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투자라는 것 세일러
이 글에서는 지금 우리나라 주식시장에서 가치 투자가 가능할 지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가치투자는 투자 대상에 불변의 가치가 있음을 전제로 합니다.
주식투자의 경우라면, 투자 대상 기업에 불변하는 기업 가치가 있음을 전제로 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상장 기업들이 불변하는 기업 가치를 가지고 있는데, 현재 주식시장이 여러 가지 이유로 변덕(Mr. Market의 변덕)을 부려 기업 가치에 비해 가격(주가)이 싸게 거래되고 있다면, 절호의 매수 기회라고 보는 것입니다.
가치투자자들은 대세를 거스르는 역발상 투자자들입니다. TV 광고에서 보듯이 모두가 ‘아니오’ 할 때 ‘예’하는 투자자들입니다.
주가가 많이 하락하여 남들이 손절매를 고민하는 시기를 오히려 매수 기회라고 봅니다. 남들이 주식을 쳐다도 안보는 시기가 오히려 좋은 투자기회라고 생각합니다.
가치투자의 관점에서 보자면 현재 한국 주식시장이 절호의 매수 기회로 여겨질 여지도 있습니다.
PER(주가수익배율)이 2.4*, PBR(주가순자산배율)이 0.3* 정도 되는 주식들이 널려 있습니다.
이 정도의 PER, PBR은 98년 경제위기 직후 아무도 주식을 쳐다보지 않던 시기에 형성되었던 수준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지금이 가치투자의 적기일까요?
가치투자의 탄생 자체가 30년대 대공황과 관련이 깊다는 점을 고려하면 지금과 같은 시기가 가치투자의 적기라는 말은 더욱 설득력 있게 다가옵니다.
워렌 버핏의 스승 벤저민 그레이엄은 30년대 대공황으로 투자 손실을 겪고 나서,
대공황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을 수 있었던 투자법은 과연 어떤 것인가 고민했고, 그 고민의 결과를 담아 ‘현명한 투자자’라는 불후의 투자 고전을 남겼습니다.
이처럼 그레이엄에서 버핏으로 이어지는 가치투자법은 대공황에도 견딜 수 있도록 고안된 투자법입니다.
국내의 가치투자자들도 버핏을 존경하며 그의 투자법을 따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지금과 같은 시기가 가치투자 원칙에 따라 주식을 매입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일까요?
저는 이 질문에 대답하려면, 미국 경제와 한국 경제가 체질이 다르다는 점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앞에서 가치투자는 투자 대상에 불변의 가치가 있음을 전제로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므로 기업가치가 급변한다면 가치투자는 불가능하게 됩니다.
저의 앞 글, 한.중.일 3국의 상황과 디플레이션 에서 우리 나라의 수출의존도(07년 38.3%)가 지나치게 높다는 사실, 세계의 경제평론가들이 '동아시아의 수출의존형 경제모델'이 일대 위기를 맞았다고 지적한다는 사실을 말씀드렸습니다.
수출의존형 동아시아 경제모델은 ‘패러다임의 전환’을 겪어야 할 것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의미를 충분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경제모델에 대한 패러다임의 전환을 겪는다는 것은 어떤 것을 의미할까요?
경제에 대한 우리들의 사고방식, 인식의 틀, 경제에 대해 갖고 있는 우리들의 믿음이 일대 변혁을 겪어야 한다는 말일 것이며, 그 정도로 경제체제가 송두리째 바뀌는 대변혁을 거쳐야 할 것이라는 말입니다.
저의 앞 글, 미국 때문에 전 세계가 흔들리는 이유 -... 에서 자산버블에 기반했던 미국 소비자들의 과소비가 붕괴되면서 동아시아 3국의 수출에 결정적인 타격이 가해지고 있다는 사정을 설명드렸습니다.
여기에 더하여 보호무역주의가 강화되고 있음을 유념해야 합니다.
이 부분을 착각하면 안됩니다.
지난 3월 15일에 있었던 G20 재무장관 회의에서, G20 재무장관과 중앙은행 총재들이 모여 “모든 형태의 보호주의와 맞서 싸우고 자유무역과 투자를 유지할 것”이라고 공동결의문에 합의하였습니다.
이렇게 합의하였다고 하여 보호무역주의가 방지 될까요?
30년대 대공황 당시를 돌아보면, 자국 경제의 힘든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보호무역주의가 기승을 부렸고, 결과적으로 이 때문에 국제무역이 급격히 쇠퇴하면서 세계경제는 더욱 깊은 공황의 나락에 빠지게 됩니다.
보호무역주의로 인해 공황이 더욱 악화되었던 뼈저린 경험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그 때문에 똑 같은 실수를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 세계의 정상들이나 재무장관들이 모이면 자꾸 ‘보호무역주의 절대 배격’을 외치는 것입니다.
이번에는 어리석게 보호무역주의로 가지 않을 것이라고 얘기되는 근거가 바로 이처럼 과거 보호무역주의 강화가 어떤 부작용을 초래했는지 세계 각국의 지도자들이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뼈아픈 경험에 대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똑 같은 실수를 되풀이 할 리 없다는 것입니다. 과연 그럴까요?
