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스트제도
현대화, 민주적 제도, 기술발전 그리고 도시화는 인도인들의 일상생활을 크게 변모시켰다. 산간벽지에 사는 사람들도 라디오를 통해 음악을 듣고 위성중계를 통해 뉴델리에서 방영되는 TV 연속극을 본다. 또 인도인 중에는 우주비행사, 노벨상 수상 과학자, 다국적기업 재벌, 국제적인 영화배우 등도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변화에도 불구하고 인도인들은 가족 중심적이고 카스트 지향적인 사회분위기에서 살아가고 있다. 돈과 권력이 오늘 날 인도에서는, 세계의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사회적 계급을 나타내는 중요한 지표가 되고 있고 뉴델리, 뭄바이(Mumbay) 등의 대도시에서는 부유한 도시 상류계급이 급속히 성장하고 있다.
전통적인 카스트와 가족제도의 연속성이 현대적 상류계급과 결합한 대표적인 예는 인도의 전 수상이었던 라지브 간디(Rajiv Gandhi: 1944 - 1990)이다. 그의 외할버지인 네루(Jawaharlal Nehru)는 인도의 최고 카스트로 알려진 까쉬미르(Kashmir) 브라만(Brahman)가문 출신이었고 인도를 17년 동안 통치했던 수상이었다. 또 네루의 외동딸이자 라지브의 어머니인 인디라 간디(Indira Gandhi) 역시 16년 동안 수상으로 재직했었다. 라지브는 전통적인 의미에서나 현대적인 의미에서나 인도 최고의 가문을 물려받았고 그 혜택을 누렸던 것이다. 이것보다는 덜 유명한 경우이지만 인도에서 1, 2위를 다투는 재벌인 빌라(Birla)그룹도 전통적으로 대금(貸金)업을 하는 카스트에 속해 있었다. 영국에 의해 서구적인 금융업이 도입되자 그들은 자신들의 전통적인 기법과 현대적 금융기법을 결합시켜 금융재벌로 성장하였던 것이다.
인도의 정치인들 중에도 과거의 영광에서 도움을 받은 인물들이 상당수 있다. 외무장관을 지냈던 씽(Dinesh Singh), 철도장관이었던 씬디아(Rao Scindia) 또 수상을 지냈던 씽(Vishwanath Pratap Singh)도 왕족 출신이었다. 이 정치인들은 자신들의 선조가 통치했던 지역 주민의 전폭적인 지지를 오늘날에도 받고 있는 것이다. 즉, 전통적으로 상위카스트에 속했던 사람들은 현대 사회 체제하에서도 유리한 출발선에 설 수 있는 것이다.
카스트(Caste)라는 단어는 폴투갈어의 까스따(Casta: 혈통)에서 유래한 것으로 계급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인도에서 전통적으로 카스트를 의미하는 단어로 사용되어져 온 것은 와르나(Varna)와 자띠(Jati)이다. 와르나와 자띠는 계급제도를 표현하는 거의 같은 뜻의 단어로 사용되어지고 있지만 좀 더 자세히 구분하자면 와르나는 카스트를 광범위하게 구분하는 인종적, 문화적인 분류이고 자띠는 카스트를 기능적, 직업적으로 분류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4가지의 와르나 즉, 브라만(Brahman), 끄샤뜨리아(Kshatrya), 바이샤(Vaisha), 수드라(Sudra), 와 약 3,000개의 자띠가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카스트제도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의 이론이 있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인종적인 원인에서 그 기원을 찾는 것이다. 와르나라는 단어의 원래 의미는 '색갈'이다. 인도아대륙에 대한 아리아인의 침입이 시작된 후, 지배자로 등장한 아리아인들의 피부색은 백인에 가까웠던 것으로 또 원주민인 드라비디아인은 흑인에 가까웠던 것으로 믿어진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지배자인 아리아인들은 지배계급으로서의 우월성과 혈통의 순수성을 보존하기 위해서 피부색에 의한 계급제도를 만들어 내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원시카스트제도에는 아리아인과 비아리아인의 두 계급만이 있었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이와 같이 극히 단순했던 계급구분이 종교의 발전, 유목 생활에서 농경생활로 변화, 아리아인과 비아리아인들의 혼혈 등으로 사회생활이 복잡해지자, 그 혈통 그리고 사회적 기능에 따라 여러 부분으로 분화되어 갔다고 추정하는 것이다.
