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매력적인 이야기꾼 한 분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 소설가의 이름은 들어 본 적
이 있었지만 실제로 그의 소설을 읽어본 건 처음이었는데, 뭐랄까요? 마치 꿈 속을 헤매는
듯 하기도 하고, 알쏭달쏭한 미로에서 출구를 찾아가는 듯 하기도 한 비몽사몽과도 같은 여
운을 많이 남기는 작품들을 접하면서 신기하고도 신비로운 느낌을 받았답니다.
또 그의 소설은 현실과 비현실이 오묘하게 얽히어 이걸 사실로 받아들여야 할 지, 아님 그
저 소설로 받아들여야 할 지의 갈림길에서 꽤나 헤매게 만드는 마력 또한 대단한 것 같습니
다. 삶의 의외성과 회화성을 가차없이 뒤틀면서 통렬한 은유를 보여주는 그의 소설법에 당
분간은 한껏 빠져들 것 같단 예감과 함께 그의 다른 작품들도 기회가 닿는 대로 무조건 다
읽어보고 싶어졌고요.
이 소설집에는 모두 7 편의 단편이 들어 있는데, 첫 번째 작품이 바로 “황만근은 이렇게 말
했다” 입니다. 황만근이라는 사람은 보통 사람들이 다 꺼리는 일을 능통하게 해 내는 마을
의 파수꾼 같은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는 남들이 보기에 많이 모자라 보이는 사람이고, 그
의 어머니는 어린 나이에 그를 낳아 시골에 살면서 손에 물도 안 묻힌 철부지에다, 자살하
려던 처녀를 집에 들여와 함께 살다 아이까지 얻었지만 그녀는 아이를 낳은 후 떠나버리지
요. 사실 아들로 끔찍하게 여기면서 기르는 그 아이는 자신의 자식도 아니었지만 그는 자
신의 어머니와 아들을 뒷치닥거리하느라 노상 바쁩니다.
황씨들로 이루어진 집성촌에서 제대로 인간 대접도 받지 못하고 살면서 사소한 단점(술을
좋아한다는)은 가지고 있는 그이지만 그는 나름대로 자신의 삶에 아주 충직한 사람이고,
그러한 그의 충직성은 그를 죽음으로 몰게 됩니다. 신의를, 아니 인간이 해야 할 도리를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경운기를 타고 사람들이 모이기로 한 곳에 갔다 아무도 만나지 못하
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던 그는 결국 위험천만한 고비를 다 넘기지 못하고 기어이 죽음을
맞게 되니까요.
다들 손가락질 하는 황씨 집성촌에서 오로지 한 사람 민순정이란 인물에 의해 그의 선함과
충직성은 마지막 묘비명 대신으로 추앙되고, 그는 그렇게 허망하게 치열했던 생을 마감하
게 되는데요. 민순정이 본 그는 남들의 비웃음을 받으면서도 비루하게 살지 않았던, 진정
사람 중에 “난 사람”으로 그렇게 비추어집니다.
그 밖에 “쾌활냇가의 명랑한 곗날”이란 작품은 범부들의 초라한 현실을 어찌나 통쾌하게
비틀었는지 저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터져 나오는 쓴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답니다. 되지
도 않은 감투로 목에 힘을 주는 소인배와 그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노심초사하는 그의 떨
거지들의 행태가 하나하나 생생히 살아 있어 마치 영화를 보는 듯 했지요. 게다가 진짜
폭력배들이 나타났을 때 괜한 객기를 부리던 그들이 급기야 폭력배들과 한 판 붙어 얻어
터지고, 도망 다니는 장면에서는 코메디도 이런 코메디가 없을 정도라 배꼽을 잡았고요.
이 작품에서도 작가의 술술 풀어지는 이야기 보따리에 마냥 책장을 넘기다가 곧 삶의 희
극성에 대한 그의 예리한 성찰에 찔려 따끔한 각성을 맛보기도 했는데 그는 두 개의 상반
된 이미지를 절묘하게 조화시키면서, 또한 지극히 시각적인 글을 써내는 작가가 분명하
다 여겨졌습니다.
그 외의 작품에서도 저는 작가의 세헤라자드와 같은 이야기의 바다 속에서 한참을 헤엄
치면서 갖가지 진귀한 물고기와 해초들을, 그리고 안개인지 뭔지 모를 정체 불명의 기운
을 보고 느끼며 아주 달콤쌉살한 시간을 보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네요. 책 읽기를
다 마친 후 터져 나왔던 휴!~ 하는 소리는 분명 한숨은 아니었고, 숨가쁘게 뭔가에 열중
하다 깨어날 때 나도 모르게 흘러 나오는 대만족의 탄성!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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