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시 악마는 예수를 예루살렘으로 이끌고 가서,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그에게 말하였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여기에서 뛰어내려 보아라. 성경에 기록하기를 '하나님이 너를 위하여 자기 천사들에게 명해서, 너를 지키게 하실 것이다. 그들이 손으로 너를 떠받쳐서, 너의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할 것이다' 하였다." 예수께서 악마에게 말씀하셨다. "성경에 기록하기를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아라' 하였다."(눅4: 9-12) 니이체의 말에 따르면 인간의 본질은 힘 즉 권력에 대한 의지라고 합니다. 인간의 모든 행동은 힘의 추구를 최종적인 목표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 힘은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그를 우러러보게 만듭니다. 그의 일거수 일투족이 사람들의 관심과 찬탄의 대상이 됩니다. 그가 가는 곳마다 시선이 집중되고 많은 사람이 그를 환호합니다. 그가 얘기한 초인은 최상의 권력 의지를 실현한 인간일 것입니다. 왜 인간은 권력을 추구할까요? 권력은 여러 가지 형태의 특권을 가져다주기 때문입니다. 토끼가 아무런 힘도 없지만 호랑이와 함께 가면 다른 짐승들이 슬슬 피합니다. 호랑이의 힘이 가진 위력 때문에 그렇습니다. 호랑이만 믿고 토끼는 이놈 저놈 하면서 호령을 할 수도 있습니다. 호랑이의 눈치를 보느라 다른 짐승들은 찍소리 안 할 것입니다. 대통령이라는 지위는 한국에서 최고의 권력입니다. 그와 혈연관계에 있는 사람에게는 온갖 유형의 특별한 대접이 따릅니다. 단지 그가 대통령의 친척이라는 이유만으로도 그에게는 대단한 힘이 실립니다. 처음에는 대통령의 친척이라는 이유 때문에 사람들이 베푸는 갖가지 호의와 배려에 좀 어색할 수도 있습니다. - 이러지 마세요. 제가 뭐 대단한 사람인가요. 오히려 부담스러워요. 제가 대통령입니까? 저하고는 상관없는 일이에요.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가 없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한 번 두 번 대접을 받다보면 그 어색하던 것이 익숙해집니다. 불편하던 것이 오히려 편해집니다. 일단 한 번 젖어들기 시작하면 몸에 배는 것은 시간 문제입니다. 그래서 아예 발을 들여놓지 않는 게 현명한 법이지요. 백로야 까마귀 노는 곳에 가지 마라 는 노래도 그래서 생긴 것 아니겠습니까? 습관이 되고 나면 으레 그렇게 대접받는 것을 당연시하게 됩니다. 대접하고 호의를 베풀어주는 게 고맙고 황송하던 마음도 사라지고, 어느덧 그런 대접과 호의를 베풀지 않는 사람을 보면 기분이 나빠지기 시작합니다. 이 단계에 이르면 정말 중증이라고 봐야 합니다. 사람들로부터 원성과 비난을 받으면서도 자신의 과오를 알지 못하는 병적 자만의 증상이 나타납니다. 이제는 호된 채찍을 맞으며 몰락하는 수순만 남은 겁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온 유대인들이 숭상하고 섬기는 곳입니다. 항상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하고 있는 권력의 핵입니다. 유월절이면 숱한 사람들이 그곳에 올라와 제사를 드립니다. 종교 권력의 핵인 예루살렘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는 사나이.대단하지 않습니까? 모든 관심의 표적이 될 것입니다. 게다가 하나님의 천사가 나타나 그를 호위하고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도록 떠받든다니 온 나라 사람들의 찬탄과 우러름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는 대단한 권력입니다. 