카스트제도에 대한 언급이 인도의 성전에 등장하는 것은 리그 베다가 처음이었다. 리그 베다 중에서도 비교적 후기에 속하는 기원전 1,000년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송가 중에 '브라만은 인간의 형상을 한 우주적 본질(Purusha)의 입에서, 끄샤뜨리아는 팔에서, 바이샤는 허벅지에서, 수드라는 발에서 나왔다'고 하는 구절이 포함되어 있다. 이것은 무척 상징적인 표현으로서 입에서 나온 브라만은 정신적 그리고 사회적 지도자 내지는 교사를 의미하고 , 팔은 힘을 상징하므로 끄샤뜨리야는 통치와 방어를 맡고, 그리고 허벅지가 인체를 유지하듯이 농부, 상인계급은 농작물을 생산하고 유통시켜 사회를 유지하고, 마지막으로 수드라는 발이 전체 몸을 받치지만 항상 마음이 명령하는대로 움직이듯이 다른 계층을 위해 봉사해야 하는 것이다. 카스트의 기원이 기능적 분화의 결과였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은 위와 같은 리그 베다의 상징적 표현을 자주 이용한다.
이론적으로 말하자면 인도의 모든 카스트는 그 자신의 세습적인 직업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또 사실상, 이발사, 농부, 정원사, 금세공사, 대금업자, 목수 등 일반사회에서 필요한 모든 기능의 카스트들이 존재하고 있다. 과거부터 일부 특수직업을 제외하면, 카스트의 직능상의 세습제는 강제적 규정은 아니었다. 그러나 현대 인도에서 모든 사람들에게 열려있는 직업이 있다면, 그것은 정부공무원, 군인 그리고 농업에 종사하는 것뿐이다. 농업에 종사하는 것은 매우 오래 전부터 허용되어 왔었던 것으로서 다른 직종과는 달리 그 종사자의 신분의 변화를 가져오지 않는다고 믿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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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속의 여성
힌두법의 모체인 마누(Manu)법전에서는 여성을 ' 영원한 미성년자'로 간주하여 '처음에는 아버지, 다음에는 남편, 마지막으로는 아들들에게 보호'되어야 할 존재로 간주하고 있다. 또 여성은 결코 '신뢰'해서는 안되는 대상이며 혼자 살게 해서도 안된다고 규정하고 힌두 남편이 '비록 바람둥이이고, 쾌락을 찾아 이곳 저곳 헤매고 또 자질이 없다고 할지라도' 그의 부인에게서는 항상 '왕처럼 숭배되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여자는 '우둔한 본성'을 가졌고 '음란'하기 때문에 집의 뒤편에서 살아야 하고 여자가 집 바깥에 나갈 때는 면밀히 감시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반적으로 힌두교에서는 여성은 잠재적인 위험성을 가진 존재로서 신뢰할 수 없으므로 남자에게 종속되고 조종될 때만이 유익한 존재가 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부인은 남편에게 절대적으로 복종해야 함은 물론 남편이 먼저 죽었을 때는 남편의 화장불길 속에 뛰어 들어 함께 순사하여야지만 정절 높은 여인으로 추앙될 수 있었다.
결혼은 힌두여성에게 있어서도 일생 중 가장 중요한 통과의례 중의 하나이다. 결혼 상대는 같은 카스트 속에서 골라야 하는 것이 가장 제일 먼저 고려할 전제이고 다른 카스트의 신랑후보는 피해야 한다. 또 신부의 처녀성이 중시되기 때문에 예전에는 유아혼이 장려되기도 했었다. 일단 결혼을 한 이후에 부인은 남편을 위해 전적으로 봉사하고 가정을 지키고 그것의 번영을 위해 노력하며 또 가문의 혈통을 이어갈 아들을 출산할 의무를 가졌다. 힌두교도들은 현세의 삶을 마치기 위해서는 장례식 때 아들의 손에 의해 화장의 불길이 점화되지 않으면 안된다고 믿고 있다. 따라서 아들이 태어나지 않으면 현세의 삶이 ,영적인 면에서는, 끝날 수 없는 것이다.
