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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기도를 왜 해야 하며 어떻게 해야 하는가 _ 노우호 목사

명호경영컨설턴트 2009. 5. 3. 09:50

기도를 왜 해야 하며 어떻게 해야 하는가 _ 노우호 목사


기도는 부르심을 받은 자들의 가장 큰 사역이다.

기도는 바로 하나님과의 동역인 것이다.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목적이 이루어지고,

사탄의 의도는 깨져버린다.

또한 기도하는 자의 받는 은혜는 대단히 큰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께서 "일어나 기도하라"(눅22:46)고 하신 경고를 따라야 할 것이다.


1.기도란 무엇인가

 

기도는 가장 오묘한 일일 뿐 아니라 가장 놀라운 영적 활동이다. 기도는 하나의 비밀이다. 이 제목에 대해 몇 가지 질문을 던져 볼 때, 우리는 기도의 오묘한 면들을 더 많이 느끼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은 기도의 비밀이 불가사의한 것이라거나 불가해하다는 뜻은 아니다. 이 말은 다만 기도에 대해 잘 깨닫고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것일 뿐이다.


이 점에서 볼 때, 기도로써 하나님을 위해 많은 것을 이룰 수 있는 사람은 참으로 드문 것이다. 기도의 능력은 기도를 얼마나 많이 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기도가 기도의 원칙에 얼마나 일치했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다. 기도의 원칙에 일치된 기도만이 참 가치를 가진 것이다.


왜 기도하는가? 이것은 가장 중요한 질문이다. 왜 기도가 필요한가? 하나님은 전지 전능하신 분이 아닌가? 왜 그는 우리가 기도할 때까지 일을 시작하지 않고 기다리시는가? 그는 모든 것을 알고 계시는 분인데 왜 우리가 모든 것을 그에게 아뢰어야 하는가(빌4:6)? 전능하신 하나님이 왜 즉각 일하시지 않는가? 왜 그는 우리의 기도를 필요로 하시는가? 왜 구하는 자만 얻게 되고, 찾는 자만이 찾게 되며, 두드리는 자만이 들어갈 수 있는가(마7:7)?


하나님은 왜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약4:2)이라고 말씀하시는가? 이상의 질문들에 대해,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계속해야 한다. 그러면 기도는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것인가?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하나님은 그의 뜻과 반대되는 것은 결코 실행하지 않으신다. 문을 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진대, 왜 그는 우리가 문을 두드리기까지 기다리시는가? 왜 그는 그의 뜻을 따라 그냥 문을 열어 놓으시지 않는가? 그는 전지 하신 분이므로 우리에게 문이 열려야 할 필요를 다 아실텐데, 왜 열기 전에 우리가 두드리기를 기다리시는가? 문은 열리기로 되어 있고, 문을 여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일치하는 것이며, 그는 문 열리는 것이 우리에게 필요함을 잘 아시는데 왜 우리가 두드리기를 기다리시는가? 왜 그는 문을 그냥 열어 주시지 않는가 우리의 두드림이 하나님께 무슨 유익을 주는가?


우리는 또 다음의 질문들을 해야 한다. 하나님의 뜻은 문을 여는 것이고, 문을 여는 것은 그의 의와 일치하는데도 그는 우리가 두드리지 않으면 열지 않으실 것인가? 아니면 우리의 기도를 기다리기 위해 그의 뜻과 의를 이루기를 지연시키는 것인가? 그는 우리가 두드리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문을 열려는 그의 뜻이 중단된 것을 그대로 내버려두시는가? 만약 그렇다면, 하나님의 뜻은 우리 때문에 제한되는 것이 아닌가? 과연 하나님은 전능하신가? 그가 전능하신 분이라면 왜 우리가 두드리기를 기다리기 전에 혼자 열지 않으시는가? 과연 하나님은 자신의 뜻을 이룰 수 있는가? 그가 정말 능력 있는 분이라면 왜 그가 문을 여는 것(하나님의 뜻)이 우리가 두드리는 것(사람의 기도)에 의해 지배를 받으시는가?


이 모든 질문을 할 때, 우리는 기도가 하나의 큰 비밀임을 깨닫게 된다.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역에 대한 한 가지 원칙을 볼 수 있다. 그것은 하나님 자신이 일어나 일하시기 전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기도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의 뜻은 그의 백성들의 기도를 통해 실현되며, 성도들의 기도는 그의 뜻을 이루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은 그의 뜻을 혼자서 이루시지 않고 그의 백성들이 기도로 동의를 보인 후에 이루신다.


