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한국 방문 때 구입한 이 책을 캐나다에 와 조금 읽다가 어느 새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정말 책과 사람과도 일종의 궁합이란 게 있다는 게 맞는 말 같다. 어쩜 그 땐 이 책 말고도
읽을만한 책이 많아서일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그 당시 이 책을 조금 읽다 그만둔 걸 보면 책과
나의 궁합이 안 맞았다는 게 더 맞을 것 같으니까…
그런데 엊그제 스파 가면서 어떤 책을 가져갈까 책장을 둘러보다가 문득 이 책을 발견하곤 ‘그래.
지난 번에 읽다 말았지? 오늘 이 책을 가져가서 읽어보면 어떨까?’하는 맘으로 집어 들고 갔다.
솔직히 별 기대도 안하고, 정 읽다 맘에 안 들면 책 안 읽고 그냥 쉬었다 오지, 뭐 하는 심정으로
말이다.
스파 장소에 다른 날보다 훨씬 일찍(
날의 첫 손님으로 아무도 발 담그지 않은 온천에 먼저 발을, 그리고 몸을 담갔다. 그런데 이상하
게 그날 난 스파를 즐기고픈 마음보다는 책 읽기에 차라리 더 신경이 쓰이면서, 빨리 책 읽을 기
회를 잡으려고 했던 것 같다. 그리고 기대한 만큼 책 읽기에 푹 빠져 아주 좋은 시간을 가졌다.
내가 이 책에 온전히 빠질 수 있었던 이유는 첫째, 날씨도 화창하고 온도나 공기의 쾌적함으로
인해 최적의 독서 분위기가 조성되었기 때문인 듯 하다. 또한 그러한 환경적 영향으로 맘 잡고
책에 빠져들다 보니 이게 또 나와 연관된 부분이 아주 많다는 걸 발견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래서 처음과는 다르게 아주 많이 이 책이 좋아졌고, 거의 삼분의 이 이상을 읽고 돌아왔다.
그런데 이 책이 나와 연관된 게 많다는 건 무슨 이야기일까?
우선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 영빈(개인적으로 주인공은 작가인 윤대녕을 많이 반영한 인물인 듯
하단 느낌이 우세하다.)은 나와 대학학번이 같은 81이고, 62년 생이다. 그래서 그와 나는 다른
환경에서 자라온 다른 배경을 지녔지만, 또 어찌 보면 같은 시대상을 살았던 비슷한 배경을 지녔
다고도 볼 수 있겠다.
그리고 영빈의 깊은 죄의식과 절망감을 나 또한 가졌었던 경험이 있기에 그의 고뇌가 절대로 소
설 속 인물의 고뇌로만은 보이지 않는다는 공감이 뚜렷하다. 나 또한 혼란의 시기에서 나름대로
어떤 것이 옳은 삶인가를 고민하면서, 영빈처럼 소시민적이되 울분을 삼켜야 했던 적이 있었고,
극복되지 않는 현실과 이상의 괴리에서 분명한 혼란을 느꼈던 적이 있었다.
거기에 나 역시 그처럼 가족을 한 때 멍에로 여겼던 적이 있었고, 내 자신을 아웃사이더로 규정
했던 적이 있었기에 그의 고통을 고스란히 내 자신의 고통으로 환치할 수 있었다. 사람과의 관
계 맺음에 있어 어딘지 모르게 방어적이고, 허무적인 결말은 내게도 전혀 낯선 게 아니었으므로.
그리고 현실에만 안주할 수 없는, 시대의 아픔을 짊어지려는 열정을 일종의 작가의식이라고 규
정한다고 봤을 때, 그의 그것에 비해 나의 그것은 지극히 미약하긴 하지만 그래도 동질의 것이
라는 믿음이 나와 그와의 유사점을 또 확신시켜 주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이 책을 나와 친근하게 만든 점은 바로 우리 각자 안에 존재하는 ‘호랑이’의
존재에 대한 인식이 아닐까 한다. 우리가 극복해야 할 그 무엇을 형상화한 것으로 보이는 호랑
이라는 존재는 우리 안에서 우리에게 호령하고, 우리를 조정하지만 결국 우리 힘으로 물러나게
해야만 하는 우리 자신의 한계이자, 우리를 변화시키는 원동력이 될 수도 있다는 거.
다시 말해 이 세상 만물의 법칙이라고도 볼 수 있는 음과 양, 빛과 그림자와 같은 상보성 원리
중 하나가 우리의 불안, 고통, 그리고 그것에 대적하는 우리의 의지이고, 그걸 극복하므로 우리
는 성장할 수 있는 게 아닐까 란 평소의 내 믿음을 다시금 확신했다는 거 말이다.
그래서 나와 많이 닮아 보이는 작중 인물에 동화되면서 나는 나의 또 다른 분신을 만난 행복감
으로 외로움을 덜었다고 믿는다. 비록 그 외로움이 다시 곧 살아난다 할지라도 얼마 동안은 뭉
근한 위로와 위안을 받고, 나 혼자만이 아니고 나와 비슷한 이들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동류
의식 속에서 외로움을 다소 덜 수 있었던 건 분명 삶의 축복 중 하나라고 믿기에 더욱 그러하다.
'이야기테크 > 책방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수전 손택 단편소설집 `나, 그리고 그 밖의 것들` 중... (0) | 2009.05.15 |
---|---|
[스크랩] 과학과 철학의 절묘한 만남, 거기에 세상만사 법칙까지 (0) | 2009.05.15 |
[스크랩] 그의 감성이 그대로 전달되는... 이외수의 ‘하악하악’ (0) | 2009.05.15 |
[스크랩] <파울 카메러 박사> 이야기 (0) | 2009.05.15 |
[스크랩] 그의 인생 철학에 백 번 공감하며… ‘싯다르타’ (0) | 2009.05.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