조상숭배, 우리 식으로 이야기한다면 제사에 있어서도 아들의 존재는 필수불가결의 것이다. 딸의 아들들, 즉 외손자들은 외갓집의 제사를 할 수 없게 되어 있기 때문에 아들을 출산해야하는 것은 가문의 내세와도 직결되는 문제인 것이고 이 책임은 모두 여성들이 지게 되어 있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딸들은 어머니뿐만 아니라 전 가족의 부담으로 간주되고 있다. 딸이 태어났을 때는, 아들의 경우와는 달리 친척과 친지들을 불러모아 축하잔치를 열지도 않는다. 부모들에게 있어서 딸은 아들에 비해 쓸모가 없는 존재이다. 어느 정도 나이가 먹어 제 몫을 할 만 하면 많은 지참금을 얹어서 다른 집안으로 보내야 할 존재이기 때문이다. 라자스탄 주 또는 중부인도지역의 사막지방에서는 여자유아살해에 대한 보도가 자주 있다. 이것도 딸에 대한 부모의 부담감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인도에서 여자로 태어나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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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제도
인도의 사회제도 중 가족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가족생활을 통하여 카스트의 가치를 배우고 '힌두교'라고 부르는 생활의 방식을 배운다. 가족은 카스트의 기초가 되며 개인이나 민족보다 우선하는 것이다.
적어도 지난 3,000년 동안 대부분의 북부 인도의 가족은 연장자인 남성의 말이 법이고 아들들은 신부를 아버지의 지붕 밑으로 맞이해 함께 사는 부권사회를 유지해 왔었다. 작업과 그 결실, 오락과 그 기쁨은 대가족의 공유물이었고 이 대가족은 보통 3세대 간 혹 4세대가 그 구성원을 이루고 있다. 도시의 핵가족제도는 현재 일반화되기 시작하고 있지만 아직도 도시의 대부분의 가족 그리고 50만개에 이르는 농촌마을에서는 전통적인 가족제도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가장, 아버지나 할아버지는 거의 신과 같은 대우를 받으며 가족 구성원은 그에게 존경을 바치고 그의 결정에는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 가장의 결정에 반항할 경우에는 가문에서 추방당하는 위험도 감수해야 한다. 비록 가장에게 주어진 전통적인 권한이 무제한적이고 독재적인 것이라고 할지라도 최고의 가장이 되기 위해서는 그 권한을 남용해서는 안되고 현명하게 사용하여야 하며 재산에 관한 문제와 같이 중요한 문제에 있어서는 부인과 아들들과 충분한 논의를 거치는 아량을 가져야 한다. 대부분의 인도인들은 권위에 대해서는 순종적이고 겸손하다. 심지어 그들의 관점에서 매우 불공정하거나 또는 어떤 제한, 규정, 명령이 참을 수 없는 것이라는 여론이 팽배할 때도 권위에 대해서는 순종적이다. 이와 같은 경향은 가부장적인 분위기에서 키워진 것으로 보인다.
인도의 상층계급은 장자상속을 원칙으로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아들들이 재산을 똑같이 나눈다. 현재 딸들도 상속재산을 분배받을 권리를 법적으로 보장받고 있지만 그 권리를 찾기 위해서는 상속권을 주장할 용기가 있어야 하고 그 다음에는 법정에서 승리하는 행운과 그 승리를 현실화시킬 수 있는 끈질김을 가져야만 한다. 즉, 법적으로는 딸들의 상속권이 보장되어 있지만 현실적으로 그 혜택을 받는 딸의 숫자는 무척 적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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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혼례절차와 풍습
약혼식과 결혼식 사이에 행하는 몇 가지 관습들이 있다. 이런 관습들은 지역마다 다르긴 하지만 공통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신랑의 아버지는 단과자(Mithai)같은 것을 신부에게 준다. 그러면 신부는 약간의 돈으로 신랑 아버지에게 보답을 한다. 그 이후에 신랑의 아버지는 다시 신부에게 장신구류를 보내주며, 이번에도 역시 신부는 돈이나 옷 등으로 신랑의 아버지에게 선물을 제공함으로써 받은 것에 감사를 표한다.