그러므로 기도는 성도들이 하나님과 동역하는 활동이다. 기도는 성도의 생각을 하나님의 뜻에 연결시키는 것이다. 성도들이 이 땅에서 드리는 기도는, 곧 하늘에 계신 주님의 뜻을 소리로 나타내는 것이다. 기도는 우리의 탄원을 들어 달라는 요구가 아니요, 자신을 위한 욕망을 채워달라는 소원을 하나님께 표현하는 것도 아니다. 기도는 하나님으로 하여금 그분의 뜻을 바꾸게 하거나 뜻하지 않았던 일을 하시도록 그분께 강요하는 것이 아니다. 기도는 단지 성도의 입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는 것이다. 성도들은 하나님 앞에서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로 간구하는 것이다.


기도는 하나님의 결정을 변경시키지 않는다. 기도는 아무 것도 변경시키지 않는다. 다만 그분이 이미 정하신 것을 이룰 뿐이다. 오히려 하나님의 백성들이 기도로 하나님과 동역하는 것이 부족할 때, 그의 결정은 공중에 그대로 떠 있는 상태가 된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마18:18). 우리는 주님의 이 말씀을 잘 안다. 그러나 이 말씀은 기도와 관련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 말씀 다음에 연결되는 주님의 말씀은,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19절)는 것이다.


땅의 통제를 받는 하늘 기도와 하나님의 사역의 관계는 분명해졌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은 다만 땅에 있는 그의 자녀들이 묶고 푸는 것을 묶고 푸신다. 매야 할 것들이 많지만 하나님 혼자서는 매지 않으신다. 그는 그의 백성들이 땅에서 먼저 매기를 원하신다. 그 다음에 그도 하늘에서 매는 것이다. 또, 풀어야 할 것들도 많다. 그러나 역시 하나님 혼자서 풀기를 원치 않고 땅에서 먼저 그의 백성들이 풀기를 기다렸다가, 푼 후에야 하늘에서도 푸는 것이다.


이 사실을 생각하라! 하늘의 모든 활동은 땅의 활동의 통제를 받는다. 하늘의 모든 움직임은 땅의 움직임에 의하여 제한을 받는다. 하나님은 그의 모든 일을 그의 백성들의 지배 아래 두기를 매우 기뻐하신다. (그러나 마태복음의 이 말씀은 육적인 사람들에게 한 말이 아님을 지적해 둘 필요가 있다. 그러한 사람들은 이 말씀을 들을 자격이 없다. 여기에서 우리는 육적인 것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만일 육적인 것이 들어오게 되면 우리는 여러 면에서 하나님을 손상시키게 된다.)


마태복음에서 보는 것과 똑같은 의미의 말씀이 이사야서에도 나온다.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 곧 이스라엘을 지으신 일과 내 손으로 한 일에 대하여 내게 부탁하라"(사45:11). 이 말씀을 볼 때 우리는 참으로 엄숙해지고, 육적인 것이 몰래 들어오는 것을 결코 용납할 수 없게 된다. 하나님은 우리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하나님을 명령하기를 원하신다. 그는 우리들의 기도에 따라 그의 일을 시작하신다. 하나님이 하늘에서 취한 행동은 묶는 것이든 푸는 것이든 모두 이 땅에서 우리가 행한 기도에 따라 이루어진다.


하늘이 매기 전에 먼저 땅이 매어야 한다. 하늘이 풀기 전에 먼저 땅이 풀어야 한다. 하나님은 그의 뜻에 반대되는 것은 결코 하시지 않는다. 그가 매기를 원치 않는 데도 땅의 강요를 받아서 매는 것은 아니다. 땅에서 매는 그것이 그의 원래의 뜻이기 때문에, 결국 땅에서 맨 것을 하늘에서도 매는 것이다. 그는 하늘에서 매려고 하는 것을 땅에서 그의 백성들이 매기까지 기다리시고, 그들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셨다 그들이 간구한 것을 매는 것이다. 하나님이 그의 백성들의 간구를 기뻐하시고 그들이 맨 것을 하나님도 매기를 기뻐하신다는 그 사실은, 그분이 이미 매기로 작정하셨음을 증거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은 영원하기 때문이다.)


