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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인도] 마하뜨마 간디

명호경영컨설턴트 2009. 8. 5. 06:34
아마도 간디를 모르시는 분은 거의 없으시겠죠? 그만큼 이름이 널리 알려진 분이죠. 간디의 본명은 모한다스 까람짠드 간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마하뜨마라는 말은 위대한 영혼(마하 = 위대함, 아뜨마 = 영혼)이라는 뜻으로 그를 존경하는 의미에서 부르는 이름이죠. 여기선 간디에 대해 막연히 알고 계시는 분을 위해 간디의 생애를 살펴 보도륵 할께요.

간디의 생애

간디는 1869년 10월 2일, 인도의 반(半)독립국 뽀르반다르에서 태어났어요. 그의 집안은 상류층이었으며 부유했지만 아주 높은 계급은 아니었어요(어떤 자료에는 끄샤뜨리아[크샤트리아] 또 어떤 자료에는 바이샤라고 나와있는데요 자료의 수로 미루어 바이샤인듯 하군요. 어쨌든 브라만과 수드라가 아님은 확실해요.). 조부와 부친은 모두 그곳에서 재상을 지냈구요, 그의 어머니는 독실한 힌두신자였어요. 그는 13세때 결혼을 하죠.

그는 19세가 되던 해인 1888년 9월, 영국으로 법학을 공부하기 위해 영국으로 떠나죠. 그리고 1891년에 변호사가 되어 인도에 돌아왔어요. 1893년까지 인도에서 활동하던 간디는 중요한 사건의 변호를 위해 당시 영국의 또다른 식민지였던 남아프리카로 향하게되죠. 바로 그곳에서 간디의 독립운동이 시작됐어요. 간디는 1등석의 차표를 가지고도 백인에게 기차에서 쫓겨나는 경험을 하고나서 독립활동을 결심하게 되죠.

그는 20년동안 남아프리카에 머물면서 그곳의 인도인들의 권리를 위해 싸웠어요. 그는 수차례의 투옥을 비롯해서 온갖 고초와 굴욕을 겪으면서도 투쟁을 해나갔어요. 그는 이곳에서 '싸땨그라하 (진리 파지 -자료에 따라서는 '진리의 힘'이라고도 번역을 하는데 저는 '진리 파지'가 더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운동을 벌이죠. 이 싸땨그라하는 비폭력적으로 저항하는 것으로 힌두교, 불교, 자이나교의 기본 교리인 아힘사(비폭력)를 그 근본으로하고 있죠. 결국 그는 남아프리카에서 대규모 무저항 운동을 펼쳐 인도인들의 많은 권리를 찾아 주었어요.

이미 남아프리카에서의 활동으로 유명해진 간디는 1915년 귀국하여 인도에서 활동을 하게 돼요. 남아프리카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그는 인도에서도 '싸땨그라하'를 펼치죠. 그는 소금행진 등 3차례의 대대적인 운동과 11회의 단식을 통해 영국에 저항하였고, 인도국민회의를 강화했어요.

이렇게 인도의 독립 운동에 몰두하던 그는 1930년대 이후에는 주로 사회 문제에 전념하게되죠. 그래서 그는 힌두사회의 체질 비판, 불가촉 천민의 구제, 무슬림과 힌두 사이의 대립 완화 등의 문제를 해결 하기 위해 노력하죠.

제 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인도와 파키스탄의 분리 독립에 반대하여 통일된 인도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지만, 결국 인도는 나뉘어 독립을 하게 되죠. 또한 분리 독립후 벌어진 서로에 대한 학살을 저지 하기 위해 목숨을 건 단식을 행하기도 했죠.

인도가 통일이 된 후인 1948년 1월 20일, 그는 공개기도회에 참석하기위해 가던중 '나투람 고드세'라는 힌두 광신교도가 쏜 총에 쓰러지고 말죠. 그는 쓰러지면서 '헤, 람(신이시여)'라는 말을 남겼다고 해요. 그가 화장된 라즈가뜨에 그가 마지막 남긴 말이 새겨져 있죠.

자료제공 : 인도 백화점
출처 : 여행가이드 [국내여행,유럽여행,일본여행,중국여행,동남아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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