인도에서는 여자가 남자한테 청혼하는 것이 보통이며, 신랑의 아버지는 청혼 받은 사실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리고 신랑의 아버지는 자신의 아들과 잘 어울리는 신부감인가를 알아보기 위해 남녀의 별자리를 맞춰본다. 힌두교도들은 개인의 운명에 대한 별자리에 대해 철저하게 신봉하기 때문에 두 사람의 별자리가 조화롭지 못하면 행복한 결혼생활을 유지할 수 없다고 믿는다. 별자리가 일치하면 신랑과 신부 측에서는 승려(사제)와 점성가를 불러 양가의 가계와 족보를 살펴본다. 별자리와 족보상에 이의가 없고, 가장 중요한 문제인 지참금에 있어서도 협의가 이루어지면 약혼날짜가 정해진다. 이와 같이 예비 신랑, 신부의 아버지들이 친척, 승려들과 자리를 함께 하여 결혼을 공식적으로 허락한다. 그러면 약혼이 이뤄지고 결혼 날짜와 시간도 점성가와 별자리를 상의한 후 결정한다. 양쪽 모두 혼례를 거행하기 전에 행운과 복을 가져다주며, 모든 장애물을 제거해 준다고 믿는 가네샤 신에게 예배한다. 신랑측 일행이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신부의 집으로 가기 전에 신부측은 먼저 말을 신랑의 집으로 보낸다. 신랑은 어린 동생이나 사촌을 뒤에 앉히고 말을 타고 그의 일행과 더불어 춤과 노래를 하며 신부의 집으로 향한다. 이것을 고디(Ghodi)라고 한다. 신랑측 일행이 신부의 집에 도착하면 신랑은 말에서 내려 커다란 홀에 있는 조그만 방으로 안내된다. 이 때 신랑측 일행은 커다란 홀로 가고 신부의 친구들이나 다른 신부의 친척들은 신랑이 있는 곳으로 가서 장난 어린 야유를 하기도 한다. 신부와 그녀의 부모들은 칠보식(결혼식을 완결하는 의미로 성화의 주위를 일곱 발자국 걷는 의식)이 끝날 때까지 단식을 한다. 신랑측도 때론 단식을 하기도 한다. 신랑의 어머니는 이때 결혼식 파티에는 오지 않고 고디가 끝난 다음에 신랑이 신부를 데리고 집으로 왔을 때야 그녀는 아들의 얼굴을 본다.
결혼식의 모든 행사는 신부가 있는 곳에서 거행된다. 신부집에서는 만답(mandap, mandva)이라고 하는 큰 천막을 쳐서 임시 건물을 만들어 놓는다. 신부는 목욕제례를 하고 손과 발바닥은 헤나(henna) 염색으로 예쁘게 메한디 장식을 한다. 5천년 전부터 인도나 아프리카 중앙 아시아에서는 헤나(히나)의 잎을 갈아서 몸에 그림을 그리는 관습이 있어왔다. 인도에서는 특별한 이벤트나 축하연을 위한 준비로 행복한 결말과 행운을 바라는 마음으로 그림을 그렸다. 이는 인도에서 ??메한디??라고 하여 결혼예식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이것은 인도인들에게 행운과 축복을 기원하는 상징이었고, 악한 기운을 막고, 다른 위험한 초자연적인 힘에서부터 사람들을 보호한다고 생각되었다. 그러므로 결혼 예식에서의 메한디는 여성들에게 즐거운 시간을 제공할 뿐 아니라 신부의 새로운 출발을 축복하는 의미이기도 하다.