먼저 1930년대 당시에 보호무역주의가 기승을 부린 것은, 보호무역 조치가 상황을 더 악화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이 아닙니다. 이 점을 분명히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당시 미국의 보호무역 조치에 대해 미국 경제학자 1,000명이 연대 서명하여 공개 반대를 천명했습니다. 경제학자들은 반대의 이유로, 보호무역 조치가 장기적으로 보면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그러나 보호무역 조치는 유권자의 표를 의식한 정치인들에 의해 의회를 통과하였고 그대로 강행되었습니다.
결국 30년대에도 보호무역조치가 어떤 부작용을 초래할 지 몰라서 그런 조치들이 취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번에 미국 오바마 정부의 경기부양책에 바이 아메리카 조항(Buy America, 정부지원을 받는 미국 내 공공사업에 대해 미국산 제품만을 사용하도록 규정한 것)이 포함되었습니다.
이에 대해서도 미국 내에서 비판여론이 거셌습니다. 보호무역주의는 타국의 보호무역주의를 부르고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뿐이라는 것이었지요.
그러나 결국 의회를 통과했습니다.
미국에서 자동차회사 빅3에 대한 보조금 지원책을 내놓았습니다. EU에서는 WTO 위반이라고 항의하면서 자신들도 보조금을 주겠다고 나섰습니다. 자유무역의 상징인 WTO 체제는 사실상 이미 와해되었다고 봐야 합니다.
결국 인간이 오류를 범하게 되는 것은 과거의 경험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아래의 기사를 보시면 유럽에 보호무역주의가 확산되고 있음을 알 수있습니다.
관련기사: 유럽, 보호주의·민족주의 바람
영국 노동자들은 기업들이 저임금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하는 것에 항의하면서 파업과 시위를 벌이고 있습니다.
프랑스 정부는 자동차 제조업계에 공적자금을 투입하면서 국내부품 사용과 해외이전 금지를 조건으로 내걸었습니다.
스페인도 ‘바이 스페인’을 외치고 나섰습니다.
결국 보호무역주의는 착착 진행되고 있습니다.
4월 2일에 열릴 G20 정상회담에서도 보호무역주의를 배격한다고 하는 결의문은 물론 채택될 것입니다. 이런 결의문이 채택된다고 해서 보호무역주의로 가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한다면 그것은 순진한 생각입니다.
각국에서 실업자가 늘어나고 이에 따라 외국인 노동자 고용이나 외국산 제품 사용에 대한 반감이 고조되면, 유권자들의 표를 의식해야 하는 정치가들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습니다.
보호무역주의가 확산됨에 따른 가장 큰 피해자는 수출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입니다.
결국 우리나라의 수출산업은 미국 과소비 붕괴에 따른 소비 감소, 시장 축소의 영향과 보호무역주의라는 이중의 파고를 맞고 있는 셈입니다.
그에 따라 우리 수출기업들의 기업가치도 급변을 겪게 될 것입니다.
경제위기가 심화된 이후 우리 나라의 수출 감소 상황을 살펴보면,
작년 11월 -18.3%, 12월 -17.9%, 금년 1월 -33.8%, 2월 -19% 입니다.
원달러 환율이 급상승한 덕에 덤으로 가격경쟁력이 생겨 덤핑 수출을 한 결과 그나마 선방했다고 하는 것이 이 정도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제야 시작일 뿐이라는 사실입니다.
저는 앞선 글, 한.중.일 3국의 상황과 디플레이션, 에서 미국의 소비 감소가 동아시아 3국의 수출에 본격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데에는 1년의 시차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설명드렸습니다.
즉 미국의 과소비 붕괴가 본격적으로 우리나라 수출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금년 10월경부터 나타날 것입니다.
그리고 세계 각국의 보호무역주의 역시 이제 시작이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결국 우리나라 수출산업과 수출기업의 어려움은 금년 10월 정도가 되어야 본격화된다고 봐야 합니다.
이상으로 우리나라 수출기업들의 상황을 살펴보았습니다. 결국 수출기업들에 대해서는 그 기업가치의 불변성에 대해 확신을 가질 수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내수 기업은 괜찮을까요?
지난 10년간 우리나라의 경제구조는 수출하는 대기업들만 수익을 극대화시켜왔습니다.
관련 글: 우리 나라 수출의 문제점, 내수 부진의...
수출 대기업들은 자신들의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내수의 토대를 이룰 수 있는 중소기업들을 쥐어짜기만 했습니다.
98년 경제위기 이후 근로자들은 비정규직화 되었습니다. 그 결과 근로자들의 평균소득은 줄어들었고 따라서 내수의 활성화는 어려웠습니다.
이런 상황에 더하여 너도 나도 담보대출을 통한 아파트 매입에 나선 결과, 이자비용에 허리가 휘어 소비를 늘릴 수 있는 여력이 없어졌습니다.
중산층에게 사교육비 부담도 적지 않습니다. 이래저래 중산층들이 소비할 여력이 없습니다.
