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을 이해하고 '회복 사역'에 도움이 될 마땅한 교재가 없어 목말라 하던 차에 만난
아치볼드 하트(Archibald D. Hart)의 「참을 수 없는 중독」은 중독의 치유와 회복에 관심이 있는 상담가, 목회자,
사역자, 중독자 및 그 가족들로 하여금 숨겨진 중독과 외상(trauma)을 발견케 하는 좋은 지침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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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트는 ‘중독’에 대해 정의를 내리기가 쉽지 않다고
전제한다. 중독의 사전적 정의는 “습관적으로 열중하거나 몰두하는 것”으로 매우 포괄적이다. 우리는 중독이라는 말을 주로 부정적인 행동에
적용하지만, 사전적 정의로 보자면 좋은 활동도 포함된다. 라틴어 어원인 ‘addicene’는 ‘동의하는 것’, ‘양도하는 것’, ‘굴복하는
것’이라는 뜻으로 고대에 감금되거나 전쟁에서 패해 노예가 된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이는 현대 중독자들을 묘사하는 데 매우 적합하다. 왜냐하면
중독자는 집착 대상에게 노예가 된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외부
물질(알코올, 마약류 등)을 습관적으로 사용하는 것만 중독이라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습관적인 행동이나 스스로 참지 못하는 ‘노예화’ 된 행위도
중독에 포함된다. 이것이 바로 ‘숨겨진 중독’이다. 숨겨진 중독에는 논쟁, 수집, 경쟁, 먹기, 감정(우울증),
낚시, 도박, 소문내기, 어려운 사람 돕기, 달리기, 거짓말, 강박 관념, 사람들, 완전주의, 포르노, 분노, 종교 활동, 미움, 자학,
성(性), 도벽, 쇼핑, 고독, 화내기, 생각하기, 스릴 찾기, TV, 일, 독서 등이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불완전하며, 아무리
채워도 만족할 줄 모르는 심리적 배고픔 속에서 성인이 된다. 그리고 이런 결핍을 채우려는 노력과 결점을 고치려는 욕구가 오히려 자기 파괴적이거나
더 깊은 필요를 무시해 버리는 결과로 나타날 수 있다. 이런 행동들이 중독이라는 덫에 걸려들게 한다.
하트는 이런 심리적 욕구들을
근심이나 불안으로 도피하고자 하는 욕구, 죄책감을 줄이려는 욕구, 자신의 환경을 통제하고 지배하려는 욕구, 신체적·심리적·영적 고통을 피하려는
욕구, 완전한 사람이 되고자 하는 욕구(완전한 자아, 건강, 인격, 성취 추구)로 나누고 있다. 따라서 중독은 드러난 물질 중독이든 숨겨진
중독이든 인간 내면의 깊은 감정을 올바로 경험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중독자들은 저마다 하나씩의 고통으로 괴로워하고 있고 이런
감정으로부터 보호받고 싶어 한다. 이때 고통을 완화시키기 위해 중독 행위를 선택하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중독의 저변에는 아래와 같은 공통적인
주제가 있는데 이것은 물질 중독과 과정 중독, 드러나는 중독과 숨겨진 중독을 연결시켜 준다.
첫째, 중독은 진실한 감정을 느끼지 못하게 한다. 중독은 불안한 현실에서 도망칠 수 있다고 귓가에
속삭인다. 둘째, 중독은 중독자를 완전히 통제한다. 일단 중독의 통제 아래 놓이면
중독자는 모든 합리적인 논리와 이성을 잃어버리고 만다. 셋째,
중독은 언제나 쾌감을 동반한다. 어떤 물질을 취하거나 특정 행동을 하면 반드시 자극, 흥분, 진정, 해방감 같은
즐거운 감정을 느낄 수 있다. 중독 말기에는 치명적인 고통을 겪게 될 수도 있지만, 너무 강하게 중독된 나머지 여전히 물질이나 행위 자체에서
쾌감을 얻는다. |
넷째,
장기적으로 중독은 매우 파괴적이고 건강에 해롭다. 중독 물질이나 행위 등이 우리에게 지속적인 쾌감을 준다고
해도, 결국 몸과 마음과 영혼에는 악영향을 미칠 뿐이다. 다섯째,
오직 중독 행위만이 중요하다. 중독자는 중독 행위만을 가장 중요한 문제로 취급하고 다른 것들을 부수적인 것으로
여긴다. 여섯째, 중독자는 자신의 중독을 인정하지
않는다. 중독자는 중독 물질이나 중독 행위가 자신에게 끼치는 지배력을 인정하지 않는다. 일곱째, 모든 중독은 물질 중독이다. 섭식 장애, 특정한 성적 습관, 일 중독, 강박적인 참회 요구, 지속적인 스릴과 모험 추구 등은
알코올이나 코카인이나 마취약 혹은 다른 외부 물질에 대한 중독과 공통 요인이 있다. 여덟째, 모든 중독은 심리적인 의존을 동반한다. 물질 중독을
연구하는 많은 학자들은 중독 물질에 심리적으로 의존하는 정도가 신체적 필요보다 더 강하게 작용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또한 흥분 추구와