왜 그분은 더 일찍 매시지 않는가? 매는 것이 그의 뜻이고, 따라서 그 뜻이 영원한 이상 왜 그는 그의 뜻에 따라서 매야 할 것을 더 빨리 매시지 않는가? 왜 그가 하늘에서 매기 전에 땅이 매는 것을 기다려야 하는가? 땅이 매지 않은 것은 하늘에서도 맬 수 없다는 것이 사실인가? 땅에서 매는 것이 지연되면 하늘에서도 지연되는가? 하나님은 왜 오랫동안 매기 원하신 것을 자신이 매기 전에 땅이 맬 것을 기다려야 하는가?


이런 질문의 대답을 통해 성도들은 하나님의 손에서 좀 더 쓸모 있게 될 수 있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바와 같이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신 이유는 사람이 하나님과 연합하여 사탄을 멸하고 하나님과 동역하기 위해서이다. 사람은 자유 의지를 갖도록 창조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사람이 자신의 의지를 행사하여 사탄을 거절하고 하나님과 연합하기를 원하신다. 이것이 구속의 이유뿐만 아니라 창조의 목적이다.


주 예수께서는 그의 온 생애를 통해 이 원칙을 그대로 보여주셨다. 우리는 하나님이 혼자 독립적으로 행동하지 않으심을 알고 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들의 뜻만 내놓고 그들의 생각만을 기도로 나타냄으로서, 하나님의 뜻에 대한 동의를 나타내지 못했을 때에는 하나님은 차라리 잠깐 기다리고 서서 그의 일을 연기하신다. 그는 혼자 행동하기를 거절하신다. 그는 그의 백성들로 그와 동역하게 하여 그들을 높이신다.


그는 전지 전능하신 분이지만 그의 전지전능하심이 그의 자녀들에 의해 제한 받기를 기뻐하신다. 그는 반드시 그의 뜻을 잊고 그에게 동의를 나타내지 않아 동역을 실패하는 경우도 허락하신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오늘날처럼 식어지지 않고, 자신을 기꺼이 더 부인하고 하나님의 뜻에 더 순종하며 그분의 영광만을 바라고 그분의 말씀만을 지킨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렇게 될 때 하나님의 이 시대를 향한 뜻은 신속히 실현될 것이고, 교회는 이렇게 혼란에 빠지지 않을 것이며, 죄인들은 그렇게 강퍅하지 않을 것이다. 주 예수와 그의 나라는 더 가까이 다가오고, 사탄과 그의 졸개들은 더 빨리 무저갱에 던져지고, 온 땅에 주님이 더 빨리 알려질 것이다.

 

성도들의 마음에 자신의 일들만 가득 차 있어 하나님과의 동역을 실패하고 있으므로 수많은 원수들과 불법들이 매이지 않고, 수많은 죄인들과 많은 은혜가 풀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하늘은 땅 때문에 얼마나 큰 속박을 받고 있는가! 하나님이 우리를 그토록 깊이 존중하시므로 우리는 그만큼 그를 믿지 않아도 되는 것인가?


하나님께서 매기로 하신 것을 우리는 어떻게 매는가? 또한 그가 풀기로 하신 것을 우리는 어떻게 푸는가? 주님께서 주신 대답은 이것이다.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이것은 기도, 곧 그리스도의 몸의 기도이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우리가 합심하여 기도하는 것이야말로 우리와 하나님과의 최고의 동역이다. 참된 기도는 바로 하나님의 뜻에 대한 우리의 갈망을 표현하는 기회이다. 기도는 우리의 뜻이 하나님 편에 선 것을 뜻한다. 여기에서 벗어난 기도는 있을 수 없다.


자아와 기도

참으로 하나님의 뜻을 표현하는 기도는 요즈음 얼마나 될까? 나의 자아를 완전히 잊어버리고 오로지 주님의 뜻만을 구하는 기도는 얼마나 될까? 기도로 하나님과 동역하는 성도는 얼마나 될까? 날마다 그분 앞에서 그분의 뜻을 선포하고, 그가 우리에게 알려 주신 뜻이 다 이루어지도록 온 마음을 쏟아 기도하는 성도들이 우리 중에 과연 얼마나 될까?


다른 면에서와 마찬가지로, 이기적인 것은 기도에서도 분명히 드러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에게는 우리 자신만을 위한 기도가 얼마나 많은가! 우리의 의견, 우리의 소망, 우리의 계획, 우리 자신의 추구가 얼마나 강한가! 자아가 그렇게 강한데, 자신을 완전히 잊고 하나님의 뜻만을 찾는 기도를 어떻게 기대할 수 있겠는가?


