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에 대한 기억을 더듬어 보면 맨 처음 그녀를 보고 조금 놀랐던(?) 일이 떠오릅니다. 그
녀의 섬세한 닥종이 인형을 구경했던 게 먼저였는지, 그녀의 책을 읽었던 게 먼저였는지,
아님 그녀의 조금은 특별한(?)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던 게 먼저였는지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아무튼 그녀를 처음 봤을 때 ‘좀 의외네!’란 저의 느낌만은 또렷히 기억하고 있거든요.
좀 더 자세하게 표현하자면, 저는 감수성 풍부하고, 보기만 해도 넉넉하면서도 귀염성으로
똘똘 뭉친 닥종이 인형들을 생각하면서 그걸 만든 작가 역시 귀염성 넘치고 여성스러움이
물씬 풍길 거라고 지레짐작했었고, 또 14세 연하의 미남 독일남자의 청혼을 받은 여자라면
아주 야리야리하면서 꽤나 미인일 거라는 세속적인(?) 추측을 했던 게 솔직한 고백인데, 그
런 저의 예상이 많이(?) 빗나갔기 때문이랍니다.
그녀는 겉 모습만으로는 일단 강단 있고, 개성이 많이 넘쳐 보여 절대 섬세한 종이 인형을
만지는 작가일거라고 상상하기가 쉽지는 않았고, 그녀 자신이 고백하듯이 그다지 미인 측
에 끼지도 않았으니까요. ㅎㅎ 하지만 그녀의 글을 읽으면서 곧 그녀가 그 어떤 이보다 여
성스럽고, 섬세한 감성의 소유자라는 걸 깨닫곤 저의 무지와 편견에 대한 반성을 했었던
기억이 또 새롭네요.
아무튼 저는 그녀가 쓴 책 ‘아이를 잘 만드는 여자’와 ‘뮌헨의 노란 민들레’란 책을 오래 전
에 읽었었는데, 바로 며칠 전에는 이곳 몬트리얼 문학회 같은 회원이신 박소자 선생님께서
이 책을 빌려주셔서 읽어보게 되었지요. 그 분께서는 특별히 김영희씨와 저의 삶이 좀 닮
아 있으니 다른 회원 누구보다도 제가 더 관심을 가질 듯 해 제게 먼저 빌려주신 듯 싶습니
다만.^^
그런데 저와 닥종이작가 김영희씨의 삶이 닮았다는 것에 대한 설명을 덧붙이자면, 둘 다 외
국인을 만나 재혼을 한 처지도 그렇고, 둘 다 전 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한국 아이들과 함
께 이국 땅으로 이민와 살게 되었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지요. 여기에 굳이 하나를 더 덧붙
이자면, 둘 다 연하의 남편과 살고 있다는 점도 있겠고요.(물론 그 분은 14 살 차이이고, 저
는 겨우 2 살 차이지만서두요.ㅎ)
그래서인지 아무래도 제가 이 책을 읽은 감상은 다른 분들과 조금은 달랐다는 게 솔직한
고백이겠지요. 저와 비슷한 처지의 그 분의 심사가 그 어떤 이들보다 가깝게 전달되는 듯
한 느낌을 지니고 이 책을 읽어내려 갔고, 그 분의 자녀 교육 철학에 있어서도 저와 상당히
비슷한 사고를 읽을 수 있었기에 더욱 친근감과 공감을 가지고 독서를 할 수 있었고요.
저 역시 그 분처럼 자식이란 저의 태를 빌려 제게 잠깐 왔다 갈 수 밖에 없는 손님 같은 존
재이지, 절대 저의 소유가 아니라는 걸 일찌감치 감지했었고, 또 이것을 말로만이 아닌 실
천해야 하는 것으로 늘 염두에 두고 있답니다. 또한 좋은 엄마 노릇에 대해 작가처럼 늘
고민하면서 하루는 이랬다, 하루는 또 저랬다 갈팡질팡하고 있고요.