식장 중앙에 정방형 화로를 세워 신성한 불을 밝혀 놓는다. 불의 신인 ??아그니??가 지켜봐야 한다는 것이 인도 결혼식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의식이 치러지는 곳 주위를 축하하는 하객들이 둘러앉아 의식을 함께 한다. 결혼 예복으로는 다양한 종류의 의복이 있으나, 대체로 소재는 실크이고 부분적으로 금실의 장식이 들어가 있다. 의식 중 부부의 인연을 묶어주는 것이 있는데 이를 위하여 남?여 모두 긴 천을 두르고 있다. 여성은 수많은 보석류로 몸을 장식하고 있어 머리부터 발끝까지 화려하기 그지없다. 특히 머리와 얼굴을 화려하게 장식한다. 얼마나 값비싸지 치장하고 있는 가를 보면 신부의 집안을 가늠할 수 있다. 슬플 정도로 화려하게 꾸민 신부는 자매의 손을 잡고 예비신랑이 앉을 장소로 향한다. 신부의 부모는 신랑의 부모를 환영하고 일가친척들과 함께 자리를 잡는다. 신랑이 바나나 줄기로 장식된 베디(bedi)란 곳으로 가면 결혼식이 시작된다. 신랑이 나무로 만든 좌석에 앉으면 신부가 다가와 그 옆에 앉는다. 그 쌍의 양쪽으로 신부의 부모와 신랑의 아버지 혹은 보호자가 앉는다. 그리고 그 옆으로 두 명의 사제가 앉는다. 주례는 승려가 맡는다. 먼저 신랑이 말을 타고 친구와 친척들의 호위를 받으며 기쁨의 춤을 추는 행렬을 이끌고 신부집에 도착하고 나면 신부는 베일로 얼굴을 가리고 예복을 입고 식장에 마련된 의자에 신랑과 나란히 앉는다.
결혼식은 몇 시간에 걸쳐 치러지지만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페라(phera)라고 하며, 신랑과 신부가 신성한 불꽃 주위를 도는 의식이다. 그리고 상단 좌석의 오른쪽에 자신의 가족과 함께 앉아있던 신부가 이제 시댁 식구가 될 사람들과 같이 왼쪽에 가서 앉는다. 이는 한 가정에서 다른 가정으로 합류하였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사제가 베다에 나오는 경구들이 암송된 후 신부의 어깨에 늘어진 긴 천으로 신부의 머리 덮개용인 두빳따(dupatta)의 한 쪽 끝을 묶는다. 그리고 나서 그 쌍은 일어나 성화 근처를 일곱 걸음 도는데 이 때 세 걸음은 신부가, 나머지 네 걸음은 신랑이 돈다. 이 절차가 끝나야 그 둘은 합법적인 부부로 인정을 받는다. 이 칠보식(七步式, saptapadi)을 행하지 않으면 결혼식은 불완전한 것으로 여겨진다. 함께 걷는 일곱 발자국은 그 각각의 의미가 있다고 한다. 즉, 식량, 힘, 부의 증대, 행운, 자녀, 장수, 화목을 기원하는 것이다. 칠보식이 행해지기 전에 사제는 그 쌍으로부터 책임감에 대한 맹세로 부부로서의 의무에 대한 서약을 받는다. 한 걸음, 한 걸음마다 그들은 서로의 미래에 대한 기도를 한다. 그리고 나서 둘이 나란히 머리를 맞대고 있으면 사제가 물 항아리에서 물을 떠서 신랑 신부 머리에 뿌려준다.
