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인간의 내면의 발전을 서서히 뒤따르며 정신적 고양과 성장을 보여주는 헤세의 소설
‘싯다르타’를 드디어 읽었습니다. 제가 많은 작가들 중에서도 헤르만 헤세를 유난히 좋
아하는 이유는 제 나름대로 느끼는 헤세와 저와의 유사성 때문인데요. 그건 다름 아닌
이 소설의 궁극적 주제가 될 수도 있는 ‘사랑’에 관한 철학이 많이 비슷하다 여기기 때문
이기도 합니다.
헤세의 소설에서는 늘 인간을 긍휼히 여기는 자비심을 엿볼 수 있으며, 한 인간 자체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참사랑을 느낄 수 있기에 저는 그의 소설을 들면 한 없이 제 자신
이 숭고해짐을 느끼게 됨과 동시에 제가 추구하고자 하는 인생 철학의 동조자를 만난
기쁨에 전율하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책을 읽는 목적은 아마도 이렇게 나와 생각이 비슷한 사람을 만나 나도
이 우주의 한 일부분임을 깨달으며 기쁨에 몸을 떠는 그 즐거움 때문이란 생각을 평소
하고 있는데, 바로 헤세의 소설을 읽을 때 마치 제가 쓴 듯, 제가 쓰고 싶은 그러한 이야
기들을 만나게 되니 자연히 그 기쁨이 배가 되면서 행복감에 그윽한 마음이 되기 때문
이지요.
헤세의 소설을 다 읽어보진 못했지만 몇 편의 장편과 단편을 읽으며 느껴지는 것은 한
인간의, 아니 여기선 좀 더 의미를 좁혀 한 작가의 인식과 철학에는 역시 그의 환경적
배경이 실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서양에서 태어났지만 선교사
였던 아버지를 따라 인도에서 생활하였고, 그런 계기로 인도 뿐만 아니라 동양 철학을
접할 기회도 많았기에 그의 사고는 동, 서양을 아우르는 거시적 안목을 지닐 수 있었지
요. 고로 그의 작품에는 기독교와 불교가 어우러지는 독특한 종교관이 엿보이기도 합
니다.
바로 이 작품, 싯다르타 역시 그의 이러한 사상을 보여준다고 여겨지는데 예를 들어 주
인공 싯다르타가 평생을 걸쳐 찾아 헤매는 ‘깨달음’이란, 한 편으로 보자면 스스로 깨달
음(해탈)에 중점을 두는 불교적 색채도 강하게 느끼게 되지만, 궁극적으로는 사상보다
행위를 더욱 중요시 여기고 현실에서 이웃들에게 사랑을 베풀 것을 강조하는 그리스도
사상과도 많이 닮아 있습니다.
싯다르타의 인생 여정을 보았을 때에도 부유한 바라문의 가정에서 태어나, 그 모든 기
득권을 놓고 사문(탁발승)의 길로 들어서는 그의 행위에서 ‘늘 깨여있는 자’가 되고자
하는 한 인간의 의지가 느껴집니다. 하지만 그는 사문 생활을 하면서 결코 잠깐의 깨달
음이란 건 큰 의미가 되지 못함을, 여전히 미망의 껍질을 뒤집어 쓰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것은 잠시의 회피는 될 지 언정 진정한 ‘목적’은 될 수 없음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그는 위대한 각성자 고타마를 만나 그의 숭고한 의식과 아우라를 보고 느끼지만
자신은 그를 느낄 수는 있으되, 그에게서 가르침을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
다. 즉, ‘깨달음’이란 스스로가 터득해야 하는 것이지 누구에게 가르치고, 누구로부터
가르침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셈이지요. 바로 지혜란 남에게 전
달 될 수 없는 것이라는 것 말입니다.
그러기에 싯다르타는 스스로가 이원론적인 지금까지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모든 것을
다 겪어보고 느끼기로 작심을 합니다. 그래서 그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삶을 선택하지
요. 하지만 그렇다고 그 자신이 완전히 변신을 한 것은 아니고 자신이 지니고 있는 ‘기
다릴 줄 알고’ ‘사색할 줄 알고’ ‘단식할 수 있는’ 능력으로 새로운 삶을 경험해보는 것
이었습니다. 그 와중에 그는 육체적 쾌락과 환멸, 부에 대한 욕구와 집착, 태만, 권태
등 평범한 인간들의 모든 감각을 다 경험한 후 과감히 자신의 기득권을 또 벗어 던집니
다.
그러면서 그는 서서히 선과 악, 기쁨과 고통, 삶과 죽음, 이러한 것들이 분리된 것이 아
닌 단일성이라는 것을, 우주와 자신을 하나로 보는 ‘범아일여’를 깨닫습니다. 또한 시
간이라는 개념도 하나의 허망한 의식에 불과할 뿐 실지로는 시간의 구애에서 벗어남이
바로 진정한 깨달음이라는 결론에까지 도달하게 되지요. 그는 강을 통해, 뱃사공 바주
데바를 통해, 무엇보다 자신의 각성을 통해 거듭 나게 됩니다.
이성과의 사랑 앞에서도 냉철했던 싯다르타, 사랑을 하고 있지 않음을 스스로 고백했던
그였지만 그러한 그도 父情 앞에서는 나약함을 엿보입니다. 자신의 아들을 만나 그는
이제까지 스스로 깨달았던 그 모든 것을 뒤엎는 고뇌와 갈등 속에서 허우적거리는데요.
바로 이 부분에서 저는 인간의 모습 그대로를 사랑하는 작가 헤르만 헤세가 느껴져 더
욱 그를 깊이 존경, 흠모하게 되었답니다.
결국 깨달은 자나 깨닫지 못한 자나 결과로 봤을 때의 차이보다는 우리 인간은 노력하
는, 다시 말해 완성된 자가 아닌, 완성의 길을 추구하려는 노력만을 일삼는 존재로서
미완 자체이므로 서로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라 여
겨 졌으니까요.
이것은 바로 지금 우리가 발을 붙이고 있는 이 현실에서 가장 시급하면서도 유용한 믿
음이라는 것이 평소의 제 생각이기도 하였기에 저는 그 어떠한 거창한 사상이나 율법
보다도 헤세의 이러한 현실적인 치유책에 공감을 백배 표하고 싶어졌고, 그 아무리 의
도가 훌륭해도 사랑 없이는 결국 아무 것도 아니라는 그의 사상에 경외감을 표하고 싶
어졌고요.
서로를 조건 없이 긍휼히 여기고 아낌없는 자비심을 베푸는 것. 그것은 우리들이 분명
히 자각하고, 실천해야 할 덕목이자, 우리들이 살아가는데 필수 불가결의 요소가 아닐
까 싶습니다. 작금과 같은 혼돈의 세상에서는 더더욱 필요한 정신적 자각이 분명하다
여겨집니다. 더불어 이러한 가르침을 주는 헤세는 우리들의 정신적 지도자가 분명 하
고 말입니다.
'이야기테크 > 책방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그의 감성이 그대로 전달되는... 이외수의 ‘하악하악’ (0) | 2009.05.15 |
---|---|
[스크랩] <파울 카메러 박사> 이야기 (0) | 2009.05.15 |
[스크랩] 개밥바라기별보다는 샛별이길 꿈꾸며 그린 자전소설 ‘개밥바라기별’ (0) | 2009.05.15 |
[스크랩] 참 매력적인 소설집… 성석제의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0) | 2009.05.15 |
[스크랩] 도발,발칙의 코드, 하지만 아주 솔직한 소설 “아내가 결혼했다” (0) | 2009.05.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