공개 행사가 벌어지는 장소에서 VIP 들은 특별 경호를 받습니다. 검은 선글라스를 끼고 말끔한 양복을 입은 건장한 청년들이 특유의 무심하면서 날카로운 표정으로 사방을 경계합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은 '아 저 사람 중요 인물이구나' 하는 것을 직감하게 되고 그 사람에게서 권력의 입김을 느끼게 되는 법입니다. 경호 받는 당사자 역시 우쭐하는 감정에 젖게 되지요. 자신이 하나님과 특별한 관계가 있음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그럼으로써 별스런 대접을 받으려는 충동이 오늘날 한국 교회의 많은 목사들에게 깔려 있습니다. 항상 하나님의 종이라는 명칭을 내세우며 자신들이야말로 하나님께 보다 가까이 있는 측근 중의 측근이며 하나님의 특별한 관심과 보호를 받는다는 인상을 성도들에게 심어주려 이모저모 애를 씁니다. 주의 종을 잘 대접해야 복을 받는다는 식의 설교는 이미 입술에 자동 입력이 되어있는 상태라 아무 거리낌없이 수시로 튀어나오고, 자기 말을 거역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거스리는 것이라는 식의 공갈도 서슴지 않습니다. 자신의 말에 순종하는 것이 곧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라는 공리를 내세워 감히 입도 벙긋 못하게 하는 게 그들의 교묘한 수법입니다. 심지어는 물건을 하나 사는 데도, 파는 사람이 교인이면 하나님의 종에게 돈을 받으려느냐는 투로 깍아줄 것을 요구하거나 더 심한 경우는 공짜로 달라는 내색을 하면서도 부끄러운 줄 모르는 철면피도 가끔 있습니다. 아픈 사람 심방 가서 기도 한번 해주고는 성도가 찔러주는 촌지 봉투를 아무렇지도 않게 당연히 받거나, 아니면 예의상 한번 거절하다가 못이기는 척 받아 넣는 짓을 하면서도 자신을 엘리사와 같은 주의 종이라고 떠벌이기도 합니다. 엘리사에게 와서 문둥병을 고침 받은 수리아 사람 나아만이 감사의 표시로 내놓은 재물을 단호히 거절하여 돌려보낸 사건은 읽어보지도 않은 모양입니다. 그 돈이 생각나서 스승 몰래 뒤쫓아가 은 두 달란트와 옷 두 벌을 얻어온 게하시를 책망하며 문둥병에 걸리게 한 엘리사의 심정을 조금이라도 헤아리고 있는지 참으로 궁금합니다. 예수께서 그렇게 상석에 앉으려 하지 말라했건만 언제나 자신이 상석에 앉아야 한다는 습성을 몸에 익혀 실천하면서 자신이 하나님의 종이니 당연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종은 종의 자리인 말석으로 가야 한다는 단순한 예의도 모르는 것을 보면 갑갑하기도 하지요. 여 성도와 육체적인 추문이 불거지면 자신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아가페적인 사랑을 표현한 것인데 상대가 이를 왜곡해 자기 마음대로 에로스적인 사랑으로 받아들인 것이라며 자신을 변명하는 게 일상화된 패턴입니다. 자기의 육체는 언제나 아가페적인 사랑으로 움직이기에 무슨 짓을 해도 그것을 음심으로 해석하면 곤란하다는 해괴한 논리를 펼쳐대기도 합니다. 악마가 예수를 넘어뜨리기 위해 사용한 마지막 방법은 사람들 앞에, 자신이 하나님과 특별한 관계에 있으며 하나님의 특별한 보호를 받고 있음을 널리 과시하도록 유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과시를 통해 누리게 될 권력의 달콤함에 빠져들게 하려는 악마의 유혹에 대해 예수께서는 단호히 말씀하십니다. - 주 너희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하나님의 특별한 보호를 받는 주의 종이라는 타이틀 아래 특별한 대접을 받으려는 시도는 하나님을 시험하는 행위입니다. - 주의 종을 잘 대접해 보십시오. 주의 종에게 순종해 보십시오. 하나님이 어떤 복을 주시나! 악마의 유혹에 걸려든 목사의 전형적인 외침입니다(유성오) |
출처 : Chitho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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