긴장 완화라는 중독 과정 저변에 있는 두 가지 충동은 종종 특별한 자극에 의해 다시 시작되곤 한다. 이때 특별한 자극을 중독의 촉발 기제라고
부르는데 불안, 고립, 권태, 우울증, 위기, 실패감, 충족되지 못한 성적 욕구, 비평, 이기적 욕구들이
그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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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트는 숨겨진 중독을 극복하는 것은 스포츠를 배우는
것과 비슷하다고 한다. 골프, 테니스, 볼링 등 모든 스포츠는 특별한 기술을 익혀야 한다. 숨겨진 중독을 치유하는 일도 마찬가지로
신체적·심리적·영적 영역의 기술을 익혀야 한다. 사람들은 자신에 대한 이상적인 이미지를 설정해 놓고 자신이 그것에 얼마나 근접했는지 끊임없이
평가한다. 이때 큰 만족을 얻을 수도 있으나 자칫하면 자기 거부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 온전한 자신을 이루는 것에서 도피하게 하거나 지나치게
결점을 덮으려고도 할 수 있다. 양쪽 모두 중독의 원인이 될 수 있다.
현대인들은 ‘이상적인 자아’에 대한 강박 관념을 갖고
있다. 완벽한 자아 이미지를 정해 놓고 그대로 되어 보려고 한다. 대중 매체가 광고하는 흠 없고 날씬한 외모의 ‘완전한 몸’, 모든 불쾌한
감정을 완벽하게 다루는 능력의 ‘완전한 정신’, 끊임없이 기도하고 열심히 성경을 공부하며 교회를 지원하고 효과적으로 간증하는 이상적인 이미지의
‘완전한 영혼’을 추구한다. 이런 완전한 몸과 정신과 영혼에 대한 추구를 잘 이해하고 극복해야 중독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다.
하트는 숨겨진 중독을 극복하기 위한 기술로 몇 가지
제안을 한다. 첫 번째는 ‘긴장 풀기’다. 근육을 잘 풀어주면 두 가지 주요
스트레스 호르몬인 ‘아드레날린’과 ‘코오티솔’ 수치가 낮아진다. 두 번째는 ‘바꿔
생각하기’다. 상황을 바라보는 방식을 본질적으로 바꿔 자신의 생각을 재구성하고 상황을 새롭게 인식함으로써 더 이상의 충돌을
피한다. 세 번째는 ‘좌절에 대한 내성 기르기’다. 모든 중독은 좌절을 참아내는
힘이 약하다. 중독자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당장 가져야 한다. 욕구 충족이 어떤 장벽에 부딪혀 지연되면 공격적으로 되거나 화를 낸다. 중독자는
평상시보다 비논리적이고 비합리적이며 더 감정적이 된다. 네 번째는 ‘12단계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이다. 12단계 프로그램은 ‘익명의 알코올 중독자 모임’(AA: Alcoholic Anonymous)의 설립자들이
개발한 ‘회복을 위한 영적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은 강박 충동적 행동 패턴이나 동반 의존 문제 그리고 부부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으로도
사용된다. 12단계 프로그램의 뿌리에는 다른 사람을 통해 하나님께 책임을 지는 개념이 있다. 영적 상담의 모든 프로그램도 이 원칙에 근거해
행해진다. 이것은 다른 사람이 우리에게 힘을 준다거나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하는 것이 아니다. 단순히 우리가 서로에게 책임 있는 존재가 될 때
가장 빨리 성장한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하트는 자신의 의지력만으로 하든, 12단계 프로그램을 통해서 하든, 심리 치료를 통해서 회복하든 반드시
‘지원 그룹’(support group)을 활용하라고 강권한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실패자라는 비난을 받을까 봐 자신의 갈등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길 두려워한다. 그러나 성경도 짐을 서로 나눠 짊어지라고 말씀하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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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하트는 성령님 안에서 자신을 통제할 때 숨겨진
중독에서 회복될 수 있음을 말한다. 선택과 통제라는 개념은 중독자들에겐 좀 어려운 이야기이다. 의지력만으로 중독을 극복할 수 없지만 모든 중독은
여전히 ‘선택의 병’이다. 일단 중독이 확고해지면 통제는 불가능한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회복하고 싶다면 그 과정을 시작하려는 결단을 내려야만
한다. 그리고 누구보다 중독자 자신이 ‘선택’해야 한다.