승려가 린넨 천으로 한 끝은 신랑의 옷에 묶고 다른 한 끝은 신부의 옷에 묶고 신성한 문구를 찬양함과 더불어 신랑, 신부는 승려의 지시에 따라 힌두 의식들을 반복하게 된다. 여기서 힌두 의식이란 코코넛기름을 마시고 손에 바르며 화로에 던지는 것이다. 쌀이나 곡식 등도 이와 같은 방법으로 행한다. 곡식으로 이러한 의식을 치르는 의미는 풍요롭게 사는 것을 기원하며 축복의 의미가 있다. 붉은색 끈을 신랑, 신부의 팔목에 브라흐만 사제가 묶어주는데, 붉은 색은 성스러운 의미이다. 의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의미를 갖는 단계는 신랑, 신부가 화로에 불을 붙이는 것이다. 불의 의미는 매우 중요한데, 그 이유는 불이 모든 것의 정화이며 신성함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불의 신 아그니가 이 모든 절차를 지켜보고 이들을 축복한다고 한다. 린넨 천으로 한 끝은 신랑의 옷에 묶고 다른 한 끝은 신부의 옷에 묶고 신성한 시들을 읊는다. 이는 두 사람이 부부가 됨을 의미하는 것으로 부부의 인연이 연결됐음을 뜻한다. 한편 신성한 불 주위를 신랑이 앞서고 신부가 그 뒤를 따르면서 일곱 번을 돈다. 이 행위는 결혼 계약을 봉인하는 것이다. 한 세대가 아닌 일곱 세대가 결혼한 것을 의미한다. 그런 다음 신랑은 집밖으로 나와 신부를 가마(doli)에 태운다. 때때로 그녀 옆에 꼬마 여자애가 앉기도 한다. 신부가 집을 떠나면 그녀의 부모나 친지들이 그녀를 배웅하는데 이 때 어떤 이들은 심하게 울기도 한다. 신부를 태운 신랑의 무리가 도착을 할 무렵 신랑의 식구들은 마중을 나간다. 신랑의 어머니는 집 문밖에 나가 그들을 맞는다. 이 때 그녀는 겨자기름을 문 양옆에 붓는다. 신랑과 신부가 집으로 들어오자마자 신부는 그녀 앞에 놓인 쌀이 가득 담긴 조그만 흙 항아리를 쓰러뜨려야 하고 그런 다음에야 집으로 들어와 신랑측 여자 친척들의 환대를 받는다. 어떤 지역에서는 신랑의 어머니가 물 컵으로 그들 주위를 일곱번 돌리고 나서 신부가 그걸 마시기도 한다. 이것은 장차 자신의 아들에게 닥칠지도 모르는 불행을 방지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다음 신랑측의 나이든 여자친척들이 신부의 손에 참깨씨를 쥐어주면 그녀는 즉시 그것을 되돌려 주곤 한다. 이것은 신부가 참깨 씨만큼이나 많이 아이를 낳으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 다음 절차로는 돈으로 가득 찬 지갑을 신부에게 건네주면 신부는 그녀가 원하는 만큼 그것을 집는 것이다. 이것은 남편이 ??모든 세속적인 부를 부인의 관리하에 두겠다'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면서 신부는 신랑의 동의 없이는 아무 것도 쓰지 않겠노라고 다짐한다. 신랑의 집에서 며칠을 묵은 다음 신부는 자신의 집으로 돌아간다. 그러면 신랑은 그녀를 다시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옴으로써 본격적인 결혼생활이 시작된다. 결혼식 후 신랑신부는 인생의 새로운 문으로 들어간다는 의미로 많은 축복과 더불어 황홀한 꽃다발 세례 속에 신혼의 침실로 들어간다. 결혼 후에 신부는 남편의 집에서 그의 가족들과 함께 지내게 되는데 결혼을 하고 첫 한달 동안 신부는 요리나 세탁 청소와 같은 집안 일에서 제외되었다. 그래서 그녀는 집안에서 자신의 의무를 익히고 새로운 가족들을 알기 위한 충분한 시간을 갖게 된다. 부유층의 결혼식은 부의 과시로 나타나 빈부의 극한 대조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참고로 하객이 선물이 아닌 부조금을 낼 때에는 1루피 짜리를 더해 끝이 1로 끝나도록 한다(예를 들면 401, 501 루피). 아마도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 때에는 3이란 숫자를 기피하고 4라는 숫자를 선호한다는 점도 알아둘 필요가 있을 것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