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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배척받는 예수

명호경영컨설턴트 2009. 5. 16. 22:48
예수께서 또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어떤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엘리야 시대에 삼 년 육 개월 동안 하늘이 닫혀서 온 땅에 기근이 심했을 때에, 이스라엘에 과부들이 많이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그 많은 과부 가운데서 다른 아무에게도 보내지 않으시고, 오직 시돈 지방의 사렙다의 한 과부에게만 보내셨다. 또 예언자 엘리사 시대에 이스라엘에 나병 환자가 많이 있었지만, 그들 가운데서 아무도 깨끗함을 받지 못하고, 오직 시리아 사람 나아만만이 깨끗함을 받았다." (눅4: 24-27)

예수께서 고향 동네에 가서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그 가르침을 듣고 많은 고향 사람들이 놀라워했다고 합니다. 그들이 익히 알고 있는 요셉의 아들이며 목수인 그가 어찌 저런 말들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 그 놀라움의 이유였습니다.

그들은 누구보다도 예수를 잘 아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의 아비와 어미가 누구인지 그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훤히 꿰뚫고 있는 지인들이었습니다. 어려서 예수가 자라는 모습도 지켜보았을 것입니다. 예수의 형제와 자매들도 모두 그들이 일상적으로 접해온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이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예수.그러나 그들은 예수를 잘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알고 있다고 확신해 마지않았던 예수의 모습이 오히려 문제였습니다. 예수의 입술을 통해 나오는 말씀이 그들에게는 놀라움의 동기가 되었지마는 진실로 예수를 아는 데까지 이르지는 못하였습니다. 같은 고향 사람으로서 예수를 너무도 잘 알고 있다는 그들의 믿음이 예수의 참 실체를 아는 데에 걸림돌이 되고 만 것입니다.

종종 우리의 지식은 우리로 하여금 진리를 보지 못하게 합니다. 이미 알고 있는 지식에 눈이 가려져 새로운 진실을 바라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정확한 관찰은 올바른 지식을 얻는데 있어 필수적인 요구사항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미 갖고 있는 지식(선입견)의 영향으로 우리의 관찰에는 굴절이 발생하게 됩니다.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의 관찰은 이미 자신이 갖고 있는 정보에 따라 편향될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이 의도하는 바대로 관찰 내용을 분석하려는 심리적 경향이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면 제 입맛에 맞는 사실은 과장되게 강조하고, 자신의 의도와 일치하지 않는 사실은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간과해버리는 '아전인수 효과'가 나타납니다.

이런 현상은 부모의 자식이해에서도 흔히 발견됩니다. 부모는 누구보다도 자기 자식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기가 낳아 기른 자식이기에 당연히 그러하리라고 믿어집니다. 그러나 실상 부모는 자기 자식의 가려진 모습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모든 부모는 자기 자식에 대한 기대를 품고 있습니다. 그 아이가 이러이러한 인간이 되기를 바라는 부모의 심정은 고스란히 아이에게 투영됩니다. 부모의 기대는 부모로 하여금 자신이 바라는 바대로 자식을 바라보게 만듭니다.

사고를 친 학생의 부모가 학교에 찾아와 교사에게 하는 말 중 가장 흔한 반응은 이런 것입니다.  
- 우리 애는 그럴 애가 아닙니다. 선생님이 잘못 보셨어요.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친구들 꾐에 넘어가 그런 겁니다.

자식에 대한 기대로 콩깍지가 쓰인 부모의 눈은 자식의 다른 면을 보지 못한 채, 어려서부터 길러왔기에 누구보다도 자식에 대해 잘 안다는 신념에 의존할 뿐입니다. 교사에 의해 파악된 자식의 면모는 왜곡된 사실로 여겨질 뿐 도저히 동의할 수 없는 내용입니다. 교사가 본 것은 아이의 본 모습이 아니라며 왜 극히 사소한 일부분을 마치 전체인 것처럼 확대해 보려고 하느냐는 항변을 쏟아 놓습니다.

죽음을 목전에 둔 유월절 만찬 자리에서 예수께서 보이신 가르침의 진수는 바로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신 사건입니다. 당시 상황으로 보면 손님의 발을 씻는 것은 그 집 종이 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스승인 예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으신 것은 바로 종으로서 섬기는 자세를 보여 주신 것입니다.

- 내가 행한 것과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본을 보였다.

예수께서 제자들 곁을 떠난 후 제자들이 행하여야 할 삶의 전형이 무엇인지를 몸소 행동으로 실천하여 일깨우셨습니다.

오늘날 누구보다도 예수를 잘 알고 있다고 하는 사람들 중 으뜸은 역시 성직자들입니다. 대학에서 전문적인 학위 과정을 이수하고 각종 신학이론과 목회이론을 공부한 그들에게 예수는 너무도 친숙하고 잘 아는 인물일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예수 따르기를 평생의 과업으로 알고 살겠다고 서원한 사람이니 오죽하겠습니까마는 실상은 그러한 이력이 도리어 예수를 제대로 보지 못하게 하는 걸림돌이 되는 것을 종종 봅니다.
출처 : 고동엽의 교회 개혁공간!
글쓴이 : 바른교회이야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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