자아를 부인하는 것은 어디에서나 있어야 한다. 그것은 행동에서나 기도에서나 필수적인 것이다. 구원을 받은 우리는 우리를 위해 죽었다가 다시 사신 주님을 위해 산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그분을 위해서만 살아야 하며, 우리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 것도 구하지 말아야 한다. 바치는 기도는 바치는 생활에서 나온다. 우리는 기도에 대해 크게 잘못 이해하고 있다.

그것은 기도를 흔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달라고 떠드는 것이거나 하나님께 도와달라고 소리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우리는 기도가 곧 하나님의 필요를 이루도록 간구하는 것임을 모르고 있다. 하나님의 본래의 생각은 성도들의 기도를 통해 성도들 자신의 목적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는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의 필요를 공급해 달라는 기도를 결코 할 수 없다는 뜻은 아니다. 이 말은 기도의 원칙과 뜻을 먼저 이해하는 것이 필요함을 말하는 것일 뿐이다.


무엇이든지 성도에게 원하는 것이 있을 때는 먼저 물어보아야 한다. 하나님도 이것을 원하시는가, 아니면 나의 필요함을 공급해 주기를 원하시는가? 하나님의 뜻이 우리의 필요를 공급해 주는 것임을 알았다면 우리는 우리의 필요를 공급해 주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도록 간구할 수 있다. 우리는 우리가 알고 있는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해야 한다. 우리는 그분이 그분의 뜻을 이루시기를 기도해야 한다. 지금 문제는 우리의 필요가 충족되었는가의 여부보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졌는가에 있다. 지금 우리가 구해야 할 것은 우리의 필요를 공급해 달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다음과 같은 잘못이 얼마나 많은지! 성도들은 자신의 필요를 먼저 내놓는다. 그들은 기도에서 그들의 필요를 먼저 말하기를 잊지 않는다. 그것들을 공급해 주는 것이 주님의 뜻이 아닐지라도 말이다.


우리는 우리의 필요를 위해서만 기도해서는 안 된다. 하늘과 땅에서 하나님께 용납되는 합법적인 기도는 오직 하나, 곧 그분의 뜻을 그분이 이루시기를 간구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 안에서 우리는 우리의 필요를 잃어버려야 한다. 우리의 필요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알았다면, 즉시 우리의 필요를 내려놓고 그분의 뜻을 이루시도록 간구해야 한다.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우리의 필요를 위한 기도는 수준이 높은 기도라 할 수 없다. 개인적인 필요를 위한 기도는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먼저 기도한 다음에 간접적으로 다루어져야 한다. 이것이 기도의 비결이다.


하나님의 목적은 우리가 그분의 뜻으로 가득 채워지는 것이며, 우리가 자신의 관심을 잊어버리는 것이다. 그는 그의 뜻을 이루기 위해 우리를 동역자로 부르신다. 우리가 동역하는 방법은 기도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우리가 그의 뜻에 관계된 것들을 다 알고 그의 뜻을 따라 기도할 수 있기를 원하신다. 참된 기도는 실제로 역사한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오직 그의 뜻만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야말로 실제로 자신을 부인하는 역사이다.


우리 자신이 완전히 끝나지 않으면, 자신에 관해서는 지극히 작은 관심마저도 다 없어지고 절대적으로 주님만을 위해 살며 그의 영광만을 구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가 좋아하시는 것을 좋아할 수 없고, 그가 구하는 것을 구할 수 없고, 그가 원하는 기도를 할 수 없다. 물론 자신에 대한 관심을 다 없애고 하나님만을 위해 일하기란 매우 어렵다. 그러나 자신에 대한 관심 없이 그분만을 위해 기도하기란 더 어려운 것이다. 지난 세대들에서는 그의 자녀들의 동역의 기도가 별로 없었기 때문에 주님이 원하시는 것들을 하지 못한 일이 많았다. 그 실패의 원인은 하나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그의 백성들에게 있었다. 우리 자신의 과거를 돌이켜 보아도 똑같이 애석한 상태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좀 더 큰 믿음을 가지고 좀 더 많은 기도를 했더라면 우리의 생활은 그렇게 무력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 주님이 바라시는 것은 그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뜻과 화합하여 그 화합을 기도로 선포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과의 화합을 통해 나타난 위대한 역사를 완전히 경험한 성도들은 없었다.


