얻기 위해 사용하는 가장 흔한 방법은 아드레날린을 사용하는 것이다.아드레날린 중독이란, 말 그대로 부신에서 만들어진 아드레날린 호르몬들이 주는 쾌적한 감정에 중독되는 것을 의미한다. 아드레날린은 조급증이라고 알려진 현대 문명 병의 원인이자 결과이다. 시간의 촉박함, 증가된 아드레날린 수치와 스트레스 관련 질병이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특히 일을 될 수 있는 한 빨리 완수하려고 하는 욕구 밑바탕에는 스트레스 호르몬, 특히 아드레날린 과잉생산을 원하는 욕구가있다.재미난 사실은 강요된 휴식에 대한반응이다. 즉 아드레날린 후기 우울증인데, 대게 강도높은 활동을 한후 나타난다. 또한 아드레날린 금단증상은 기분을 가라앉히기 때문에 아드레날린 공급을 늘리기 위해 무리한 강도높은 활동을 하려고 하고, 이는 신체에 큰 타격을 입히게 된다.아드레날린 중독은 매우 해롭다.

게다가 아드레날린 중독 뒤편에는 아드레날린 소진이라는 더 큰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이렇듯 아드레날린은 무제한 공급되지 않는다. 한계를 넘어 지속적으로 자극을 받으면 부신은 닫히고, 아드레니아 부족이나 아드레날린 피로 증상이 시작된다. 이쯤되면 부신이 더 이상 아드레날린을 생성할 수 없을 정도로 소진되는데, 이것이 아드레날린 중독의 초기 증상이다. 인간은 아드레날린 없이 살 수 없다. 지나치면 우리를 파괴하지만, 어느 정도까지는 꼭 필요한 것이다. 때문에 아드레날린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경계선을 찾아야한다. 또한 아드레날린 중독은 다른 물질의 경우처럼 변화에 저항한다. 더군다나 성공을 추구하는 사회에서는 아드레날린 중독자들이 보이는 모습을 오히려 존경해 주기 때문에, 이 중독은 더욱 끊기 힘들다. 아드레날린 중독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생활양식 바꾸기, 조급한 성격 바꾸기, 내적 평안과 고요함을 위한 영적 기술 개발하기 등의 변화가 반드시 필요하다.
출처 : Joyful의 뜰
글쓴이 : Joyful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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