그 결과 내수가 육성되지 못했습니다.
지난 10년간 수출이 늘어도 내수가 늘지 못했습니다.
디커플링 되었으니 반대로 수출이 줄어도 내수가 줄어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지는 않으시겠지요?
취약한 내수기반은 수출이 무너지면 따라 무너져내릴 것입니다.
IMF가 올해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을 -4%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실업대란이 벌어질 것으로 우려되는 상황입니다.
정부에서는 잡셰어링이라 하여 임금삭감을 유도하고 있습니다. 자영업자들이 몰락하고 있다는 사실은 신문기사를 보지 않더라도 우리 주위에서 쉽게 목격됩니다.
내수가 살아날 수 있다고 보십니까?
결국 내수기업들의 기업가치도 불변할 것으로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이렇게 놓고 보면 수출기업이든 내수기업이든 현재 한국기업들은 기업가치의 불변성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에 가치투자는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저는 앞서 가치투자의 가능성을 따져보기에 앞서, 미국 경제와 한국 경제가 체질이 다르다는 점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벤저민 그레이엄은, 대공황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을 수 있었던 투자법이 어떤 것인가 고민했고, 그 고민의 결과 가치투자의 원칙을 찾아냈습니다.
이 때 우리가 주목할 것은, 미국은 공황을 겪을지라도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없는 나라라는 사실입니다.
미국은 수출의존도가 7.84%로 전세계 주요국가 중 제일 작습니다.
경제의 수출의존도가 이렇게 작으니 30년대 식 공황이 다시 와서 보호무역주의가 강화돼도 타격이 제일 적을 뿐만 아니라, 완전히 빗장을 걸어 잠그면 오히려 제일 유리한 상황이 됩니다. 그동안 수입하던 상품들에 대한 수입대체 산업만 육성해도 금방 경제를 회복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미국이라는 나라는 인구수, 넓은 국토면적, 식량자급률, 원유를 비롯한 천연자원까지 모든 것을 갖춘 나라입니다. 거기에 더해 과학기술에 군사력, 아직까지는 앞서가고 있다고 보이는 문화와 민주화된 정치체제까지 갖추고 있습니다.
결국 대공황이 다시 찾아온다 해도 패러다임 전환을 겪을 필요가 전혀 없는 나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치투자가 가능한 나라인 것입니다.
이렇게 놓고 보면 미국에서 이론이 만들어졌고 미국에서 통용되는 가치투자의 원칙을 한국의 기업들과 주식시장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아귀가 맞지 않는 얘기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처럼 수출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은 국가경제는 외부의 충격에 쉽게 흔들릴 수 있기 때문에 불변하는 기업가치가 존재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가치투자의 대가 워렌 버핏도 이번 경제위기로 인해 타격이 클 것입니다. 하지만 버핏은 몰락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반면 한국의 가치투자자들은 결정적으로 몰락할 수 있습니다.
이번 경제위기가 발생하고 진행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자꾸 平常, 通常 대 非常을 대비해서 생각하게 됩니다.
平常시, 通常적인 때는 通念(보통 때의 생각)이 적용되는 시기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가치투자가 가능한 시기입니다.
이에 반해 非常시기는 검은 백조가 출몰하는 시기, 설마가 사람잡는 시기입니다. 非常시기에는 우리나라처럼 수출의존도가 높은 국가경제에서는 가치투자의 원칙이 통하지 않는 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주식시장은 07년 10월에 2085로 고점을 기록할 때까지 수년 동안의 대세상승기를 거쳤습니다. 이 기간동안 큰 수익을 올린 가치투자자들이 많이 탄생했습니다.
그런데 그 뒤로 우리 주식시장은 큰 폭의 하락장을 맞이하게 되었는데, 이 기간동안 가장 큰 타격을 입은 투자자들이 또 가치투자자들입니다. 대세 상승기 동안 가치투자의 성공사례로 이름이 상당히 알려진 분들 중에서도 정말 인생에 타격을 받을 정도로 큰 피해를 입은 분들이 있습니다.
지난 몇 년 동안 거둔 큰 성공이 가치투자 원칙에 대한 확신을 갖게 했고, 08년 2,3월경 종합지수 1500, 1600대에서 다시 못 올 기회가 왔다며 집중투자를 한 것입니다. 기업체의 지분 5%를 확보하며 대주주로 이름을 올린 경우도 있습니다.
그 뒤로도 주식시장의 하락은 이어졌고 지금까지 왔습니다.
종합지수 1500, 1600 대일 때는 너무 빨랐지만, 1200대인 지금은 가치투자가 가능할까요?
종합지수가 최근 몇 달간 박스권을 형성했던 하단부인 1000대라면 가치투자가 가능한 것일까요?
제 생각엔 종합지수 얼마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경제에 대한 패러다임의 전환이 완전히 이루어진 다음이라야 가치투자가 가능할 수 있게 된다고 봅니다.
패러다임의 전환이 완전히 이루어질 때까지는 기다려야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그 시점이 금방 올 것으로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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