기도 - 하나님의 길을 예비하는 것

"기도는 하나님의 역사가 달리는 철로이다." 이것은 어느 하나님의 종의 좋은 표현이다. 참으로 기도와 하나님의 뜻은 철로와 기차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 기차의 능력은 대단한 것이다. 하루에 1천 마일도 달린다. 그러나 철로가 없으면 한 치도 달릴 수 없다. 철로 없이 움직이려고 하다가는 땅 속에 푹 박히고 말 것이다. 먼 거리도 달릴 수 있지만 철로가 없는 곳은 갈 수 없다. 기도와 하나님의 역사도 이와 똑같은 관계를 가지고 있다. 더 자세한 설명이 없어도 이 비유의 의미를 충분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의심할 여지없이 하나님은 전지 전능하신 분이고 전능한 힘으로 역사하시는 분이지만 여러분과 내가 기도로 그분과 함께 역사하지 않으면, 기도로 그의 뜻을 위한 길을 예비하지 않으면, "모든 기도와 간구"(엡6:18)로 그의 기동력을 시인하지 않으면 그분은 역사하지 않고, 또 할 수도 없다. 하나님이 하고자 하시는 일, 원하시는 일은 대단히 많지만 그의 자녀들이 동의하지 않고, 길을 예비하는 기도를 하지 않기 때문에 그의 손은 묶여 있는 것이다. 나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바친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다. 우리가 이 점에서 그분을 날마다 제한하고 있지 않은지 우리 자신을 자세히 살펴보라.


그러므로 우리의 가장 중요한 일은 주님의 길을 예비하는 것이다. 이 일과 비교될 만큼 중요한 다른 일은 없다. 하나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지만, 성도들이 그 길을 열지 않으면 "불가능"으로 변하고 만다. 이것을 알 때, 우리는 하나님과 한 마음이 되어 더욱더 기도해야 한다. 우리는 철저히 기도해야 한다. 모든 방면에 걸쳐, 빈 틈 없는 기도를 해야 한다. 이렇게 할 때하나님의 뜻이 그 모든 방면에 나타난다. 사람들 사이에서의 우리 행동도 중요하지만, 바쳐진 기도로 주님과 동역하는 것은 훨씬 더 중요한 것이다.


기도는 하나님의 마음을 돌이키려는 것이 아니다. 우리중의 대부분이 가지고 있는 잘못된 관념은, 하나님은 완고한 분이므로 우리가 기도로 그분과 싸워서 그분을 굴복시켜 그의 결정을 바꾸도록 한다는 것이다. 어떤 기도이든지 하나님의 뜻에 어긋난 기도는 완전히 헛된 것이다. 우리가 싸우는 것처럼 애써야 할 때는, 다만 하나님의 뜻이 사탄이나 사람에게 방해를 받고 있을 때 그의 결정이 반대를 당하지 않고 그의 뜻이 실행되기를 간절히 바랄 때라는 사실을 우리는 분명히 보아야한다.


우리는 하나님이 결정하신 뜻만을 바라는 마음과, 그 뜻에 반대하는 모든 것들에 대해 단호히 대항하는 마음으로 기도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사람이나 사탄-때로는 우세한 것처럼 보이는-에게서 나오는 것들을 단호히 막고, 그분의 결정이 실행되도록 길을 준비하는 것이다. 실지로 우리는 하나님과 다투며 애쓰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애쓰는 것은그분의 뜻을 우리가 좋아하는 대로 바꾸기 위해 하나님께 대항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반대되는 것에 단호히 대항하여 그분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바라는 마음 때문이다. 그러므로 참으로 하나님의 뜻을 모르면 하나님의 동역자로서의 기도를 할 수 없다.


기도의 참 뜻을 어느 정도 깨달았다면 우리는 육적인 것이 잠입해 오지 못하도록 더욱 조심해야 한다. 만약 하나님이 스스로 일꾼을 보내신다면, 주께서 우리에게 일꾼을 보내주시기를기도하라고(마9:38) 명하시지 않았을 것이다. 하나님의 이름이 저절로 거룩히 여김을 받는다면, 그의 왕국이 우리의 동역 없이도 저절로 임한다면, 그분의 뜻이 저절로 땅에서 이루어진다면, 주 예수께서 그러한 기도를 가르쳐 주시지 않았을 것이다.(마6:9-10).