모든 중독은 영적인
문제다. 인간은 본래 죄성을 가진 이기적 존재로서 자신을 과장하고 항상 만족을 원한다. 중독도 이 같은 죄성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중독은 영적인 원인뿐 아니라 결과도 갖고 있다. 중독에서 빠져나오는 길은 우리가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중독이 제공하는 유혹을 외면하는 것이다. 끊임없이
기도하고 말씀으로 무장해야 한다.
그러나 회개는 시작일 뿐이다. 중독을 의지력만으로 끊어낼 수 없다.
모든 문제를 기도로 하나님께 올려 드리는 것만으로 중독을 극복할 수 없다. 하트는 은혜의 능력은 인간의 의지(will)가 하나님의
뜻(will)과 조화를 이뤄 행동으로 옮겨질 때 가장 충만하다고 강조한다.
한국에는 대략 350만 명의 알코올 중독자, 340만
명의 도박 중독자, 섹스 중독을 포함해 수많은 숨겨진 중독자가 1,000만 명 이상 존재한다고 보건복지부와 한국마사회는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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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독자는 가족들을 노예와 인질로 잡는다. 따라서 중독은 ‘가족의 질병’으로 발전한다.
필자는 이런 중독과 ‘가족의 질병’으로 고통당하는 사람들이 3,000만 명 이상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100년 동안 기독교의
실패는 명백한 문제와 진실에 대해 침묵하기로 합의한 것에 있다. 명백한 진실이란 지구의 중심적 현실인 중독과 학대와 외상이다. 불행하게도 현대
교회는 이 세 가지의 중심적 현실과 동떨어진 복음을 비효과적으로 증거해 왔다. 그동안 예배, 설교, 선교 중심의 목회로 일관해 온 교회는 이런
명백한 진실에 직면해야 하는 시대에 와 있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의 태도는 진실에 대한 부인(denial)이다. 목회자나 사역자 자신이 중독과
학대가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중독과 학대의 외상이 없는 것처럼, 상담이 필요 없는 것처럼 목회 전략을 세워
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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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자들은 사람을 한국인, 미국인, 일본인, 중국인
등으로 나눠 생각한다. 회복 사역에서는 사람들을 중독자, 학대자, 외상자, 10% 내외의 건강한 사람들로 구분한다. 중독, 학대, 외상은
지구촌의 핵심 주제다. 이들은 충동적인 행동, 강박적인 사고, 낮은 자존감으로 인한 비뚤어진 성격과 습관에 매여 힘들어한다. 그리스도인이
되더라도 그러한 빗나간 행동은 계속 되므로 어떻게 자신의 ‘어둠’을 ‘빛’ 가운데로 가져가야 할지 몰라 방황한다. 그들이 자신의 경험과 어려움을
드러내고 고백할 때, 대부분의 교회에서는 단순히 회개하고 기도하라고 말한다. 충동적이고 강박적이며 낮은 자존감의 성격상 결함의 뿌리를 다루지
못한 상태로 고군분투하지만, 결국 어쩔 수 없는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의 현실이다. 이런 현실로 인해 죄책감과 두려움은 갈수록
깊어지고, 수치심의 악순환 속에서 인격은 서서히 파괴된다. 자신의 결함이 노출되면 따돌림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불안으로 더 이상 도움을
구하지 못하고 숨게 된다. 깊은 영적 갈등과 해결되지 않은 과거는 유령처럼 따라다니면서 낮은 자존감과 만성적인 가족 문제를 일으킨다.
여기저기에서 내적 치유 프로그램에 참여해 보지만 노력에 비해 근본적인 변화를 경험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지원 그룹을 통한 회복 사역은 이런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하트는 이 책에서
중독 모델이 갖는 한계를 신중하게 검토하고 있다. 나아가 그것을 적절하게 사용하는 방법과 중독을 가장 효과적으로 치유하는 방법을 소개하면서,
지원 그룹에 반드시 참여하라고 강권하고 있다. 필자는 회복 사역자로서 하트의 의견에 동의한다. 지원 그룹에서는 충고, 권면, 토론,
끼어들기, 해결책 제시 등이 금지되고 비밀 보장, 무비판적 수용, 나눔, 경청 등을 강조한다. 지원 그룹에서 강조하는 ‘고백과 나눔’은 새로운
행동의 영성적 학습이다. 그것은 고통을 수반하는 영성 훈련이다. 또한 초대 교회의 고백과 나눔의 공동체로 돌아가는 영적 회복 운동이기도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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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러신학교(D.Min.)
등에서 공부했으며, 지금은 한세대신대원 상담학 교수 및 한국회복사역연구소 소장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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