자식 농사가 제일 어렵다는 옛 어른들의 말씀이 절대 예사말이 아니었구나! 를 늘 되새기
면서도, 또 한 편으로는 자녀 교육을 ‘자식농사’라는 말로 부르는 것 자체가 내가 할 수 있
는 뭔가로 크게 착각하는 것은 아닐까 하면서 스스로에게 자문하기도 하지요. 물론 자녀
교육에 부모로서 어느 정도의 가이드 라인을 세워주고, 또 조언해 줄 수는 있겠지만 그러
한 교육을 받아들이고, 안 받아들이고도 엄밀히 말하자면 아이들의 선택인 것을 하면서
말입니다.
그러자니 제 자신에 대해 조금 이야기를 하자면 어떤 뚜렷한 철학이나 대안도 없이 제 아
이들에 대한 교육이 드넓은 바다의 일엽편주처럼 이리 흔들, 저리 흔들거리는 적이 주로
이고, 그러다 보니 이 분의 책을 읽으며 일종의 위안도 얻고, 실로 부모 역할이라는 게 어
마어마한 멍에로 다시 다가왔던 것이랍니다. 그렇다고 포기하고 싶다고 포기할 수 있는
업(?)도 아니니, 정말 진퇴양난의 기로에서 헤매는 적이 한 두 번이 아니고 말이지요.
또 하나는 아무래도 저를 따라 새로운 곳에 둥지를 튼 우리 아이들 입장에서 보자면 저의
결정에 고마워하는 마음을 가질 수도 있겠지만, 때로는 그 반대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미안스러운 마음을 가지고 있기도 한데,
보이는 것에서 또 다른 공감이 진하게 느껴졌답니다. 그리고 아이들과 남편 사이에서 현
명한 조율자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 역시 저의 처지와 비슷하다고 여겨졌고요.
하지만 그 분과 저의 다른 점은 그 분께서는 새 남편과의 사이에서 자녀 둘을 더 낳아 모
두 다섯이나 되는 자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고, 저는 새 남편과의 사이에서는 자녀가 없
고 오직 아들만 단 둘이라는 것이지요. 어찌 보면 그 분은 저보다 훨씬 가슴 졸일 일이
더 많았을 것 같단 생각도 해 봤습니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이 없다고 숫자로도
아이들이 더 많으니 그럴 것이고, 또 아버지가 다르므로 그들 사이에 좀 더 복잡한 가족
관계가 형성될 수도 있지 않을까란 제 선입견 때문에도 그랬지요.
또 그 분은 저보다 훨씬 아이들을 진정으로 좋아하고 사랑하시는 분이 맞을 거란 생각도
해 봤는데요. 저는 둘 가지고도 힘들다고 생각하는 적이 주로인데, 그 분께서는 다섯이
나 되는 아이들을 아주 행복한 마음으로 꿋꿋히 보살피고 계시니 말입니다. 게다가 그
분은 또 자신만의 굳건한 영역을 견지해 나가시며 안팎으로 바쁘신 것에 비해 저는 그야
말로 별로 하는 일 없이도 아이들 돌보는데 소홀한 듯하니 자성을 아니 할 수 없었고요.
이렇게 이런 저런 비교와 유사성을 끊임없이 되풀이 하면서 이 책을 읽어내려 갔습니다.
그리고 굳이 이분과 나의 유사성 때문이 아니더라도 이 책은 자식을 가진 모든 어머니들
의 이야기일 수 있으리라는 깨달음을 결국에는 얻게 되었습니다. 알을 깨고 나오려는
새끼들에 대한 어머니의 조바조바하면서도 대견해 하는 심리, 또 그들이 각자가 받은 능
력대로 자신의 삶을 충실히 꾸미기를 원하는 모든 어머니들의 절대소망, 자기 자식뿐만
아니라 어머니의 눈에는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 다 아름답게 보이는 마음 바로 그것 말이
지요. 그러니 작가의 마지막 말처럼 그저 모든 것이 고맙고도 고마운 게 맞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요즘 한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는 ‘엄마를 부탁해’(사실 저도 빌려 읽고 있는
중인데요.)가 딸의 입장에서 엄마를 그리워하고 애닯아 하는 소설이라면 아마도 이 수필
집은 엄마의 입장에서 자식에 대한 사랑과 부모로서의 책임감, 보람, 회한 같은 것을 나
지막하게 들려주는 일종의 고백서가 아닌가 싶습니다. 아마 모든 어머니들의 간곡한 울
림이자 내 아이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라고 제겐 그렇게 느껴졌답니다.
그 분의 작품을 찾아서 빌려와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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