교회의 반응 없이도 주께서 다시 오신다면 주의 영이 사도 요한을 감동시켜 주님이 속히 오시도록 부르짖게(계22:20)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성도들을 저절로 하나 되게 하신다면 우리 주님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왜 그런 기도를 했겠는가(요17:20-22)? 하나님께 동역이 필수적인 것이 아니라면 우리주님이 하늘에서 계속 중보노릇을 하실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우리는 하나님과 동의하는 기도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그의 자녀들이 동의를 보인 일만을 역사하신다.  그의 백성들이 그의 뜻에 하나 되지 않을 때, 기도가 없을 때 하나님은 역사하시기를 거절하신다. 그의 뜻과 하나 되어 드리는 기도만이 참 기도이다.


기도의 가장 높은 목적은 응답을 얻는 것에 있지 않고, 사람의 뜻과 하나님의 뜻이 연결되어 그분으로 하여금 역사하시게 하는 것이다. 때로 우리는 그릇된 간구를 드리므로 응답 없이 끝난다. 그러나 우리의 뜻이 하나님과 연결될 때, 하나님은 우리의 동의를 통해 그분의 뜻을 이룰 수 있다.


2.하나님의 뜻에 따른 기도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 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요일5:14)

"내가 새벽 전에 부르짖으며 주의 말씀 안에서 바랐사오며 주의 말씀을 묵상하려고 내 눈이 야경이 깊기 전에 깨었나이다"(시119:147-148 원문참조)

"바사 왕 고레스 3년에 한 일이 벧드사살이라 이름한 다니엘에게 나타났는데

그 일이 참되니 곧 큰 전쟁에 관한 것이라 다니엘이 그 일을 분명히 알았고 그 이상을 깨달으니라 그때에 나 다니엘이 세 이레 동안을 슬퍼하며 세 이레가 차기까지 좋은 떡을 먹지 아니하며 고기와 포도주를 입에 넣지 아니하며 또 기름을 바르지 아니하니라...그가 내게 이르되 다니엘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깨달으려 하여 네 하나님 앞에 스스로 겸비케 하기로 결심하던 첫날부터 네 말이 들으신 바 되었으므로 내가 네 말로 인하여 왔느니라 그런데 바사국 군이 이십 일 일 동안 나를 막았으므로...그가 이르되 내가 어찌하여 네게 나아온 것을 네가 아느냐 이제 내가 돌아가서 바사군과 싸우려니와 내가 나간 후에는 헬라 군이 이를 것이라 오직 내가 먼저 진리의 글에 기록된 것으로 네게 보이리라...(단10:1-20)


다니엘의 기도를 보여 주는 다니엘서 10장을 읽을 때 우리는 적어도 두 가지를 주의해야 한다. 첫째로 주의할 점은, 참된 기도를 하는 사람은 하나님과 가까이 있는 사람일뿐만 아니라

그의 뜻이 하나님의 뜻 안에 있는 사람, 즉 그의 생각이 하나님의 생각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이다. 이것은 기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원칙이다. 처음부터 우리의 요구를 위해 시작된 기도가 있다. 주님은 간혹 그런 기도를 들으시지만, 주님은 거기에서 아무 것도 얻지 못한다.


다음의 구절을 주의하라. "여호와께서 저희의 요구한 것을 주셨을지라도 그 영혼을 파리하게 하셨도다"(시106:15). 이 말씀은 무슨 뜻인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들의 욕구를 채워달라고 하나님께 부르짖었을 때 하나님은 정말 그들이 구한 것을 주셨다. 그러나 그 결과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약해졌다. 간혹 하나님은 여러분 자신의 요구를 위한 기도를 응답해 주신다. 그러나 그분의 뜻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그런 기도는 별 가치가 없음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또 한 가지, 다른 종류의 기도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하나님 자신의 필요에서 나온 기도이다. 그러한 기도는 하나님에 속한 기도이고 하나님이 시작하신 기도이다. 이런 기도야말로 가장 가치 있는 기도이다. 이런 기도를 하려면 개인적으로 하나님 앞에 자주 나아가야 할 뿐 아니라 자기의 뜻을 하나님의 뜻 안에 포함시켜야 하고 자기의 생각도 하나님의 생각으로 바꿔야 한다. 항상 주님 안에 거하는 사람에게는 주께서 그의 뜻과 생각을 알려 주신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생각과 뜻이 자신의 소망이 되어, 그것을 기도로 표현하게 된다.


