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이 나온 게 2000년이었는데 저는 그 당시 한국에서 이 소설을 원서로 구입해서 여 름 휴가 갈 때 가지고 갔었지요. 휴가에서 다 읽지 못하고 어느 정도 읽다가 잊어버리고 있었고요. 이전부터 존 그리샴의 소설은 참 좋아했었지만 아마 그 여름, 저는 다른 일로 좀 바빴던 듯 합니다. 끝까지 이 소설을 다 읽어내지 못한 걸 보면 말입니다. 후후… 그 러다가 며칠 전 또 우연한 기회에 이 책을 다시 읽기 시작하여 이번에는 끝까지 다 읽어 냈습니다.
존 그리샴은 이제 워낙 유명한 세계적 법정 스릴러의 대가이자 베스트 셀러 작가라 따로 부연 설명이 필요치는 않겠지만 자신의 전직(변호사였다 이제는 전업작가지요.)을 바탕 으로 재미있으면서도 냉철하게 미국의 법 제도의 헛점을 비웃는 듯한 의식 있는 작품으로 아주 좋아하는 작가랍니다. 물론 존경도 많이 하고 있고요.
그의 작품을 처음 읽어본 건 “The Firm”이었는데 이 소설은 영화로도 만들어져 꽤 인기를 얻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톰 크루즈가 주연으로 나와 신참 변호사 역할을 아주 맛깔나게 했었지요. 그 후 그의 작품 중에서 여러 개를 읽으면서 세상의 정의와 법 체제 안에서의 정의 사이에서 나름 심각한 고민에 빠지기도 했었고, 또 세상의 약자 편에 서고 싶다는 꿈을 간직하게도 되었습니다.
그의 이전 작품에서도 느낀 것이지만 그는 법 상식과 지식이라는 자신의 든든한 뒷배경 외에도 스릴러라는 장르가 필수적으로 요구하는 짜릿하면서도 독자들을 휘어잡을 수 있 는 단단한 구성까지 재미와 지식, 교훈을 동시에 선사하는 뛰어난 작가가 아닐까 싶습니 다. 스릴러의 진수라고 볼 수 있는 음모와 그걸 파헤치는 개인, 또는 단체, 거기에 마치 조각퍼즐을 끼워 맞춰나가는 듯한 흥미진진한 압축적 치밀함이 책을 일단 잡으면 놓기 힘들게 만드니까 말이죠. 또한 그는 익살과 블랙 유머로 소설의 재미를 더하고 있기도 합니다.
역시 이 소설에서도 작가는 세상의 명예와 부와는 거리가 멀어진 사악하고 나이 든 세 명 의 판사를 통해 세상에서의 명성에 대해 통렬한 비웃음을 던지고 있는 듯 보입니다. 또 한 그는 대담하게도 이번에는 미국의 대통령과 그를 지지하여 세우려는 CIA의 음모를 정 면으로 파고 들었습니다. 막강한 권력과 자금력을 동원해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대통령 을 만들어내려는 CIA의 행태를 보다 보면 어느 새, 전직 대통령을 그들이 암살했다는 루 머가 괜한 소리로 들리진 않는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씁쓸한 기운을 떨쳐낼 수가 없기 도 하더군요.
하지만 책 뚜껑을 덮고 가만히 앉아있다 보니, 어쩜 작가는 세상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부 조리와 모순에 대해 결국 승자, 패자라는 개념으로보다는 누가 조금 덜 하고, 더 하고의 문제로 접근하므로 한껏 삶의 회화성을 비틀고 싶었던 건 아닐까 란 생각이 떠 올랐습니 다. 당연히 이 소설에서는 죄를 짓고 감옥에 들어와 있는 세 명의 나이 들고 사악한 판사 들은 거대한 음모 단체인 CIA에 비하면 조족지혈인 셈이지요. 그래서 그들이 사기치는 수법도 약간은 저급하고 비열한 것(동성애라는 걸 약점 잡아 돈을 뜯어내는)으로 설정하 지 않았나 싶기도 합니다.
그에 반해 더욱 지능적이고도 대담한 세력들은 바로 세계의 대통령이라는(그들 스스로 그렇게 믿기도 하고, 이 소설 속에서도 그렇게 설정되었으니) 미국의 대통령을 자기들이 선택해 만들어나가는 CIA인 셈이지요. 그 중에서도 조직원들에게 일일히 다 지시를 내 리는 국장 테디 메이너드라는 인물이겠고요. 그의 휘하에 놓여있는 미래의 미국 대통령 아론 레이크는 그에 비하면 차라리 불쌍한 애완견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나름 야망을 채 우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그건 또 하나의 블랙유머를 탄생시키고 말지요.
소설도 작가의 연륜과 지식의 깊이, 또는 세상을 바라보는 가치관의 변화와 함께 진화, 퇴화하기도 한다고 여겨지는데, 이 소설은 작가 존 그리샴의 냉소가 가장 두드러지는 작 품이 아닐까(물론 제가 지금껏 읽어보았던, 기억나는 작품 중에서요.)란 생각이 들었습 니다. 그는 분명 이 작품에서 그가 이제껏 보여주었던 세상의 정의에 대한 회의를 거대 집단과 소집단으로 대비시켜 우리들의 삶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헤게모니적 단상들을 우 리들에게 던져준 것이라 보여지니까 말입니다. 마지막 장면이 더욱 그런 생각을 부추겼 답니다.
한 가지 더, 이 소설에는 ‘Korea’란 단어가 꽤 여러 번 등장하지만 사실 우리와는 상관없 다고도 볼 수 있는 ‘북한’에 대한 언급이 자주였지요. 그것도 당연히 부정적인 의미로 말 이죠. 워낙 세계적으로도 악명 높은 ‘북한’이니 뭐 그리 놀랄 일은 아니지만 분명 유쾌한 일은 아니었고, 대신 많이 씁쓸했던 게 사실이었지요. 더불어 우리의 처지가 다시 한 번 환기되기도 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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