우리는 반드시 이 두 번째 기도를 배워야 한다. 우리가 어리고 약할지라도 우리는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있고, 그의 영이 우리의 의지를 하나님의 의지 안에, 우리의 생각을 하나님의 생각 안에 넣도록 할 수 있다. 우리가 그의 뜻과 생각을 접촉할수록 그의 역사와 원하심을 더욱더 알 수 있게 된다. 이렇게 알게 된 하나님의 생각과 뜻은 점차 우리 안에 들어오게 되어, 우리 안에서 기도로 변한다. 이러한 기도가 큰 가치를 가진 것이다.


다니엘은 하나님의 생각 안에 들어가 그의 뜻과 목적을 감지했으므로 자신의 마음속에도 하나님과 똑같은 소망이 있음을 발견한 것이다.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은 다니엘 속에서 더욱 분명해 소망은 다니엘의 소망이 되었다. 그리하여 그가 탄식과 부르짖음의 기도로 이 소망을 나타냈을 때 그는 실제로 하나님의 소망을 나타낸 것이다. 우리에게도 이런 기도가 필요하다. 이런 기도야말로 하나님의 마음을 만질 수 있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많은 말이 필요 없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주님의 마음을 더 많이 만지는 것이다. 다만 하나님의 영이 우리를 하나님 마음의 뜻 안으로 인도하게 하라.


물론 이러한 기도를 배우는 데에는 시간이 걸린다. 이 과정에서 처음에 많은 말이나 생각을 찾을 필요가 없다. 우리 영은 조용히 안식해야 한다. 우리는 순간 순간 우리의 상황을 주님 앞에 가져가 주님 앞에서 그것을 생각하거나, 우리의 현재의 상태는 잊어버리고 단순히 그의 말씀만을 묵상해야 한다.


또는 그분 앞에서 살며, 우리의 영으로 그를 접촉하기를 훈련할 수도 있다. 사실은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러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분 안에서 우리는 무엇인가를 깨닫게 되고 하나님의 뜻을 접촉하게 된다. 사실 가장 큰 지혜는 바로 이 근원에서 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우리의 의지는 그의 의지로, 우리의 생각은 그의 생각으로 들어간다. 거기에서부터 우리의 기도가 그에게 일어나는 것이다.


우리가 우리의 의지와 생각을 하나님께 가져올 때, 우리 안에서 그분의 의지와 생각이 밝아져 그것이 우리의 생각과 의지가 된다. 이렇게 드리는 기도가 가치 있고 무게 있는 것이다. 예수께서 기도에 대해 하신 말씀을 상기해 보자.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6:9-10).


이것은 우리가 간단히 외우는 말 세 마디가 아니다. 하나님의 뜻과 생각을 나타내는 이 말씀은 하나님의 영이 우리의 생각을 하나님께 갖다 놓을 때 밝아질 것이다. 이 말씀이 우리의 의지와 생각이 될 때, 우리가 드리는 기도가 가장 귀하고 가치 있는 것이 된다.


똑같은 한 가지 문제에 관해서도 두 종류의 기도가 있을 수 있다. 하나는 우리 자신의 뜻이 근본이 된 것이다. 이것은 우리 자신의 생각과 기대에 기초를 둔 것이다. 주님이 그런 기도에 응답을 하시는지 모르나 그런 기도는 가장 낮은 가치를 가진 기도이다. 다른 경우로 우리가 그 문제를 주님 앞에 가져와 그의 영으로 우리의 의지를 하나님의 의지 안에 넣고 우리의 생각을 하나님의 생각 안에 넣도록 할 수 있다. 그때 우리는 우리 안에서 깊은 갈망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우리 안에서 다시 살아나는 바로 그분의 의지와 생각인 것이다. 주님이 인간의 죽음을 슬퍼하고 탄식하신다면 우리 안에도 한 영혼의 멸망도 보지 않으려는 눌림이 생길 것이다.


이런 것이 깊은 탄식으로 기도하게 하는 하나님의 마음의 나타남이다. 또 주님이 그의 자녀들의 실패를 염려하고 마음 아파하시는 것도 우리 속에서 같은 눌림을 갖는다. 그 결과 하나님의 자녀가 죄와 어둠속으로 떨어지는 것을 보지 않으려는 똑같은 갈망을 갖게 된다. 그때 우리 안에서 기도가 나온다. 거기에서 우리는 하나님께 용서를 빌며, 그의 자녀를 깨끗케 해 주실 것을 간구하게 된다.


우리 자신의 뜻에 의한 기도가 있고, 우리 안에서 우리의 뜻이 된 하나님의 뜻대로 한 기도가 있다. 이 두 종류의 기도는 얼마나 다른 것인가! 두 번째 기도의 경우, 성도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면 하나님의 뜻이 그의 안에 나타난다. 그것이 그의 호흡이 되고 탄식이 된다. 이 뜻에 따라 한 기도는 가치 있고 무게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 땅에서 여러 면으로 할 일이 많으시다. 그런데 어찌 우리가 우리 자신의 생각과 감정만으로 기도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하나님께 가까이 가서 그의 갈망으로 우리를 감동시키도록 해야 한다. 그럴 때 우리는 탄식으로 기도하게 된다. 우리가 그에게 가까이 갔을 때 하나님이 복음 전파의 뜻을 넣어 주시면 이것이 곧 우리 안에 눌림이 된다. 이 눌림대로 기도할 때, 우리는 우리의 탄식이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처럼 느낀다. 주님은 여러 가지 뜻과 여러 가지 눌림을 우리 안에 넣어주신다. 어떤 뜻이든 어떤 눌림이든 그것이 어떤 사람의 마음속에 새겨지면 그 사람은 주님의 뜻이 자기의 뜻이 되어 그대로 기도할 수 있다.


다니엘의 경우에서도, 그는 하나님 앞에 갔을 때 어떤 문제를 접촉했고 깊은 탄식으로 기도했다. 이러한 기도는 얼마나 귀하고도 실제적인 것인가? 이러한 기도가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임하게 하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한다.


둘 째, 사탄이 기도를 방해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으로부터 온 모든 기도는 흑암의 세력을 건드린다. 여기에 영적 전쟁이 생기게 되어 우리의 육신이나 가정, 또는 우리에게 속한 무엇이든지 사탄의 공격을 받게 된다. 언제든지 기도는 사탄의 공격을 부른다. 그 원수는 우리의 기도를 중단시키기 위해 공격한다. 심지어 그는 공중에 방해를 던져 기도의 응답을 지연시키기도 한다. 응답이 신속해야 할 그 기도가 공중에 매달려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나님이 다니엘의 기도를 들으셨지만 그 응답이 이십 일 일간이나 방해를 받았던 것도 바로 이러한 경우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다니엘은 어떻게 했는가? 그는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의 응답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


한가지 질문이 남아 있다. 우리는 기도가 응답이 없는 채 남아있는 이유를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아마 그것은 어딘가에 매달려 있을 것이다. 이십 일 일의 기간이 아직 지나지 않았다. 보좌에서 응답은 주어졌지만 방해를 받아 공중에 매달려 있는 것이다. 그것은 이 땅의 더 많은 기도를 기다리고 있다. 그것은 오래 참으며 겸손히 하나님을 기다리는 사람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 그 앞에 조용히 앉아 자신의 생각들을 부인하고 그분의 생각 속으로 들어가라. 우리는 기도의 뜻을 깨닫게 될 것이고, 하나님이 얼마나 많은 일에 우리의 기도를 기다리고 계시는가를 알게 될 것이다. 온 세상의 모든 것이 우리의 기도의 대상이 될 것이고, 우리의 기도를 통해 모든 문제들이 접촉될 것이다. 자신의 감정으로 기도하지 말라. 우리의 소망을 하나님의 소망 안으로 가져와서, 그분의 뜻이 우리의 뜻이 되고, 우리의 탄식이 되고, 우리의 소망이 되게 하라.


사람을 통하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뜻이 나타날 수 없고, 사람을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뜻은 반드시 사탄의 세력과 부딪히게 된다. 하나님의 뜻의 실현을 위해서는 기도가 필요하다. 사탄의 반대 공작을 멸하기 위해 기도가 요구되는 것이다. 풀어야 할 것을 풀고 묶어야 할 것을 묶는 기도의 권위를 행사하자. 우리 자신의 뜻에 따라 기도하지 말라. 하나님 앞에 나아가 그가 우리 안에 나타내시는 뜻을 따라 기도하자. 이일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 우리도 또한 그렇게 말하자. 우리는 우리 자신을 잊어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접촉하여, 그의 뜻을 매 순간 기도로 나타내야 한다.

출처 : 푸른 초장 쉴만한 물가
글쓴이 : jy0219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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